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주제에는 어긋나지만
이 게시판을 읽는 분들이 많다고 해서 이렇게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다소 무겁고 긴 글이 될 것 같습니다.
편하게 넋두리 하듯 글을 작성해볼게요.
나는 30대 초반 여자야.
정확히 언제부터 내 인생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진 나도 잘 모르겠어.
기억나는 시점부터 말해보자면,
내가 7살일 때, 9살이던 오빠가 등굣길에 무단 횡단을 하다 교통사고가 났어.
머리를 다쳤고, 중환자실로 시작하여 병원 생활을 아주 오랫동안 했어.
오빠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 나는 이모 댁에 맡겨졌고, 오빠가 일반 병실로 옮겼을 땐 나도 병원 생활을 함께 했어.불평 불만은 없었던 것 같아.
우리 가족이 살기 위해, 살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멋지기도 하고.. 그랬지.
문제는 오빠가 이때 머리를 다치면서 어떤 신경이 망가져서, 앞으로 살면서 감정 조절이 어려울 거라고 하더라.
한 대학 병원에서는 평생 어린 아이의 지능으로 살아야 한다고 했대.
지능은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사고 이후로 폭력적으로 변했어.
그래도 아빠가 있으니 나를 때리진 못했고,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맨날 싸워서 엄마가 학교에 불려가는 정도였어.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입학을 앞둔, 10살의 마지막 달에 아빠가 돌아가셨어. 한강에 투신하셨어.
나는 아빠를 정말 각별하게 좋아했던 터라, 갑자기 저녁때 외출하신다는 아빠에게 가지 말라고 고집을 부리다가 이내 나가버리는 아빠를 토라진 얼굴로 배웅했어.
'잘 다녀오세요,'라는 말 한마디도 못 하고.
몇 시간 뒤에 엄마 휴대폰으로 아빠 전화가 왔는데, 그 날 따라 느낌이 이상하더라고.
엄마한테 계속 '아빠야? 나 좀 바꿔줘! 나 바꿔줘 엄마!' 했는데 엄마는 심각한 얼굴로 전화를 받다가 오빠한테 바꿔줬다가, 곧 비명을 질렀어.
나중에 들어보니 엄마한테는 미안하다는 말을, 오빠에게는 이제 네가 가장이니 여자 둘을 잘 지켜야 한다는 말을,그리고 내(쓰니) 목소리는 들으면 너무 슬플 것 같으니 바꿔주지 말라는 말을 했대.
아빠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매일 술에 취해 늦게 집에 오거나 화장실 바닥에 앉아 혼자 울고 있었고, 오빠는 밖에서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나를 마구잡이로 때리곤 했어.
나는 어린 마음에 다 내 탓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나가려는 아빠를 결국 말리지 못해서, 그 날 엄마 손에서 휴대폰을 낚아 채지 못해서.
모든 게 다 나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아빠를 잃은 내 슬픔은 무시한 채, 학교 생활 열심히 하고, 엄마를 위로하고, 오빠의 폭력을 용서하며 그렇게 살았어.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무렵, 고3인 오빠와 같은 독서실을 다니고 있었는데,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오빠가 내 자리에 있던 일기장을 봤더라고.
잦은 폭언과 폭행에 사는 게 힘들다, 화가 난다는 내용들이 많았는데..
내가 자리에 돌아왔을 땐 '너 오늘 진짜 죽을 줄 알아라' 라는 내용의 쪽지가 놓여있었고 그 길로 나는 가출을 했어.
진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거든.
밤까지는 그냥 길거리를 배회했는데 새벽이 되니까 수중에 돈도 없고, 잘 곳도 없고, 너무 우울했어.
그냥 죽는 게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
충동적으로 한강에 갔는데, 대체 이 넓은 한강 어디서 아빠가 마지막 통화를 했던 건지..
아빠 생각나면서 너무 서럽고 막상 죽으려니 두렵기도 했어.
계속 정처 없이 울면서
한강을 걷고 또 걸었던 것 같아.
그러다 동 틀 무렵이 됐고, 나는 좀 진정이 돼서 엄마한테 내 위치를 알렸어.
근데 엄마가 오빠랑 같이 택시에서 내리더라.
오빠는 나를 보자마자 사정 없이 때리기 시작했어.
코 뼈가 부러지고, 눈에 실 핏줄이 터져서 흰자가 안 보일 정도로 맞았어.
'너는 절대 혼자 못 죽어. 너는 내가 죽여' 이런 말을 계속 했던 걸로 기억해.
피를 흘리는 내 얼굴을 보고 놀란 건지 내가 기절을 했던 건지, 오빠는 어느 순간 도망가서 사라져 있었고, 나는 산골짜기에 있는 기도원에서 숨어지내다가 결국 자퇴를 하고 기숙사가 있는 대안 학교에 들어갔어.
그 후에도 삶이 순탄했던 건 아니야.
대안 학교 당직실에서 사감 선생님께 두들겨 맞은 뒤 (온 몸에 멍이 들 정도로)다른 친구들과의 접촉, 엄마와의 연락 다 끊긴 채 2주 가량을 감시 속에 혼자 지낸 적도 있고, (곧 어학 연수가 예정되어 있었어서 도망칠 생각은 못했어.)
