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에 대한 주제이지만, 강아지를 유기한 사람이 '동물 사랑방'글을 보지는 않을 것 같아, 그 분이 11년 전 20대 초반이었던 점을 감안하여 30대 이야기방에 올리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2013년 5월, 제가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 말도 안되게 마르고 털이 북실북실한 말티즈 한마리가 있었어요.
자기보다 몸집이 작은 강아지도 피하고, 사람도 좋아하지 않고, 강아지들이 놀기라도 하면 무서워서 아무 사람에게나 가서 안아달라고 하던 아이.
앞은 보일까 싶게 털이 자랐고, 뼈가 앙상하게 말랐는데 사료는 먹지 않는 아이.
당신이 2주 동안 호텔을 맡기고, 찾아가지 않은 그 아이 엘리에요.
사실 사장님은 처음부터 당신이 수상했다고 해요. 2주나 어려보이는 강아지를 맡기는데, 그 흔한 장난감, 간식, 사료도 따로 챙겨오지 않았고, 강아지만 달랑 주고 가려는 당신이요.
이상한 기분에 당신의 신분증도 복사하고, 집 주소도 적어놓고, 연락처까지 받으셨지만 여전히 마음이 시원하지 않았다고 해요.
그리고 설마설마했던 대로, 당신은 엘리를 찾아가지 않았고, 계속되는 사장님의 연락에 "애견 분양도 하시는 거 같으니, 그냥 팔아버리시면 되잖아요. 나중에 다른 말 안할게요"라고 했다는 당신...
사장님은 그 말을 듣고, 더이상 당신한테 강아지를 보낼 수가 없었대요.
이번에는 강아지를 어떻게 다시 데려가더라도, 그 강아지를 다시 유기하거나, 제대로 강아지를 키워줄 수 있는 사람으로는 안 보였대요.
덕분에 엘리는 저희 집에 와서 새로운 이름도 생기고, 엄마, 아빠와 누나도 두명이나 생겼어요.하지만 엘리에 대해서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고, 왜 사료는 안 먹는지, 나이는 몇살인지, 발바닥은 또 왜 이렇게 말랑한지. 알아가야할 게 너무나 많았어요.
그리고 엘리와 함께하던 초창기에 당신한테 묻고 싶은게 너무 많았어요.
골격으로 봤을 때는 막 한살이 되어가던 아이가 이빨은 왜 3~4살 들개 수준으로 상했던건지.
왜 사료를 그렇게 싫어하고, 안 먹는 건지. 다른 음식을 줬었다면, 왜 그렇게 말랐던건지.
적어도 한살이라는 아이가 새끼 강아지만큼이나 말랑한 젤리를 유지할 정도로, 얼마나 산책이나 활동이 없었는지.
왜 강아지가 공을 무서워하는지.
지금도 저는 당신한테 너무 궁금한게 많아요.도대체 엘리는 어디서 데려왔는지, 혹시 엘리의 부모에 대해서는 아는지.
그 부모는 어떤 병을 갖고 있었는지.
저는 지금 너무 무서워요. 2.7키로 정도인 저 작은 아이 몸에 종양이라는게 있을 수도 있대요.나이가 들어 생기는 지방종이 아닌, 특정 장기에 안좋은 게 보여 조직검사를 예약하고 왔어요.
종양이 가족력을 많이 따라간다고 해요..
이제껏 저희와 함께한 10년 넘게 망가진 이빨때문에 몇 번의 발치가 있었고, 스케일링이다 뭐다 몇 번의 마취를 할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팠지만, 병원에 다녀오고 조직검사 날짜를 기다리는 동안 계속 눈물만 흘러요.
저 착한 아이는 또 제가 우는 거 같으면 가만히 지켜봐주고 있어요.
당신한테도 그랬을텐데, 당신은 몰랐겠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당신이 엘리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저희 가족과 보내면서 행복했을 거라고 믿어요.
언젠가, 혹시나 당신과의 기억이 남아있는건 아닐까 두려운 마음에 '엘리'라고 불렀지만, 전혀 반응을 하지 않더라구요. 지금의 이름에는 바로 고개를 돌아보면서.
저는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안심이 됐어요.
당신은 엘리한테 정말 못할 짓을 했어요. 당신과 지내면서 강아지다운 삶을 살지 못했던 시간, 호텔에 버려져 두려움에 떨던 시간.그리고 당신과 함께한 시간동안 배워야할 것들과 지켜야할 것들을 놓쳐버린 엘리의 삶.
당신이 하나의 강아지의 어린 시절을 어떻게 낭비하고 인생에 어떻게 영향을 줬는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엘리는 앞으로도 저희와 행복할 거고, 당신한테 한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엘리의 남은 시간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길 빌어주었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