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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금쪽같은 내 새끼 촬영 이후 빨간펜

남편 |2026.05.11 19:55
조회 45 |추천 0
2023-03-10(금) 첫째의 게임 아침,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출근하던 중 08:10경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첫째가 핸드폰 게임에 몰두해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했고, 첫째에게 학교에 가라고 대신 말해달라고 했다. 나는 아이에게 “게임은 학교 다녀와서 하라”고 짧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사실 이 상황은 예상된 일이었다. 과거 나는 아내에게 아이에게 핸드폰을 사주지 말라고 수차례 이야기했었다. “첫째의 성향상 분명 게임에 빠져 생활이 무너질 거다.” 하지만 아내는 내 말을 무시했고 결국 아이에게 핸드폰을 사줬다. 지금에와서 문제가 터지자, 아내는 자기가 수습하려 하지 못하고 내게 대신 해결해 달라고 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내가 얼마나 지쳤는지, 아내는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이런 반복된 상황에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또 아로마 디퓨저를 사용해 온 집안에 진한 치약냄새로 가득했다. 말을 해도 바뀌지 않는 사람, 자기 감정만 중요한 사람, 매사 충동적인 사람 그리고 그로 인해 점점 무너져 가는 가족의 중심. 그걸 내가 억지로 떠받치고 있는 현실이 그날 따라 더 무겁게 느껴졌다.
2023-03-00 금쪽같은 내새끼 방송 이후 방송이 나가기 전, 아내는 친정 가족들과 자신의 지인들, 그리고 자신이 활동하던 여러 카페에 방송에 나온다고 자랑처럼 미리 알렸고 했다. 그 과정에서 나에게도 “어머니와 누님에게 알려야 하냐”고 물었고 나는 조용히 지나가자며 “알리지 말라”고 했다. 다행히 그 부탁은 지켜졌다. 그러나 방송이 나간 후, 나는 점점 마음이 복잡해졌다. 우리 가족이 세상에 어떻게 비춰졌을까, 사람들은 날 어떻게 평가할까, 그리고… 내가 놓치고 있는 건 뭘까. 이런 생각들에 방송 이후 밤마다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디젤매니아, 맘스홀릭베이비, 송산맘조아요, 엽기혹은진실 같은 커뮤니티엔 우리를 본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 있었다. 그 중엔 아내를 불쌍하게 여기는 이들이 70%, 나를 이해하거나 동정하는 쪽은 30% 정도였고, 글과 댓긍의 전부는 “아이들이 제일 불쌍하다”고 했다. 댓글을 읽을수록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는지, 무엇이 편집되었고 무엇이 남겨졌는지를 다시 떠올리게 됐다. ‘이게 진짜 우리 이야기인가?’ ‘내가 정말 그렇게만 보였나?’ 세상 앞에 선 가족의 민낯은 예상보다 잠깐에 큰 파장을 남겼고, 나는 스스로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그 수많은 댓글 중, 내 마음에 가장 깊게 박힌 건 한 줄 요약처럼 쓰인 한 글이었다. "아빠는 이미 엄마한테 질려버렸고, 엄마는 삶에 질려버렸다." 이 말이 어쩌면 우리 가족의 지금을 가장 정확하게 말해주는 표현이었다. 그 짧은 문장 속에는 지친 관계, 반복된 갈등, 그리고 서로를 향한 이해 부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리고 어느 분이 내가 아내에게 평소 했던 이야기들을 정확하게 대변해주셨다. 그 댓글을 읽는 중에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아내에게 한 말들은 아내에게는 늘 비난으로 받아들여졌고, 돌아오는 건 오해와 침묵뿐이었다. 그런데 그 분은 그 짧은 댓글 안에서 내 의도, 내 마음, 그리고 내가 감내해온 현실까지 놀라울 만큼 정확히 짚어냈다. 아무 말 없이, 낯선 사람의 공감 하나에 그동안 쌓여있던 서러움이 무너져 내렸다. 그 댓글이 나에게는 '너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말처럼 들렸다.
