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을 열심히 받아서 성적이 좋아서인지, 운이 좋아서인지 다행히도 너는 고향 근처로 배치를 받았다.
그 덕에 면회를 자주 갈 수 있었다.
아니, 나는 매주 너를 만나러 갔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씻고, 예쁜 옷을 골라 입고 꾸미고 너를 최대한 많이 보려고 면회 시작시간에 맞춰서 도착을 했다.
면회 장소에서 파는 피자는 너무 맛있었고, 라면에 온갖 토핑을 다 추가해서 먹는게 즐거웠다.
PX도 너와 처음 가봤는데, 아이스크림이 200원가량밖에 안하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초반에는 매일 두 세 개씩 사먹기도 했다.
여전히 서툴게 싸움도 했지만, 면회장에 나오는 너는 한결같이 날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여전히 예쁘게 웃어주었다.
그때의 너의 최선은 나를 한결같이 반겨주고, 웃어보이는 것 뿐이었단걸 안다.
그래서 너의 최선에 보답하기 위해 나도 최선을 다했다.
지금까지도 요리는 못하는 내가 인생 최고의 요리를 한게 그 때였다.
너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고, 무슨 일이 있어도 미역국을 먹이고 싶었다.
집에 갔을 때 몰래 4단 도시락을 가져왔고, 내 자취방에서 몇 주간 생일상 만드는 것을 연습했다.
처음엔 미역이 그렇게나 천문학적으로 불어나는걸 몰랐기에, 미역 10인분은 족히 될 양을 물에 불린 적도 있었고,
생선을 구울 때 기름을 둘러야 하는 걸 몰라서 새까맣게 태운적도 있었다.
그래도 몇주동안 연습을 해서인지 너를 만나러가는 당일에는 그럴듯한 도시락을 만들 수 있었다.
3종 이상의 나물을 만들었고, 노릇노릇하게 조기를 구웠으며, 팥을 넣은 쌀밥도 되지않게 했고, 2인분에 맞게 미역국도 완성했다.
밑반찬과 과일까지 준비를 하다보니 사실 그 날 밤을 꼴딱 새야 했다.
하지만 내가 해온 음식을 보고 놀라고, 고마워하고, 너무나도 맛있게 먹어주는 널 보니 너무 행복했다.
나는 방학이 되고 너는 휴가를 어느 정도 모았을 때는 함께 여행도 갔다.
일주일동안 했던 여행이었는데, 그렇게 긴 시간 함께 한 것이 처음이어서 너무 행복했다.
잠들기 전까지도 함께였는데, 눈을 떠도 너가 있는 것이
결혼하면 매일 이렇게 사는 거구나 싶어서 너와 결혼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많이 걷고, 많이 먹고, 많이 구경하며 하루하루가 달달했다.
물론 고무신인 내 상황이 씁쓸한 적도 있었다.
대학 동기들과 놀고 집 갈 때면 다른 친구들은 남자친구가 와서 모두 데려다줬고,
힘든 일이 있거나 너에게 하소연하고 싶어도 나는 핸드폰만 보며 너의 전화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씩씩하게 혼자서도 잘 귀가할 수 있었고, 너 역시 매일 최선을 다해 전화를 해줬기 때문에 괜찮았다.
나는 군인이 아닌 너와 데이트를 하는 상황을 원했던거지, 군인이 아닌 사람과 연애하는 것이 부러운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너는 이병을 지나 일병이 되었고, 일병을 지나 상병이 되었다.
어느 날, 요구르트가 너무 먹고싶었다.
평소에도 요구르트를 좋아해서 너는 편의점에서 파는 대용량 요구르트를 자주 사주기도 했다.
근데 그날따라 요구르트가 없었다.
요구르트를 사러 나가는 길, 갑자기 뜨끔 했다.
이 기분, 이 불안함, 이 묘한 상황.
요구르트는 생각도 못한 채 급하게 약국을 다녀왔다.
테스트 결과,
두 줄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너에게 말은 안했지만 그 후로 피임약을 항상 챙겨 먹었다.
그리고 피임도 잘 했었는데
근데, 왜?
지난 달 약을 며칠 늦게 먹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이런 상황이 발생한게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함께 얘기할 너가 옆에 없었다.
그렇다고 전화로 말할 수도 없었다.
그 당시에는 군대 전화는 도청장치가 있다며 통화 내용을 다 듣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를 만날 때까지 이 상황을 유예할 수도 없었다.
혼자서라도 확인을 해야했고, 이문제는 시간을 끌면 안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또다시 내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