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꾸려 열심히 살아가는 30대 직장인입니다.
나름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가슴 한켠에 원망과 희망이 뒤섞인 삶을 살고 있어 조언 구하고자 글을 씁니다.
아빠는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때부터 직장인이 될때까지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유는 사기로 인한 사업실패였는데, 아빠는 안방에 틀어박혀 식음을 전폐한 채로 줄담배만 피우셨고 한창 교육비가 많이 들어갈 무렵인지라 엄마는 안해본 일이 없으셨습니다.
학창시절에는 부모님 지원 맘껏 받는 친구들이 부러웠던터라, 아빠를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집에만 있는 아빠가 미웠고, 고생하는 엄마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뿐이였습니다. 엄마와 저는 아빠가 조금이라도 경제활동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빠에게 애원도 하고, 설득도 하고, 욕도 하고, 화도 내보았으나, 변화 없는 모습에 포기하고 투명인간처럼 각자의 역할만을 다하며 살아 왔습니다.
대학교 진학후 다행히 졸업 전에 취직을 하고 나서는 미친듯이 돈을 모았습니다. 결혼을 하더라도 스스로 해결해야 된다는 생각때문이였습니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났더니, 그제야 부모님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원체 잇몸이 약했던 아빠는 고혈압까지 앓게 되면서 치아의 대부분이 빠진 상태였습니다. 엄마는 자식을 키우느라 친구도 제대로 만나지 못했던 청춘이 아쉬웠는지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상황이였죠. 부모님은 이혼은 안하셨지만, 서로 대화조차 없으셨습니다.
배우자와 협의하여 아빠 틀니를 해드리고, 자식 노릇 해보자며 아빠 엄마께 안부 전화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빠는 적극적으로 가족 모임을 주도하고 참여했으나, 가슴 한켠에 본인이 가장 힘들때 아내도 자식도 따듯한 말 한마디를 해주지 않아 재기에 늦어졌다는 생각을 갖고 계시더라고요...
최근에서야 주기적으로 일용직 노동을 하시는데, 치아 상실이 자신감 부족으로 이어지며 그동안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없었다고 하십니다. imf때 그만둔 회사 이야기를 꺼내며 그 회사를 계속 다녔더라면, 아직도 몇십년전 이야기를 꺼내며 아쉬워하시네요.
직장생활을 해보니 사람에게 받은 깊은 상처가 쉽게 치유될 수 없다는 것을 조금은 알겠습니다만, 과거에 머물러 있는 아빠가 아주 답답하게 느껴져 다투게 될 때가 많습니다.
만약, 제가 그때 엄마의 입장이였다면, 혹은 제가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몇십년을 집에만 있던 아빠에게 믿음을 주고 따듯한 말로 아빠 행동에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아빠는 되찾은 치아만큼 말도 웃음도 많아졌고, 가족밖에 없다는 말을 자주 하시곤 합니다. 반면, 혼자 가정을 이끌어 가야했을 엄마는 최근 지인과의 약속이 늘어나며 갑작스레 가족과 시간 보내는 것을 어색해 하시는듯 합니다. 사람이 참 간사한게, 미리 약속을 잡고 부모님을 뵈러가도 엄마를 보는 날은 손에 꼽으니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과거에 가족을 정말 힘들게 했으나 지금은 가족이 최고라는 아빠와, 과거에 가족만 바라보고 살았으나 지금은 내 삶을 살겠다는 엄마,
두 분 사이에서 그저 과거의 아픔과 상처는 서로 이해하고 조금 내려두고는, 조금은 평범한 가정의 자녀로 살아가고자 하는 바람이 너무 큰 탓인걸까요?
최근에는 비좁고 오래된 아파트에 빼곡히 들어찬 잡동사니들 때문에 어둡고, 심지어는 곰팡이까지 든 집에서 부모님을 모셔오고자 하는 프로젝트에 돌입했습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형제가 아파트 구매를 앞두고 있기 때문인데, 부모님 댁을 리모델링 후, 반전세를 들여 부모님 명의의 대출을 갚고 남는 자금은 형제의 집 구매에 보태자는 자식들만의 계획입니다만, 부모님은 본인들은 있는 그대로 살게 두고 너네들만 잘먹고 잘살라는 입장에 다시 한 번 가슴 한켠이 답답해 옵니다.
애인은 물론, 당장 결혼 계획이 없는 형제는 아파트 구매 후 혹여 본인이 결혼하게 된다면 임차인의 돈은 본인 아파트 담보로 대출을 받아 드리면 돼서 걱정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새 아파트에 사시다가, 다시 집에 돌아가게 되더라도 부모님이 리모델링 된 깨끗한 집에서 살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당장 부모님 집에 들어가는 대출 원리금에 궂은날 일용직에 나가는 아빠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한 탓이지요.
