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날라리 새신랑
띵~ 띵~
하고 갑자기 머리 속에서 보신각 종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정신 없이 머리 속이 어지러웠다. 밝은 달빛
에 비춰 보이는 그 남자는 언뜻 보기에도 중. 고등학생은 아니었다.
그리고 어디가 잘못된 사람도 아닌 것 같았다.
‘ 아니, 이런 남자가 어디가 잘못되어서 중학교 삼학년짜리 여자 애랑 결혼을 하려고 마음을 먹냐는 말이
야. 이상한 취미를 가졌나?’ 홍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 민하, 올해로 스물
세 살이 되는, 군대에서 얼마 전에 제대하자마자 장가가라고 끌려온 이민하였다. 민하는 아직도 까끌 거
리며 만져지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난처하게 홍이를 바라보았다.
사실, 홍이의 할아버지가 말하던 출중한 학자는 세호를 말하는 것이었다. 홍이의 할아버지는 민하도 세
호처럼 교수인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호는 그 집안 아들은 아니었고 문중의 산지기의 아들이
었다. 산지기인 세호의 아버지가 죽고 나자 혼자된 어린 세호가 가여워 이 학장이 데려다 이제껏 키워 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과는 달리 민하는 알아주는 날~라리 였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못말리는…… 민하는
이씨 집안 종손이었는데 어찌 된 것이 하는 짓은 전혀 양반 집 종손과는 거리가 멀었다. 인간만 멀쩡하게
생겨서 하는 짓은 시쳇말로 '개차반' 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몸에 명품이 아니면 걸치지를 않았고 간신
히 들어간 대학에서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강의는 모두 빼먹고 자신의 은색 포르쉐를 몰고 쭉쭉 빵빵
한 기집애들만 몰고 다녔는데 위로 아래로 다섯 살을 가볍게 커버하고 있었다.
여자 문제, 돈 문제로 머리를 싸고 있던 민하의 아버지에겐 어쩌면 민하를 유부남으로 만드는 것이 굉장
한 도박이었지만, 그래도 해볼만한 도박이었다.
외아들의 버릇이 고쳐지기만 하면야, 하고 생각했겠지만 , 민하의 꿍꿍이는 다른곳에 있었다. 민하는 망
설이다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푹푹~내 쉬며 홍이를 끌어다 바위에 앉혔다.
“ 내가 네 신랑이야. 안 잡아먹을 거니까 이리앉아봐. 그래 가지고 죽나. 여기서 떨어진다고 죽냐고?”
“ 그런데요. 그럼 어떻게 해요? 아저씨는 미쳤어요? 이상한 사람이지요. 어떻게 나 같은 어린애랑 결혼
을 하겠다는 건데요?”
“ 아, 그 꼬마 말많네. 조용히 좀 해봐. 아저씨는 무슨 난 아저씨 아냐. 암튼, 아저씨든 오빠든 말을 들어
야지. 이야기를 할 것 아냐? 입! 제발 입 다물고…… 쉿!”
민하가 조용히 하라고 홍이의 입을 틀어막았을 때 홍이는 그가 아주 향기로운 향수를 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갑자기 향수 냄새가 날카롭게 홍이를 자극하는 바람에 기운이 쭈룩 빠졌다. 눈물이 찔끔 나려고
해서 볼멘소리로 물었다.
“ 무슨 이야긴 데요?”
민하가 처음 세호가 데려온 홍이를 보았을 때 홍이는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은 그저 평
범한 열여섯 중학생으로 보였다. 까무잡잡해서는 조그만 얼굴에 유난히 크고 빛나는 눈을 빼면 정말 너
무 평범해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절로 실망하며 인상이 찡그려 졌다. 저런 어린애랑 결혼이라니, 웃음
이 나왔다. 그래도 도망이라도 쳐버리면 자신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니까 설득을 해 보리라 마음먹고는
기회를 봐서 홍이를 따라 온 것이었다.
막상 달빛 아래서 조그만 중3짜리 계집애를 내려다보는 민하는 기가 막혔다.
