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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과거에 얽매여 사는 나

쓰니 |2023.09.07 13:26
조회 13,258 |추천 79
안녕하세요. 
주제에는 어긋나지만
이 게시판을 읽는 분들이 많다고 해서 이렇게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다소 무겁고 긴 글이 될 것 같습니다. 
편하게 넋두리 하듯 글을 작성해볼게요. 

나는 30대 초반 여자야. 
정확히 언제부터 내 인생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진 나도 잘 모르겠어.
기억나는 시점부터 말해보자면, 
내가 7살일 때, 9살이던 오빠가 등굣길에 무단 횡단을 하다 교통사고가 났어.
머리를 다쳤고, 중환자실로 시작하여 병원 생활을 아주 오랫동안 했어.
오빠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 나는 이모 댁에 맡겨졌고, 오빠가 일반 병실로 옮겼을 땐 나도 병원 생활을 함께 했어.불평 불만은 없었던 것 같아.
우리 가족이 살기 위해, 살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멋지기도 하고.. 그랬지.
문제는 오빠가 이때 머리를 다치면서 어떤 신경이 망가져서, 앞으로 살면서 감정 조절이 어려울 거라고 하더라.
한 대학 병원에서는 평생 어린 아이의 지능으로 살아야 한다고 했대.
지능은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사고 이후로 폭력적으로 변했어. 
그래도 아빠가 있으니 나를 때리진 못했고,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맨날 싸워서 엄마가 학교에 불려가는 정도였어.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입학을 앞둔, 10살의 마지막 달에 아빠가 돌아가셨어. 한강에 투신하셨어. 
나는 아빠를 정말 각별하게 좋아했던 터라, 갑자기 저녁때 외출하신다는 아빠에게 가지 말라고 고집을 부리다가 이내 나가버리는 아빠를 토라진 얼굴로 배웅했어. 
'잘 다녀오세요,'라는 말 한마디도 못 하고.
몇 시간 뒤에 엄마 휴대폰으로 아빠 전화가 왔는데, 그 날 따라 느낌이 이상하더라고. 
엄마한테 계속 '아빠야? 나 좀 바꿔줘! 나 바꿔줘 엄마!' 했는데 엄마는 심각한 얼굴로 전화를 받다가 오빠한테 바꿔줬다가, 곧 비명을 질렀어.

나중에 들어보니 엄마한테는 미안하다는 말을, 오빠에게는 이제 네가 가장이니 여자 둘을 잘 지켜야 한다는 말을,그리고 내(쓰니) 목소리는 들으면 너무 슬플 것 같으니 바꿔주지 말라는 말을 했대.
아빠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매일 술에 취해 늦게 집에 오거나 화장실 바닥에 앉아 혼자 울고 있었고, 오빠는 밖에서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나를 마구잡이로 때리곤 했어.
나는 어린 마음에 다 내 탓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나가려는 아빠를 결국 말리지 못해서, 그 날 엄마 손에서 휴대폰을 낚아 채지 못해서.
모든 게 다 나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아빠를 잃은 내 슬픔은 무시한 채, 학교 생활 열심히 하고, 엄마를 위로하고, 오빠의 폭력을 용서하며 그렇게 살았어.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무렵, 고3인 오빠와 같은 독서실을 다니고 있었는데,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오빠가 내 자리에 있던 일기장을 봤더라고. 
잦은 폭언과 폭행에 사는 게 힘들다, 화가 난다는 내용들이 많았는데..
내가 자리에 돌아왔을 땐 '너 오늘 진짜 죽을 줄 알아라' 라는 내용의 쪽지가 놓여있었고 그 길로 나는 가출을 했어.
진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거든.
밤까지는 그냥 길거리를 배회했는데 새벽이 되니까 수중에 돈도 없고, 잘 곳도 없고, 너무 우울했어. 
그냥 죽는 게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 
충동적으로 한강에 갔는데, 대체 이 넓은 한강 어디서 아빠가 마지막 통화를 했던 건지..
아빠 생각나면서 너무 서럽고 막상 죽으려니 두렵기도 했어.
계속 정처 없이 울면서
한강을 걷고 또 걸었던 것 같아. 
그러다 동 틀 무렵이 됐고, 나는 좀 진정이 돼서 엄마한테 내 위치를 알렸어.
근데 엄마가 오빠랑 같이 택시에서 내리더라.
오빠는 나를 보자마자 사정 없이 때리기 시작했어. 
코 뼈가 부러지고, 눈에 실 핏줄이 터져서 흰자가 안 보일 정도로 맞았어. 
'너는 절대 혼자 못 죽어. 너는 내가 죽여' 이런 말을 계속 했던 걸로 기억해.
피를 흘리는 내 얼굴을 보고 놀란 건지 내가 기절을 했던 건지, 오빠는 어느 순간 도망가서 사라져 있었고, 나는 산골짜기에 있는 기도원에서 숨어지내다가 결국 자퇴를 하고 기숙사가 있는 대안 학교에 들어갔어.

