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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아내의 복직과 셋째출산

남편 |2026.04.13 18:55
조회 240 |추천 0

2018-05-28(월)~2018-08-09(목) 아내의 복직
 그동안 아내는 첫째 출산 전(2015년 11월경)부터 출산 휴가를 사용했고, 연년생으로 둘째를 이어 낳으며 자연스레 또 다시 출산 휴가를 사용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셋째를 임신한 상황에서도 계속되는 출산 휴가 사용이 어려워져, 아내는 복직을 결심했다. 나는 아내의 의사를 존중했고 복직이 결정되었다.

나는 결혼 후 줄곧 도보로 출퇴근하는 생활을 이어왔다. 첫째가 돌이 지나면서부터 나의 출근길은 첫째의 등원길이되었고 이후 둘째가 돌이 지나면서 두 아이의 등원길이었다. 먼저 첫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둘째가 다니는 어린이집으로 이동한 뒤 출근을 하는 루틴. 아침에 등원할 때마다 아이들 눈빛을 마주했다. 그 눈빛은 마치 부모와 영영 헤어지는 듯한 슬픔, 버려진 듯한 외로움, 말은 없지만 눈으로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정서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린이집 창문 너머에서 손을 흔드는 그 모습은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아빠, 빨리 와. 나 여기 있어…” 처음엔 첫째만 그랬지만, 시간이 지나 둘째도 같은 눈빛을 보내왔다. 내 감정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 무언의 눈빛은 날 계속 붙잡았다. 그럴때면 뒤도 안 돌아보고 손만 흔든 채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혹은 정말 모든 걸 내려두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터로 함께 가서 놀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지만, 현실은 출근이었다.

퇴근길은 그보다 더 절박했다. 퇴근 하자마자 급하게 저녁을 대충 먹고 저녁 6시 30분경 어린이집으로 뛰다시피 달려갔다. 내가 늦으면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퇴근이 늦고, 아이들도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뛰다가 배가 아파도 참다가, 많이 아프면 걷고, 조금 나아지면 또 뛰었다. 그렇게 둘째 어린이집에는 도착하면 항상 둘째와 선생님, 단 두 사람만 남아 있었다. 멀리서부터 나를 발견한 아이는 힘차게 뛰어와 내 품에 안겼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지만, 꾹 참았다. 내 품에 안긴 둘째에게 "미안해, 아빠가 너무 늦었지..." 그리고 급하게 유모차에 태워 첫째가 다니는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그 어린이집도 상황은 비슷했다. 대부분 우리 아이와 선생님 한분만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문을 열면 첫째가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 나왔다. 두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집으로 향하면서 오늘 배운 노래도 함께부르고,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하며 귀가했다. 그 시절의 하원길은 나에게 하루 중 가장 감정이 북받치는 시간이었다. 

 

 언제가 아내에게 등원 길에 아이들의 눈빛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했다. 등원할때 아이들이 너무 슬퍼 보이고, 버려지는 느낌을 받는 것 같다고. 그런데 아내는 별일 아니라는 듯 이해를 못하는 듯이 무심하게 넘겨버렸다. 마치 감정이 메마른 사람처럼, 아니면 남의 일처럼. 내가 느낀 슬픔은 아내에게 도달하지 못했고, 그 순간 부부라는 것이 이렇게 감정의 결이 다를 수도 있구나 싶어 어쩐지 더 허탈했다.


2018-07-02 아내가 퇴사해 육아를 보라고 한다.

 결혼 전 나는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아내는 결혼 초기부터 아이 넷을 갖고 싶다는 강한 욕심을 여러 번 드러냈다. 그 욕망을 꺾지 못하고 나는 내 생각을 접고, 일단 첫째를 낳았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아내가 첫째를 돌보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이를 좋아하는 것과 실제로 키우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라는 걸 절감했다. 첫째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둘째가 생겼을 땐 "나중에 우리 부부가 죽고 혼자 남을 첫째가 얼마나 외로울까…" 하는 생각에 마음을 바꾸었다.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둘째까진 책임지고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다.

나는 아이들이 만 세살까지 만큼은 부모가 직접 키워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지만, 정작 아내는 아이를 돌볼 때마다 짜증이 잦았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어린이집을 다니는 것이 아이들과 아내 모두에게 나을 것이라 판단했고, 결국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다. 이후 아내는 하원 후의 육아조차도 아내는 버거워했다. 아내는 여러번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를 하라고 했다.

물론, 내가 육아를 외면했던 것도 아니다. 퇴근하면 아이들 하원부터 육아가 시작되었고, 저녁 7시 반쯤 귀가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등원까지 맡아왔다. 주말엔 거의 매주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뛰어놀거나,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전담 육아자처럼 살았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늘 부족하다는 평가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가 또 다시 "당신이 육아를 잘보니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육아를 보라"고 했다.

