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처음으로 불러보는 아니 적어보는 어머니라는 글.
저는 올해 25살되는 청년입니다..톡을 보다가 그냥 제가 살면서 어머니께 몹쓸짓을
한일이 떠올라서 이렇게 몇자 적어봅니다..(저는 어린시절 부터 유명했어요)
저는 어렸을때부터 좀 유별났죠..장난도 심하고 동네에서 골목대장 할 정도 였습니다.
한날은 친구랑 놀다가 싸우게 되었는데..싸우다가 썽이나 돌멩이로 친구 머리를 찍었죠.
어머니는 제가 어릴때 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친구 어머니가 어머니 일하시는 곳으로 찾아가 아들 교육 어쩌고 저쩌고 따지고들었죠.
그때 저는 몰랐습니다..왜 어머니가 친구 어머니한테 저런말을 듣고 가만히 있는다는게.
저는 어릴때부터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들 형들한테 많은 교육을 받아가며 자랐습니다.
맞고 있지말고 누가 때리면 같이 때리라고 싸우다가 힘이 딸리면 도망가지말고 울지말고
무슨수를 써서라도 이겨라고 그렇게 교육받고 자랐습니다..그렇지 않고 도망가고 울면
졸장부가 된다고 그러고나면 그다음에 더 많은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니가 저런말을 듣고 있는다는게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제가 교육받은걸로 보면은 저는 교육 받은대로 잘한거였습니다..칭찬을 받아야했죠..
그러다가 국민학교(1992년에는 국민학교였음) 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어머니 채소가게에는 사람들이 넘쳐나길 시작했습니다..
손님이 아니라 제가 때리고 괴롭힌 친구녀석들 어머니였죠..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차례대로 어머니에게 또 아들 교육 어쩌고 저쩌고를 나불거렸죠.
한두번도 아니고 매번 그랬습니다..학교에 오시는 날도 많으셨습니다..
제가 남자들만 넘쳐나는 집에서 자라서 그런지 좀 난폭했습니다..
저희 할아버지 동네에서 알아주시는 분이셨고..아버지 삼촌들 정말 무서웠습니다..
사촌형들 그보다 무서운 사람은 우리형이였습니다..진짜 어릴때 방에 갇혀서..
어머니 아버지 오실때까지 하루종일을 맞은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저희형이 최고란 생각이 듭니다..가족이라는게 이런거겠죠..
그렇게 처음시작한 학교를 졸업때까지 말썽으로 끝냈습니다..
중학교를 올라갔었죠..여자들은 모르지만 남자들은 중학교가면 처음엔 싸움을 많이하죠.
저도 마찬가지 였습니다..다른 초등학교에서 온 친구들과 매번 다퉜습니다..
역시나 어미니 가게엔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습니다..그러다가 한날은 친구랑 심하게 다퉈
친구 눈이 찢어지고 코뼈가 내려 앉는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중2때 인가 그정도였죠.
친구 어머니는 어머니 가게에 찾아가 채소를 담은 소쿠리를 발로 차고 가게가 난리 난리가
말도 아니였습니다..그때 학교에서 마치고 돌아오는데 그걸 목격하고는 정말 참을수가
없었습니다..제가 잘못해서 친구를 다치게 한거지만 어머니한테 너무 심하게 하시는 것을
차마 보고만 있을수 없었습니다..저는 뛰어가 친구 어머니를 밀었습니다..그러자 그분께서
일어나시더니 저의 뺨을 쌔리더군요 그걸 본 어머니께서는 그분께 애를 왜 때리냐고..
친구들끼리 싸울수도 있는거지 싸우면서 크는게 당연하지 않냐고..
그러자 그분께서는애미가 시장에서 채소장사 하니깐 애새끼가 저렇게 뭣모르고 날뛰는
거라면서 자식 교육 똑바로 시켜라면서 가시는겁니다..
그 이후로 그 친구 매일 볼때마다 때리고 괴롭히고 그랬습니다..저 독합니다..
그러더니 결국엔 학교 못다니겠다며 전학 갔습니다.그날 선생님한테 죽도록 맞았습니다
그래도 꿋꿋하게 학창시절을 매번 이렇게 말썽을 피우고 끝까지 졸업은 했습니다..
어머니의 부탁이 였으니깐요..무슨일이 생기더라도 졸업은 해야한다고 하셨거든요..
졸업을 하고도 저는 철이 없는 막내 아들이 였습니다..맨날 술먹고 싸우고 여자애들 데리고
다니면서 나쁜짓은 다하고 다녔습니다..어머니한테 돈 뜯어서 친구들이랑 옷이나 사고
남은 돈으로 술먹고 여자애들 데리고 자고 막 나가는 인생이 였습니다..
