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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결혼생활

남편 |2026.04.08 20:26
조회 159 |추천 0

2017-03-11(토) 육아휴직 중 아내의 보육교사 취득

 아내는 보육교사 자격증 취득으로 교육을 받기 위해 대학으로 향하는 날이었다. 그날 아침, 이름표를 준비해야 한다며 “프린터가 없어서 손으로 써야 한다”고 내게 불만을 터뜨렸다. 마치 프린터가 없는 게 내 잘못인 양 원망하는 투였다.

그 순간 드는 생각은 미리 이야기만 했더라도, 회사에서 얼마든지 출력해줄 수 있었을 텐데. 자기 준비 부족에서 비롯된 일을 내 탓으로 돌리는 모습에 억울함과 씁쓸함이 남았다.


2017-03-20(월) 첫째 어린이집 입소
 첫째 육아휴직 중, 아내가 실습 중인 어린이집에서 자리가 났다는 연락을 받고 아침 10시, 아들딸을 데리고 어린이집에 함께 갔다. 첫째가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기에 약 3주 동안은 매일 두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집에 들렀다가, 12시 전후 하원하고 유모차를 밀며 근처 공원을 산책하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아침엔 어린이집 등원, 낮엔 집에서 아들딸을 돌보고, 저녁엔 퇴근한 아내와 함께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이 잠든 후엔 회사 일과 온라인으로 생필품을 결제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가끔씩 새벽에는 상황이 더 힘들었다. 일주일에 2~4번은 아이들이 울며 깨어나고, 그럴 땐 분유를 타서 먹였지만 다시 잠들지 않고 울기만 할 때도 많았다. 그런 날이면 아기를 안고 방안을 빙빙 돌며 재우려 애썼다. 육아휴직이라는 말은 쉬는 시간이 아닌, 또 다른 형태의 노동이었다. 매일매일이 지치고 힘들었지만, 그 시간은 아이들과 가까이 호흡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2017-06-03(토) 처가계
 아내가 친정아버지 환갑 때 잔치한다고 해서 나는 그동안 모아온 가족 계로 결제하자고 이야기했다. 결혼 직후, 나는 아내에게 처가 부모님을 위한 계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서로 매달 조금씩 모아두기로 했다. 당시 처가 부모님이 아프면 병원비로 환갑이나 칠순때 잔치를 하거나 선물을 드리거나 가족끼리 여행을 갈 목적으로 아내에게 CMA 계좌를 하나 만들어, 그곳에 꾸준히 이체하며 모으자고 했고, 나중에 처남이 결혼하거나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시기가 되면 넘겨주는 방식으로 운영하자고 설명했다.

하지만 막상 오늘 확인해보니 아내는 계를 따로 관리하지 않고 자기 통장에 섞어 보관하고 있었고, 심지어 그 계좌에는 내가 보낸 돈만 있었다. 아내 본인의 금액은 빠져 있었던 것이다. 가족을 위한 돈을, 자기 개인 돈처럼 생각하고 관리한 점이 실망스러웠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사실을 지적했을 때조차 아내는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고 “내가 결제할 거니까 상관하지 말라”는 식으로 반응했다는 점이다.

이런 태도를 보고 아내는 본인의 책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알게되었고 앞으로도 같은 일이 반복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내에게 계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할 수 있다고 생각해 방법까지 상세히 알려줬건만, 그것조차 받아들이지 않은 아내의 무신경함에 실망했고 그걸로인한 아내의 반응이 몹시 답답했다.


2017년 남편과 시아버지의 관계
 결혼 후 아내는 유독 내 아버지와의 과거 관계를 물었다. 어릴 적 나와 아버지 사이가 원만하지 않았다는 건 아내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대체로 내 기준에서는 아버지가 매를 드는 방식으로 훈육했고, 나는 그것을 상처로만 기억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며 나는 그런 과거를 정리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자신은 아버지에게 한 번도 맞은 적이 없다고 했고, 그 기준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 가정환경이 불운하다고 말했다. 나는 처음엔 그저 지나가는 말로 들었지만, 아내가 반복해서 묻고 또 묻는 모습에 짜증이 나 결국엔 몇 가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털어놨다. 그러자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불쌍하다… 그래도 잘 컸네.” 그 말을 들었을 땐, 순간적으로 위로받는 느낌이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이후 관계가 틀어질 때면 아내는 내가 털어놓은 과거를 무기로 삼았다. “가정환경이 안 좋아서 그래.” 라고 말하곤 했다. 심지어 아내와 아이들 사이가 살짝 틀어졌을 때면 아이들에게 “너희는 결혼하지 마. 여긴 가정환경이 아주 더러워서.”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했다.

 집에서조차 내 과거가 이런 식으로 언급되는데, 밖에서는 어떨까. 아내가 지인들에게도 남편의 어린 시절과 가정환경을 이야기하며, 내 성격과 행동을 그것 탓으로 돌리고 다녔을 거라 충분히 짐작이 갔다. 나는 그때 확실히 깨달았다. 내 진심과 과거를 믿고 이야기할 상대가 아니었다는 걸.

2017-11-04(토) 부부교육과 안고 있던 둘째를 던짐
 아내가 제안한 부부교육에 참석하기로 했다. 교육을 위해 아내는 미리 장모님과 처남에게 아이들 돌봐달라고 부탁했고, 아침 일찍 우리집으로 오셨다. 내 개인적으로는 우리 문제로 친정에 손 벌리는 게 달갑지 않았지만, 아내가 적극적으로 준비한 모습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 이런 시도가 우리 사이에 작은 변화를 줄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가졌다.

교육은 XX 주민센터 3층 1강의실에서 진행되었고, 참석자는 열네 명 남짓이었다. 강의 내용은 '서로 애칭 부르기', '서로를 이해해 주고 살을 맞대고 자기', '정기적인 부부관계 유지하기',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등이었다.

교육이 끝난 그날 밤, 현실은 다시 냉혹했다. 아이들을 재우고 아내와 대화를 나누던 중, 내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내는 안고 있던 둘째를 매트 위로 던져버렸다. 놀란 나는 “지금 뭐 하는 거야?”라고 물었고, 아내는 “나도 몰라”라고 회피했다. 그 순간 잠들어 있던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고, 결국 내가 안아 달래 다시 재웠다.

부부 사이를 회복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하루였지만, 돌아오는 길은 다시 상처였다. 교육을 통해 배운 말들은 공허하게 울려 퍼졌고, 아이가 매트에 던져지는 모습을 지켜본 나는 깊은 무력감과 슬픔 속에서 그날 밤을 보냈다. 무엇보다, 그날 본 장면은 내 기억 속에 가시처럼 박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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