 저도 아기 엄마인데 전 저거 보면서 남편이 너무 불쌍하던데요.. 셋째 낳으면 경제적으로 더 힘들어질거라고 남편이 이야기하는데도 와이프가 낳자해서 낳은건데 그럼 잘 키우기라도 하던가요 너무 애기를 오냐오냐해서 공공질서고 예절이고 갖다버리고… 빵집에서 운것도 일단 결제하고 나와서 울던 해야지 빵집 주인이랑 직원은 뭔죄예요 난처하게… 그리고 애가 케이크 손으로 건드려서 어쩔수없이 사적도 한두번이 아니라던데 그럼 빵집을 들어가지 말았어야지 통제도 못하면서 애기데리고 들어가놓고 애가 통제 안되니까 빵집 사장님한테 저 좀 울어도 될까요? 전 진짜 이해 안됐어요 애기한테 케이크 하나 못사주는게 비참한다 어쩌다 하는 것도 아니고 생일인데 케이크 못사줘서 그럴수 있죠 애가 갑자기 4만원짜리 케이크 먹고 싶다하면 꼭 사줘야하나요? 안사주면 비참한 건가요? 케이크 말고 좀 더 저렴한 걸로 사라고 하면 돼죠… 엄마 대처능력이 전 너무 아쉬웠고 하루종일 눈물로 징징징 하는 모습이 오은영박사님이 엄마보고 정신차리라고 할 줄 알았는데 계속 남편보고 금쪽이라고^_^... 돈 없는데 행복이고 뭐고 그럼 빚내서 애기 케이크 사줘야하나요 돈없는거 뻔히 알면서 학원 두개 세개 보내고 싶다고 애엄마가 애기하니까 남편이 하나만 보내라고 했다고 또 징징징 아니 돈 없는게 어떻게 하냐고요...? 그리고 애 혼자 케어하기 힘들다고 시터불러줘라 징징징 애들 다 어린이집 학교 갔다와서 실상 보는시간 하루에 4~5시간 밖에 안된다는데 대체 그 시간조차도 감당이 안되면 애를 왜 낳았냐구요 남의 손에서 키울거면 대체 왜... 그럼 일이라도 해서 애들 학원비 벌어야죠... 제가 봤을땐 와이프분 사회생활을 안해보셨거나 경제관념이 없어보이셨어요... 애 셋 남편 혼자 외벌인데 풍족하게 키우고 싶다? 애 한명도 외벌이 힘들다고 하는 세상인데 그럼 맞벌이를 해야죠 그게 현실적으로 안되겠으면 애를 낳지 말건가... 완전 답답이요
 위와 같은 댓글을 남긴분에게 댓글을 보내고 싶었지만 구설수에 오르는게 싫어 못했었다. 이 글을 통해 볼지 모르겠지만 아래와 같이 그 분께 글을 남긴다. 안녕하세요. 금쪽같은 내 새끼 OOO회에 출연했던 ‘금쪽이 아빠’입니다. 이 글이 닿을지 모르겠지만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방송 이후, 여러 커뮤니티와 댓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예능이라는 특성상 어느 정도 연출도 있었고, 시청률을 위한 편집으로 실제와 다른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저를 비난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당신이 남겨주신 댓글은 제 마음 깊숙이 박혔습니다. 그날 저는, 화면 밖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제 마음을 정확히 읽고 표현해주신 그 댓글을 보며 참았던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정말 잘못 살고 있는 걸까?" 스스로를 자책하던 그 시기에 당신의 댓글은 “아니야, 당신 말도 틀리지 않았어” 라고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당신의 글은 단지 동의가 아니라 이해였습니다. 그저 제 편을 든 게 아니라 현실적인 시선으로 문제를 바라봐 주셨기에 더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댓글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지만, 괜한 구설에 오를까 조심스러워 이렇게 글로나마 마음을 전합니다. 그 댓글 하나가 지쳐 있던 제게 큰 위로가 되었고, 지금도 마음속 깊이 남아 있습니다. OOO님,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금쪽이 아빠 드림 -
 방송이 끝난 직후, 뜻밖의 따뜻한 손길들이 찾아왔다. 직장 내 주부사원 한 분은 “셋째 잘 먹이라”며 케이크 쿠폰을 건넸다. 아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도 격려의 의미로 5만 원을 보내주셨다고 한다. 자주 가던 마트 가계 사장님께서 젤리 3개를 선뜻 내어주셨고, 동네 초등학생들은 “우리 엄마가 아저씨 드리래요”라며 어린이 영양제를 전해주었다. 평소 나를 알고 있던 친구들, 직장 선후배들은 그 누구보다 우리 아이들을 이해해주었다. “방송 보니까 더 마음이 쓰이더라, 그동안 고생했구나 힘내라”고 거래처 사장님들께서도 따뜻한 말을 건네주셨다.  방송을 보시고 보내주신 선물들이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란 걸 알기에 감사히 받으면서도, 한편으론, 우리 가족이 방송에서 비춰진 모습처럼 정말 그렇게 경제적으로 어렵게 사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이런 걸 받아도 되는 사람인가?' 하는 혼란스러운 마음이 함께 들었다. 특히나 누군가의 따뜻한 배려 앞에서 내 자존심 한켠이 눌리는 듯한 기분도 지울 수 없었다. 정말 필요해서가 아니라 방송 속 편집된 이미지가 만들어낸 오해로 위로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씁쓸했다. 도움을 받는 일이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을 받는 것이 조심스럽다. 감사함과 미안함, 그리고 자존심 사이에서 내 마음도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방송이 나간 지 1년 5개월이 지난 후, 제작진이 아내에게 전화를 했고 아이들 책과 옷을 보내주신 분들도 계셨다. 아마도 재방송을 보신 모양이다. 그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마음을 전해주는 분들이 있다.  그리고… 어머니와 누님은 보지 못하시겠지 하고 그동안 간과했었다. 하지만 “채널 돌리다가 봤다”는 어머니와 누님의 말에, 끝내 알리지 않으려 했던 생각은 무너지고 말았다. 부끄럽고, 죄송할 따름이었다. 나 하나 마음이 아프면 될일인데, 괜히 어머니와 누님 마음까지 아프게 하며 상황을 이어가야 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그 순간 마음 가득 밀려왔다. 그해 봄, 우리는 카메라 앞에 섰지만, 정작 가장 많은 것을 보고 느낀 건 방송이 끝난 뒤였다.
