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지 않고 취업을 했다. 그 시기에 5살 연상 남편을 만났다.서울로 상경해서 막 일을 하기 시작한 남편은 남성스럽고 성실한 사람이었다.고된 일을 하고 돌아와 자취방에서 껴안으면 "자기 품이 천국이네"라는 말을 하곤 했다.
혼자 살면서 밥을 못 챙겨먹는게 안쓰러워 난생 처음 밥을 짓고, 인덕션 한 구 짜리에 순두부 찌개를 끓여 줬다.나는 처음 요리를 해 봤고, 잘 먹어주는 그 남자의 식성 덕분에 요리에 취미를 들이기 시작했다.
1년 남짓 연애를 하다, 그이는 일이 힘들어 지방에 있는 기업으로 이직을 하겠다고 했다.그때까진, 장거리 연애가 힘들면 헤어지겠지, 헤어지면 거기 까지인 인연이겠거니 생각하고 그의 결정을 옹호했다.그가 지방에 가는 시점에 나는 대학을 가겠다고 했다.그이는 응원하지 않았다.일만해도 힘든 퍽퍽한 삶에 대학까지 얹어지면 감당 할 수 있겠냐고, 그럼에도 나는 '너가 없는 이 서울에 내가 퇴근하고 뭐 할 일이 있겠냐'며 야유를 무시하고 25살 적지 않은 나이에 대학에 입학했다. 금요일 업무와 수업을 마치고 KTX를 타고 내려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일요일 저녁에 다시 올라오는 생활을 4년을 보냈다.생각보다 시간, 체력, 돈을 무지하게 소모하는 과정이었다.대판 싸우고 올라오는 서울행 기차 안에서는 돈과 시간이 아까워 쓴 눈물을 삼킨 날도 많다.그래도, 그는 여전히 성실했고, 퇴근하고 돌아오면 내가 해주는 저녁밥을 해치우는 모습을 보며 사랑을 느꼈다.
결혼을 준비하며 남편이 시댁에서 돈을 조금씩 받아왔다.이미 남편이 지방으로 내려올 때, 전세금을 보태주시며 결혼 자금 미리 주신거라 했는데,어느 날은 차를 사라고 천팔백, 어느 날은 어디에 보태라고 이천, 가구사라고 천.아마 시댁의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고, 그들의 삶에 여유가 조금씩 생기며 모아모아 1년 단위로 주신 듯 하다. 감사했다.남편은 귀한 아들이란 얘기이기도 했다.
나의 친정은, 그 만큼의 돈을 해주지 못했다.시댁에 비해 나이가 젊으셔서 양가 어르신들이 다 살아 계시고 내 동생들도 대학 입학 전이라 돈이 여러모로 나갈 일이 많았다.부모님이 어려운 형편은 아니나, 그 둘의 어깨 위에 5명의 사람이 얹어 있었다.난 어려서부터 일을 해서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니, 괜찮다고 생각했다.결혼한다고 예단으로 2천을 주고, 나를 위해 서울에서 식을 올리며 식장 비용을 친정에서 계산한게 천. 그렇게 3천 정도를 쓰셨다.
나는 부모의 역할은 자식을 편하게 살게 해주기 보다는 자식이 잘 살 수 있도록 밑거름을 제공해주는 것이라고 믿었기에, 그 정도를 받음으로 충분히 감사했다.
그러나 결혼 쯤부터 돈 얘기가 오고 가며, 시시콜콜한 문제가 아닌 심각한 문제로 싸우기 시작했다.남편과 나는 각각 근로소득으로 모은 저축이 1억씩 있었고, 남편은 시댁에서 받은 1억이 더 있었다.남편은 30평대의 아파트를 들어가고 싶어했고, 나는 둘이 살면 20평으로 족하다는 의견이 시작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남편은 돈을 많이 보태주지 않은 친정을 욕하기 시작했다.자식이 결혼하는데 돈도 안 보태 주는 게 제대로 된 부모이냐, 돈 없으면 없다 하지 왜 자존심 부리며 있는 척 하냐, 니 부모는 돈도 안 보태주면서 주말마다 놀러 다니는게 이해가 안 간다.
공황이 시작되었다.그는 분명 귀한 자식이고, 어머님은 남편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한다.실제 상견례 자리에서 우리 아들 고생 많다고 남편과 시어머니 둘이 눈물을 흘려 다들 분위기가 잠시 썰렁하기도 했다.나중가서 우리 엄마는 "고등학교 졸업 하기전부터 일 시작한 너가 고생을 했으면 더 했지" 라며 아쉬워 하셨다.나도 이상했다. 우리 엄마는 내 생각을 하면 눈물보다는 자랑스러워 하니까.
