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22(화) 내집장만
과거 나의 전공은 인테리어였다. 처음엔 건축을 배우다가, 인테리어가 더 실용적일 것 같아 전향했었다. 결과적으로는 현재 내가 하는 일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결혼 후 새 보금자리를 꾸미면서, 공간을 구획하고 가구를 배치하는 일들을 하나하나 해나가며 문득 깨달았다. '아, 그때 배워둔 것들이 헛되지 않았구나.' 삶이란 참 묘한 것이어서, 필요 없다고 여겼던 것들이 정작 필요한 순간에 빛을 발하곤 한다.
오전 11시 20분경, 부동산에서 매도인과 법무사를 만났다. 잔금을 치르고 소유권 이전 서류를 준비했다. 그리고 전 집주인은 이사를 갔다. 이제부터 여기는 내 집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우리 가족의 소중한 보금자리가 될 곳이다. 그 무게감이 어깨를 짓눌렀지만, 동시에 뿌듯함도 밀려왔다.
평소 알고 지낸 도배 업체 사장님이 방문해 견적을 내고, 직접 업체에 가서 벽지를 고르는 일까지. 하나하나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소중한 과정이었다.
오후 5시경, 이사할 집에 도착해 도면 작업을 위한 실측을 하고 있었다. 줄자를 들고 벽면을 재고, 메모해가며 집중하던 그때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애들이 말을 안 들어", "뭐가 먹고 싶다고 하는데" 아내가 아이들을 컨트롤 못하는 이야기를 하소연하고 있었다.
평소같았으면 퇴근해 저녁을 먹고 저녁7시30분에 집에 도착해 아이들과 놀고 있을 시간이지만 그 빈자리에 아내는 아이들을 어떻게 컨트롤 할지 모르고 전화로 하소연 했다. 처음 몇 번은 그저 들어주기만 했지만 그날은 "급한 일도 아닌데 전화하지 말고, 바깥일에 집중할 수 있게 배려 좀 해줘. 당신이 계속 연락하면 빨리 끝내고 가려고 하는데, 일의 흐름이 끊어져서 화가 나고 집중을 못하겠어" 돌이켜보면 나도 예민해져 있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동분서주하며 움직인 하루였다. 당연히 아내는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없다. 항상 자기 힘든 것만 생각하며, 자기 이야기를 듣고 공감만을 바라기 때문이다.
다행히 막차를 놓치지 않고 밤 10시 30분에 집에 도착했다. 그제야 배가 고프다는 걸 깨달았다. 아, 저녁을 먹지 않았구나. 냉장고를 열어 먹을 만한 것을 찾다가 빵을 발견했다. 그것을 들고 창고방으로 가서 조용히 배를 채우려 했는데, 빵을 꺼낼 때 나는 비닐 소리에 아내가 잠에서 깨었나보다. "뭐 하는 소리야, 잠이 깨잖아!" 피곤에 지친 아내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묻어 있었다. 나 역시 하루 종일 뛰어다닌 피로감에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빵을 먹으며 생각했다. 새 집을 장만한 기쁨도 잠깐, 일상은 여전히 우리를 시험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삶의 한 부분이리라.
2023-08-27(일) 바늘과 실
저녁8시경 아이들이 바늘과 실이 필요하다고 해서 아내가 그것들을 꺼내 아이들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아내는 곧 핸드폰에 빠져 있었다.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이들이 위험하지 않냐?”고 물었지만, 아내는 괜찮다고만 말했다.
내 생각은 달랐다. 바늘은 아이들에게 분명 위험한 물건이다. 아이들이 바늘을 달라고 했을 때, 위험하니까 안 된다고 말하거나, 바늘을 줬다면 부모가 옆에서 안전하게 사용하는지 지켜봐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아내는 안전 관리도 하지 않고, 아이들이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을 그냥 두고 있었다. 이 순간에도 아내와 나는 생각이 너무 달랐고, 그 간극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아 씁쓸하고 답답했다.
