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예방 수업을 들으러 왔다. 강사의 말에 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잊고 살았던 옛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만 만약 아이가 누군가에게 끌려갔을 때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 소리 지르지 말고 가해자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알려줘야 합니다. 살인자 대부분은 처음부터 살인을 계획한 것이 아닌 우발적인 범행인 경우가 많은데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시끄러워 죽였다. 말을 듣지 않아 죽였다.’라고 합니다. 그래요. 일단 살아서 돌아와야 하니까요.”
오빠 껌딱지라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또래의 친구들과 경쟁하며 노는 것보다 오빠와 오빠 친구들 사이에서 특별대우를 받으며 노는 것이 더 즐거웠다 동네의 몇몇 짓궂은 사내아이들은 “쟤, 쟤네 오빠 믿고 까불고 다니잖아. 오빠 없으면 별것도 아닌 게.”라며 오빠가 없을 때만 골라 나를 흉봤다. 한번은 그중에서도 가장 말썽꾸러기인 동갑내기 남자아이가 나를 괴롭혔다. 그 자리에 오빠가 없으니 나를 괴롭혀도 별 탈이 없을 거로 생각한 것 같다. 나는 그 아이가 찬 발에 피할 새도 없이 귀를 맞았고 7살 아이가 그렇듯 큰 소리로 울며 집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오빠와 오빠 친구들을 마주쳤고 오빠는 우는 나를 보고 화가 나 누가 그랬냐며 묻고는 내 대답을 듣자마자 친구들을 모아 그 아이에게 쫓아갔다. 3살 차이만큼 걷는 속도도 차이가 나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응징은 끝이 났고 그 아이는 나보다 더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때는 그랬다. 막 태어난 아기의 세계가 엄마의 존재만으로 가득 채워지듯 나는 오빠만으로 나의 세계를 가득 채웠다. 그것이 틀렸던 것은 아니다. 오빠로 채워진 나의 세계는 작은 그림자도 없었다. 오빠의 존재 자체가 빛이었기에 그림자를 만들어 낼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내가 틀렸던 것은 지속성이었다. 오빠의 사춘기가 시작되고 오빠는 다른 세계를 향해 나아갔으며 나의 세계에 유일한 빛이었던 오빠의 부재는 내가 스스로 빛을 내는 방법을 배우기도 전에 어둠이 되어 나를 덮쳤다. 내가 커갈수록 나만의 세계는 사회라는 울타리로 확장되었고 나의 울타리는 커지기만 할 뿐 그 무엇도 채워지지 않았다.
친구를 사귀는 방법 따위도 몰랐기에 학교에서도 외톨이었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1분 거리에 사는 동갑내기 여자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키가 작고 단발머리에 눈은 작지만 동그랗고 연필심으로 콕 찍어 놓은 듯한 보조개가 있었다. 나는 제법 키가 컸기에 모르는 사람이 보면 동생과 언니로 오해하기도 했다. 부모님은 맞벌이하셨고 오빠는 친구들과 놀기 바빠 초등학교에 올라가서는 나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시간 대부분을 그 작은 친구 집에서 보내고는 했다. 어느 날은 머가 그리 급했는지 1분 거리인 집에도 들르지 않고 친구네로 곧장 가 몇 시간을 보냈다. 혼자서 집에 있을 때는 그리도 안 가던 시간이 친구네서는 어찌나 금방 흐르는지, 놀다 보니 친구의 부모님이 돌아오셨고 나는 친구의 부모님이 어려웠던 탓에 가방 챙기는 것도 잊고 인사만 드린 채 집으로 돌아왔다. 계절은 여름을 향하고 있어 해가 제법 길었기에 집에 가는 길이 어둡지는 않았다.