' 이 어린애가 정혼녀 라니. '
“ 너랑 협상을 하려고 따라 온 거야.”
“ 협상요?”
“그래, 앉아. 좋은 일이야. 너 어차피 갈곳도 없잖아. 그러니까 이 일이 어떻게 된 거냐 하면 우리 할아버
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소원이라고 하시니까 원이나 없으시라고 이렇게 하기로 한 거야. 덕분에 난 이
답답한 집에서 탈출해서 내일 모레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거고 말이야. 아예 안 올지도 몰라.”
“그럼, 나는 요? 난 어떻게 해요?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내가 아무리 독하고 재수 없는 애라도 왜, 아저
씨가 집에서 탈출하는데 나를 재물로 써먹어요?”
“ 법적으로나 기타 다른 일로도 나는 너 같은 꼬마랑 결혼할 마음이 전혀 없어. 나는 이 답답한 집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거든, 내가 가고 나면 넌 독립할 준비를 하고 공부도 하면서 우리 집에서 살아. 응?
네가 독립할 수 있을 때 내가 집안에 얘기할게. 그럼 너도 좋잖아. 나도 좋고? 응?”
“ 지금 그게 말 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아저씨가 나보다 더 바보 예요?”
“ 너는 누굴 닮아서 그렇게 말이 많냐, 딱 질색이야. 꼬치꼬치 따지고 앵앵거리고 으~ ”
“ 그건, 칫! 아저씨가 말하는 걸 내가 어떻게 믿어요? 꼭 날라리~ 사기꾼처럼 생겨 가지고는, 싫어요.
난, 도망가던지 죽어 버릴 거예요. 시집 같은 건 안 갈 거예요. 흑~”
홍이는 왠지 나쁜 사람 같지 않아 보이는 신랑에게 떼라도 써보고 싶은 마음에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 그냥 믿을 수밖에 없어.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내가 내 이십삼년 인생을 걸고 맹세하지. 아, 참.
너 봤지. 세호 형이 잘 돌봐 줄 거야. 아까 널 데리고온 교수님 말이야. 오라고 해야겠다.”
“ 스물 세살 이예요? 건데요, 이름이 뭔 데요? 대학생이에요? ”
“ 야! 시끄러워 죽겠네. 하나씩 좀 물어라, 난 이 민하, 민하야. ”
민하가 핸드폰으로 오라고 전화를 하자 조금 뒤에 검은 그림자가 산아래 쪽에서 올라왔다. 그는 급히 올
라와서 인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 아씨, 작은 어머님이 목욕하셔야 된다고 찾으시느라고 집안이 발칵 뒤집혔어요.
얼른 가세요. 네?”
" 형, 얘 죽는데. 아까 저기서 뛰어내리는걸 간신히 잡았다니까, 잘하면 죽겠더라 니까 괜히 노인네 때문
에 애 하나 잡겠어. 형이 얘 좀 알아듣게 해봐. 형은 그래도 교수님이잖아, 얘도 좀 달래. 봐. 여동생도
없으니 어떻게 할 줄을 알아야지.”
그는 가만히 홍이를 보다가 민하 에게 먼저 내려가라고 손짓을 하고는 바위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홍이
옆에 나란히 앉았다. 그런 홍이를 바라보다가 민하는 잘됐다는 듯 얼른 산을 내려가 버렸다.
“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 ……”
홍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 난, 울지 않아요. 안 울 거예요.”
“ 울지도 못하는 바보야? 난, 민 세호 야. 그냥 세호라고 불러. 날 그렇게 불러 주는 게 따뜻하게 느껴져
서 좋아. 내일이면 홍이를 아씨라고 불러야 되겠지만, 그것도 참, 좋아. 아씨 참 예쁜 호칭이지.”
" 달이 참 밝지. 홍이 보다 내가 열 살이나 많으니까, 잠깐 말을 놓을게. 기분이 어떨지 짐작이 가. 황당
하지. 나도 그랬었어. 우리 아버진 민하네 집안의 선산을 지키는 산지기였어. 꼭 홍이 하고 같은 나이에
아버지도 돌아 가셨고 어머닌 내가 아기때 돌아 가셨어.
