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기름이 식초 자리에 가 있는 걸 보는 순간 속이 확 끓었어
물건은 다 제자리가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임
수건은 수건끼리 그릇은 크기별로
수십년을 그렇게 살았어
그래야 누가 뭐 찾을때 헤매지 않잖아
근데 식구들은 그 질서를 영 못 견뎌해
어제 저녁에도 그랬어
애가 부엌에서 뭘 만들어 먹었나봐
설거지 마치고 부엌 들어가니까 양념통이 죄다 흐트러져 있더라
참기름이 식초 칸에 들어가 있고
식초는 또 엉뚱한 데 나와 있고
그거 보고 한마디 했지
쓴 자리에 도로 놓는게 그렇게 어렵냐고
그랬더니 애가 길게 한숨을 쉬어
그러더니 엄마는 너무 유난이라는거야
유난;;
그 말 듣고 손에 들고 있던 행주를 식탁에 탁 내려놨어
내가 칸칸이 라벨 붙여가며 정리해놓은 덕에
식구들이 뭐 어딨냐 헤맬 일 없이 사는거잖아
막상 물건 안 보이면 그땐 또 엄마 그거 어딨어 어딨어 하고 부엌으로 달려올거면서
정작 정리하는 사람만 예민하고 별난 사람이 됨
남편은 옆에서 또 허허 웃기만 해
나는 그 웃음이 제일 얄미워
자기는 손 하나 안 보태면서 분위기만 풀려고 웃는거
편하게 사는 사람은 늘 정리하는 사람 등 뒤에 있는거더라
그래놓고 그 사람들이 정리하는 사람보고 별나다 해
섭섭해 진짜
나잇살 먹어서 이런 사소한걸로 서운해하는 내가 우스운가 싶기도 하고 ㅋㅋ
근데 또 부엌 서랍 열었다가 뒤죽박죽인거 보면 손이 먼저 가
천성이 그런걸 나더러 어쩌라고
오늘은 그래서 작정하고 아무것도 안 치웠어
양념통 흐트러진 거 그대로 두고 방으로 들어왔어
며칠 이러고 버텨볼 생각이야
그래야 이 집에서 누가 아쉬운 사람인지 다들 알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