내일 학교 갈 준비를 하려고 보니 가방이 없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가방이 친구네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금방 가지러 갈게.”하고 전화를 끊고 친구네로 향했다. 어른 걸음으로 1분 아이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도 3분이면 갈 거리였다. 8시가 지나서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나는 익숙한 그 길을 가는 것이 그날 유난히 어려웠다. 피곤한 것인지 무서운 것인지 빠른 걸음으로 갔다가 얼른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친구 집은 지금은 많이 사라진 연립빌라였는데 친구의 집은 빌라 정문에서 가장 가까운 동이었다. 사회 경험이 별로 없는 그 어린 나이에도 ‘감’이라는 것이 있었을까. 몇 발자국만 가면 친구가 사는 동의 현관인데 정문을 지나자마자 낯선 성인 남자가 나를 불렀다. 물어볼 것이 있다며 나를 멈춰 세우고는 내가 어떠한 판단도 내릴 시간 없이 내 손목을 붙잡고는 빌라를 둘러싼 담과 빌라 외벽 사이의 공간에 나를 끌고 갔다. 내 나이 10살,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그 남자는 나를 빌라의 외벽에 세우고는 알 수 없는 말들을 시작했다. 친구가 사는 동의 빌라 외벽이었다. 나는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을 알았지만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나의 시대는 그러했다. 성폭행 피해자를 탓하고, 성폭력 예방을 위한 교육 따위에는 관심 없는 그런 시대였다. 나는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다. 그것이 내가 대한민국을 미워한 가장 큰 이유이다.
가로등이 비추지 않는 한적한 곳. 사람들이 관심 두지 않는 어두운 구석. 사람들의 통행이 적은 담벼락 너머의 거리. 그러한 곳에 성인 남자와 10살 여자아이가 함께 있다. 나는 꼼짝 없이 얼어버렸고 너무 무서워 작은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참을 수 없는 눈물만이 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려 “흐끅흐끅” 소리만 나왔다. 남자의 손은 내 옷 속 여기저기로 들어왔고 남자의 입은 내 피부 여기저기를 훑고 지나갔다. 소리라도 질렀으면 나았을까? 그때도 지금도 판단이 서지 않는다. 머릿속에는 ‘가방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라는 생각만 맴돌았다. 이미 어두워졌기에 해가 떨어지는 것으로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한참이 지나고 남자가 말했다. “너 착한 아이구나. 착하게 울어서 보내줄게.”라고.
울면서 친구 집으로 올라갔다. 4층 맨 꼭대기에 있는 친구의 집을 올라가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우는 나를 보고는 친구는 무슨 일이냐며 물었지만 나는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한 사실이 부끄러워 가방만 받아들고 도망치듯 집으로 향했다. 무서워서 뛰고 뛰고 또 뛰어 집으로 갔다. 오빠가 집에 와 있었고 우는 나를 보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이 잘못한 거 같아 말 걸지 말라는 말을 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 어린 나이에도 머가 그렇게 더러웠을까. 그 어린 나이에 왜 그리도 수치심이 들었을까. 때수건을 들고 그 남자의 입술이 훑고 간 모든 자리를 박박 밀었다. 바닥에 묻은 더러운 때를 닦아내듯 내 피부를 때수건으로 긁었다. 입술을 박박 문지르고 있자니 오빠가 들어왔다. 대체 무슨 일이냐며 묻는 오빠에게 보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오빠는 내가 9살 때부터 이미 내 편이 아닌 사람이 되었다. 내 울타리 밖에 존재하는 오빠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빠는 먼가 눈치를 챘는지 밖으로 나갔다. 한참 뒤에 돌아온 오빠는 나를 보며 “괜찮아?”하고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음에도 내일 학교 갈 준비를 마저 하고 자기 위해 누웠다. 누워서 생각했다. ‘내가 착해서 보내줬으니 그 아저씨도 착한 걸까?’ 그런 어리석은 생각 뒤에 다른 어리석은 생각이 따라왔다. ‘내가 착하게 굴어서 다행이야.“
강사의 말에 그때 그 남자의 말이 오버랩되었다. 착하게 울기에 보내줬다고 했으니 그 반대였으면 어땠을까. 그 남자는 도망쳤을까? 아니면 나쁜 아이에게 나쁜 사람이 되었을까.
내가 겪었던 일임. 어릴 때는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는데 성인이 돼서 생각해보니 이제는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그래서 조금은 내려 놓을 수 있게 되었음. 다른 피해자들도 그랬으면 좋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