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는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용히 폭포수 뒤쪽의 동굴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그들이 사라지기를 동굴 안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만약
그들에게 발각된다면 죽게된다. 뿐만 아니라 천지환까지 그들에게 뺏앗길 테고
그렇게 된다면 막개와의 약속은 모두 허사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는 품에서 천지환을 꺼내보았다. 어두운 동굴 속인데도 천지환은 아름다운
은빛을 발하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순백의 아름다움에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이 작은 환하나가 뭐가 대단하다고 이 난리를 피우는 걸까. 아무리
자세히 보아도 그저 단순한 은팔찌 같은데...이것이 어떻게 세상을 다스린다 말야'
치우는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아무런 문양도 글씨도 없었다. 그저 은색
팔지 일뿐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며 빼앗아야 할 물건이란
말인가.
그가 생각할 때는 사람들이 쓸데없는 일에 목숨을 거는 것 같았다.
그가 천지환을 보면서 고민에 빠져있을 때. 동굴 아래서는 사람들이 막개와 치우를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특별한 흔적을 찾지 못했다.
주위 작은 동굴들이나 바위 등 숨을 곳을 찾아보던 소괴 마불웅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형님! 아무래도 그들은 여기를 벗어난 것 같습니다. 멍청하지 않고서야 이곳에 남아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차라리 빨리 뒤를 쫒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소괴 마불웅의 말에 추괴 나찰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네 말대로 이곳에는 보이지 않는구나. 큰형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백괴 갈마웅은 뒷짐을 지고서 폭포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글세."
갈마웅의 말에 소괴 마불웅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럼...어쩌란거야."
소괴 마불웅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갈마웅이 웃으며 말했다.
"셋째야 조급해하지 말아. 어차피 놈들은 이곳을 떠났어도 멀리 못 간다. 지금은
그들을 잡고 못 잡고가 문제가 아니야."
"예? 무슨 소린지..."
"저들을 보아라."
백괴 갈마웅은 호웅사묘와 그 수하들 그리고 여사랑을 가르키며 계속 말했다.
"지금 우리의 가장 큰 적은 저들이다. 막개는 이미 치명적인 독에 당했다.
그가 지금 살아있든 죽었든 어차피 우리의 상대는 못돼. 하지만 저들은 다르다.
쉬운 상대들이 아니야. 지금은 저들을 경계하여 천지환을 먼저 우리 손에
넣은 것이 중요하다."
백괴 갈마웅의 말에 추괴 나찰과 소괴 마불웅은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자신들의
큰형님은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백괴 갈마웅이 추괴 나찰에게 조용히 말했다.
"둘째야. 폭포수 근처에서부터 흔적을 찾아보아라. 막개는 분명 이곳에 있다.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은근하게 흔적을 찾아서 나에게 보고해라."
"예. 알겠습니다."
추괴 나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람들을 피해 폭포수 쪽으로 갔다.
백괴 갈마웅은 그 모습을 보고 이번에는 소괴 마불웅을 조용히 불렀다.
"셋째야. 넌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라. 폭포수 근처에 있지 못하게
막아라."
"예? 무엇 때문에.."
"나중에 자세히 말해 줄 테니 지금은 내 명령대로 해라."
갈마웅의 말을 들은 마불웅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난처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어..형님. 그런데 저들을 어떻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끕니까?"
갈마웅은 약간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것까지 내가 일러줘야 하겠느냐? 네가 알아서 어떻게 하든 시선을 저 폭포수
근처에서 다른 곳으로 돌려라. 아주 중요한 일이다. 알겠느냐?"
"예..아.알....겠습니다."
마불웅은 약간은 자신없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그는 사람들이 이곳 저곳을 뒤지는 것을 보며 어떻게 저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까 고심했다. 그러나 그는 곧 그 고심을 떨쳐 버릴 수 있었다.
그에게는 행운 같은 일이었지만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귀찮고 힘든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막개의 행적을 찾기 위해 동굴의 이곳 저곳을 뒤지고 있을 때 괴상한
소리가 동굴에 울려퍼졌다.
크크크크크.....