그 후에도 삶이 순탄했던 건 아니야.
대안 학교 당직실에서 사감 선생님께 두들겨 맞은 뒤 (온 몸에 멍이 들 정도로)다른 친구들과의 접촉, 엄마와의 연락 다 끊긴 채 2주 가량을 감시 속에 혼자 지낸 적도 있고, (곧 어학 연수가 예정되어 있었어서 도망칠 생각은 못했어.)
유학 갔을 때는, 대안 학교에서 연결해 준 현지 보호자가 '수중에 돈이 있으면 공부 제대로 안하고 놀기만 한다'며 딱 차비만 내게 지급을 했어서 간식으로 과자 하나라도 사 먹는 날에는 지하철 역에서 구걸을 하기도 했어.걸어가면 되지만, 학교에서 30분 이상 늦게 귀가하면 그날 저녁밥을 안 줬거든. 
그렇게 일 년 좀 안되게 버티다가 결국 나는 한국에 돌아왔어.
현지 보호자 때문은 아니고, 집안 사정과 높은 대학 졸업 허들 때문.
우리 집안 재산 다 끌어 모으고 잔뜩 빚져야 겨우 4년 학비 낼 수 있을까 말까 했는데
영어가 모국어인 애들도 장학금은 고사하고 제 때 졸업조차 못 하는 모습을 보고 
엄마가 더 힘들어하기 전에 한국에 돌아가야겠다 생각했어.

한국 왔을 때는 수능이 6개월 정도 남은 시점이었는데,
부랴부랴 검정고시 보고, 대학도 붙긴 했어. 
근데 내가 원하던 대학이 아니기도 했고, 
엄마가 빚 독촉에 협박에 시달리던 시기이기도 해서 나는 한 학기만 다니고 바로 돈을 벌기 시작했어. 

반 년은 아침부터 밤까지 - 평일 주말 없이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스무 살 11월 무렵부터는 작은 사업을 시작했어. 
죽지 않을 정도만 자고, 낮에는 핫식스로 연명하며 한 1-2년 노력하니까 일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더라.
집안에 돈을 보태고, 조금 여유가 있는 달에는 군대 간 오빠에게 용돈도 보내주는 낙으로 그렇게 20대 초반을 보냈어. 

20대 중반, 사업 6년 차 드디어 우리 집이 빚과 회생에서 벗어났어. 
오빠도 제대해서 자신만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엄마도 특정 분야에서 자리 잡고 내 도움 없이도 지내실 수 있게 되었어.
근데 내가 길을 잃었어. 
죽도록 돈을 벌어야 할 이유도 없어지고, 우리 가족이 나 없이도 잘 사는 모습 보면나도 같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수 년 동안 무시하고 외면해 온 갖은 마음의 병들이 나에게 찾아왔어. 
처음엔 불면, 그 다음엔 무기력만성 우울과 불안, 강박, 공황 장애, 알코올 중독까지. 
결국 사업을 이어갈 수가 없어서 7년 차가 되던 해 폐업을 했고,
지난 3년 간 모은 돈의 절반 이상을 병원비로 쓴 것 같아. 
상태가 안 좋아서 응급실도 몇 번 다녀왔고 이제 좀 일어서나 싶으면 무너지고, 또 넘어지고.
그런 무한 반복 속에 삶의 의미를 잃어가는 나날들도 많이 있었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기분이었거든.
그래도 필요할 땐 입원을 하기도 하고, 약도 잘 챙겨 먹고,병원도 수소문해서 전국구로 찾아다니고, 심리학 서적도 읽고 심리 치료도 받으면서 살아보려고 정말 노력 많이 했어.
틈틈이 사이버지만 4년제 학위도 취득했고, 전문 자격증도 몇 개 취득했고.
지금은 다행히 많이 좋아져서 온전히 불안과 우울을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게 되었고, 
약도 전혀 안 먹고 있는 상태야.
지난 달부터는 다시 일도 시작했어. 
나는 치료 시점이 늦었지만, 필사적으로 회복에만 전념했기 때문에다시 보통의 삶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
아니, 생각 했어.
근데 요즘 자꾸만 의문이 자꾸 들어.