기업에서 정년 퇴직을 하고도 남았을 연세의 일용직 우리 아빠와, 소일거리 하는 우리 엄마가 그저 덜 고생하고, 지금 사는 집보다 더 좋은 집에서 가족과 두런두런 밥 한끼 하는 삶을 살길 바라는데 이게 욕심인걸까요? 결혼한 저만 너무 좋은 환경에서 사는 것 같아 종종 죄책감 비슷한 감정이 올라오곤 합니다.
부모님이 말씀하신대로, 그저 자식인 저희들만 잘 살면 그만인걸까요? 부모님의 인생은 지금 꾸려놓으신대로 한발짝 떨어져서 보면 되는 걸까요?
과거보다 꽤 그럴싸해졌지만, 여전히 과거때문에 아픈 저희 가족,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견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추가글)
따듯하고도 마음에 와닿는 따끔한 댓글들 모두 읽어보았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무책임한 가장이였던 아빠를 향한 분노와 원망이 가득했던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가정을 꾸린 제가 이제는 먹고 살만해져서 여전히 엄마에게 그럴싸한 가정을 만드는데 동조하라고 희생을 강요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원망스럽지만 괜시레 짠한 아빠와, 생각만 해도 눈물나는 엄마 사이에서 이제 제 인생 사시겠다는 엄마를 참 못살게 했다는 생각에 죄송함이 밀려옵니다.
아빠가 일용직 노동으로 벌어오는 돈은 낡은 아파트의 대출 원리금 상환에 쓰이며, 이를 제외하고 남는 돈은 아빠의 생활비로 사용됩니다.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병원신세라도 지게 된다면 자식들에게 폐끼치치고 싶지 않다며 상당부분 저축도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엄마는 소일거리를 하며 본인 생활비를 벌고 계시며, 아빠에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예를 들어, 보일러 고장으로 인한 수리비 각출) 어떤 경제적 지원 요청은 하지 않고 계십니다.
아빠는 자신이 사업에 뛰어 들었던 것이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일이 아니였는데, 그로 인한 실패로 상실감에 빠졌을때 가족 속에서 철저한 외로움을 느끼셨다고 합니다. 엄마가 가끔 고기라도 사오는 날에는 나와서 같이 먹자고 아빠한테 손도 내밀고 했었는데, 계속되는 아빠의 거절에 엄마도 자식도 아빠를 투명인간 취급하긴 했었습니다.
사업실패는 우리 아빠만 겪은 일이 아니였고, 몇년간 방황을 하더라도 일확천금을 벌어오라고 아빠에게 이야기 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에, 몸이 아파서, 치아가 없어서, 가족내에서 왕따였어서라고 여전히 말하는 아빠가 정말 밉지만, 또 가족이기에 어떻게든 품어보고자 노력 했던 제 욕심이 이제서야 뚜렷하게 보이네요.
제 배우자는 정말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는데, 결혼을 하고 그 화목한 가정에 제가 들어가보니 부러워서, 과거의 아픔은 다 덮어두고 조금만 서로 노력하면 우리 가족도 함께 여행도 다니고, 식사도 같이 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에 엄마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준 것 같습니다.
그 시절 큰 아파트에 살다가 가세가 기울며 셋집 살이를 처음으로 하고, 외할아버지와 엄마의 형제들에게 돈을 빌려 꾸역꾸역 장만한 지금의 낡은 집 한채가 고마우면서도 왜 그렇게 미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아픔과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집에서 부모님을 빼내오고 싶다는 생각 뿐이였고, 형제와 나름 새로운 주거지로의 이사를 구상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과한 욕심이였음을 깨닫습니다.
사실 부모님 빚을 대신 갚아드릴만큼 아주 여유로운 삶은 아니고, 또 그렇다고 부모님을 모시고 살 수 있는 상황도 아니기에, 어떻게든 주어진 환경에서 부모님의 거부감을 줄여가며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엄마가 좀 더 편안히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사실수 있게 지지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빠를 향한 쓸데없는 연민은 버리고, 지금의 저희 형제를 있게 해 준 우리엄마, 죽을만큼 고생했지만 자식 농사는 꽤 성공해서 엄마가 그려가는 삶대로 살아가실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바쁜 시기에 가슴속에 숨겨둔 이야기를 끝까지 봐주시고 진심으로 조언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남겨주신 댓글들 자주 들여다보며, 우리 엄마가 스스로 행복할 수 있도록 곁에서 살뜰히 챙기겠습니다. 다시 한 번,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