괴물들이 다가오는 소리였다.
정말 죽여도 죽여도 어디서 그렇게 많은 놈들이 나오는지 지금도 들려오는 발소리만
들어도 수 십 마리가 떼거지로 몰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자 또다시 괴물들의 공격이 시작될 것을
예상하고 각자 무기를 빼들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묘는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괴물들이 또다시 공격해오자 정말 짜증이 났다.
항상 깨끗하고 좋은 것만을 찾는 그녀에게 이런 동굴에서 먼지나 뒤집어 쓰고 싸워야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짜증나고 힘든 일이었다.
그녀는 정말 질린다는 듯이 말했다.
"첫째 오빠 저것들은 정말 뭐야? 웬 이상하게 생긴 것들이 이렇게 죽어도 어디서
자꾸 몰려오는 거지? 우리 유웅국에는 맹수가 많지만 저렇게 지저분하고 못생긴
것들은 없었는데 뭔지 모르겠어."
"나도 처음 보는 것들이다. 저런 이상하게 생긴 놈들이 있다는 소리도 못 들어 봤어.
이상한 일이야."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뭐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것이 저 놈들처럼 많을 텐데."
"그게 아니다. 요즘 대륙 전체에서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유웅국에서도
몇 일 전에 이상한 괴물들이 목격되었다고 하는구나.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하지만
분명 대륙 전체에 이상한 기운이 퍼져 가는 것만은 분명하다."
묘는 호의 말을 듣자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 졌다. 만약에 세상에 괴물들 천지가
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할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며
몰려드는 괴물들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이번에 몰려온 놈들은 처음에 싸웠던 놈들보다 그 숫자가 두 배 가까이
많았다. 시커먼 놈들이 사방에 뚫려있는 굴속에서 기어 나와 사람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놈들은 처음부터 바로 공격하지 않고 마치 포위라도 하듯이 사람들을
감쌌는데 처음에 공격 할 때와는 많이 틀려진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웅(熊)이 웃긴다는 듯이 말했다.
"호! 이놈들 봐라. 처음하고는 많이 틀려졌는데 우리를 포위까지 하고..."
그에게는 괴물들의 포위가 애들 장난과 같이 보였다. 자신이 한번 힘을 쓰면
모두 죽어 나자빠질 하찮은 놈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괴물들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신중했다. 섣불리 달려들지 않고 으르렁거리며 침만을 질질 흘릴 뿐
달려들지 않았는데 마치 무엇인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보였다.
괴물들의 움직임이 이상하자 여사랑이 괴물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말하였다.
"이상하군요! 마치 무슨 명령이라도 기다리는 군인들 같군요."
그녀의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괴물들을 주시했다.
그때 괴물들이 어수선해지며 괴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크크크크어어엉!! 크크크어엉!!
놈들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들어내며 사납게 울어댔다. 어두운 동굴 속에 울리는
괴물들의 포효는 무척이나 소름이 끼쳤다. 동굴 안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시커먼 괴물들이 자신들을 감싸고 이상한 괴성을 질러대자 사람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비록 그들이 무예의 최고수라 할지라도 두려움이 없을 수는 없었다.
괴물들이 질러대는 괴성이 동굴에 퍼져서 이상한 메아리를 만들어내자 더욱
서늘해지는 것 같아 사람들은 처음과는 달리 신중하게 대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무기 꽉 쥐고는 주위를 경계했다. 그러나 괴물들은
쉽사리 움직일 생각이 없는 듯 계속 소름끼치는 괴성만을 질러댔다.
괴물의 위압적인 소리에 묘는 불안감을 느껴 얼굴이 굳어졌다. 마치 어릴 때
꿈에서 보았던 무서운 몽마(夢魔)를 보는 듯하여 더욱 긴장이 되고 두려웠다.
그녀는 사문에서 나온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항상 산에서 무술 수련에만
열중하다 세상 구경을 나오니 모든 것이 좋았다. 모두가 신기했고 궁금했다.