잦은 입-퇴원과 공황 발작, 약물 부작용 등으로 인해 지난 3년 동안 사회 생활을 거의 못했기 때문에
나는 오랜만에 사회의 일원이 된 지금 이 삶이 너무나 소중해.
그래서 아직은 조심스럽게 살아가고 있어.
내게 상처 주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내게 트라우마를 일으킬 요소는 가까이 하지 않아.
근데,여전히 나를 하인 대하듯 여기는 오빠와 연을 끊을 때는 '10년 전 맞은 걸 아직도 간직하는 정신병자'라는 말을 들었고 
어렵게 애인에게 과거 일부분에 대한 얘기를 꺼냈을 때는 '다 지난 일이잖아. 누구든 그런 과거는 있어'라는 말을 들었어.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는 말 같기도 하더라.
나는 10대에 당한 폭력들로 인해 여전히 폭력 앞에선 불안해하고 예민해져.
20대에 사업하며 겪은 각종 사건들로 인해 아직도 전화 통화를 기피하고, 
몇 년 전 시작 된 공황 장애로 인해 아직도 낯설고 사람 많은 장소에는 잘 가지 않아.
내가 과거에 여전히 얽매여 있기 때문에 내 삶을 스스로 제한하며 사는 건 아닐 지. 문득 궁금해지더라.
다 각자의 아픔이 있지만 다들 잘 살아냈고, 잘 살고 있잖아.
잠을 못 자고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그때 내가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늘 그랬던 것처럼 무시하고 삶을 살아갔더라면 지금 오히려 더 강한 정신력으로 삶을 살고 있진 않았을까?
내 병을 받아들이고 낫기 위해 지난 3년 간 해 온 노력들이 어쩌면 나를 더 나약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건 아닐까?