2023-08-28(월) 이사 시간 문의와 갈등
남편 : 이삿날 이사 시작 시간은 언제로 해?
아내 : 제일 빠른 시간
남편 : 애들 학교와 어린이집은 언제감?
아내 : 9월 8일날 이사 한다고 했어 그럼 그 날짜로 가는거 아니야?
남편 : 내 질문은 시간이라고 말했잖아 날짜가 아니라
아내 : 셋째는 어린이집 여기서 가고, 첫째 둘째는 주민센터 신고해서 아님 그전날에 취학통지서 받아서 9월 8일날 입학 시간에 맞춰서 가야지
남편 : 9월8일 애들 학교와 어린이집은 몇시에감? 그걸알아야 이사짐센터 시간을 잡지
아내 : 애들있을때 이사해도 괜찮아 이삿날 셋째를 당신이 등원 시켜줘 그리고 이런 걸을 평소에 의논하면 안되냐?
남편 : 그래서 지금 의논 하잖아
아내 : 요점만 말하지말고 정확하게 말하면 되는거아니냐?
남편 : 이사짐센터가 몇시에 오는게 좋냐고 정확하게 말했잖아
아내 : 화내지 마, 카톡말고 전화를 해줘야지
남편 : 이사짐센터가 몇시에 들어오는게 좋냐고 물어본게 전화까지 필요한 이야기야?
아내 : 답이 이상하면 전화하면 되는거 아니냐, 그리고 애들있어도 이사할 수 있어
남편 : 이삿날 애들있으면 이사가 되냐 다치기나하지 내가 이상한거야?
아내 : 그래서 이야기 했잖아
남편 : 당신이 잘못한건 생각안하고 이핑계 저핑계 되지마
아내 : 핑계 안됐어
남편 : 애들있어도 이사된다는게 핑계아니고 뭐야
아내는 자기가 잘 못 이해한걸(시간을 물어 봤는데 날짜로 인지)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있어도 이사 가능하다고 우기고, 자기 기준으로만 생각해 이삿날 현장에 남아 지켜볼 사람(남편)을 셋째 등원 시키라고 말하고, 평소에 의논하자고 핑계를 된다. 카톡으로 이야기하면 전화로 하라고 하고, 핑계 되지말라고 하면 핑계 아니라고 우긴다.
아내와의 대화는 거의 이런 식이다. 서로의 생각 차이가 커서 마음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아내를 존중해 의견을 먼저 물었고 아내는 자기가 듣고 싶은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이사 준비조차 이렇게 꼬이고 싸워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허무하고 안타까웠다. 함께 살 집을 마련하는 기쁨보다 서로에게 쌓이는 피로감이 더 크게 느껴져 가슴 한켠이 무겁고 먹먹했다.
2023-09-08(금) 이삿날
이사 두 달 전쯤 아내에게 이사 전에 해야 할 일들을 2~3일간 검색하고 정리해서 전달했다. 이는 아내는 자기가 하고 싶은거외에는 무엇을 해야할지 신경도 안쓰는 사람이라 걸 알기에 미리 알려주었다. 아내의 금융사 주소 변경, 택배 주소 변경, 우편물 주소 변경 등도 있었고, 아이들 전학과 어린이집 관련 절차도 미리 처리하라고 신신당부했다.
08:10경, 이삿짐 센터가 도착하고 인부들이 작업을 시작하자, 작업자분이 아이들에게 “얼른 학교 가야지”라고 말했다. 그제야 아내는 첫째와 둘째를 등교시키고, 셋째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기 위해 허둥대며 집을 나섰다.