유학 갔을 때는, 대안 학교에서 연결해 준 현지 보호자가 '수중에 돈이 있으면 공부 제대로 안하고 놀기만 한다'며 딱 차비만 내게 지급을 했어서 간식으로 과자 하나라도 사 먹는 날에는 지하철 역에서 구걸을 하기도 했어.걸어가면 되지만, 학교에서 30분 이상 늦게 귀가하면 그날 저녁밥을 안 줬거든.
그렇게 일 년 좀 안되게 버티다가 결국 나는 한국에 돌아왔어.
현지 보호자 때문은 아니고, 집안 사정과 높은 대학 졸업 허들 때문.
우리 집안 재산 다 끌어 모으고 잔뜩 빚져야 겨우 4년 학비 낼 수 있을까 말까 했는데
영어가 모국어인 애들도 장학금은 고사하고 제 때 졸업조차 못 하는 모습을 보고
엄마가 더 힘들어하기 전에 한국에 돌아가야겠다 생각했어.
한국 왔을 때는 수능이 6개월 정도 남은 시점이었는데,
부랴부랴 검정고시 보고, 대학도 붙긴 했어.
근데 내가 원하던 대학이 아니기도 했고,
엄마가 빚 독촉에 협박에 시달리던 시기이기도 해서 나는 한 학기만 다니고 바로 돈을 벌기 시작했어.
반 년은 아침부터 밤까지 - 평일 주말 없이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스무 살 11월 무렵부터는 작은 사업을 시작했어.
죽지 않을 정도만 자고, 낮에는 핫식스로 연명하며 한 1-2년 노력하니까 일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더라.
집안에 돈을 보태고, 조금 여유가 있는 달에는 군대 간 오빠에게 용돈도 보내주는 낙으로 그렇게 20대 초반을 보냈어.
20대 중반, 사업 6년 차 드디어 우리 집이 빚과 회생에서 벗어났어.
오빠도 제대해서 자신만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엄마도 특정 분야에서 자리 잡고 내 도움 없이도 지내실 수 있게 되었어.
근데 내가 길을 잃었어.
죽도록 돈을 벌어야 할 이유도 없어지고, 우리 가족이 나 없이도 잘 사는 모습 보면나도 같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수 년 동안 무시하고 외면해 온 갖은 마음의 병들이 나에게 찾아왔어.
처음엔 불면, 그 다음엔 무기력만성 우울과 불안, 강박, 공황 장애, 알코올 중독까지.
결국 사업을 이어갈 수가 없어서 7년 차가 되던 해 폐업을 했고,
지난 3년 간 모은 돈의 절반 이상을 병원비로 쓴 것 같아.
상태가 안 좋아서 응급실도 몇 번 다녀왔고 이제 좀 일어서나 싶으면 무너지고, 또 넘어지고.
그런 무한 반복 속에 삶의 의미를 잃어가는 나날들도 많이 있었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기분이었거든.
그래도 필요할 땐 입원을 하기도 하고, 약도 잘 챙겨 먹고,병원도 수소문해서 전국구로 찾아다니고, 심리학 서적도 읽고 심리 치료도 받으면서 살아보려고 정말 노력 많이 했어.
틈틈이 사이버지만 4년제 학위도 취득했고, 전문 자격증도 몇 개 취득했고.
지금은 다행히 많이 좋아져서 온전히 불안과 우울을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게 되었고,
약도 전혀 안 먹고 있는 상태야.
지난 달부터는 다시 일도 시작했어.
나는 치료 시점이 늦었지만, 필사적으로 회복에만 전념했기 때문에다시 보통의 삶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
아니, 생각 했어.
근데 요즘 자꾸만 의문이 자꾸 들어.
잦은 입-퇴원과 공황 발작, 약물 부작용 등으로 인해 지난 3년 동안 사회 생활을 거의 못했기 때문에
나는 오랜만에 사회의 일원이 된 지금 이 삶이 너무나 소중해.
그래서 아직은 조심스럽게 살아가고 있어.
내게 상처 주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내게 트라우마를 일으킬 요소는 가까이 하지 않아.
근데,여전히 나를 하인 대하듯 여기는 오빠와 연을 끊을 때는 '10년 전 맞은 걸 아직도 간직하는 정신병자'라는 말을 들었고
어렵게 애인에게 과거 일부분에 대한 얘기를 꺼냈을 때는 '다 지난 일이잖아. 누구든 그런 과거는 있어'라는 말을 들었어.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는 말 같기도 하더라.
나는 10대에 당한 폭력들로 인해 여전히 폭력 앞에선 불안해하고 예민해져.
20대에 사업하며 겪은 각종 사건들로 인해 아직도 전화 통화를 기피하고,
몇 년 전 시작 된 공황 장애로 인해 아직도 낯설고 사람 많은 장소에는 잘 가지 않아.
내가 과거에 여전히 얽매여 있기 때문에 내 삶을 스스로 제한하며 사는 건 아닐 지. 문득 궁금해지더라.
다 각자의 아픔이 있지만 다들 잘 살아냈고, 잘 살고 있잖아.
잠을 못 자고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그때 내가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늘 그랬던 것처럼 무시하고 삶을 살아갔더라면 지금 오히려 더 강한 정신력으로 삶을 살고 있진 않았을까?
내 병을 받아들이고 낫기 위해 지난 3년 간 해 온 노력들이 어쩌면 나를 더 나약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건 아닐까?
답은 없고 질문으로만 가득한 나날들이 지속돼서
답답한 마음에 이렇게 글까지 쓰게 되었는데
그저 넋두리처럼 쓰는 글이라
마무리는 어떻게 지어야 할 지 모르겠네..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