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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판사 이한영"을 보고

그린 |2026.01.17 13:24
조회 62 |추천 0

판사 이한영을 보며,

억울한 사람의 마음에 대하여
세상에는 정의가 있다고 배워왔다.

법은 공정하고,
진실은 언젠가 드러난다고.
하지만 현실은 종종 그 반대다.

거짓이 더 빨리 퍼지고,
교묘한 말이 사실처럼 굳어지며,
억울함은 설명할 기회조차
충분히 주어지지 않은 채
오해 속에 남는다.

드라마 판사 이한영 속에서
판사 이한영은 말한다.

“저 위에 있을 때는 몰랐다.”

그 말이 유난히 아프게 다가온 이유는,
직접 그 자리에 서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문제는 언제나
노골적인 폭력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말과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사실의 일부만 잘라내고,
맥락을 지우고,
자신에게 유리한 말만 반복하면서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는
어느새 진실처럼 유통되고,
그 끝에는 종종
설명하지 못한 사람,
목소리를 잃은 사람이 남는다.

억울함은 소란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커진다.

억울한 사람은 처음부터
소리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해받을 수 있으리라 믿고
차분히 설명하려 애쓴다.

하지만 그 태도가
의심으로,
집착으로,
문제 제기로 해석되는 순간,
억울함은 어느새
죄의 그림자를 쓰게 된다.

드라마와 현실의 가장 큰 차이는
이것인지도 모른다.

드라마 속에서는
결국 판결이 내려지고
시청자는 안도의 숨을 쉰다.

하지만 현실에는
판결조차 받지 못한 억울함,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조용히 쌓여 있다.

그들은 정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묻고 있을 뿐이다.

“왜 나는 끝까지
듣지도 않고 판단되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한영이라는 인물이
다시 판결을 보려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완벽한 정의를 믿어서가 아니라,
같은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억울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영웅도, 복수도 아니다.
단 한 번의 공정한 시선,
사실을 끝까지 보려는 태도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지금 세상이 너무 불공정하게 느껴진다면
그 감정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억울함은 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진실을 알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드라마 「이한영」은 묻는다.
정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동안
어디에 서 있었는가.

이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직 이 세상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고,
나는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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