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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 라고 얘기 하고 싶은데 제 이야기 해도 될까요?

인생 |2023.08.10 03:38
조회 491 |추천 0
저는 이제 40대로 달려가는 30대 후반의 여자입니다.
전 태어났을 때부터 그냥 평범하게 남동생이랑 투닥투닥하며 컸어요.
하지만 언제 부턴가 항상 부모님은 싸우셨고 그것을 보며 자랐어요.
아빠는 주변 챙기고 같이 어울리는걸 좋아하시는 사람이었거든요.
그게 엄마는 힘들어하셨어요.
중1무렵 아빠의 직업을 따라 지방으로 이사를 갔고 그곳에서 약 1년간의 추억을 만들고 
엄마는 미안하다라는 작은 쪽지 하나를 남겨놓고 가셨습니다.
집에와서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흔적들을 보며 많이 울었죠.
상을 하는 내내 울었어요. 
화장도 하고 뿌리고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입술을 세로로 쪼게져 피가 흐르고 눈은 부어 있었어요.
저는 제가 그렇게 힘들지 몰랐는데 말이죠.
그리고 그렇게 저는 엄마가 늦게 한다며 걱정을 하던 첫 마법을 시작했습니다.
엄마없이 말이죠.
더 힘들었던건 주변의 모진 말들.. 가시돗힌 어른들의 말들..
혹시나 엄마와의 기억들을 없앨까 싶어 무서워 사진들을 몇장 뽑아 품에 안고 책상밑에 한동안 숨어있었던거 같아요.
엄마는 배움이 짧은 사람이었으나 한없이 다정하고 손재주가 좋았어요.
요리도 잘하고 만들기도 잘하고.
그런엄마가 마지막으로 땡감을 익힌다고 따뜻한 바닥에 깔아두고 이불에 감싸둔 그것을 
그렇게 가시돗힌 혓바늘들로 야금야금 해치우는 모습에 정말 두려웠습니다.
너무 절망적이었고 힘들었어요.
학교에 다시 돌아간날 웃으며 들어갔는데 친구들이 조금씩모았다며 선생님이 저에게 봉투를 주신 날.. 저는 뛰쳐 나올수 밖에 없었어요.
현실이었어요. 정말 나는 엄마가 없구나.
결국 1년 남짓 살았었던 엄마와의 집은 더 살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갔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무렵 아빠는 저희에게 엄마를 만들어 주겠다며 새엄마를 데려왔어요.
그 아인 초등학생. 똑쟁이였어요.
귀여웠죠.
같이 살았어요. 
정말 엄마라는 말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주변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 아빠... 모두 내가 잘해야된다고 너가 무조건 잘해야한다고 엄마라고 부르고 잘해라고 무조건 잘해라....
그래서 엄마라 불렀고 따랐습니다.
다니고 있던 학원도 안다니게 됬고, 학습지를 하면서 혼자 공부하면 그래도 돈이 덜들까 싶어서 신청해서 했는데 그 때 학습지 하던곳에서 무언갈 더 보내주면서 돈이 더 들어갔다며 새엄마한테 많이 혼났어요.
그래도 끝내지는 않아서 꾸준히는 할 수 있었어요.
그 때 제 남동생은 학원다니고, 용돈받아서 놀러도가고 옷도 샀는데....
막내는 똑쟁이라고 과외도 하면서 학원도 다녔죠.
시기마다 옷사러 갔는데 막내 바지, 티, 신발만 샀네요.
아... 저도 받은거 있어요.
처음 새엄마라는 사람을 인지하게 된날 아빠가 선물이라며 준 속옷 5장.
그리고 동생 옷 사러가면서 산 까만 후드티 한장.
운동화 하나.
교복밖에 안입는다며 옷필요없다고 옷도 안샀어요.
사촌언니가 물려준 옷이 다였네요.
아.. 교복도 물려입은 거였구나.
그랬네요.
처음으로 들었어요.
여자는 살림 밑천이라는말.
대학원서 쓰려던 저.
저 내신 좋았거든요.
지방이었지만 수학도 곧잘 만점받고 그랬는데.
아빠랑 엄마는 그랬어요.
무조건 자격증있고 취업되는 직업을 가지라고...
전문대 갔어요.
그리고 용돈이 모자라서 교수님 눈치보며 책을 복사하고 필기하며 공부했고.
매시간 친구들 책을 빌렸고,
책을 사고 싶어도 못사서 그때 처음으로 제가 귀걸이를 하게 된날 친척이 사준 금귀걸이 팔아서 거짓말안하고 책한권 샀어요.
학교 다니는 내내 커피보단 율무차였어요.
제일 쌌거든요. 율무차가.
조금이라도 아빠한테 돈얘기를 하면 일하는 사람한테 돈얘기하지 말라고 혼났어요.