2023-03-21(화) 공황발작 새벽 1시 35분경, 갑작스레 공황발작으로 잠에서 깼다. 꿈속에서 ‘금쪽같은 내 새끼’ 촬영 중이던 장면이 떠올랐다. 아내가 내 흰머리를 보며 훌쩍이던 순간, 나는 조용히 "부부는 함께 늙어가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 말이 꿈속에서 되풀이되며 갑자기 ‘시간이 이렇게나 빠르게 흘렀구나’라는 현실이 몰려왔다. 그저 한순간이었지만 그 순간, 숨이 막혔다. 언젠가 나도 거동이 불편해지고 몸보다 마음이 더 무거워질 그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이 온몸을 짓눌렀다. 그때 나는 어디로 나가 환기를 해야 하나, 심리적으로 무너질 때 잠시 도망갈 장소는 있을까, 그 모든 것들이 막막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복잡하고 깊은 감정을 함께 나눌 배우자가 지금 곁에 없다는 사실이, 이 세상의 어떤 풍경보다도 더 깊은 슬픔으로 나를 덮쳤다. 그렇게 몸은 이불 속에 있었지만 마음은 한참을 헤매고 있었다.
2023-03-25(토) 빨간펜  회사 거래처 분의 아내가 '금쪽같은 내 새끼' 방송을 보고 도움을 주고 싶다며 아내의 연락처를 문의해 왔고, 우리가족을 위한일이기에 나는 별다른 망설임 없이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땐 선의로 받아들였고, 그렇게 작은 연결 하나가 힘이 되기를 바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판단이 섣부르고, 너무 가벼웠음을 깨달았다. 내가 전해준 그 연결이 결국 아내를 '빨간펜'에 빠지게 했고, 이후 그 선택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우리의 삶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도움이란 이름으로 아내에게 넘긴 정보는 내가 지켜야 할 경계를 허물어버린 일이었고,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건 결국 나 자신이었다.
2023-03-28(화) 힘든 아내 밤 9시 20분경. 아내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마는… 살아서 숨 쉬는 것도 힘들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서 아내에대한 피곤함과 답답함이 동시에 치밀어 올랐다. 아내는 원하던 대로 방송도 나갔고, 원하던 대로 생활비도 인계받았다. 아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최소한의 기반을 마련해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내는 힘들다고 말한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다니. 그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책임 회피처럼 들렸다. 결혼 후 지금까지 살림은 대부분 내가 감당했고, 퇴근 후 육아도 내가 도맡았고, 돈 버는 건 여전히 내 몫이었다. 그리고 아이들 등교 등원하면 아내는 하고싶은 것들 하고 다니는데... 내가 그렇게 지탱하고 있는데 왜 자기는 숨 쉬는 것조차 힘들다고만 말하는 걸까. 그러면 나는 뭘까? 아내와 비교했을때 나는 어떻게 숨 쉬고 있는 걸까? 원하는 걸 다 가졌으면서도 왜 여전히 불만이고, 왜 여전히 힘들다는 말만 반복하는 걸까. 아이들에게 그런 말까지 해야 했을까. 그건 정말 이기적인 짓 아닌가. 이젠 아내의 이런 말과 모습들이 지친다. 아내에게 그런 모습들이 날 힘들다고 말해도 아내는 공감도, 위로도 없이 다 내 탓인냥 자기가 더 힘들다며 짜증을 낸다. 아내가 원하는대로 해주어도 남겨지는 건 현실에 대한 굳어가는 원망뿐이다.
