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시기적절한 남자(7)

리드미온 |2004.04.15 22:04
조회 6,118 |추천 0

'박진우씨댁 맞지요?'

인터폰을 건너 들려오는 여자의 한마디는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내 집이 아니라 공동의 집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들은 후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나는 내 집이 아니라는 일침을 가하는 한 마디를 낯선 여자에게서 듣고 있는 셈이었다.

나는 잠시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까 망설였다.

인터폰 너머의 여자는 내 목소리만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나는 누가 되는 걸까?

내가 망설이는 사이 민석은 인터폰 앞으로 와서 화면으로 보이는 여자의 모습을 살폈다.

 

"누구신데요?"

 

나는 다시 뭐라고 대답하는 대신 그렇게 되물었다.

 

"그러는 댁은 누구세요?"

 

이번에는 인터폰 너머의 여자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머리 속으로 펼쳐지는 상상은 뻔했다.

이 여자는 박진우란 남자의 애인이고 박진우를 찾아온 거고 그리고 박진우란 남자의 집에 낯선 여자가 있다는 것에 놀란 것이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누군데?"

 

옆에서 민석이 묻고 있었다. 이 목소리를 상대 여자도 듣고 있을 터였다.

 

"진우씨?"

 

여자는 민석의 목소리를 박진우의 목소리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진우씨! 나야. 문 열어줘."

 

여자는 이번에는 울먹일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시에 현관 문의 손잡이가 덜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문을 쿵쿵거리며 두드리고 있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눈짓으로 민석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일단 문 열어줘."

 

지금의 상황은 문을 여느냐 아니면 인터폰으로 계속 대화를 하느냐의 선택밖에 없었다.

그래도 혼자보다는 민석이 있으니까 안심을 하고 문을 열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며 민석의 말대로 현관문 쪽으로 가서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문을 여는 순간 반대쪽의 그 여자도 문을 당기고 있었는지 갑자기 활짝 열리고 말았다.

 

'쨕-'

내가 활짝 열리는 문을 쳐다보는 몇 초도 안되는 사이에 여자는 내 뺨을 사정없이 때렸다.

여자의 일격에 밀려 나는 주저 앉고 말았다.

 

"민아야...."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민석이가 날 바라보며 물었다.

그제서야 민석을 본 그 여자는 약간 당황한 듯 했으나 여전히 흥분한 상태가 가라 앉은 것 같지는 않았다.

 

"이거 보세요~ 조직 폭력배에요? 왜 갑자기 사람을 때려요?"

 

흥분한 민석은 소리치며 물었다.

 

"박진우 어딨어요?"

 

여자는 맞은 나는 안중에도 없는지 여전히 박진우를 찾고 있었다.

 

"우리는 모릅니다. 박진우가 누군지..."

 

나는 뺨을 감싸고 주저 앉은 상태에서 상황 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이 민석이 그렇게 대답했다.

 

"아니...박진우 집에 왜 당신들이 있는 거냐고요?"

 

도대체 박진우란 남자는 뭐라고 했기에 이 여자는 당당하게 이 집을 박진우 집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 집은 이 강민아란 여자분이 전세로 오늘 들어왔고요. 전 이 여자의 애인이고요. 박진우란 사람은 모르는 사람입니다. 궁금하시면 계약서를 보여드리지요."

 

고마운 민석, 그렇다. 계약서에는 내가 세입자로 되어 있다. 그리고 아까 박진우란 이름으로 되어 있는 계약서는 박진우가 들고 나간 것 같았다.

민석은 내가 몸을 추스리는 사이 계약서를 들고 와서 보여줬다.

 

"어? 원래 주인이 박진우가 아니었나요?"

 

계약서를 살펴 보던 그 여자는 기가막히다는 듯이 되물었다.

 

"네. 보세요. 이현수라고 되어 있잖아요."

 

내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사이 민석은 박진우란 남자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하는 대화를 여자와 진행하고 있었다.