그리고 돈얘기하면 우선 한숨.
전화만하면 심장이 두근거렸어요. 혼날까봐. 긴장했어요.
할머니 한테 돈을 받았어요.
정말 죄송했죠. 
너무 금전적으로 힘들어서 교수님 찾아가서 울었어요.
기숙사 생활을 하니 알바찾기가 너무 힘들었거든요.
통금 때문에 할 수가 없었어요.
교수님이 교내 알바자리를 봐주셔서 그걸 꾸준히해서 몇십만원 얻은 거.
집에 생활비로 갔습니다.
방학 때 알바 처음 해봤어요.
아빠가 공부만해라 주의 여서 한번도 해본적 없는 알바였는데.
새엄마가 알바해서 돈벌어서 기숙사비하라고 했거든요.
이때까지 학교 들어가면서 학자금신청 생활비 신청 기숙사비 신청해서 다녔어요.
그래서 외지 해수욕장에 편의점 알바로 들어갔습니다.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하는 알바.
집에와서 밥은 먹은적은 없네요.
대신 제가 먹을 밥을 싸가거나 거기서 봉지라면을 해먹었어요.
중간에 경찰에도 전화한번 온적있네요.
옆에 모텔에서 강도가 들었는데 본적없냐고.. 그 땐 알바끝나고 아침에 집에서 비몽사몽일 때 받은 거라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하면 아찔하데요?
그리고 또 여자는 위험하다고 심야는 안한다던데...새엄마의 지인이었거든요.
그래서 써준거 같아요.
아~! 전에 방학때는 집이 불편해서 내내 할머니 집에 있었어요.
그러고 혼나고 강제 알바 했네요.
그렇게 반달정도 일하고 수당을 꽤 받았어요.
그리고 새엄마줬죠.
그리고 학자금 대출 신청할 때 기숙사비 생활비 신청까지 했습니다.
나중에는 학교생활하는 당시에 핸드폰비 충당 저보고 하라더군요.
몇만원 되지 않았지만 책도 못사서 그 흔한 친구도 없었는데 말이죠.
중간중간에 친척들의 말이 서로 말을 옮기면서 와전시켜서 좋지않는말을 들으면 저는 그날 많이 혼나야 했어요.
주말에 집에 있으면 그냥 걸.레.질 안했다고도 혼났었네요.
대학졸업하자마자 바로 취업을 했어요.
좀 집에서 멀리 갔어요. 힘들었나봐요.
그 당시 140받고 일했는데 그중에 50~70은 생활비라고 보내주고, 남동생 학교 들어가면서 숙소비 충당에 책값도 해줬네요.
저는 돈 아끼겠다고 주말에도 일하던곳에서 삼시세끼 꼬박꼬박 먹었어요.
얼마 안있어서 이혼하셨습니다.
그리고 알았어요.
학자금...
제가 대학 들어가는 1학기부터 할아버지가 꾸준히 등록금을 주시고 계셨다는 걸.
절망이었어요. 
힘들었어요.
그때 돈 모으게 해준다고 돈도 적금용으로 달라고 해서 줬었거든요.
없더라구요.
그거 날릴까봐 제가 이혼 막을라고 아빠한테 매달리고 했던거 같네요. 
결국 저희 때문인지 이혼했고, 저는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아빠가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고 법적문제 들먹이는 새엄마로 인해 끊어내질 못했거든요. 
그 여자랑 헤어지고 다른 여자분이랑 또 아빠가 행복해한다면... 저는 그게 다였어요.
아빠가 행복해진다면 다였어요.
생활비랑 막내 과외비, 대학들어가서 책값 숙소비 제가 해줬어요.
제 남동생 용돈도 주고 책도 사라고 돈도 보내주고. 결국 아빠는 끝났지만 저는 끝이 나진 않았어요.
웃긴건 그 와중에도 나름 즐겨보겠다고 컴퓨터도 사고 게임도 옴팡지게 했었네요.
어쩌면 현실도피였을지도? 같이 살던 기숙사 친구가 주말에는 제가 없는 줄 알았다고 할 정도 였으니까.
그렇게 살다 보험도 들어주고, 카드도 만들어줬어요.
카드값은 그 때 그 때 갚는다고 해서 믿었죠.
3년만에 터졌었네요.
5천.... 많이 울고 울었어요.
신불자가 된 날 삶을 놓으려고 했어요.
아무도 없었거든요.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하나 있었어요.
그 누구한테도 저의 말을 한적이 없었거든요. 
유일한 직장친구는 알았어요.
그 친구가 살렸네요. 지금도 친구예요.
그 친구는 모르겠지만.. 저 혼자일 수도 있지만 베프예요.ㅎㅎ
겨우 정신차리고 모질게 끊어 냈내요.
