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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캠퍼스 로맨스

해내리 |2022.10.04 07:26
조회 290 |추천 0

(젊은) 새엄마가 생긴적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35년전에... 

썰렁하다구 ??? 

아...미안미안...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내 사연...썰을 풀어나가보도록 하지 

 

실은 아버지는 80년대 중반에 

안기부 수사국장을 역임하시면서 간첩소탕과 운동권 소탕에 

혁혁한 공로를 세우신분이고 

그 공로로 13대 국회때 처음 국회의원으로 발탁되어 

내리 6선을 역임하신분이야. 

뭐...그런대로 먹고사는데 어려움은 못 느끼고 

살았을거 같다구 ? 

 

그래...뭐...부인하진 않을께 

여하튼 어린시절 부유한 환경에서 그런대로 

잘먹고 잘살았다는 이야기가 

그리...나쁜 이야긴 아니니 쿨하게 시인하지 뭐... 

다만..실은 우리 아버진 엄마랑 젊은시절 이혼하셔서 

난 엄마없이 자랐고 

게다가 이미 말했지만 안기부 수사국장까지 역임하신 우리 아버진 

내가 한참 예민한,중,고등학생이던 그 시절 

간첩 잡으랴...운동권 잡으랴...늘 바쁘셨기 때문에 

밤늦게 심지어는 며칠에 한번씩 집에 들어오시는적도 많았지 

그래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난 

엄마도 없고 다른 형제도 없이 집에서 쭉 

혼자 시간을 보내야만 했지 

 

물론 일주일에 두 번정도 파출부 아주머니가 오셨고 

게다가 아버지랑 열 살차이 나는 아버지에겐 육촌누님이 되시는 

친척아주머니도 주말 같을 때 가끔 밑빈찬 같은 것을 손수 담그셔서 

챙겨오시기도 했기 때문에 

먹는걸로는 어려움 거의 못 느끼고 산 내 사춘기 시절이지만 

마음속 외로움과 공허함은 

채우기가 쉽지 않았지... 

그러다 반전이 있었어... 

그게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생때인데 

그러니까 대략 1986-87년 정도로 

봐야할까 

 

그때 아버진 전대협의 운동권 거물인 

‘무등산 고릴라’를 체포하라는 정부의 엄명을 받아 

그 작업을 수행중이셨지 

헌데 아버지의 현묘하고 신묘한 계책으로 

약 1년의 노력 끝에 마침내 

‘무등산 고릴라’를 체포할수 있었어 

헌데 황당하고 기가막히게도 

문제의 무등산 고릴라는 그때 약 1년 넘게 

여대 기숙사 지하창고에 숨어 있었던거야 

사실 그 시절에도 적어도 여자들한테 지켜야하는 

에티켓이란게 있고 

또 안기부 요원들 입장에서도 

설마 사내X끼가 쩨쩨하게 여대에 들어가 숨어있겠냐 

그 정도 방심과 자존심은 있었기 때문에 

전임자들은 무등산 고릴라가 설마 여대 캠퍼스에 

숨어있을거란 상상은 꿈에도 못했는데 

하지만 우리 아버지의 수사력에 성역은 존재하지 않았지 

그 유명한 A여대 기숙사 

화장실이며 목욕탕,탈의실 등등 어느곳 하니 놓치지 않고 

아버지가 직접 요원들을 동원하셔서 

철저히 털었던거야 

 

그래서 마침내 

1년 넘게 A여대 기숙사 지하창고에 숨어있었던 

무등산 고릴라를 체포하는 공훈을 세우신거야 

헌데...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런 금남의 구역인 여대 캠퍼스 기숙사... 

그것도 지하창고에 무등산 고릴라가 은신이 가능했다는 것은 

고릴라를 돕는 조력자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겠지 ? 

맞아. 조력자가 있었어. 은지(가명)라는 이름의 당시 2학년 

여대생이었는데 

좀 당돌했다고나 할까...아니면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아가씨였다고나 할까 

 

막상 그렇게 체포되자 무조건 우리 아버지에게 

잘못했다며 울며불며 싹싹 빌었다더군 

참...나...이렇게 순진하고 겁많은 아가씨가 

어떻게 그런 운동권 거물을 1년씩이나 숨겨주는 

엄청난 짓을 저지른건지 믿겨지지 않을정도로 

붙잡히자마자 은지란 아가씨는 무조건 잘못했다며 

울며불며 싹싹 빌었지 

 

그래서...안기부 수사국장이셨던 아버지는 

막상 그러니 그 겁많고 나이어린 여대생에게 

측은지심을 느끼셨다고나 할까... 

