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랑. 애아빠는. 알고지낸지 10 년이 넘었지만. 그냥 가끔 안부정도 묻고 지내던 사이였어요. 워낙 제스타일이 아니여서. 오랫동안 저에게 호감이 있다는걸 알았지만 관심없이 그냥 아는 오빠 정도사이였다가
우연히. 몇년만에 다시 연락이 닿았고. 연인 사이가 되었고. 연애 한달이 안되었을때 아이가 찾아왔어요. 바라던 아이는 아니였지만
제 나이도 삼십때 중반 이고 오빠도 나이가있어
가진거 없이. 출발 하게되었습니다
둘다 바닥이라. 힘을 모아서. 올라 갈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제가. 알던 오빠는. 고속도로에서도. 100 이상 속도를 내지 않고. 식당에서. 이모님들과. 친하고. 팁도 잘챙겨 주고. 부모님 없이 자라왔기에. 가정에. 충실할꺼라 생각했지요
제 상황은. 보증잘못써서. 십년 직장생활 하며 모와둔 모든게 무너졌어요. 신용 까지요
그런 상황에서. 간절히 아이를 원하고 가정을 원했던 아이 아빠를 믿고. 식도 안올리고. 같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참잘했어요. 하지만. 저는 늘 혼자 였었고. 외롭게 지내었죠
타지에 살려니. 친구 하나 없이 남편 퇴근만 기다렸는데. 이사람 직업이 사람 만나는거다 보니. 전 늘 외롭게 혼자 밥먹고 혼자 자게되었습니다
정말 죽다 살았다는 표현이 맞게. 아이 출산과정은 험난했어요. 대학병원 입원하여 몇일을 고생하다 고생하다 아이를 얻었고. 퇴원하고 집에온 몇일은 행복했던거 같습니다. 제가 엄마가 되었고 우리가 가족이라는게 실감이 나질 않았어요. 연애 한달 하고. 임신 출산 육아. 아이아빠랑 그때부터 삐그덕 거렸네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정말 아파트만 달랑 있는곳에서 살았습니다. 10분정도 걸어 나가야. 마트도 있고 은행도 있었고. 저는 차도 없고. 신용도 없고. 아이랑 만. 24시간 주구장창 집에서만 지냈어요. 그와중에. 아이아빠랑 싸우는 날이면. 물건도 던지고. 저도 때리고 욕도 하고. 하다하다. 경찰에 신고도 여러번 하고. 입술터지고 멍든 저를 보면서. 경찰들이 사진을 찍고. 핏덩이 아이는
옆에서 울고. 정말 죽고 싶었지만. 누구한테 도와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나이 서른후반에. 이런꼴 부모님께 보여드릴수가 없어 혼자서 삭히고 참고 하다가.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아파트 베란다에 매달려서. 한참을 서있는기를 여러번. 날마다 울면서 설겆이 하고. 아이 업고 분리수거 하고.
아이 아빠는 본인옷한번을 걸어 본적도. 청소기를 돌려본적도 쓰레기 분리수거를 해본적도 없습니다. 참. 저 바보 같이 등신 같이 살았죠? ㅜㅠ
아이아빠랑 저는 정말 다른사람입니다
다른 사람 차를 빌려 타고. 기름이 30 남아있길래
주유를 하지 않고. 가져다 주려고 하길래 그런건 매너가 아니라고. 하니. 그걸로 싸웠습니다. 본인이 그럼 무식하다는거냐고
아파트지하주차장에서. 50-70 속도를 냅니다. 그러지말라고. 아이들 뛰어나온다고. 괜찮다고 하더니. 인사 사고가 났습니다
주차위반 속도위반 과태료가. 달마다. 몇십만원이 나옵니다. 지금도 몇백 만원 밀려있습니다
그래도 지키고 싶었습니다 가정을
어찌 어찌 하여. 싸우면 몇달이든 안들어 오고. 어쩌다. 몇일 들어 오면. 숨막히는 그런 삶을 살다 싸우면 또 나가고를 반복. 그러다 아이가
돌이 되었고
돌잔치를 하게되었는데. 이사람이 지인참 많아. 아이돌잔치에 몇백명이 와서. 돌잔치 축의로 일억이 넘는 돈이들어왔어요. 그날 저녁 온가족들이 축하해주시고. 너무 행복했는데
행복도 잠시. 담날 아이아빠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나랑 못살겠다며. 돈을 들고 나갔고. 딱 3개월만에 거지꼴을 하고 나타났습니다
그사이 생활비는. 양육비 면목으로 100에서 150 은줬구요 딱 80 만원 들고 집에 들어 온거 받아줬습니다. 사실 너무 싫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좀 남달라서. 얼집에서 ADHD 검사도 받아보시고 상담도 받아보시라. 조언을 할만큼. 순하지 못한 아이여서. 겁도 나고. 같이. 헤쳐나가주길 바랬습니다
달라지길 바랬어요. 간절히요 자식을 키우면서. 부모도 같이 큰다고 하길래 기다렸습니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6살이 되었고 같이 아이 아빠랑 살아온 세월은. 2년 안됩니다
그사이. 저는 가족행사나 제사 모든걸 다해왔습니다 시조카를 봐야할 상황들이 생겨 한달을 케어하고도. 그 애하나 더 보는게 뭐 큰벼슬이냐고 하더라구요.
아이도 컸고. 가족여행을 좀 가자고 하면 늘바쁘고 돈도 없다는 아이 아빠는. 가족모임 가족여행은 무조건 참석합니다. 없던 돈도. 없던 시간도. 본인형이 가자고 하면. 가더군요
그래서 저는 아이랑 아이아빠랑 딱 한번 일박이일 여행이 전부 입니다. 아이가 여섯살인데요
아이아빠는 아이를 일주일에 한번. 격주로 한번 정도 한시간 내외로 놀아주고. 갑니다.
이사람과. 이제는 끝내고 싶어서 이혼애기가 오가는데. 위자료며.재산분활 은 해줄수가 없다며 날뛰는꼴을 보니. 참내가 호구로 살았구나
아이아빠명의로된 집에서 양육비 줄테니. 아이아빠 명의로된차로 아이 픽업 하고 학원 보내고 하라더군요
소송으로 가고 싶지 않았는데
더는 답이 없는거 같습니다
저 참 등신으로 살아왔지요…
요즘. 드는 생각은. 아이를 아이아버지에게 보내고
내인생을 찾아야 하나
본인이 키울수 있다고 매번 애기 하는 사람인데
저는 애가 고생할까봐.
내가 키우겠다고. 버티고 버티면서. 학원도 다니고
알바도 하고있는데
오늘 문듯. 거울에 비친 저를 보고 있자니
등신같고. 왜이러고 사나 싶습니다 ㅠ ㅠ
저이제 마흔 하나 지만
사람들 눈에는. 이제 서른한둘 정도 보인다고 할만큼 동안이고 성격도 밟고 친구 좋아하고 여행좋아하고 참 밟은 사람입니다.
어디가서 성격이나 외모나 마음씨나 곱단 소리 많이 듣고 봉사도 많이 하고. 정말 나쁜 마음 없이 살았는데
ㅠㅠ.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저는 어찌
해야 할까요!? 조언 부탁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