시댁과 친정의 집안 분위기 차이가 느껴지기 시작했다.적당한 관계가 좋다던 친정과 다르게 시댁은 나에게 너무 가까운 관계를 요구하는 사람이었다.첫 명절에는 시댁에서 2박을 하고 왔다. 나는 서울에서 5시간이 걸리는 시댁에서 2박을 하기 위해 연차를 하루 더 붙여서 4박을 꼬박 써야 했다.
주말부부를 하는 때, 내가 없는 신혼집에는 어머님이 오셔서 일주일씩 오셨다 가시곤 했다.자기 남편보다는 아들 보는게 더 좋다고 하신다.시어머님의 우울증은 남편을 애태우게 했고, 사려심이 부족한 나에게 아쉬움을 싹 틔웠다.
남편과 나는 1년의 결혼생활 동안 지속적으로 돈 문제로 다퉜고,때마다 친정 욕이 나왔으며, 나도 질 수 없어 시댁 욕을 하게 되었다.
나랑도 안가는 여행을 왜 시부모님에 시누부부까지 껴서 가야 하냐.그 6명 모이면 결국 시누남편하고 나 빼고 즐거운거 아니냐.결혼식에서 나 빼고 찍은 가족사진 거기 있는 4명이서 여행을 가라.
그런 얘기였다.그러다 어느 날은 내가 펜을 던졌고, 어느 날은 남편이 핸드폰을 던졌다.
폭언은 심해졌고, 지기 싫어하는 자존심만 드 높은 우리는 서로한테 한 마디도 밀리려 하지 않았다.제발 좀 그만 대화하자는 내 말에 남편은 내가 왜 너 말을 들어야 하냐며,쌀을 씻고 있는 나에게 누가 밥 해달라했냐 했다.
나는 남편에게 쌀을 던졌다.남편은 소리쳤고, 냉동실에 있던 라떼 커피 두 개를 보고 울컥해서 커피를 던졌다.내가 라떼 마시는거 본 적 있냐, 너는 커피를 사와도 꼭 니 먹을걸로만 사오지.그게 얼어서 딱딱했다는걸 너무 흥분해서 미처 생각 못했고, 나도 나 스스로 내가 정신병자라는걸 인정하게 되었다.
남편은 그 라떼를 내 옆에 있는 현관문으로 던졌고중문이 맞아 유리가 그대로 깨졌다.그 길로 남편은 짐을 싸고 나갔다.
다음날 연락해보니 직장도 그만 뒀고 너와 더 살 수 없고, 시댁에 간다 했다.시어머니는 짐을 싸들고 나온 남편이 안쓰러워 가족이 다같이 모여 울었다고 한다.
3주 째 연락을 안 하다 곧 결혼기념일이라 연락을 해보았다.내 전화번호는 차단이 되어있고, 카톡으로통화하기 싫다. 각자 살자. 월세 계약했고, 직장 새로 잡았다. 는 얘기만 들었다.3주 전 싸움이 마치 어제라도 되는 마냥 화가 나있는 채로 나를 싫어한다.한참 울다 그제서야 나는 집 비밀번호를 바꿨다.
6년을 지지고 볶고 붙어있었는데 나는 이제 그가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나는 결혼생활에 대한 로망은 없었으나 기대는 있었다.5년을 떨어져 연애 하다 함께 사는 기대.함께 산 1달은 실로 짧았지만 행복했고 버거웠다.
그 사람 손을 잡고 나가는 밤 산책이 즐거웠지만, 폭언과 사사건건 서로를 의식하고 배려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줄어드는 잠자리에서도 그 기류를 알 수 있었다.
그저 허망하다.집에 들어오면 깨진 현관 중문과 내 신발만이 보인다.술을 하루도 안 먹은 적이 없다.엄마에게 전화오면 괜찮다고 둘러대기 바쁘고. 주위에는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골머리가 아프다.
엄마는 너희 둘 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바람을 핀 것도 아니고,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싸우는 거냐, 그냥 너희 둘이 안 맞는거다 한다.
여러 번. 수 없이 이성적으로 이제 포기해야 한다고 다짐하건만.오늘 있었던 일을 쫑알쫑알 떠들 상대가 이제 없고, 촌스럽게 웃긴 남편이 없으니 아직은 미련하게 미련이 있다고 본다.
이렇게 이혼하다보다.깊은 굴에 빠진듯 하며, 설 자리가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