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같던 생활을 끝낸지도 어느 새 만 1년이 됐네요.
저는 스물셋이라는 나이에 결혼이라는 걸 했습니다.
그 남자를 만난건 휴학을 하고 모 금융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을때였습니다.
당시 제 나이가 갓 스물두살 접어들었을 때였고, 2년간 사귀어 온 첫사랑과 헤어진 직후였습니다. 2년간 함께했던 첫사랑과의 이별은 저를 거의 공황상태로 몰아 갈 만큼 큰 충격이었고.. 집에서는 새엄마와의 갈등으로 너무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그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 남자를 만나면서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외박을 매일같이 했고 급기야 만난지 반년만에 동거를 하게됐습니다. 그렇게 살면서 휴학은 어느덧 예정했던 1년을 넘어서 2년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집이 싫고, 외롭고 사는것이 너무나 힘들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정말 주체할수 없을정도로 그 남자에게 빠져들어 모든것을 다 주고 지하 단칸방에서 하루종일 청소하고 빨래하며 그렇게 살았지요.
저보다 11살이나 많은 그 남자는 저와 사귀는 중에도 이전에 자기와 동거했던 4살연상의 여자와 계속 연락을 하며 그 집을 오갔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됐을때 저는 임신중이었지요.
사귄지 1년 7개월만에 일이었습니다.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그 남자의 집, 그 남자의 엄마, 누나, 남동생, 그리고 동서라는 여자...
참 대단한 분들이었지요.
돌아가신 아버지는 조울증으로 농약드시고 가셨다하고,
병약한 아버지를 평생 괴롭힌 사람은 자기 엄마라고 하더군요.
그녀의 첫인상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뚱뚱한 체형은 아니지만 유난히 튀어나온 똥배.. 척 보기에도 아주 두꺼운 화장을 했지만 기미와 잡티가 채 가려지지 않은 얼굴, 숱이라고는 거의 없는데 억지로 퍼머해놓은 머리스타일... 미간에 깊게 패인 내천(川)자 주름...
애써 품위있고 고상해보이려하는 말투와 행동은
가만히 있어도 인상에서 느껴지는 극도로 신경질적인 인상을 오히려 더 강조하는 효과를 내더군요.
그녀의 나름대로의 고상하고 체신있는 언행은 처음 인사를 하러간날,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육두문자를 입에 달고살며, 집은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항상 돼지우리였죠.
그러면서도 자신은 대학까지 마친사람이라고 허풍을 떨고 밖에 나가서는 온갖 위선은 다 부리고 다니는 그런 노인네였습니다.
동서라는 여자,
저보다 7살 많았지요. 처음 저와 대면한날 차한잔 하자며 밖으로 따로 불러내더군요.
그러면서 자기가 시집와서 2년간 있었던 일을 쭉 얘기하며 지청구를 늘어놓더니 , 형님도 조심하셔야 될거에요 라는 투로 그래도 자기가 도와줄테니 걱정말라더군요. 도대체 뭘 도와준다는건지...전 그냥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황당해서 할말이 없었지만, 사실 어린 저는 동서에게 마음을 열고 잘 지내면 좋겠다하는 생각이 커서 경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여자 말로는, 자기 시어머니는 정신병자라더군요.
그 남자 고향이 충청도 대도시였는데, 그 남자를 제외한 누나, 동생 모두 고향에서 살고있었습니다. 동서라는 여자도 그곳 토박이였는데 공무원을 하고 있더군요.
그러면서 자기는 자기수준보다 훨씬 낮은 집에 시집온것이 너무 후회된다고 하더군요...
이런저런 지청구를 실컷 하고 나더니, 제 메신져 주소와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처음 봤을때부터 7살이나 어린 제게 형님형님 하며 너무나 싹싹하게 잘 하더군요.
제가 어려서.. 본성을 모르고 바보같이 마음을 열어준것이 잘못이었나봅니다.
전 그여자를 처음 본 그날 단 한마디도 장래의 시어머니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혼준비를 하면서, 저에게 수시로 전화를 하고 메신져로 말을 시키며 이런저런 대화들이 오갔는데, 결혼준비를 하면서 여자들끼리 오갈수있는 그런 아무렇지도 않은 말들이 시어머니와 손윗시누에게 동서를 통해 전해질때는 천하의 나쁜년이 아니면 할 수없는말로 전해지더군요.