답은 없고 질문으로만 가득한 나날들이 지속돼서 
답답한 마음에 이렇게 글까지 쓰게 되었는데 
그저 넋두리처럼 쓰는 글이라
마무리는 어떻게 지어야 할 지 모르겠네..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추천수79
반대수6
베플ㅇㅇ|2023.09.07 15:14
아빠가 잘못했네 어차피 가려거든 짐승같은 오빠를 데리고 갔어야지 한마디로 니네 집은 니 오빠때문에 이렇게 된거임
베플남자ㅇㅇ|2023.09.09 02:06
진짜 힘들었겠다 그치만 이젠 상황이 괜찮아졌구나! 3년간 자신을 돌보면서 노력한것도 잘했고 넌 정말강인한것같아 앞으로는 웃을수있는일도 많이 생기기를 바래
베플고고|2023.09.08 19:57
먼저 정말 그동안 수고 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저는 36살 여성 이에요 . 사연은 다르지만 자도 15살부터 32살까지 17년간 우울증으로 아팠고 32살에 죽고 싶어져서 다 멈추고 치료에 전념한지 오년 차에요 약을 먹고 있고 심리 치료도 받고 심리 서적도 읽고 온전히 지난 오년간 살기 위해 제 모든걸 걸고 노력해서 지금은 죽고 싶은 기분은 없지만 , 여전히 컨디션이 안좋을 때면 올라 오는 우울을 조절 할수는 있어요 . 저도 10대 내내 학교 폭력을 당했고 지금도 조금은 많이 대인 관계에 인해서 민감한 편이에요 . 따돌림에 민감하고 남들이 내 욕을 하지 않을 까 하고 불안해 하곤 해요 지금 처럼 불안하고 10년전의 기억으로 계속 생각 나는건 본인이 너무 아팠기에 그래요 금쪽 상담 소에서 개그맨 미자님이 어머니랑 나왔는데 (유튜브에 미자네 주막 이라 치면 나오는 그 개그우먼 이에요 ) 어머님이 어린 시절 엄마에게 학대 당하면서 그 상처를 계속 미자님이 초등 학생 부터 40이 된 지금 까지 말을 해서 미자님이 지친다는 내용의 상담 이었는데 , 오은영 박사님은 그게 너무 아파서 생을 뒤흔들 정도로 아파서 그런 거라 하시더라구요 . 그 힘든 시간들을 온 전히 겪어 냈잖아요 시간만 지났지 , 나는 그대로 잖아요 너무 힘들었어서 그래요 . 그럴때마다 미친 사람 새끼 아닌 오빠란 인간은 집어 치우고 내가 많이 아팠구나 하며 다독여 주길 바래요 . 너무나 고생 많았어요 심리 상담 꾸준히 받아 보구요 ^^ 살아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베플쓰니|2023.09.08 03:27
남친이너무무책임하다. 누구나그런과거를가지고있다니.. 나도넋두리하자면 글자수제한넘기고넘기고넘길수있지만 쓰니아픔은 또 다른쓰니만의아픔이고... 어떤이들은 감히감당도 상상도못할정도의 아프고힘들고슬픈일인데 누구나라니).. 그러는지는어떤과거가있으셨길래.. 난 사는데미련1도없는사람인데 절대익사는안할거라는정도로 퍼런물은무섭던데..아버님은얼마나힘드셨을까 아깝고이뻐서 맘약해질까봐목소리도 못듣고떠나신 그맘이 너무 절절하다..아픈아들은 나쁜새끼가되어 남보다못한그것이되버려서. 정신과명언있자나요. 상처준인간들은 잘살고 상처받은피해자들이오는곳이라고.... 그래도 다이겨내신게 너무대단하세요 첨부터 님은다잘하셨네요. 그냥 열심히뛰다가 돌부리에걸려넘어지신거뿐이자나요. 툭툭털고일어나셨으니 이제다시 걸으시면돼요. 전처럼뛰지않아도되ㅣ요 너무힘들게달리셨으니 걸으면서천천히하세요. 남들페이스신경쓰지마시고 하시고싶은만큼만하세요 전부러워요 정신력이...상처는 이제부터의사한테만 보입시다. 진짜내편이생길때까진 그렇게해요 여자의과거상처는 약점으로보는 괴물이많은게현실이라서..
베플oo|2023.09.08 23:03
그 어떤 인간도 과거를 거치지 않고 현재의 자신이 되지 않습니다. 과거에 얽매였다기보다는, 과거의 문제들이 현재까지 해결이 안 된 것이에요. 그 누구도 쓰니에게 사과를 하지도, 그때 힘들었겠다고 안아주지도 않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런 상처들은 심지어 사과를 듣는다고 바로 괜찮아지지도 않더라구요.) 그건 특별히 다른 사람보다 쓰니가 나약해서도 뒤끝이 길어서도 아니에요. 정말 많이 고생했고, 정말 많이 외롭고 죽고 싶었겠어요. 그 3년을 병을 치료하는 데 쓰지 않았다면 나중엔 10년을 꼬박 쓰게 됐을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강한 척 하느라 치료받지 않았다면, 또 다른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그 정도는 다들 고생하며 살아!"라고 윽박지르는 사람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공감 없이 말하는 사람 중 대다수의 상황이 자기의 지난 고통을 해결받지 못하고 '그 누구도 나보다는 힘들지 않다'며 어느 순간 마음을 굳혀버린 경우들인 것 같더라구요. 약을 아끼지도 말고 가능하다면 상담을 끊지도 말고,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고 소중히 여기고, 내 감정이 정당하다고 여겨주면서 천천히 걸어가시길 바라요. 다시는 고되고 아픈 일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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