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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아저씨(3) - "상미야, 나 외롭다."

아르거스 |2004.03.29 22:57
조회 878 |추천 0

"여보세요?"

"나쁜 지즈배, 신랑이 그렇게 좋으냐? 전화도 한 통 없고.."

"이 지즈배가.. 그래 너무 좋아 죽겠다. 근데 어떻게 이 시간에 전화했어? 지금 학원 있을 시간 아니야?"

"어, 학원 수업 좀 줄였어."

"왜? 돈 많이 벌어서 나이 들어서 배낭여행 간다면서? "

"배낭여행? 좋지.."

"그런데 무슨 일 있어? 목소리가 별로네."

"니가 보고 싶어서 그런다 . 왜?"

"지즈배, 놀고 있네. 아저씨면 몰라도 왜 내가 보고 싶냐?"

수영은 상우에게 고백을 하고 나서 상미에게 좋아한다고 말했다고 얘기했다. 처음엔 놀라던 상미도

그랬던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왜, 아저씨가 안 놀아줘?"

"지즈배, 오랫만에 전화했더니 시비거네."

"그럼, 시비 안 걸게 생겼냐, 저번에 너가 아저씨 좋아했다고 그리고 좋아한다고 얘기했을 땐 너무 놀라고 정신이 없어서 '그랬구나. 그래서 그랬구나.'만 연발했지만 전화 끊고 곰곰 생각했더니 너가 너무 꽤씸하더라.. 어떻게 나도 그렇게 속일 수 있냐.."

"내가 몰랐다고 얘기했잖아. 내가 좋아하는지 좋아해도 되는지 몰랐다구.. 지즈배.. 무슨 베스트프렌드가 이러냐? 그냥 무조건적으로 믿어주고 밀어줘야지.."

"누가 안 밀어준대? 안 믿어주구? 그냥 조금 섭섭했단 말이지. 진작 말해주지 않아서.. 근데 너 무슨 용기가 나서 갑자기 좋아한다고 고백했냐? 만약 부담스럽다고 하면 어쩌려고?"

"그냥, 시간이 얼마 없는것 같아서.."

"시간? 왜? 병원에 갔더니 죽을 병에라도 걸렸다든? 아님, 우리 몰래 아저씨가 장가라도 가신다든? 야, 누가 마흔이 넘은 그 나이에 시집을 오겠냐? 너니까 그렇게 일편단심 바라보지?"

"아저씨가 어때서? 그만하면 멋있지?"

"그래 내가 잘못했다. 콩깍지 씐 지즈배한테 무슨 소릴하겠냐? 근데 너 술마셨니?"

"야, 너 귀신이다. 너한테 술냄새가 나냐?"

"그래, 전화선을 타고 술냄새가 진동을 한다. 근데 웬 낮술? 아직 해도 안 떨어졌잖아."

"어, 아저씨랑 점심 먹었다."

"뭐, 둘이서? 음, 이 배신감 나를 빼고 먹었단 말이지?"

"그럼 너보고 안양까지 오라고 하냐? 차비가 더 나온다고 한소리 할거였으면서.."

"둘이서 수원으로 왔으면 되잖아.. 나쁜 지즈배.."

"미안해."

"아냐, 농담이야. 지즈배 소심하긴.. 근데 아저씨랑 점심 먹었으면 기분이 좋아야지. 왜 그리 힘이 없어? 그리고 웬 낮술? 왜, 아저씨가 뭐라고 하시디? 너가 부담스러우시데?"

"지즈배, 술 넘어가겠다. 아냐, 별 말씀 없으셨어. 점심 먹고 커피 마시러 갔는데 칵테일이 되더라구. 키스 오브화이어가 있어서 시켰지."

"키스 오브 뭐?"

"지즈배, 키스 오브 화이어"

"키스 오브 화이어? 아, 그거.."

"너도 기억하는구나."

"그럼 어떻게 그걸 잊겠냐? 야, 근데 벌써 10년이나 지났다. 너 우리집으로 와라. 학원 수업도 없다면서? 혼자 청승맞게 밥 먹지 말고 와, 내가 저녁 해 줄게. "

"은환씨 있잖아."

"지즈배. 하여튼.. 오늘 야근이래. 어쩜 아침에 온대. 그리고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지즈배 내외하긴.. 얼른 와.. 내가 맛있는 거 해준다니까."