결혼식 보름전에 급기야 일이 터졌습니다.
그 남자는 가진돈이라고는 월세보증금 5백만원이 전부였고,
빚을내서 천만원짜리 월세방을 신혼집으로 구했습니다.
시어머니는 고향에 집이 있었고,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는 그해 겨울에 입주예정이었는데 같이 살자고 하더군요.
남편은 애초부터 저한테 자기는 엄마랑 살면 자기 아버지처럼 자살할것이라고 절대 같이 살수 없다했습니다.
그러면서 엄마한테는 제대로 말한마디 못하는 아주 못난 사람이었죠.
어릴때부터 자기 엄마가 아버지한테 하는것에 오금이 저려서 질려서 말을 못한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우린 서울에 집을 얻었다고 했더니,
아직 등기도 안낸 아파트를 너네를 줄것이니, 너는 혼수를 거기에 맞춰서 해라.
하더군요.. 방 두칸짜리 월세방에 35평짜리 혼수해다가 쌓아놓고 삽니까..
그 아파트.. 끝장나는 순간까지도 우려먹더군요...
그렇게 못한다하니까 예물해준답시고 서울 올라와서 세시간동안 저를 앉혀놓고 갖은 욕설을 퍼붓고 인신공격에 피를 말리더군요. 남편이 말하던 자기 '아버지 잡은'게 뭔지 확실하게 알게해주더라구요. 거기다가 동서네가 시어머니와 같은 아파트 분양하면서 시어머니에게서 빌려간 2천만원인가 얼마인가 문제가 도졌는데 시어머니나 동서나 저만보면 그얘기를 하면서 사람을 괴롭히더라구요.
시어머니는 " 그 여우같은년이 내돈 가져가서 안내놓는 통에 너 예물이고 뭐고 하나도 못해준다. 그년한테 내돈 달라고 해라" 이런식으로 사람들볶고
동서는 " 형님때문에 어머니가 맨날 기분 나빠서 저랑 제 신랑한테 돈내놓으라고 난리치잖아요. 어떻게 하실거에요 진짜 미치겠어요"
하면서 매일같이 메신져로 쫑알쫑알 전화로 쫑알쫑알 사람 환장하게 하더군요.
저도 참.. 그렇게나 어리숙하고 철이 없던지.. 그러는거 하나도 대꾸도 못하고 다 듣고만 있다가 참다참다 못해서 메신져로 한참이나 떠들어대는 동서한테 (한번 말하면 메신져로 스크롤해서 읽어야될만큼 쉬지않고 떠들고, 전화하면 내가 말할틈도 없이 다다다다 쏘아대는 스타일이죠...)
"제가 해결할 수있는 문제도 아니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저한테 돈얘기 하시고, 전 아무 상관없는 문제인데 왜 저한테들 그러세요. 제가 **씨한테 뭘 잘못했나요?" 했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메신져로 난리난리를 치면서, 어머 형님 제가 뭐랬다고 그래요? 어이없다 진짜 , 형님 그렇게 안봤는데 완전 서울깍쟁이 무섭다하면서 또 메신져 창 스크롤하게만들더니 남편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제수씨한테 뭐라고 했냐면서...
사실대로 말했죠. 그랬더니 남편이 제수한테 전화해서 홀몸아닌사람이니 나중에 얘기하는게 어떻게냐고 했답니다.
그날 저녁에 시동생한테 전화왔습니다.
" 너 이 썅년아 너 몇살처먹었어? 너 몇살처먹었는데 우리 와이프한테 **씨래?"
할말없죠...
상식 이하..
이틀뒤에 저 유산했습니다.
수술받고 병원에 누워있는데 시어머니가 전화해서는
"너 진짜 유산한거냐? 니가 가서 수술해놓고 유산햇다고 하는거지? 그 병원이 어디냐? 내가 가서 의사한테 확실하세 물어봐야겠다"
하더군요.
이게 다 결혼하기 보름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네.. 저 등신 천치 병신 욕먹어도 싸죠.
결혼했습니다. 식올렸습니다. 그떄의 저의 심정, 마음 말로 다 할 수없을만큼 힘들고 복잡하고.. 무슨정신인지 식장 들어가는 그 순간에도 죽고싶은 마음이었죠.
그렇게 시작된 결혼생활..
