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무반에서 고무링 두개를 배배꼬며, 뽀대용으로 늘이기를 하고 있는데, 중대장의 호출을 받았다.
" 충성~ 일병 삐리리 호출받고 왔슴다...
" 너.. 친구 동서동 동사무소 방우냐?
" 에... 근데요?
친구가 근무하는 동사무소 예비군중대에서 전화가 왔단다.
(그랴... 나도 방위고, 친구도 방위였다. 라스트 사무라이가 아닌, 라스트 방위 -_-)
" 너..지원좀 해달란다.
" 에 -_- 동사무소에서 왜요? 등본 띠주는거 시킬라그러나...
" 가봐.. 지도제작한다더나 뭐라나...
군(방위 ㅡㅡ;)에 입대하기 전, 그림과 관련된 일을 했던 이력때문이리라. 그래도 그렇지.. 지도 그리는 것도 그림이냐 ㅡㅡ*
" 아 ~ 니가 글마가?
" 네.. 제가 글마인디요 -_-
예비군 중대장 말로는 초울트라 특대형의 동의 지도를 만들어, 예비군 훈련때 써먹을 생각인데, 어찌어찌하여 나를
부려먹기로 마음먹었단다.
" 그래... 필요한기 머꼬? 말만 해봐봐... 2천원 한도내에서 팍팍 지원하끼구마...
(요새는 어떤지 몰라도, 11년 전, 예비군 동대에 배정되는 한달 유지비는 고작 10만원 정도였던걸로 알고 있다. 그 대부분의 지출
은 예비군 교육참석대상자를 위한 엽서값으로 다 나갔고, 남은 돈은 고작 1~2만원..그런 상황에 뭘 바라겠나...)
" 저기예... 그림을 그릴라쿠모.. 개기라도 좀 묵어야 -_-
" 그..그래... 근데 니 참말로 훈련소서 정신검사 받은거 맞나? 그랬다 쿠던데....
" 컥 ㅡ0ㅡ 충성... 대를 이어 충성하겠음다..
(나중에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훈련소에서 그림자테스트인지 뭔지하면서... 정신병자 취급받었다)
어이없다. 지도 그리라해놓곤 아무 준비도 해놓질 않았다.
" 저기예... 종이캉..물감캉.. 그런거 사와야는데 -_-
" 그래? 내 지금 나가는 길이니깐..오는 길에 사다 줄끼구마.. 기달리고 있어라
멋진 중대장 아저씨.. 잠시 외출하는 길에 문방구에 들러 사다준단다.
(나중에 들은 얘기론, 딴동네 다방 여자랑 눈맞아 가끔 나간다했다)
지글지글 ..보글보글...
중대장이 돌아올 가망이 전혀 없다는 걸 알기에.. 2층 교육하는 곳에서.. 라면 끓여먹었다.
후루루룹...짭짭짭... 투르릅..투르릅...
" 이런 싸가지.. 너 왜 한뭉탱이 집어먹어 ㅡㅡ*
" 시끕다. 내는 손님잉께 마이 묵어야하는기다. 밥도 있네.. 점심 안묵었더나?
" 아니.. 너그 집에서 퍼온건데..
" 이기 약뭇나.. 집에 쌀도 없는데 와 자꾸 울집 밥 퍼오노?
예비군 중대 바로 앞.. 불과 5미터만 걸으면 우리집 대문이었다. 이 시키는 점심 묵고도 배고프면
우리 집에 가선 밥통 밥 다긁어 오는 놈이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 어~ 나 중대장인데.. 늦을 거 같으니깐.. 오늘 그냥가고 낼 와서 지도 그리라케라..
오후 3시.... 퇴근하려면 2시간 이상이나 남았지만, 집과 예비군동대와의 거리도 엄청나게 가까우니 집에가서
낮잠이나 자기로 했다. 혹 부대에서 나 찾아오면 잠깐 매점에 갔었다고 그러면되는거고.. 지네들이
올 가망성 또한 제로에 가까우니깐....ㅋㅋㅋ
쫄래쫄래 뒤따라오는 친구..
" 니는 와 따라오네?
" 에스코트다.. 신경 끊어라
다음 날, 아침... 7시 조금 지났을까..
" 똥방우..니 사고쳤나?
아부지가 인상을 잔뜩 찡그리시며 곤히 자는 날 발로 툭툭 찼다.
" 사고는 무슨... 와예?