"알았어."

수영은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를 빼서 수원으로 달렸다. 아직 퇴근시간이 안 되어서 그런지 30분도 채 안되어서 상미네 아파트에 도착했다.

'오랫만에 가는 친구집에 빈 손은 그렇지.'

수영은 아파트 앞 꽃집에서 작은 소품 화분 몇 개와 후리지아를 조금 샀다.

'딩동.'

"수영이냐?"

"어."

"얼른 들어와. 내 너 온다고 하길래 빈 손 아닐지 알았다. 그 놈의 후리지아는 아직도 들고 다니냐?"

"그럼 그냥 가지고 간다."

"야, 소심 lee.. 어이구 삐지긴.. 빨리 시집을 보내던지 해야지. 그래야 안 삐질까?"

"야, 맛있는 냄새 난다. 음, 이건 된장찌개. 그리고 이건 .. 뭐지?"

"너 보리밥 먹고 싶었지? 열무김치 넣고 쓱쓱 비벼서..."

"와, 맛있겠다. 우리 양푼에다 넣고 비벼 먹자."

"좋지."

둘은 양푼에다 적당히 맛이 든 열무김치에 감자조림, 콩나물을 넣고 고추장에 쓱쓱 비볐다.

"야, 너 이렇게 먹는거 너네 은환씨도 아냐?"

"그럼, 친정 가면 자주 이렇게 먹거든. 그랬더니 가끔 해달라고 해. 그래서 이 양푼도 샀잖아."

"재밌게 사는구나. "

"그런대로."

"근데 너 생각나냐? 왜, 너희집에서 우리 둘이 양푼에다 밥 비벼먹고 있을 때 아저씨가 들어와서 놀란 눈으로 쳐다본거.."

"그래, 아저씨가 두고 두고 그 얘기 했잖아. 사실 별로 많이도 아니었는데.."

"퇴근해서 들어왔더니 웬 애들 둘이서 양푼 가득 밥을 비벼서 먹다가 쳐다봤다고. 밥 양이 장난이 아니었다고 두고 두고 놀렸잖아."

"하하. 그랬지. 그리고 우리가 그랬다나? 갓 상경한 사투리가 안 벗어진 말투로 '좀 드실래요?' 그랬다고 그게 너무 웃겨서 웃음 참느라 애먹었다고.."

"넌 별걸 다 기억한다."

"나이가 드니까 옛 추억들이 새록새록 .. 그립다."

"그래 나이 퍽도 많이 들었다."

"근데 후식은 커피와 캔맥주가 있는데.."

"차 가져왔어."

"술 깨고 가면 되지? 그리고 자고 가면 안 되냐?"

"너랑 자다 너의 신랑이 와서 보고 놀라겠다. 내가 넌줄 알고 꼭 껴안으면 어쩌라구?"

"잘 논다.. 에구.. 언제 철들냐?"

"내일 일도 있고 가야지."

"그럼 한 잔만 해라. 아님 둘이서 하나 가지고 나눠 마실까?"

"그래, 그러자."

 

"근데 수영아? 너 무슨 고민있냐?"

"아니, 왜."

"안 본 사이 살이 많이 빠진거 같아서.."

"고민은 무슨? 아저씨도 그러더라. 고민 있냐고.. 늙나보지.."

"늙는다고 빠지면? 난 결혼하고 한 달 사이 2키로나 쪘다."

"은환씨가 잘 해 주니까 그렇지.. 너희 잘 어울려."

"연애 그렇게 오래 했는데도 가끔 모르던 모습이 보인다. 한 5년 살아보면 적응이 되겠지."

 

맥주를 마시고 가만히 앉아있던 수영이가 말을 꺼냈다.

"상미야, 나 외롭다."

"혼자 지내기 외롭지? 너 혼자 살지 꽤 오래 되었구나. 10년이 다 되었네."

"그래. 근데 요즈음 부쩍 외롭다. 부모님 생각도 많이 나고.."

"한 번 찾아가 봐."

"찾아가면 뭐 하니? 안아주지도 못 하시는데.. 이렇게 외롭게 두실거면 형제라도 많이 두시지? 달랑 나 혼자 두시고 가시냐?"

"엄마가 너 가끔 들르래. 와서 김치도 가져가고..."