얼마 뒤 돌아온 아내는 “이제 나 뭐 해야 해?”라고 물었다. 답답한 마음으로 아이들 전학은 처리했는지 묻자, 아내는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학교에서는 매매계약서와 내 도장을 요구했다. 계약서는 마침 가방에 있었지만, 도장은 이사 짐 속에 있어 금방 찾기 힘들었다. 그러자 아내는 “당신 때문에 전학을 못 한다”며 내 탓으로 돌렸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아내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아내에게 도장집을 찾아서 새로 도장을 만들라고 이야기했다. 그제야 아내는 그 문제를 해결하러 갔고, 이제서야 이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
13:16경, 아내가 재직증명서와 건강보험 자격득실 확인서를 보내달라고 연락했다. 이사 전에 미리 준비해둘 수 있는 것들인데도, 왜 꼭 이런 날에야 요구하는지 답답함과 서운함이 밀려왔다.
18:30경, 이삿짐 센터가 떠난 뒤 처가(이사 온 같은 단지)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장모님과 처남 앞에서 오늘있었던 일들을 털어놨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시큰둥한 반응을 받았다. "아차 이곳은 아내가 자란 처가지"란 생각에 내가 경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삿날이 되어야 겨우 아이들 전학 문제를 처리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얼마나 미리 준비하고 신경 썼는지 무색해졌다. 아이들 전학 못가는게 내 탓이 되는 상황에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컸다. 이 집이 우리 가족의 새 출발점이어야 하는데, 마음 한켠에선 무거운 짐만 더해졌다.
2023-09-09(토) 집수리 중 찾아온 아내
새벽 01:30경, 이사한 집에서 집수리를 하고 있던 나를 눈에 살기를띄우고 아내가 찾아왔다. 아내는 “엄마가 자기랑 살지 말래. 너는 저렇게 무시당하면서 어떻게 사냐”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나 때문에 잠이 안 와서 여기 왔으며, 자기가족 앞에서 자신을 무시했다고 하면서 눈이 뒤집힌 채 나에게 화를 냈다.
처가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은 내 경솔한 짓이지만, 하지만 아내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무시당했다’는 감정만을 붙잡고, 새벽에 일하고 있는 나에게 화를 냈다.
나는 힘들고 지친 상태였고 아내와 말다툼이라도 시작되면 일이 더 커질 것 같아, 여러 번 “가서 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내는 한동안 아무말 없이 일하고 있는 나를 증오의 눈빛으로 따라다녔다.
아내는 장모님의 거울이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는데 그 점을 잊고 경솔한 말을 했다는게 다시금 후회가 됐다. 새벽의 적막 속에서, 그 사실이 다시금 마음 깊이 파고들었다. 그날 밤의 무게는 집수리의 먼지보다 더 짙고 무거웠다.
2023-09월 어느날, 막내의 어린이집
이사를 약 3개월정도 앞두고 나는 새 집으로 옮긴 뒤의 통학 거리 문제를 염두에 두고, 아이들의 전학에 대해 아내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아내는 첫째와 둘째는 새 학교로 전학을 시키기로 결정했고, 막내는 지금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을 졸업할 때까지 그대로 다니게 하겠다고 말했다. 한학기가 남았고, 익숙한 환경에서 마무리 짓게 하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그동안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 하는 아내를 위해 “막내도 집 근처 어린이집으로 옮기면 당신이 더 편할 거야.”라고 말했지만 아내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예전부터 먼 거리에서도 차로 아이를 등원하는 부모들을 보며 자신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나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아내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그만한 생각이 있겠거니 싶었고, 그 결정을 존중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이사를 마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아내는 입장을 바꿨다. 현실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걸까. 결국 막내도 이사한 집 근처의 어린이집으로 옮기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내는 예전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께 들은 말을 전해주었다. “깊이 생각하고 결정했는데, 이것 하나 지키지 못하네요.” 그 말을 들으며 나도 아내의 판단에 다시금 의문을 품게 되었다. 과연 그때 정말 ‘깊이’ 생각했던 걸까. 혹은 단지 ‘그때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었던 걸까. 나는 그동안 그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이 우리 아이들을 잘 살피고, 아내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었던 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말에는 단순한 서운함 이상으로, 진심 어린 아쉬움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아내의 선택을 이해하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단호했던 결정이 일관성 없이 쉽게 바뀌는 모습을 볼 때면, 나로선 어떤 결정을 믿고 따라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그 선택을 믿고 묵묵히 따라간 내가 오히려 허탈감을 느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처음부터 굳이 말릴 필요도 없이,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 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2023-09-13(수) 냄비 태움
19:40경, 퇴근 후 집에 들어서자 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내가 딴짓을 하느라 냄비를 태운 것이다. 더 안타까운 건, 탄 냄비에 과탄산소다를 넣고 또다시 딴짓을 하다가 냄비를 또 태웠다는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내가 빨래건조대를 거실 창문 유리에 기대 놓자 “유리가 깨질 것 같다”고 말했더니, 방충망에 기대 놓았다. 방충망이 찢어질 수도 있다고 하자 이번에는 벽에 기대 놓았다.