지금 이 인연 끊어내지 않으면 내가 죽을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그 빚들... 내 카드로 다른 사람에게서 만든 빚들을 갚는 용이었어요. 
그러니 3년만에... 그랬네요.
2번째 새엄마.
처녀세요.
남자를 많이 만났으나 결혼도 아이도 없었어요.
역시 주변에서 너가 잘해야한다....
네^-----^ 그럴께요.
오랫동안 혼자 살면서 가게도 하시면서 억세게 사신분이라 제가 감당하기 힘든 분이예요.
하지만 아빠만 행복하다면 눈을 마주치고 소주잔 맞댈 상대만 있다면 저는 상관없어요.
그랬어요.
남자요??? 정말 웃긴게 대학때 부터 있었어요.
꽤오래 사겼죠.
대학선배로.. 직장 동료로.. 꽤 오래 사겼어요.
직장을 그 남자가 옮기면서 소원해지더라구요.
그만하자.
제가 잡았어요. 저 정말 애정결핍이었거든요.
그 흔한 카페에 앉아서 커피한장 안사주는 남자였지만.
술만 마시면 우울해지고 절 울게 만들던 남자였지만..
모질게 떼어내더군요.
그리고 얼마 안있어서 봤어요.
카톡 사진에 카페에 커피를 앞에두고 앉아 웃고있는모습.
아.... 그렇구나...
그리고 혼자 처음으로 여행을 갔네요.
그리고 털었죠. 
2박3일만에... 허무하죠?ㅎ 그렇게 애정결핍도 아니였나봐요.ㅎ
그리고 몇달 안되서 연락왔어요.
싸웠거나 그랬는지 울면서 보고싶다고.
저는 이미 끊어냈는데.
결혼하기 전까지 연락왔었네요.
부재중 3백통이면 말 다했죠?
그렇게 사람과 점점 멀어진거 같애요
누군가 그러더라구요.
선생님은 참 잘챙겨주는데 벽이 있다고..
알아요~ 그런데 제가 상처받기 싫었어요.
너무 그 과정들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다른사람에게 하는 전화가 너무 심장 두근거려서 힘들었고, 
가족한테 전화하는 거 조차 너무 심장 두근거려서 힘들었어요.
집에 내려가는것도 눈치봤어요.
새엄마 힘들까봐.
친해져보려고 노력도 많이 했는데...ㅎ
영화관에도 갈 때마다 예매해서 같이 갔었거든요.
나중에는 진짜 저 푸근한 남자를 만났네요.
나이는 많았지만 너무 편했어요.
처음 저에게 고백하는데 제가 그때 감기기운있었거든요?
백숙먹으러 둘이가서 고백아닌 고백하더라구요.ㅎㅎ
만났어요. 
그러다 결혼했네요.
아~! 이 때까지 힘들었던 제 사정 다 알아요.
그래서 돈도 없었는데.... 빚은 다 갚고 결혼했어요.
다 탈탈 털어서
딱5천 벌어서 갔네요~
정말 오빠한테 미안할 뿐이었어요.
친정에 도움 하나 못받고 결혼했거든요.
어쩌면 안받은걸지도요.
그냥 끈을 만들기 싫었던거같아요.
정말 저는 못났네요~ 지금 생각해두요.
그리고 1년 신혼 즐기고 임신계획했는데 난임 판정 받았어요.
저도 오빠도 문제가 있었고 정말 노력많이 했는데...ㅎ
제 형님이 임신하셨을 때 아기 쿠션도 밤새 만들어주고, 당시 제 친구도 임신해서 임신선물도 해주고 그랬어요.
마음을 놓고 나니 그냥 편해지더라구요.
수혈도 했어요.
웃긴게 먼지 아세요?
저요? 시험관 얘기 있었거든요. 근데 정말 그 해에 아기가 왔어요.
임신선물해준다고 손으로 한땀한땀 바느질해서 줄때
수혈 했을 때 아기가 와 있었어요.
한 주 동안에 다 했었어요.
그냥 느낌이 묵직해서 아무 생각없이 테스트기를 했는데 정말 연하게 떴었죠.
하루 하루 가면갈수록 진해지더라구요.
저는 덜덜 떨었구요ㅎ.
와.....
시아버님이 하늘에 계세요.
오빠에게 시아버님한테 가자고 해서 간날 아버님 앞에서 얘기했고 테스트기 보여줬어요.
그리고 기도했어요. 지켜달라고.
오빠도 많이 울고 저도 많이 울고.
제가 거의 착상되자마자 알아서(진짜 연했어요. 거의 2~3주차였으니) 2주정도 지나 산부인과에 가서 아기를 봤어요.
아기를 보고 얼마 안있어서 입덧이 너무 심했어요.
결국 울면서 사직서를 낼 수 밖에 없었어요.
입덧이 너무 심했거든요.