그런 나를 민하의 아버님이 서울로 데려가서 자식처럼 거둬 주시고 공부시켜주셨어. 생각이 차이가 있
으셔서 그렇지 아주 좋으신 분들이야.
민하가 이야기했겠지만, 할아버님의 마지막 소원이시라 서 이 집안에서도 무리를 하시는 거야. 내 생각
엔 조금만 참아 보는 게 어떨까 싶어.
대학생이 되어 독립할 때가 되면 나도 꼭 나가게 도와 줄게. 그때까지는 이 댁에 딸처럼 사는 게 어떨
까? 응?”
홍이가 갑자기 세호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면서 엉엉 ~ 서럽게 울었고 그런 홍이의 등을 세호는 토닥토
닥 다독여 주었다.
둥근 보름 달빛이 그런 그들을 따뜻하게 비춰 주었다.
“ 무서워요. 절도와 주실 거지요.”
“ 네가 원한다면 난 언제나 너를 도울 거야. 약속해.
그러니 이젠 걱정하지 말아. 응? 이젠 내려가자.”
홍이는 세호가 내미는 따뜻한 손을 놓쳐버리면 큰일 날것처럼 꼬옥쥐고 달 밝은 산길을 걸어 내려왔다.
올라올 때보다는 한결 기분이 나아지고 있었다.
“ 교수님이세요? 세호?”
" 네, 꼬마아씨. 민하의 아버님이 학장님이시거든, 운이 좋지. 아직은 강사지만 말야.”
“ 세호…… 세호, 이렇게 부르니 마음이 기대지는 느낌이 들어요.
참, 좋은 이름 같아요.”
“ 꼬마아씨, 나도 내 이름이 좋아.
그리고 우리 귀여운 아씨가 불러 주니까 내가 특별하게 느껴져.
이제껏 내가 특별한 느낌이었던 적은 없었는데.”
“ 세호?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쓸모 없고 재수 없는 애가 있을까요.
나처럼 말이에요.”
“ 누가 그런 말을 해, 그런 사람은 없어. 아씨는 얼마나 예쁘고 소중한 사람인데,
내 말이 맞아. 믿어도 돼.”
“ 정말요? 세호, 애들이 내가 갑자기 아씨가 됐다고 하면 뭐라고 할까요?”
“ 음, 아마도 멋지다고 할걸.”
“ 아마 골동품정도로 볼 것 같아요.”
“ 아씨, 내일 아주 잘하고 나면 서울에 가면 제가 롯데월드 구경시켜 줄게.
하늘을 빙빙 도는 기구도 타고 바이킹도 타고, 어때. 기운 좀 내봐. 응?”
세호가 홍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미소짓자 홍이도 조그맣게 웃어 보였다.
홍이의 손을 잡고 앞서 걷는 세호의 등을 바라보며 왠지 홍이의 마음이 세호의 등자락에 기대지는게 느
껴졌다. 그렇게 홍이는 이미 세호의 등에 마음을 업히고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숲속 에선 엄마 잃은 다
람쥐가 나뭇가지에 업혀 산을 내려가는 홍이를 훔쳐보고 있었고 달님이 길을 밝혀 어두운 구름을 쫓아
주고 있었다.
저 하늘을 덮은 밤이 가지 않았으면 하고 홍이는 바랬다. 이대로 세호의 손을 잡고 밤새 걷고 싶었다. 하
지만 밤은 떠오르는 뜨거운 태양에게 자리를 비우고 황급히 도망쳐가고 드디어 홍이가 시집가는 날이 밝
아 왔다.