아내는 다음 일을 미리 생각하지 못하는 걸까? 보통 어른들은 이렇게까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데, 모르는 아이들도 아니고… 답답한 마음이 컸다.
2023-09-14 아내의 생필품 관리
과도하게 구매한 보리차와 헤모힘
생활비 관리를 아내가 담당하게된 이후 아내는 충동적으로 지출하는 일이 잦아졌다. 다행히 생활비 내에서만 지출했기에 문제 삼지는 않았다. 새집으로 이사한 후 욕실에 욕실화가 3개나 있고 칫솔도 수십 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또 다른 칫솔을 수십 개나 구매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구매도 많았다. 보리차를 몇 년 치나 될 만큼 대량으로 구매하는 등 내 기준으로는 납득하기 힘든 행동들이었다. 아내를 통해 들은 이야기지만, 오죽했으면 처남도 누나에게 ‘막 산다’고 말할 정도였다.
비용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필요한 만큼 사야 맞지 않나. 하지만 아내는 배송비 무료라거나 많이 사야 저렴하다는 생각에 충동적으로 물건을 사들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쓸모 없는 물품들은 쌓여만 갔고, 넓은 집으로 오니 공간이 많아 정리는커녕 더더욱 물건들이 쌓이기만 했다. 심지어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도 무심히 방치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답답하고 이해되지 않았다.
아내의 하루치 영양제
못 먹고 버려지는 영양제
2023-09-18(월) 아내의 핑계 패턴과 남 탓하기
말로 요청하니 “써서 달라”고 하고, 써서 주면 “정리해서 달라”고 요구한다. 정리해서 주면 이번엔 “인쇄해서 달라”고 말한다. 끝없이 바뀌는 요구에 답답함이 쌓인다.
강조해서 말하면 “큰 소리로 말하지 말라”고 하고, 답답해서 강조해서 말하면 “화내지 말고 말하라”고 한다. 그런데 큰 소리도 내지 않고, 화도 내지 않고 조용히 말하면 이번엔 표정이 화나 있고, 같이 있으면 우울하다고 말한다.
이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나는 점점 지친다. 도대체 어떤 태도를 원하고, 어떻게 해야 맞는 건지 알 수 없어 괴롭다. 아내의 말과 행동 사이에서 나는 늘 실패자처럼 느껴지고, 그 무게에 숨이 막힌다.
2023-09-21(목) 후라이팬 태움
아침 출근 전, 아내가 계란 후라이를 하다가 또 후라이팬을 태웠다. 이번에도 집중하지 않고 딴짓을 하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같은 일이 반복될 때마다 걱정과 답답함이 커져만 간다. 핸드폰에 빠져서 신경 쓰지 못하는 모습에 마음 한켠이 무겁다.
2023-10월의 어느날, 옷방과 책방
2023년 03월경 집보러 다닐때 주로 방3개짜리 아파트를 보고 다녔다. 막상 매수 할려는 시점에서 막내 생각에 조금 더 무리해서라도 방 4개짜리를 매수했다. 아내에게도 그 부분을 이야기 했었다. 그리고 9월 이삿날, 아이들 각방에 책상과 책장 그리고 의자를 각각 배치했다.