집에 있는 내내 방울토마토 먹고 토하고 그러다 친정 생각이 간절해 지더라구요.
할머니 할아버지 한테 전화해서 그냥 투정도 부려보고 엄마한테 아빠한테도 투정부려보고 싶더라구요.
ㅎㅎㅎㅎㅎ
결국.... 머... 혼났어요.
전화로는 힘들겠다 그러고 곰국 보내주고 그랬었는데.. 할머니가 아빠엄마한테 애가진거 유세떤다고. 옛날 같으면 여자가 임신해서 배불룩하면 고개도 못들고 다녔다고 했다며..
엄마가 저한테 그런얘기 다시는 하지 말라더라구요.
입덧때문에 못먹는다고도 하지말라고.. 할머니가 욕하는 와중에도 이거 보내라 저거 보내라 이런다고.
흠... 꽤 많이 울었었네요.
밤새울고 자다울고 앉아있다가도 울고..
괜히 엄마 잘못 만나서 엄마가 못나서 엄마가 괜히 또 말을 잘못해서 우리 아기가 좋은 말만 듣고 크기도 바쁜데 욕을 먹었구나 싶어서 너무 미안했어요.
그후론 또 친정에 입을 다물어버렸네요.
제가 친정이라고 이것도 보내주고 저것도 보내주고하는데 칭찬은 한번도 들은적은 없는거 같아요.
친정에 휴가라고 가서도 오빠가 뻘쭘할까봐 근처인근에 놀러 나갔는데 그 때 아빠 친구분들이 제욕을 그렇게 했데요.
아빤 안말리고 응응 대고 있고 엄마는 화가 나서 쐈다고 저한테 얘기하던데.

머.. 친정.. 제가 맘편히 기댈 친정은 없어졌네요.
시댁에 시어머님은 잘해주세요.
제가 엄마가 고프다보니 엄마라고 불러요 그냥.
그래도 시어머님에게 며느리보단 아들일테니 저는 항상 그마음으로 가요.
제딸은 잘 크는거 같아요.
제가 엄하거든요.
3돌이 다되가는 지금도 24시간 저와 엄격히 교육중이랍니다.
제가 잘못 가르쳐서 욕먹을 일은 안만들고 싶어서요.
제남편은 여전히 푸근하네요~ 아이가 아빠를 좋아하거든요. 그럼 됬죠.
제 가족만 보고 살면 되겠죠?
이런거 저런거 친구에게 남편에게 말하고 싶지만 쳐질까봐 말하고 싶진 안네요.
그런데 그런거 있잖아요? 한번은 싹~!!! 말하고 풀고 싶다는거.
저 잘 살고 있는거겠죠? 저 잘하고 있는거겠죠??
머.. 누가 이렇게 긴 글을 읽을까 싶지만 그냥 써봐요.ㅎㅎ
걍 털어놓고 싶나봐요~

엄마에게 
엄마 엄마 엄마 몇번을 불러도 그리운 엄마.
엄마 엄마 엄마 몇번을 불러도 익숙해지지 않네.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우리를 놨을까 싶다가도
엄마가 된 지금은 가끔 원망도 해
그래도 될까?
미워 미워 정말 미워
싫다 엄마란 사람.
그런데 있자나? 
나 보고싶다? 
힘들다고 우리 버리고 다시는 못볼 곳으로 간 엄마인데.
보고싶다?
가끔 사찰에 들리면 엄마가 좋아하는 부처님 앞에서 앉아서 얼굴만 보고 있어.
그냥 그 때 주말마다 엄마 따라 가서 부처상 앞에 앉아서 바람소리 풍경소리 듣던 때가 
참 좋았나봐.
시장 갈 때 엄마의 기다란 치마를 들썩들썩하면서 놀리면 엄마는 참 이쁘게 웃었는데.
바다 간다고 도시락 싸들고 그 더운날 걸어갔던 길도 기억나.
엄마가 해줬던 미나리전도 기억나.
그거 알아? 나 동생이랑 1살차이잖아? 동생이 기어다니던 때부터 기억이 난다?
ㅎㅎ 기억력이 좋은가봐.
기억력 좋은 만큼 좋은 기억이 많아야되는데 아직까진 별로 없네.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기억이 나거든.
정말 힘들어했자나 아파했자나
그게 난 너무 괴롭고 힘들어.
나 때문에 그렇게 된거 같아서
내가 엄마한테 정말 좋은 딸이었으면 그래도 덜 힘들었을까 싶어서..
항상 그렇게 가슴 한구석에 맺혀있는거 같애.
어디 한 맺혀서 못가고 떠돌고 있는거 아닌지 걱정도 되네.
그러지마 알았지?
나 좋은 기억 많이 많이 만들어갈께
그리고 그 때 만나면 내가 다 얘기해줄께
그 땐 오래 있자
사랑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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