★ ☆ ★
새벽부터 목욕하고 정말 거짓말처럼 원삼을 입고 앞 댕기, 도투락댕기에 연지 곤지를 찍고 족두리를 쓰
고 마치 무용시간에 고전무용을 할때 처럼 혼례복을 챙겨 입었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은 자
신을 홍이는 바라보고 있었다. 홍이는 웃어 보이며 자신이 마치 기념품 코너의 인형처럼 예쁘다는 생각
이 들었다. 정말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너무 피곤한 꿈, 자고 일어나면 유유가 환하게 웃으며 도서관
에 가자고 깨울 것 같았다.
헛기침 소리에 방문을 여니, 무서운 할아버지가 나무로 다듬은 기러기 한쌍을 챙겨들고 들어오셔서 조용
히 내려놓고 앉으셨다. 그것은 전안례라고 하는 식순서의 하나로 신랑이 초례를 치르기 전에 신부의 어
머니에게 기러기를 주는 것이었는데 홍이는 어머니가 안 계셨으므로 할아버지가 받아 오신 것이었다.
“ 홍아, 이게 뭔지 아나, 기러기다. 기러기는 한번 인연을 맺으면 생명이 끝날 때까지 짝의 연분을 지킨
단다. 집안이 예전 같았으면 혼례는 신부집에서 해야 되는 건데 내가 많이 아프니 우리는 그냥 이렇게,
감사하게도 혼례도 네 시댁에서 해주시는구나. 홍아, 니가 안동 김씨 가문의 여인이라는 걸 절대로 잊으
만 안 된다. 알것나. 시부모님, 신랑말을 잘 듣고 공경함에 소홀함이 없어야 된 데이.”
“ 근데, 꼭 시집을 가야 하는 건가요? 그냥 할아버지랑 살면 안되나요?”
“ 씰데 없는 소리~ 때가 됐으만 혼례를 올려야 사람이 되는 기다. 어여 나가자.”
마당으로 나가서니 마당 한가운데 초레청이 만들어져 있었고 엄청나게 많은 집안사람들이 홍이에게 시
선을 집중 시키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말똥하게 건너다본 새신랑 민하는 사모관대를 하고 마치 영화 속
에 어사또 마냥 멋있게 서있었다. 사실, 얼른 끝나고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었는데 홍이가 귀여운 인형처
럼 차리고 나오는걸 보니 기분이 묘해졌다.
그렇게 절을 하고 술잔으로서 부부의 인연을 맺었고 회합의 의미를 다졌다. 표주박으로 나눈 술은 반으
로 쪼개진 표주박처럼 그 짝이 이 세상에는 하나밖에 없는 것이라는 의미처럼 둘이 합쳐 하나라는 의미
를 이 어린 부부에게 안겨주고 있었다.
★ ☆ ★
밤이 되어 어두워 질까지 홍이는 신혼방에 술상을 봐놓고 앉아 첫날밤을 기다리고 있었다. 민하가 방문
을 쑥스럽게 열고 들어 왔을 땐 정말로 그 숱한 여인네며 동네 남자들이 기웃기웃 방을 엿보더니 장난기
가 발동했는지 방문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민하는 그런 방문을 킬킬 거리며 바라보다가 얼른 벽에 서
있는 병풍으로 방문을 가리고는 털썩 주저 앉으며 홍이를 빤히 들여다보며 비실비실 웃어 보였다.
“ 아이! 이싸람들이 정말~ 참내, 쯪쯪, 야! 너 그렇게 하고 앉았으니까 더 새까맣다. 아이고 ~ 아주 이마
가 반짝반짝 하네. ”
“ 이씨~ 왜 인제 와요. 얼른 이거 벗겨줘요. 아저씨가 벗겨 줄 때까지 기다려야 된데요.”
홍이가 옷과 머리에 족두리를 빨리 벗기라고 재촉하자 민하는 놀라서 눈이 동그래졌다.
“ 야, 넌 어떻게 겁도 없이 남자한테 옷을 벗기라고 난리야. 넌 고새 정신이 나갔냐? 설마 너 ? 나를? 진
짜 신랑으로 생각하는 거야?”
“참내, 내가 조신하게 굴려고 했는데, 꿈도 야무지네 누가 그래요. 내가 그딴 미친 생각을 한다고 안됐
지만 난 좋아하는 사람 있어. 아저씨보다 백 배! 천 배는 더 멋진 사람 있다고요.”
