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우선 방탈 죄송하고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혹시 가족이나 지인들 중 이 분이 계시다면
간절한 마음을 담아 답변 부탁드립니다
저희가 찾는 사람은
저희 어머니의 오랜 친구분이십니다.
70대 중반을 향해 가시는 노령의 어머니께서
깊은 그리움을 안고 살아오셨던 친구 분이신데요
사정이 있어 연락을 못하시고 계시겠거니
한 해 두 해 기다린 세월이 무려 40여년이라고 하십니다.
글이 길어질 수 있으므로 시간이 없으신 분들은
그분의 정보만 간략하게 정리한 맨 아랫 문단만이라도 꼭 봐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당시 친구분께서는
“유승희”라는 성함을 쓰셨다고 합니다.
저희가 어머니께 전해들었던
친구분의 정보를 몇 가지 적어보자면
[기본신상]
1949년 8월생 소띠
[거주지]
(쌍문동 혹은 창동) 당시 수유리쪽에서 지내신 것으로 기억
[가족관계]
그 친구분 아버지 직업은 탤런트로, 드라마, 연극 등 폭 넓은 활동을 하셨다고 합니다
(특히 유명한 작품인 드라마 수사반장에도 출연하셨다고)
친구분은 6자매 중 둘째셨다고 하고요.
친언니는 태릉에서 경양식 집을 운영하셨다고 합니다.
슬하에는 딸이 한 분 계셨다고 합니다.
동생분은 신발가게를 운영한 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추억1]
저희 어머니와 “승희”님께서 친해졌던 계기는
중학생 때 같은 학교(정신여중)에 다니면서였다고 합니다.
아이큐가 138 정도로 반에서 두번째로 높으셨고
공부도 참 잘하셨다고 합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어머니피셜) 문학소녀 셨다고… :)
두 분이 워낙 친해 쌍둥이라고 불리셨다고 합니다.
친구분은 이후 정신여고로 진학하셨다고 합니다.
[추억2]
어머니께서는 20대 후반에
너무나 급작스럽게 사별을 하셨습니다.
당시 너무 어렸던 두 딸도 모자라
뱃속에는 막내가 자라고 있던 상황이셨습니다.
어머니의 그 모질었던 시간들은
구구절절 표현하지 않아도
짐작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무려 70년대… 지금과 많이 달랐던 사회 분위기 탓에
까닭없이 움츠러 드셨을
어머니의 시간을 떠올리면
마음이 너무 많이 아픕니다.
당시 저희 어머니께서 막내를 낳으시는 동안
기력이 없어 몇 번이고 정신을 잃으셨다고 합니다.
그 출산과정을 친구분께서 함께 해주셨다고 합니다…
당시 친구분께서 그렇게 많이 우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마음이 어떠셨을지
감히 헤아리기도 어렵습니다.
그 힘든 시간을 함께해주셨던 소중한 친구분께
현재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간 서로 연락을 주고받지 못하신
피치못할 사정이 있으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저희 어머니께서는 그저 그리움만 남아
여생의 유일한 바람이 있다면
친구 “승희”를 만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몇 해 전 직장암 판정을 받으셨고
다행스럽게도 현재는 병마를 이겨내신 강한 분이십니다.
반면 저희는
사는게 바쁘다는 핑계로
자식된 도리도 제대로 못 하면서 효도 한 번 못 하고 살고 있습니다.
주말에 뵙고 온 어머니 얼굴에서
또 한 번 친구분에 대한 그리움을 읽었고
더는 지체하면 안 되겠다 하는 마음으로
무작정 글을 올려봅니다.
힘든 상황에도
저희를 포기하지 않고 길러주신 강한 어머니께
자식으로서 해드린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더 늦기 전에
친구분을 꼭 찾아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많은 분들께서 관심가져주시고 도움주시면
저도 꼭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요약 정리]
오래 전 친구 “유승희”씨를 찾습니다.
1. 1949년 1949년 8월생 소띠
2. (쌍문동 혹은 창동) 당시 수유리쪽에서 지내신 것으로 기억
3. 아버지 직업은 탤런트(드라마 수사반장 출연)
4. 6자매 중 둘째
5. 친언니는 태릉에서 경양식 집 운영 (당시 슬하에 딸1명)
6. 동생은 신발가게 운영
7. 정신여중 - 정신여고 (우수했던 학업 성적)
8. 사별한 친구의 셋째 출산 당시 오열하며 함께 해준 경험
혹 주변분들 중 저희 어머니의 친구 “유승희”님을 아시는 분들은
댓글부탁드리며
4754085@naver.com으로 메일 부탁 드리겠습니다.
친구였던 순규가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