2023년 10월의 어느 날, 우리는 새 아파트로 이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방 네 개는 아이들 방 3개와 부부침실 1개로 용도가 정해졌다. 아내는 말했다. “하나는 옷방으로, 하나는 책방으로 꾸며줘.” 아내의 말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 방들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쓰이는 게 당연하다는 듯, 이미 정해진 듯한 어조였다. 아이들이 셋이나 되는 우리 가족에게, 방 하나하나는 각자의 소중한 공간이었다. 아이들 각각에게 방을 하나씩 줄 수도 있었고, 놀이방이나 가족이 함께 쓰는 공간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들의 공간보다 자신의 필요를 먼저 고려했다.
물론, 옷방이나 책방이 꼭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 모두가 함께 사는 집이라면, 각자의 방이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그 날 이후로도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집은 정말 가족 모두의 공간일까, 아니면 어느 한 사람의 공간일 뿐일까.’ 단지 벽과 문으로 나뉜 방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마음까지 나뉜 건 아닌지 문득 서글퍼졌다.
2023-10-05(목) 둘째와 아내의 언쟁
아침, 둘째가 아내에게 "(밥에 다가) 김도 못 싸는 주제"라고 말하자, 아내는 곧바로 둘째에게 "씨발년아"라는 욕설로 대응했다.
그 순간, 만약 내가 둘째를 혼냈다면 아내는 오히려 나에게 화를 돌릴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상황을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속으로는 씁쓸함과 답답함이 밀려왔다.
2023-10-08(일) 차사고와 냄새나는 삼겹살
이사 후, 아내는 처가 차로 처남에게 운전연수를 받았다고 했다. 오늘은 아버지 생신이어서 본가에 가기로 했고, 아내의 요청으로 아내가 직접 운전해 우리 가족을 데리고 출발했다. 가는 길에 엉뚱한 길로 틀기도 하고, 나무에 백미러를 긁는 작은 사고도 있었지만, 그 외에는 큰 문제 없이 본가까지 도착했고 주차할때 10여분 정도 걸린거는 문제도 아니였다.
아버지와 점심을 마친 뒤, 다시 집 근처까지 무사히 돌아왔다. 아내가 차를 정차했고, 나는 아이들을 먼저 내려준 뒤 뒷좌석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차가 앞으로 밀리더니, 뒷바퀴가 그대로 내 발등을 올라탔다. 아내는 차에 충격이 있다는 것은 느낀 듯했지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한 채 멈춰 서 있었다.
나는 발등이 짓눌린 채 “차 바퀴가 발 밟고 있어”라고 말했고, 아내는 “어떻게 해야 해?”라고 되묻기만 했다. 통증을 참으며 “앞으로든 뒤로든, 아무 데로나 빼”라고 말한 끝에 차가 움직였고, 겨우 발을 빼낼 수 있었다. 그냥 지나가기만 했다면 덜 아팠겠지만, 몇 초를 더 눌려 있던 탓에 통증은 오래 이어졌다.
그날 저녁, 아내가 삼겹살을 내놓았다. 그런데 고기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 언제 구운 건지, 혹은 냉장고에 오래 두었다가 데운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냄새가 좋지 않았다. 결국 먹지 못했다. 이럴때면 아내는 나에게 입맛이 까다롭다며 자기 합리화를 시켰다.
이런 일은 결혼 초부터 반복돼 왔다. 아내가 내놓는 음식이 ‘며칠 지난 것을 데운 것인지’,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것인지’를 늘 냄새로 확인해야 했다. 아내는 늘 “냉장고에 있으면 괜찮은 거야”라고 말했지만, 나는 음식 때문에 아프지 않기 위해 스스로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의 통증과 그날의 냄새는, 어쩌면 우리 관계의 오래된 문제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신호였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