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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명옥헌에서

누렁이 |2006.11.16 15:16
조회 16 |추천 0

밤, 명옥헌에서

정영주

달이 진통 없이 물 속에 알을 낳는다
단번에 꼭 저만한 새끼 하나를 툭 떨어뜨린다
아름다운 것들은 산고도 없다
제가 깃들고 싶은 곳 처연히 숨죽여 창백히 몸 누일 때를 찾다가
적요한 물 속이면 어디에고 알을 깐다
붉은 배롱나무 꽃잎들 오소소 호수로 먼저 내려와 몰약을 터뜨리고
향기 알갱이들 달빛이 내는 길로 날아가 들꽃 속에 섞인다
섞여가는 일들이 유독 경건할 때가 있다
사람의 경건보다 달빛에 스며드는 사소한 풀빛이 더욱 숙연해져
갑자기 몸이 지긋이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발끝이 땅에 닿지 않고 달로 떠오르는 몸
세상의 밤이 달의 밤보다 더 깊고 그윽할까
새끼달을 씻기는 몰약향이 어둠의 구석구석을 발효시키고 있다
비틀거리는 길 하나씩 물 속으로 빠져간다
취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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