아직 어린 소녀의 티를 벗지 못한 그녀에게 세상은 모든 것이 재미있고 신나는
일 투성이었다. 그리고 천지환이라는 신기한 물건을 찾기 위해 여행을 한다고
하니 얼마나 재미난 모험이 될까 생각하니 가슴이 떨려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생긴 괴물들에게 둘러 쌓여 있으니 이 얼마나 황당하가. 그녀는 갑자기 모든
것이 짜증났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을 원했는데 이상한 괴물이 나오지 않나
난쟁이 같은 이상한 사람이 사사건건 걸고 넘어가지 않나, 무예는 하지도
못할 것 같은 녀석에게 놀림을 당하지 않나 정말 화가 났다. 그러나 지금은
그 무엇 보다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이 답답한 동굴에서.
그녀가 이처럼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있을 때, 갑자기 동굴이 조용해 졌다.
사람들은 괴물들이 갑자기 괴성을 멈추자 긴장하며 사태을 주시했다.
사람들이 포위한 괴물들을 주시하고 있을 때, 갑자기 괴물들의 한 무리가 갈라지며
물러서기 시작했다. 놈들은 마치 황제라도 납시는 냥, 길을 내며 물러서고 있었는데
잘 훈련된 군인들 같은 모습이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짐승처럼 덤벼들던 놈들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괴물들이 비켜서자 조그만 길이 생겨났고 그 끝에 굴하나가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었다. 괴물들은 그곳에서 무엇인가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괴물들의 그런 모습을 보던 갈마웅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후후. 놈들의 우두머리가 드디어 모습을 나타내려고 하는가 보군!"
그는 마치 어린아이들의 놀이를 구경하는 듯이 여유 있게 말하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형님. 우리가 놈들의 우두머리가 나올 때까지 이렇게 봐줘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냥 다 죽여버리지요. 그렇지 않아도 막개를 찾는 것이 급하지 않습니까?"
소괴 마불웅은 괴물들을 둘러보며 당장이라도 덤벼들 듯이 말했다.
"재미있지 않느냐? 놈들의 우두머리가 납신다는데 좀 기다려 주는 여유는 갖아야지."
갈마웅의 말에 마불웅은 불만에 찬 얼굴로 무슨 말인가 더 하려 했지만 그럴수
없었다. 갈마웅이 다른 사람은 들리지 않게 그에게만 따로 전음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이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좋은 것이 어디 있느냐? 참고 있으면
이 괴물들의 잔치보다 더 푸짐한 것이 걸려들 것이다. 인내를 갖고 지켜봐라.'
갈마웅의 전음에 마불웅은 그때서야 추괴 나찰이 보이지 않음을 알았다.
'예. 알겠습니다. 형님!'
그 또한 이미 갈마웅의 계략이 숨어있음을 알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사람들 모르게 서로 전음으로 말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괴물들의 우두머리가 나오는 모양이었다.
"나오는군!"
누군가의 외침을 시작으로 괴물들의 괴성이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마치 왕의 행차를
알리는 나팔소리와 같은 그 괴성은 무척이나 소름 돋치는 소리였다.
크크크크어어어어어엉!!
어두운 굴속에서 무엇인가 모습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어름거리는 횟불에 의해
자세히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무엇인가 거대한 것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발자국 소리도 점점 가까이 들려왔는데 그 묵직한 울림을 듣자 사람들은 모두 놀라운
표정이었다. 발자국 소리가 무척이나 크고 묵직하게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의
울림과 소리라면 지금 앞에서 얼쩡거리는 괴물들 보다 두 세 배는 더 큰놈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사람들은 소리가 더욱 가까워지자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어두운 굴속에서 점점 그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처음 사람들이 본 것은
강렬한 불빛이었다. 너무나 강렬한 붉은 불빛이 어둠 속에서 뻗어 나오자 사람들은
놀라서 눈을 가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갑작스런 강렬한 붉은 빛에 놀라며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모두 무기를
앞으로 빼어들고 바로 공격할 자세를 갖추었다. 그들은 점점 동굴 속에서 기어 나오는
무엇인가를 보고 점점 자신도 모르게 눈과 입이 커져 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너무 놀란 백의인이 소리쳤다.
"뭐...뭐야? 저건!...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