 

"이상하네요."

 

"뭐가요?"

 

"한 달 전에 박진우란 남자하고 이 집에 왔었어요. 자기 집이라고 했어요."

 

한층 풀이 죽은 목소리로 여자는 대답했다.

이제 상황이 이해될 듯도 했다.

박진우는 이현수가 집 주인일 때도 여자 친구와 이 집을 들락거렸던 거고, 이 여자는 박진우란 남자에게 채이고 이 집을 다시 찾아온 것이다.

 

"박진우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다른 방법으로 찾아보세요."

 

민석은 조금 더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자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나를 바라보았다.

 

"어머, 죄송해요. 박진우가 절 피하길래...."

 

"같은 여자로서 이해는 하지만...."

 

나는 손으로 여전히 볼을 감싼 채로 대답했다.

 

"정말 죄송해요. 원래 이런 여자는 아닌데..."

 

도대체 박진우란 남자는 어떤 남자일까,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이 여자가 집까지 찾아와서 이 소동을 부린단 말인가....

 

"남의 집을 자기 집이라고 속이는 남자는 볼장 다 본 거 아니에요? 포기하세요."

 

나는 약간 짜증스런 말투로 대답했다.

그냥 실연당한 여자라면 위로해주었을 테지만, 그걸로 인해 앞뒤 분간 못하고 사람까지 때렸고 맞은 사람이 나란 사실에 어떤 동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여자는 이성을 찾았는지 이번에는 고개까지 숙이며 인사를 했다.

 

"오늘 정말 운 나쁜 날이라고 생각할 테니 그만 가주세요."

 

나는 정말로 억세게 운이 나쁜 날이라고 생각했다.

이중 계약으로 인한 동거, 동생과 민석의 임신과 동거, 낯선 여자에게 뺨맞기...

도대체 어디부터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모르는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었다.

어서 이 여자라도 내 공간에서 쫓아내고 싶었다.

 

"네. 정말 죄송했습니다."

 

여자가 그렇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데 나는 비로소 괜찮은 여자라는 생각을 했다.

은은한 향수 냄새와 자연스런 화장, 그리고 명품 가방, 코디네이션이 잘 된 하늘색 정장...

박진우에게는 아까운 여자란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박진우란 남자의 정체는 뭐길래 저런 여자가 집에 찾아와 소란을 피게 만드는 걸까...

 

대충 상황이 마무리 되자 민석은 걱정된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야. 여기 천국이 아니라 지옥같다. 너 어떻게 살래? 집으로 돌아가라..."

 

"그렇게 못해. 박진우란 남자를 죽이는 한이 있어도 난 여기를 지킬거야."

 

"아무래도 그 남자 수상해. 저런 여자가 열명도 더 있는 거 아냐?"

 

민석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지 않을까?

 

"됐어. 내가 해결할 테니깐 현아나 잘 돌봐라. 도대체 피임이라도 하지...왜 임신을 시켰대?"

 

민석도 지금 내 걱정을 할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그래 다 큰 여자니까 네가 알아서 해라. 그리고 보니 현아를 너무 혼자 둔 거 같다. 가봐야겠어."

 

민석마저 떠나고 혼자가 되자 다시 평화가 찾아온 듯 했다.

그러나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진우가 있었다.

진우가 돌아오면 나는 그 여자가 했던 것처럼 똑같이 뺨을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더구나 박진우를 모른다고 했고 이 집도 내 소유라고 했으니 다시 그 여자가 집으로 찾아 올 일도 없으니 오히려 박진우를 도와준 셈인지도 모른다.

어찌보면 단지 이중계약자인 동지로서 계약이 아니라 악마와의 동거가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지만 어차피 이 집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거쳐야할 과정이라 생각했다.

 

---------------클릭, 시기적절한 남자 8편 보기--------------

 

아쉬운 분들은 아래 블로그 배너 클릭 한번 더!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