결국 나는 결단을 내렸다. 13년을 다닌 회사를 그만두기로. 그리고 아내에게 다음과 같은 카톡을 보냈다.
7월 31일까지 출근하고 이후부터 퇴사 진행할 예정이고 앞으로 생계는 자기가 알아서 해. 한 달 저축 빼고 순수 생활비 150만 원 정도 나가니 그 정도는 있어야 생활이 됨. 그리고 150만 원 이상은 있어야 주택자금, 자녀 학자금, 노후 자금 보탤 수 있으니 참고하고 육아는 8월부터 내가 할 거니 당신은 앞으로 생계에만 힘써주길 바래. 애들은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는 난 육아에만 전념할 테니 우리 가정의 미래 계획은 당신 수입에 따라 달라질 거야. 내가 계획했던 것들은 모두 잠정 처리할 테니 그렇게 알고 있길 바래.

 

집은 계속 현재 집에서 살고, 해외여행도 갈 일 없고, 차 없이 살 예정. 생계비 150만 원 외 저축과 보험비 등은 퇴직금으로 충당할 거고 이번에 퇴사하면 동일 연봉으로 재취업 어렵겠지. 나중에 애들 크면 집 팔아 사업하든가 해야겠지. 설, 추석, 어버이날, 생신 등 처가 본가에 선물과 용돈은 당신이 챙겨. 나도 더 이상 생계와 미래를 위해 늦게까지 돈 벌고, 육아까지 다 하고 싶지 않다. 당신이 육아하기 싫어서 돈벌러 나간다고하니 이게 최선인 거 같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양보했고, 또 마지막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나에게 말했다. "시댁에 가서 시어머니에게 생활비 달라고 하겠다"고. 왜 하필 시댁이냐고 묻자,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아들이 돈을 못 버니, 시어머니가 생활비를 줘야지." 이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내 본인이 퇴사해서 내가 육아를 전담하라고 했던 사람 아닌가? 그런 결정을 함께 내렸고, 나 역시 오랜 경력과 생계를 내려놓는 막대한 희생을 감수했는데, 이제 와서 그 책임을 시댁에 떠넘기겠다는 태도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자기가 원해서 시작한 일의 결과를 왜 남에게 책임지라고 하는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또 한 번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말이었다.


2018-08-23(목) 아내의 자격증 취득
 어디서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내는 출산 후 자격증을 취득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4년제 대학을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기가 막혔다. 지금은 셋째까지 임신한 상황이고, 무엇보다 아이들 돌보는 게 우선이어야 할 시기인데 아내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가정의 현실은 보지 못한 채, 본인 욕구만 앞세우는 모습이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진지하게 이야기해보려 해도, 늘 그렇듯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한숨만 나왔다. 정말로,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함께 지키겠다는 책임감이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2018-09-03(월) 셋째 출산

 결혼 전부터 아내는 자녀를 4명 낳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다. 그 당시 나는 현실적으로 1~2명 정도만 낳고도 힘들어 포기할 거라고 생각해,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7년 12월 3일의 관계에서 셋째가 임신되었다. 나뿐 아니라 양가 부모님 모두 셋째 출산을 반대했다.

아내가 첫째를 돌볼 때는 ‘처음이라 그럴 수 있지’ 싶어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둘째 출산 이후에는 짜증이 일상이 되었고, 아이들을 직접 돌보기보다는 어린이집에 맡기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더 집중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그런 모습을 경험한 이후라 셋째 임신 소식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고, 누구도 쉽게 찬성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출산 전, 나는 아내에게 셋째 이후 우리 가족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아내는 내 말은 들으려 하지 않았고, 오직 본인의 의지대로 셋째를 출산했다.

2018년 9월 3일, 셋째가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이날부터, 우리 부부 사이의 균열은 더 깊어졌다. 나는 이 상황에 무력감을 느꼈고, 오래 참아 끊었던 연초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앞으로 닥쳐올 고된 삶을 알고있음에도 그걸 미리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셋째 출산 직전, 아내는 산부인과에서 피임 수술(난관결찰술)을 권유받았고 나에게 해도 되는지를 물었다. 나는 동의했고, 아내는 출산과 동시에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아내는 주변 사람들에게 남편이 피임을 안 해서 셋째가 생겼고, 자기가 남편대신 피임 수술까지 했다며 자기 입맛에 맞는 이야기로  말했다. 이후 그 이야기는 친정, 시댁, 시누(내 친누나)에게까지 이야기했고, 나는 마치 책임감 없는 사람으로 포장되어 버렸다.

셋째 출산 후 아내는 친정에 자주 힘들다는 하소연을 했고, 그 영향인지 주말이면 첫째만 친정으로 데려갔다가 일요일 저녁에 데려오는 패턴이 생겼다. 그 이후로도 줄곧, 나는 처가에 늘 죄인처럼 고개 숙여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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