“ 그게 누군데? ”
“ 안 가르쳐 줄 거야. 빨리 벗겨요. 나 오줌 싸겠어!!”
“ 어, 설마 너 아침부터 지금까지?”
“ 그래, 빨리! 빨리!”
옷을 허겁지겁 벗기고 보니 홍이는 너무 배가 아파서 일어서지도 못했다. 당장이라도 오줌보가 터져 버
릴 것 같아서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 야! 너는 미련 곰탱이냐? 어떻게 이렇게 될 때까지 이러고 있냐? 내 팔자야. 어휴 팔자다 정말 ! 나는
왜? 오나가나 여자들을 업고 설쳐야 되냐? 진짜! ”
“ 아저씨 때문에 내 팔자도 만만치 않게 되었어. 왜 이래요? 팔자 타령을 하고 싶은 건 나야! 나라고요! ”
“ 못 생긴 것들이 하여간 말은 많아요. 시끄러워 죽겠네. 진짜 ! ”
“ 아저씨도 그다지 잘 생긴 건 아니네요. ”
“ 어쭈! 못생겼다는 말은 내가 들어 본적이 없다. 그리고 넌 지금 이 와중에 그렇게 나한테 빡빡 기어오르
고 싶냐? ”
“ 아! 앙! 몰라, 나 오줌 나오려고 한다. ”
“ 뭐? 야 ! 참아 ! 참아! ”
민하는 하는 수 없이 홍이를 업다시피 부축을 해서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화장실에 넣어 놓고 돌아 나오
는데 세호가 팔을 붙잡았다.
“ 왜 그래? 형. 놀랐잖아!”
“ 너, 오늘밤 나랑 잘 거지? 설마 홍이 방에 자려는 건 아니지.”
“ 형? 정말 나를 어떻게 보고 그래. 내가 설마 저 어린애를 어떻게 할까봐 그래?”
“ 그럼, 넌 그러고도 남지. 쟤도 벌써 열여섯이야. 이미 꽃봉오리야. 근데 내일 모레 미국으로 도망 갈 녀
석이 저 애랑 같이 밤을 새워서 좋을 게 뭐야?”
“ 또 시작이야. 난 그 형이 성인군자 인척 하는게 지겨워. 뭐야, 대체 어쨌든 내가 없으면 대단한 대학교
하나도 물려받을 테고 아버진 자식인 나보다 형을 더 신뢰하시니 얼마나 좋아? 왜, 이젠 저 어린 내 색
시까지도 탐나? 형, 알아? 어떤 때는 형 진짜 밥 맛 없어. 난 오늘 저 애랑 잘 거야. 참견 마. 말을 안 하
려고 해도 진짜! ”
“ 민하, 그러면 안 돼. 제발, 그럼 미국 가지말고 저 애랑 같이 살던가. 저 앨 지켜줄 마음도 없잖아. 저 애
가 고아란 게 마음에 걸려서 그러는 거야.”
“ 형, 욕 나온다. 비켜. 내가 알아서 할 일이야. 사사건건 참견이야. 언제나 그랬지. 형의 가장 큰 문제가
뭔지 알아? 주제를 모르는 거야.”
“ 뭐? ”
“ 무슨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해?”
“ 언제나 형이 그렇게 만들잖아. ”
민하가 한바탕 윽박 질러 대고 돌아서려는데 홍의 화장실에서 나오다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눈과 딱 마
주쳐버리자 홍이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윽박 지르듯 한마디를 던지고는 세호가 묵고 있는 방으로 들어
가 버렸다.
“ 너, 말썽 피우지 말고 조용히 자. 나 미국 가고 나면 너 마음대로 하고 알았어.”
그렇게 한마디를 내 뱉듯 말하고 사라진 민하를 홍이가 멍하게 바라보자 세호가 다정하게 웃으며 홍이의
등을 다독이며 신방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아씨, 잘 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