대안을 제시했어 

 

바로 아버지의 후처가 되라는게 아버지의 선처조건이었지 

정부가 혈안이 되어 잡으려하는 그런 운동권 거물 

무등산 고릴라를 1년씩이나 여대 기숙사 지하창고에 숨겨놓는 

그런 엄청난 짓을 저지른 여대생이었으니 

살려주는것만이라도 감지덕지니... 

그저 아버지가 제시한 조건에 무조건 

순응하고 따를 수밖에 없었어 

아버진 은지란 학생의 신분세탁을 해주셨지 

마침 고아출신이기도 한 그녀를...더 이상 그런 신분이 아닌 

아버지가 원래 정보부 요원으로 북유럽 첩보활동중 순직하셨고 

그런 요원의 딸을 아버지가 중학생때부터 거둔걸로 

(근데 생각해보니 이게 더 막장이네. -.-) 

 

어쨌든 그래서...무등산 고릴라를 1년이나 숨겨주었던 

은지란 학생은 이후 미영으로 이름을 바꾸고 

아버지가 정보부 요원으로 북유럽에서 순직한 그런 사람의 딸로 

아버지의 후처가 되었던거야 

그러니...나한테는 젊은 새엄마가 생긴거지 뭐 

당시 아버지의 나이가 마흔여덟 

새엄마의 나이 스물둘 

(땡잡은거지 모 ^^;;) 

그리고 난 만 17세의 고등학교 2학년... 

아빠는 그렇게 나라에서 혈안이 되어 찾고있는 

운동권 거물 ‘무등산 고릴라’를 체포함으로써 

나라에 공도 세우고 

젊은 후처까지 맞아들이는 

‘부수입’을 올린셈이지 

- 그리고 ‘무등산 고릴라’는 안기부에서 고문을 견디다 못해 

얼마안가 죽었다고 하더군 

 

새엄마는 아빠하고 사이에 그 이듬해부터 약 8년정도 사이에 

대략 2-3년 정도 터울로 딸 넷을 내리 낳았어 

나에게 네명이나 되는 

배다른 여동생이 생긴 셈이지 ^^;; 

새엄마의 경우엔 아무래도 그런 원죄가 있으니만큼 

(* 나라에서 혈안이 되어 찾고 있는 그런 운동권 거물을 

겁도없이 여대 기숙시 지하에 숨겨준) 

이렇게 팔자가 바뀌어 신분세탁까지 하고 

안기부 수사국장을 지낸 국회의원(13대부터 내리 6선 역임)의 후처로 

신분을 바꿔 사는것에 그냥 운명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운명에 대체로 순응하고 수긍하는 모습이었어 

어쨌든 그렇게 자기 아이도 한둘도 아니고 내리 넷이나 낳았으니 

도망칠수도 없는 처지가 된거지 뭐 

 

아, 참 나랑 젊은 새엄마 관계는 어땠었냐구 ? 

결국...그게 궁금하겠군 ^^;; 

결론부터 말하면 새엄마와 나의 관계 그리 나쁘진 않았어 

새엄마는 그렇게 안기부 수사국장을 지낸 정치인의 아내로 

사는 운명에 수긍하는 편이었고 

나는 다섯 살 차이 나는 새엄마가 과히 나쁘지 않았던데가 

무엇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밤늦게나 심지어 며칠에 한번씩 

귀가하시는 아버지로 인해 늘 쓸쓸하고 힘들었던터에 

다섯 살 차이나는 좋은 친구(?)가 생긴 셈이라고나 할까 

새엄마가 낳은 이복동생들...난 대체로 예뻐했었고 

새엄마도...내가 해달라는대로 다 해주더라 

뽀뽀한번 해달라고 하면 해주고 안아봐도 되냐고 하면 

그렇게 해주고... 

젖달라고 하면...주고... 

그렇게 다섯 살 차이나는 젊은 새엄마랑은 

그런대로 무난한 시간을 보냈지... 