이제는 여자애들이 집으로 찾아오는 일들이 생겼습니다..저랑 자서 임신했다고 저희집에
들어와서 살겠다는 애들 저랑 잤는데 제가 책임을 안진다는 등 정말 난리도 아니였습니다
결국 집에서 살겠단 애들 집에서 살았는데 일주일도 못견디는 애들이 많았습니다..
저희 집엔 거친 남자들이 많이 이었죠..그리고 할머니 고모 숙모들 까지 까다로웠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선 새벽에 일찍 가게 나가시는데 아침 8시되면 집으로 오셔서 가족들
밥을 차리시고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맏며느리라 많은 일을 하셨고..
대학을 나온 숙모들이랑은 차별을 많이 당하셨죠..그걸보고 저는 여자애들이 집에 와서
살때 매날 새벽에 깨워서 어머니 따라나가서 도와드리라면서 억지로 내보냈습니다..
나가고 나면 바로 문걸어 잠그고 자고 그랬어요 어머니가 들어가란다면서 들어오는 애들
정말 많았거든요..여러날이 지나고 어머니가 많이 편찮아지셔서 쓰러지는 일이 생겼어요.
정말 그때는 하늘이 노래지고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매일을 어머니 병실을 지키면서
병간호를 했습니다..불쌍하신 우리어머니 그렇게 돌아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몸이 많이 약해서 져서 무리한 일을 하시면 안된다는 의사선생님 말씀도 불구하시고..
퇴원하자말자 또 일을 하셨습니다..우리 큰아들 작은아들 먹여 살릴려면 일해야 하신다고
엄마가 죽으면 누가 너거들을 살펴주겠냐며 일을 하셨습니다..
그날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술로 밤을 지새고 미친듯이 울었습니다..바뀌겠다고..
그렇게 마음먹고도 내 인생은 바뀌지 않았습니다..그래봤자 작심삼일이였습니다..
그렇게 바뀌지 않는 저는 결국 그냥 죽자 죽어버리자 살면서 어머니 이렇게 고생시키는데
차라리 죽어버리는게 도와주는거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21살 이였습니다..달려오는 차에 몸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그 충격으로 무릎 십자인대 파열 어깨 탈골 갈비뼈 2대 천추기립근 파열 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그소식을 들은 어머니께서는 또 쓰러지시고 몇일을 헤메셨다고 합니다..
저는 그사고 이후로 제 인생이 많이 바꼈습니다..다행히 천운인지 사는데 지장은 없었죠..
그사고 이후로 군대면제를 받고 저는 이제라도 철들어야 겠다며 일을 시작했습니다..
공부도 다시하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지금은 3년정도라는 공부끝에 공무원시험 합격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지 어느덧 6개월이 되었습니다..
동네에서 용났다고 난리 난리도 아닙니다..저채소가게 망나니 막내아들이 공무원 됐다고
이제 채소가게 누구는 팔자 폈다고 아들 잘키웠다고 난리입니다..
제가 어릴땐 뒤에서 욕만 하던 아주머니들께서 이젠 아들 잘키웠다고 하네요..좀 웃겨요
저희 어머니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남들 다하는 일시작했다고 자만하지 말라구요..
저희 어머니는 아직도 일을 하고 계십니다..아무리 말려도 죽을때까지는 일을 해야한다고
너거 결혼할때 손자 손녀들 뒤치닥거리 할려면 더 벌어야 한다며 열심히 일을 하십니다..
저는 20살때 만난 여자가 지금까지 제옆에 있구요 같이 살고 있습니다..
제 와이프도 저때문에 고생 많았습니다..고아원에서 자라 못된 저만나고 그래도 착해서
어머니를 많이 도와주고 열심히 하는거에 감동 받아서 이렇게 같이 살고있구요..
올해 5월달에 결혼날짜 잡아놨습니다..그래도 결혼식을 올려주는게 예의라고 말하시는
어머니때문에 날짜를 잡았습니다..지금도 옛날 일을 떠올리면 정말 못난자식 같아요..
어머니가 끝까지 저를 믿어주시고 아껴주셨기에 제가 오늘날 여기까지 온거 같습니다..
어머니가 없었다면 정말 생각도 하기 싫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그리고 지금부터 늦은 효도 시작하겠습니다..지켜봐주세요..
톡커님들도 지금 계시는 어머니들한테 고마워하시고 효도하고 살기를 바랍니다..
뭐 별 내용도 없는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즐거운 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