지옥이었습니다. 결혼하고 석달만에 빚이 4천만원이라는 그 남자의 폭탄선언, 매일같이 접대랍시고 룸싸롱 안마방을 드나들고 유흥비로 카드값이 한달에 2-3백씩 나가는데
생활비는 월세 35만원 포함해서 65만원 받았습니다.
학교에 복학해서 학자금 대출받아 학교수업과 살림을 병행하면서, 신경성 위염과 식도역류증으로 결혼 석달만에 원래 몸무게에서 10킬로그램이 빠졌습니다.
일주일에 꼭 한번씩 자기 집에 내려가 그 고약한 노인네 비위를 있는대로 맞추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소처럼 일해줘도 그 집 식구들은 저를 사람취급도 안하더군요.
저.. 그렇게 살면서 인간관계 다 끊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상위권 사립대다니면서, 모자랄것 하나 없는 네가 이렇게 살아야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네가 왜그렇게 살고있니...
친구들의 말이었죠.
네... 누구보다 제가 더 잘 알고있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살 이유가 없는데.. 이건 내 삶이 아닌데.. 그걸 너무나 잘 알기에 하루하루가 지옥같고, 악몽같고.. 결혼하고 일년간 단 하루도 네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없었습니다.
우울증으로 안정제와 수면제를 먹으며 하루하루 버텼습니다.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은, 변덕이 죽끓듯하고 표독스러운 시어머니보다 동서였죠.
"니가 그렇게 잘났어? 잘나봤자 넌 보잘것없는 니 남편 마누라일 뿐이야". 라고 생각하는것같았습니다. 항상 " 형님은 대학도 좋은데 다니면서~" "형님은 나이도 젊으면서~" 라는 말을 달고 살면서 저의 자존감을 짓밟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저를 누르려고 안간힘을 쓰던 그녀가 참.. 안스럽기도 했지만..
'그래.. 너한테는 니 시집이 발톱에 때처럼 느껴지더라도, 니 남편은 최소한 니편이기나 하니까 ... 니아주버니란 사람이 어떤인간인지 니가 훤히 아니까.. 나를 있는대로 밟아주고 싶겠지.. 내가 아무리 잘났다고 개겨봤자.. 그래봤자 니가 보기에 난 아무 능력없는 이 남자 마누라일뿐이고.. 거지같은이집안 며느리고.. 니 동서일뿐이니까..'
이런 생각에 한없이 제 자신이 낮아지고 벌레처럼 느껴졌습니다.
대인공포증까지 생겨서 학교갈때 이외에 바깥출입은 거의 하지않고 지냈지요..
그렇게 거의 일년이 다되어갈 무렵,
나아질줄모르는 시어머니, 시누이, 동서의 저에대한 질타와 미움, 구박은 저를 뼈만 앙상하게 남은 환자의 몰골로 만들었고
남편하고의 관계 역시 틀어질대로 틀어져있었습니다. 남편의 방탕한 생활로 빚은 점점 불어나고 있었고 생활비마저 주지않아 친척언니에게 도움을 받아 생활을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울궈먹던 아파트 드디어 입주를 했고
시어머니가 절더러 내려와서 청소를 하라고 해서 내려가서 35평짜리 아파트 혼자 다 청소했습니다.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못듣고 자주 안내려온다고 시누이와 시어머니가 볼멘소리하더군요.
일주일후에 동서네가 집들이를 한다고 오라고 하더라구요. 그 당시 지칠대로 지쳐버린 저는 악다구니도 늘어서 이젠 당하지만은 않겠다하는 심사였습니다.
동서얼굴보고싶지않아서 남편에게 안가겠다고 했지만 억지로 끌려갔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또 사람 오장을 쑤시더군요.(말도 다 못합니다.. 정말 저는 솔직히 아직도 .. 그 여자 또래 여자들 무섭습니다.. 정말.. )
그날따라 생전 자기 가족들한테 싫은소리 한마디 못하던 (안하는게 아니라 못하던) 남편이 시어머니 아파트에 돌아와서는 자기 제수씨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더라구요.
도대체 왜 제수씨는 이사람(저를두고)을 못잡아먹어안달이고, 누나도 그렇고 **이(시동생)새끼도 싸가지없다면서...