세월이 흘렀어 

 

아버지는 6선 국회의원(13-18대)를 역임하신뒤 

어느덧 연세 80이 다 되신 고령이 되어 (대략 2010년대 후반부쯤) 

세상을 떠나셨고 

아버지의 후처가 되었을 때 아직 20대 초반의 어렸던 

젊은 새엄마도 

나이 50대 후반에 이르렀지 

새엄마와 다섯 살 차이인 나도 어느덧 50을 넘었고 

새엄마가 낳은 딸들도 모두 어느덧 

20-30대 성인이 되어 있었어 

 

나는 20대 후반에 비슷한 연배의 여자를 만나 결혼해 

아들하나,딸 하나를 낳았고 

새엄마나 새엄마가 낳은 동생들과도 그럭저럭 

무난한 관계의 교류가 계속 이어져갔어 

무엇보다 새엄마의 딸들도 어느덧 20대-30대 

큰딸과 둘째딸이 그 사이 시집을 갔지 

새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아버지와 함께 살던 집에 

계속 살고 계셨고 

가끔씩 딸들의 보살핌과 챙김을 받으며 

그렇게 살고 있었어 

나도 가끔씩 새엄마가 잘 살고 계신지 걱정되어서 

이따금 찾아뵈러 갔었어. 

나같은 경우에도 결혼후엔 분가해서 쭉 따로 살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하루는 여느떄처럼 

모처럼 생각도 나고 걱정도 되어 

새엄마를 찾아갔지. 

우리집 구조 설명을 좀 해야할 것 같군 

그러니까 어릴때는 아버지하고 2층짜리 저택에 살았는데 

나는 2층방을, 아버지는 1층방을 쓰셨지만 

식구라곤 어차피 달랑 그 둘뿐이었기 때문에 

1층과 2층에 두어개 정도 여분의 방이 더 있었고 

거긴 그냥 창고겸 아버지 서재겸 

사실상...그냥 방치상태인 빈방이었던거지 

그러다 새엄마가 생기고 동생들이 태어나고 

동생들이 태어나서 자라면서 하나씩 제 방을 쓰도록 해 주었는데 

내가 20대 후반때 결혼하면서 분가해 나왔기 때문에 

새엄마가 낳은 네명의 이복동생들이 제각기 자기방을 쓰기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어. 

내가 결혼할때라고 해봤자 첫째동생,둘째동생이 대략 열 살,여덟살 

셋째,넷째는 아직 다섯 살도 채 안되는 나이라 

엄마가 직접 돌봐야하는때니 

오히려 아직도 여분의 방이 많이 남아있을때야 

 

내가 결혼하고 이후 동생들이 자라면서 

1층과 2층의 네 개의 방을 제각기 그 네명의 딸들이 

쓰게되긴 했지만 

이후에도 뭐...가령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게 된 아이도 있고 

직장을 먼 지역에서 다니게 돼 따로살게 된 동생들 

그러다보니...늘상 집에 한두개정도 여분의 빈방은 

남아있는 상태였어. 

그러다 큰딸과 둘째딸이 시집가고 셋째와 넷째는 

대략 학교 졸업하고 직장다니게 될 그런 무렵쯤 

아버지가 돌아가신거니까 

 

어쨌든 전체적으로 여분의 방은 평균 한두개쯤은 

남아있었던 집이 되는거야 

어쨌거나... 

새엄마의 비밀공간이 집에 하나 있었다는걸 알게된건 

시간이 한참 지난뒤의 일이었어... 

그러고보니 1층 부엌 뒤쪽의 작은방이었는데 

아버지와 나 둘만 살때는 그냥 빈방이었고 

가끔씩 오시는 파출부 아주머니나 밑반찬 챙겨주시는 친척아주머니가 

쉬고가시는 방이기도 했고 

이후엔 새엄마가 셋째와 넷째 키울 때 쓰던 방이기도 했는데... 

물론 이후 새엄마의 네 딸이 다 자라 각자 자기방 쓸때는 

다시 빈방이 된곳이긴 하지만... 

그곳에 뜻밖에도 

새엄마의 비밀공간이 있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어 

 

처음엔 그냥 평범한 옷장이나 수납장정도로 생각하고 

큰 신경 안 썼는데 

좀 의아해서 한번 하루는 그저 새엄마 문안인사 드리고 

불편한거나 살펴드릴겸 들른날 

괜한 궁금함과 호기심이 생겨 문제의 수납장을 열어보았어 

거기선 의문의 노트와 연습장이 나왔지 

노트는 그렇다치고 연습장에 웬 사람 얼굴이 새엄마가 직접 그린듯한 

형상이 그려져있었는데 

 

우선 결론적으로 말하면 

난 그때까지도 ‘무등산 고릴라’를 말로만 들었고 실제 얼굴은 잘 몰랐어 

게다가 새엄마가 그림실력이 그리 좋은편도 아니라 

연습장 가득히 수도없이 그려간 의문의 남자얼굴을 

처음엔 바로 알아보지 못했어 

그런데...아무리 봐도 일단...아빠 얼굴은 아닌 것 같아서 

한번 자료사진으로 확인을 해보려고 했지 

옛날 신문기사를 유력 언론사 데이터베이스 잔뜩 뒤져서 

80년대 그 유명했던 ‘무등산 고릴라’ 사진을 직접 확인한거야 

그리고 ... 