2023-04-01(토) 빨간펜 첫 방문 아내의 요청으로 오후 1시,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처음으로 빨간펜 센터를 방문했다. 거래처 분의 아내는 마치 좋은 기회를 주는 것처럼 말했다. ‘아이캔두슬림’이라는 상품이었고, 세 아이 모두를 위한 구성이 36개월 약정에, 월 25만원이라고 했다. 꽤 부담되는 금액이었다. 거래처 아내분은 사전에 아내를 통해 들은 듯 그 금액을 생활비와는 별도로 나에게 부담하라고 했다. 나는 분명히 말했다. “정해진 생활비 외에 추가로 쓰는 건 곤란하다.”고 그렇게 수십분을 대치를 했다. 이후 아내는, 결국 그 상품을 생활비 안에 포함시켜 36개월 할부로 결제했다. 이미 마음을 정한 뒤였던 걸까. 아니면, 그저 설득에 넘어간 걸까. 나는 그날 이후로 계속 마음 한구석이 답답했다. 과거에 아내는 내가 출근하는 토요일이면 아이들과 집에 있는시간을 힘들어했다. 빨간펜에 가입한 후 부터 아내는 토요일마다 아이들과 집에 있는 게 스트레스라며 빨간펜에 자주 갔다. 이후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도 벅차다 하니 결국 나도 몇 번, 퇴근 후 그곳을 찾았다. 빨간펜 센터에서 나와 아내에게 아이들이 이럴 땐 이렇게 지도해보라고, 이건 해도 되는 행동이고, 저건 안 되는 거야 하나하나 일러주었다. 
2023-04-07(금) 아내가 이혼서류 가져오라고 했다. 저녁 9시 11분, 아내가 갑자기 이혼서류를 가져오라고 했다. 이혼이야기를 꺼낸 아내와 싸우기 싫어 나는 집을 나서려 했지만, 아내가 아이들에게 “아빠 못 나가게 말리자”고 했다. 아이들이 아빠를 붙잡고 말리는 모습을 보니, 결국 나는 집을 나가지 못했다. 아이들이 잠들고 난 후, 고요한 밤 11시 30분경 나는 다시 집을 나와 회사로 향했다. 아내가 요구한 이혼서류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나는 하루 일과와는 또 다른, 견딜 수 없는 무게를 안고 서류를 챙겼다. 그리고 회사에서 잠시나마 몸을 누였다. 아내가 원하는대로 해줬는데도 아내는 현실을 만족하지 않았다.
2023-04-08(토) 빨간펜 방문 아내는 혼자 아이들을 돌보기가 힘들다며 오전 10시 30분경 아내와 아이들이 빨간펜에 갔다. 오후 2시 30분경에는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처가에서 시간을 보냈다. 
2023-04-09(일) 이혼서류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09:14 아내가 문자로 “돌아오세요. 이혼하자는 말은 안 할게요. 앞으로 제가 한 말 들 주어 담을 수 없는 건 하지 않을 테니까요.”라며 집에 들어오라고 했지만, 그 말조차 쉽게 믿기 어려웠다. 지금은 이혼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나중에 또 다시 이혼 이야기를 꺼낼 것임을 알기에, 그리고 아내가 평상시와 다른 말을 하는걸 보면 아마도 장모님에게서 무언가를 들은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저 무거운 마음으로 이혼서류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12:30경 아내와 아이들이 교회에서 돌아와 집에 도착했고, 나는 앞으로 다시는 이혼 이야기가 나오지 않길 바라며 조심스레 이혼서류를 아내에게 건넸다. 
2023-04-24(월) 빨간펜에서 보내준 책장 19:30경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9평 남짓한 집안에 전에 없던 큰책장이 놓여 있었다. 아내에게 물으니 빨간펜에서 보내준 것이라 했다. 작은 배려였지만, 이런 변화들이 아이들과 가족을 위해 조금씩 쌓여가길 바라는 마음에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한편으론 고마우면서도, 이 상황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알 수 없어 무거운 마음도 함께 들었다.
2023-04-25(화) 아이캔두슬림 19:30경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어제 놓여 있던 책장에 빨간펜 책 500권정도가 가득 꽂혀 있었다. 아내가 결제한 아이캔두슬림 상품이 갤럭시탭 3대가 아이들 손에 쥐어져 있었다. 아이들이 열심히 화면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교육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이런 물질적인 것들이 진짜 가족의 행복을 채워줄지 의문이 들며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다. 
2023-04-26(수) 빨간펜에서 보내준 CD플레이어 19:30경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니, 빨간펜에서 보낸 CD플레이어가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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