"어머니도 찾아뵈야 하는데.. 나 살기 바쁘다고 그러지도 못한다."

"나 이번 주말 갈건데.. 같이 갈래."

"봐서.."

"봐. 또 이렇게 뒤로 뺀다. 그러니까 너가 친구가 없지."

"너 있잖아."

"야, 내가 어디 이민이라도 가면 너 어떻게 지낼려고?"

"따라가지.. 히히.. 농담이다."

"...."

"나 취했나보다. 별소릴 다하고.. 조금 있다 일어나야겠다. 아까 마신 키스오브화이어에 취했나봐. 아니 그 칵테일이 가진 추억에 말야."

"그래.."

"너 생각나지? 애인 하나 없이 맞이한 성년의 날.."

"그럼 어떻게 그 날을 잊냐?"

 

그 날은 날씨가 무척이나 좋았다. 성년의 날이라고 아침부터 뉴스에선 어디에서 성년의 날 행사를 하니, 성년의 날 받고 싶은 선물로는 무엇이 있니 하면서 말이 많았다. 갑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서둘러 서울에 올라온 수영에겐 축하해 줄 사람도 마땅히 없었다. 혼자 지내기엔 웬지 무섭고 힘들어서 친구 상미네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상미 어머니는 수영이와 같은 고향분으로 수영이가 혼자인걸 알고 친딸 상미보다 더 챙겨주고 계셨다. 항상 고맙고 미안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편안하진 않았다.

출근하는 수영에게 한집에 세들어 사는 이젠 제법 말도 통하는 옆 방 아저씨가

"상미랑 수영이 오늘 성년의 날이구나. 애인도 없어서 어쩌누?"

"선물 주세요." 상미가 대답 대신 선물을 찾았다.

"선물? 내가 저녁은 사줄수 있지."

"저녁요? 와, 신난다."

셋은 7시에 집근처 황제보쌈에서 만나기로 했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보쌈집에 도착했더니 상미와 상우는 이미 와 있었다.

"뭐야? 늦고.."

"미안, 그래도 서둘러 왔어. "

"얼른 먹어."

동동주와 보쌈을 두고 상미와 상우가 앉아 있었다.

"너도 한 잔 해라. 이제 성년이잖아." 상우가 동동주를 한 잔 권했다.

"감사합니다."

동동주 두 잔에 얼굴이 빨개졌다.

"어, 아줌마한테 혼나겠다. 이제 그만 일어나자."

보쌈집에서 나온 상우는 차 뒷좌석에서 꽃다발 두 개를 꺼냈다.

"원래 애인한테 받아야 하는데 둘 다 아직 애인이 없는 것 같은 관계로 내가 준비했다. 키스는 나중에 애인들 생기면 그 때 받도록..."

"감사합니다. " 수영은 정말 고마웠다.

"아저씨, 그냥 가기 서운한데. 우리 어디가서 한 잔 더 하면 안돼요?" 상미가 말했다.

"한 잔 더?"

"그래요. 한 잔만 더요."

셋은 가까운 술집으로 향했고, 가볍게 칵테일 한 잔씩 하기로 했다. 근데 도통 뭐가 뭔지..

"그럼 난 오늘 보호자니까 쥬스를 마시고, 둘은 키스 오브 화이어를 마셔 봐. 별로 독하지 않은데.."

"그럼 그걸로 할래요. 수영아, 너도 그거 마셔." 상미가 그러자고 했다.

칵테일이 나오자..

"잠깐,,"

상우는 라이터를 찾아서 술잔에 불을 가까이 했더니 갑자기 불이 확 올라왔다 꺼졌다.

"와, 멋있다. 근데 마시기 아깝네요."

"조금만 마셔."

반도 안 마셨는데 정말 취하는거 같았다. 아마도 기분 탓이리라.

정신을 차려야지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더니 상미어머니가

"이게 뭐야?" 하신다.

"죄송합니다. 오늘 성년의 날이라고.."

"어휴.."

 

"나 간다."

"자고 가라니까."

"가 볼게. 다음에 와서 자고 갈게."

"알았어. 자주 연락하고.. 혼자 저녁 먹기 싫음 와. 알았지."

"어, 간다."

 

집으로 돌아온 수영은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웠다. 외로웠다. 울고 싶었다. 그래서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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