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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외국 기숙사에서 쓰는 인생 썰

스쿠너영이 |2022.02.16 17:04
조회 79 |추천 0

만나기 전날, 학교 역 근처에 있는 화장품 가게에 갔다. 20년 동안 살면서 화장품은 한번도 발라 본 적도 없고, 사본 적도 없다. 누나가 동남아시아에 간다. 날 기억할 수 있는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 당시 동남아시아 -> 열대지방 -> 덥다 -> 선크림 내 20살 머리 속에서 나온 결론이었다. 선크림 종류랑 브랜드가 그렇게 많은 지 처음 알았다. 봐도 뭐가 무엇인지 알리가 없었다. 점원 분이 내게 다가와 찾는 상품이 있는지 물었다.


“제 또래 여성 분이 쓸 거고, 열대지방인 나라에서 쓸 수 있는 좋은 선크림 하나 추천해주시겠어요?”


점원 분이 추천해주신 선크림은 5 만원이 넘었다. 그 당시 최저 시급이 5210원이었다. 나는 용돈을 받으면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한달 용돈이 30 만원이었다. 동기들이랑도 놀지 않고, 옷도 사지 않고, 술 담배를 아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용돈의 절반 넘게는 저축했던 것 같다. 비싸다는 느낌은 없었다. 순수하게 떠나기 전에 선물을 꼭 주고 싶었다 누나에게. 계산하면서 예쁘게 포장 해 달라고 점원 분께 부탁했다. 기숙사로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누나가 선크림을 써주면서 내 생각 한번이라도 해주면 뭐 된 거지’ 하며.


학교 안 카페는 저렴한 가격과 함께 항상 학생들로 붐볐다. 포장된 화장품이 들어있는 종이 가방을 꼭 잡고 기다렸다. 누나가 들어왔다. 혼자 와 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떠나기 전 인수인계, 과제, 지인 분들에게 인사 등등 바쁜 생활을 했다고 했다. 20분 정도 지난 후, 누나에게 준비한 선물을 주었다. 평소보다 더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고맙다고 했다. 기분이 좋았다. 좀 더 오랜 시간 같이 있기를 바랬지만, 바로 약속이 있어 가봐야 한다고 했다. 누나에게 페이스북으로 종종 연락해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그럼 계속 연락하고 지내자” 하며 대답해 주었다. 뻔한 답이었을 지라도 기뻤다. 이제 여기서 인사하면 진짜 못 보는 구나 싶었다. 슬픈 티는 내고 싶지 않았다. 웃으면서 평소처럼 인사하고 싶었다. 물론 티가 났을지도 모르지만.


기숙사로 돌아왔다. 공허했다. 내일이면 떠나시는구나. 잘 준비를 끝내고 페이스북을 들어가 보았다. 누나 페이스북 페이지에 몇 장의 사진들과 함께 새로운 게시물이 올라와 있었다. 클릭해서 자세히 보았다. ‘응원해주시고 선물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하며 인사 글과 함께 선물 받은 물건들을 찍은 사진들이 있었다. ‘그럼 그렇지’ 수많은 선물들이 보였다. 딱 보기에도 비싸고, 센스 있고, 괜찮은 그런 물건들. 사진들을 확대해 보며 내가 준 선크림을 찾아보았다. 초라해 보였다. 나만 선물을 주었던 게 아니구나. 순간 찌질 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게 뭐라고, 당연한 거 아닌가, 학회장이면서 대외 활동도 많이 한, 인간관계도 좋은 분이다. 당연히 많은 응원과 선물을 받지 않겠는가. 좋지 않은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누나에게 간단한 카톡을 남겼다. 아침 비행기를 타기 전에.


‘누나 잘 갔다 오세요. 아프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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