저 인간이 왜 안하던 짓을하나.. 누가 해달랬나.. 이걸 어쩌냐.. 하던찰나에
시어머니, 그래 너 이년 잘걸렸다 하는 심사로
"넌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냐? 어디한번 얘기해봐라. 걔(동서)가 너한테 뭘 어쨌는데그러냐? 넌 애가 자격지심도 많다? 뭐가 불만이냐!?" 라면서 소리소리 지르면서 저를 다그치더군요.
어쩌지어쩌지 하다가.. 에라모르겠다. 눈 질끈감고 저도 할말했습니다.
"지금껏 저 아무리 어머니나 형님 , 동서가 무슨말을해도 대꾸한마디 안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정말 해도해도 너무들 하시네요. 저도 우리집에서는 귀한 자식이에요...."
제가 말대꾸하니까 시어머니 입에 게거품물고 발광하더군요.
그러더니, 니년이 에미가 죽고 계모년 밑에서 컸다더니(토씨하나 안틀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주 싹박아지가 보통 없는게 아니로구나 하면서 제 머리끄댕이 잡으려고 달려들더군요.
피가 거꾸로 솟는것 같더군요. 그래서 저도 그랬지요.
"그러는 어머니는 그렇게 고결하신 인품이셔서 아버니 잡아드셨어요? 큰집어른들이 저한테 다 그러시던데요? 어머니때문에 아버지 돌아가셨다구요."
해선안될말이지만, 정말 돌아가신 엄마한테 입에담지도 못할 얘기 하는거 보니 저도 눈에 뵈는게 없었지요...
시어머니, 그말듣더니 데굴데굴 굴러, 소리질러, 분에 못이겨 자기가슴 쥐뜯어면서 저년봐라 저 개같은년봐라 난리가 났습니다. 그 집이 분양한지 얼마안된집이라 옆집이 비어서 그렇지 아마 이웃이 있었으면 신고했을겁니다.
새벽 4시였는데 수화기를 들더니, 동서네 전화하더군요
"너 이년아 내가 애들부를거야, 너 얘들한테도 한번 해봐"
남편은 그 난리통에 소주병 나발불고 처 울고있었습니다. 전화하는건 알았는지 엄마 이시간에 어따 전화해 하지마 하더군요.
제가 그랬지요.
"네, 전화하세요. 그집에도 하고, 형님네도 해서 다 오라고 하세요. 제가 무서워할줄아세요? 저도 할말 많으니까 다 부르세요."
그렇게 전 그집 나왓습니다.
새벽 네시조금 넘은시간에, 버스도 택시도 안다니는 곳에서 세시간을 울면서 벌벌떨다가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이혼햇습니다.
혼인신고는 안되어 있어서 저희집 친가어른들입회하에서 공증쓰고 다시는 나에게 연락하지 않겠다는 그 남자 약속받았습니다.
그 당시 제가 키 166cm에 몸무게가 43킬로였습니다.
갑상선에 병이나서 목은 툭튀어나왔고
앙상하게 뼈만남아서 거의 사지를 해매던 때였지요..
일년전일인데,
지금생각하면 정말 꿈만같네요.
악몽을 꾼것같아요.
정말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글도 다 풀어내지 못합니다.
지금은 건강도 회복하고, 졸업도 하고 대학원다니며 원하던 공부 계속하고있습니다.
끔찍했던 그 인간들...
헤어지고 얼마지나지 않아 동서라는 여자한테 문자가 왔더군요
그동안 잘못했다고.. 아직 젊으니까 잘 사셨으면 좋겠다면서요.
시어머니라는 여자와 시누이는 그날 이후로 한번도 연락도 없었습니다.
다행이지요..
그런인간들한테 사죄를 바라는 것도 어리석은 것임을 깨닫았거든요...
제가 이렇게 긴 이야기를 , 또 잊었던 아픈기억을 다시 되살려내며 이곳에 올린이유는 딱한가지입니다.
이곳에 오시는 분들..
인생은 나의 의지대로 살아야한다는 것..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나 자신이라는것을
꼭 아셨으면 합니다.
남편에 대한 동정심으로, 내 선택에대한 책임감, 주변의 시선들..
저 이런것때문에 일년간 죽다 살아났습니다.
누구나 다 실수는 합니다.
저도 결혼생활에서 100%잘한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100%중에서 몇프로는 나의 실수, 몇프로는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바뀌지않는 것.. 이렇게 따져보면 답이 나옵니다.
현명한 선택을 하시고,
내 자신에게 다시 행복을 누릴 기회를 주세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