절망의 탄성을 터트렸지... 

 

솔직히 배신감을 안 느낄수가 없었어 

아무리 그래도...아무리 자신이 살기위한 임시방편으로 한 선택이었기로 

30년을 아버지의 아내로 살고 애까지 한둘도 아니고 넷이나 낳았으면서 

그 긴긴세월을 무등산 고릴라를 여전히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새엄마 

우리아빠는 물론 나까지 철저히 우롱했다는 생각에 

배신감에 치를 떨 수밖에 없었지 

하긴 생각해보면...당연힌 흐름일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도 들더군 

그것도 그 서슬퍼런 80년대에...그것도 그런 운동권 거물을 겁도없이 

자기대학 기숙사 지하방에 숨겨놓을정도면... 

그 이전 어떤 정분의 관계였을 가능성...아니 그전까진 아니더라도 

그렇게 한 1년 넘게 그런 남자를 비밀리에 숨겨두면서 

어찌 정분이 나지 않을수 있겠나. 

그리고 또 한편으론 그런 여자가 

어떻게 그게 다 발각되었기로...그리 살려달라고 울며불며 하면서 

순순히 아버지의 후처가 되는길을 순응할수 있었는지 

참...여자의 마음을 알다가도 모른다는 생각과 심지어 

징그럽다는 생각마저 들더군 

 

(1) 운동권 거물을 1년동안 자기대학 기숙사에 숨겨놓은 여대생 

-> (2) 헌데 막상 붙잡히니 살려달라 울고불고 빌면서 안기부 수사국장이던 

아버지의 후처가 된 여자 -> (3) 그리고 30년을 아버지의 후처로 살며 딸도 

넷이나 낳았으면서...여전히 그 무등산 고릴라를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여자 

이런 여자를... 

당신이라면 이해할수 있을까 ? 

총을 뽑았어... 

 

엄연히 법적으로 민간인 총기소지가 금지된 나라에서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의아할 사람도 있겠지만...솔직히 그런 규제 무색하게 할만큼 

70-80년대 웬만한 드라마나 영화 특히 추리극이나 

이런데서 보면 잘사는 집들은 

장총 하나씩 정도는 다 사냥용으로든 장식용으로든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더군 

그리고 그런 드라마나 영화의 끝이 꼭 장총으로 사람죽이는 끔찍한 비극으로 

끝나더만 

 

이 이야기도 결코 해피엔딩이 될수 없어 

난 이미 우리 아빠와 날 지난 30년간 철저히 기만한 새엄마의 배신행위에 

분노로 치를 떨고 있었으니까 

앞뒤 가리지 않고 바로 총을 쏘았고 

새엄마는...쓰러졌지... 

이미 35년전 20대 초반 귀엽고 깜찍하고 여려보였던 외모와 자태는 간곳없지만 

그래도 나이 50대 후반의 돈많고 우아한 귀부인의 자태는 

유지하고 있는 그녀를 그렇게 

쏘아...죽였던거야... 

동생들은 이런 나의 만행에 치를 떨었지만 

이미 그 애들의 이해를 구하고픈 심리상태는 아니었어 

아니, 솔직히 내가 거기서 좀 더 이성을 잃었다면 

새엄마의 딸들에게조차 어떤 해꼬지를 했을지도 몰라 

 

허나 차마 그래도 거기까진 못하고 

총으로 쏴죽인 새엄마의 시신을 

강물에 내던지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지 

이렇게 마무리 되는게 이 비극의 스토리야 

그래도 내 가슴 한켠에 지워지지 않는 수수께끼같은 문제가 하나 남아있어 

여자의 진정한 심리는 뭘까 하는 

여자에게 사랑이란 진정 어떤 의미일까 하는 

아버지의 여자로 살면서 30년을 그 옛날 운동권 학생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산 그 여자의 진정한 심리는 뭘까 

35년전에 이미 죽고 이 세상에 없는 운동권 학생을...숨겨준 그 담대한 짓을 저지른 여자가 

오히려 아버지에겐 살려달라 울고불고 빌어서 제 목숨 하나 

건사하는 댓가로 아버지의 후처로 30년을 살았으면서 

그 세월을 여전히 그 운동권 고릴라를 

마음속에 담아두고 산 그런 여자의 심리와 사랑은 어떤 성질의 것일까. 

내가 법정에서 사형을 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뒤에도 

영원히 

풀지못할 수수께끼로 남을것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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