" 부대라 카는데, 퍼뜩 전화나 받어봐라..
" 부대예?
뭐래 -_- 설마 어제 칼퇴근보다 더 빨리 퇴근하고 집에 가서 낮잠자 버린거 들킨건가... 아닌데.. 예비군 중대장이
부대에 전화 해준다 그랬는데.. 뭐래 뭐래...ㅡㅡ;
" 충성.. 삐리리임다.
" 나 소대장인데, 당장 부대로 기어들어와 ㅡㅡ^
" 에? 와예?
" 몰라 짜샤.. 당장 안들어오면 중대장꼰대가 너 영창 처넣어 버린다니깐.. 빨리 들어오기나해..
퍽~!!
다짜고짜 무릎을 군화발로 냅따 갈기는 중대장
" 이런 개x끼가... 파견보내 놓으니깐, 잔대가리 굴리고 딴데로 새?
컥~하는 외마디 신음과 함께 고꾸라졌다. 이어서 머리에 떠오르는 건...
지오디됐다. 들킸네.. 아~ 더러븐 놈 안 찾아올 줄알었던만 젠장..젠장...
" 너 이 x끼.. 내가 안찾아갈줄 알고 잔대가리를 굴려..너 같은 새끼들은 자근자근 밟아야돼...
요즘 군대도 이런가.. 30여분은 족히 되는 시간동안 갖은 구타를 다 당했다. 군화발로 걷어차는건 기본이고
자빠졌는데 군화발로 밟고, 일어서면 뺨을 갈기고... 존니 아팠지만, 때리는 족족이 맞아주는 거 외엔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 새끼.. 군장 싸가지고 연병장으로 기어나와...
" 네 ㅡㅜ
아침 아홉시부터.. 점심 먹을 때 잠깐 쉬게 하더니, 오후에 또 군장메고 연병장 돌란다.
그나마 날씨가 안더워서 다행이지.. 에그..내 팔자야 ㅠㅠ
4시가 다 되어가니 그만 돌란다. 그리곤.. 반성문 쓰란다. 것도 3색 반성문..
안 써본 사람은 모르겠지만, 3색 반성문..그거 사람 미치고 환장하게한다.
한글이 자음, 모음, 자음으로 되어있는데... 자음은 검정색, 모음은 파란색, 받침인 자음은 빨간색.. 이렇게
10장을 쓰라니 안 미칠 사람이 어딨나.. 차라리 군장메고 돌라 그러지.. 나뿐 -_- 어쨌든 써야지뭐...
" ㅋㅋㅋ.. 그니깐 땡땡이 치지 말고 있어야지, 꼬숩다... 푸하하하하 ~
나름대로 친하게 지내는 현역 일병넘이 옆에 오더니 킥킥대며 놀려댔다.
" 싸가지 ~ 저리 안가... ㅡㅡ*
[ 반성문... 10중대 1소대 일병..삐리리... 상기 본인은 몇월 며칠..... 동서동 예비군 중대에 파견을 갔는데..]
" 어? 너... 동서동 예비군 중대갔었어?
" 에? 뭔 소리래?
" 나 어제 중대장모시고 동서금동 갔는디....
중대장 짚차 운전병인 그 녀석에게서 들은 충격적인 말..... 이런 씨벨 ㅡㅡ^
" 그.. 뭐시냐? 그럼 어제 나 찾아 중대장이 간데가 동서동이 아니고, 동서금동이었단 말이여...?
" 응... 간판에 이뿌게 잘 적어뒀던만.. 동서금동 예비군중대라고.... 그.. 뭐래?
" ....
띠잉~ 모냐 모냐.... 그.. 그럼 3시에 집에 가서 낮잠잔게 들킨 것도 아니고, 중대장의 그 새대가리 땜에
내가 당했다는....
" 야~ 너 파견좀 꼭 해주란다. 지금 나가봐라...
소대장넘, 눈깔 뒤집어질라는 나한테 파견가라며 찾아왔다.
" 흐 ㅡㅡ* 그.. 중대장 지금 어딨슴까?
" 대대 갔는데... 와?
" 이런... 싸가지없는 새대가리 쉐이를....
일단 참기로 했다. 지도 사람쉐이..더더군다나 남자라면 지가 착각해서 존니 잘못한 거 알면 사과 정도는 하겠지...
그러나...
그러나... 그 인간, 나 제대하는 날까지 아무런 말도 없었다.
부대있을 때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휙휙...피해 버리고, 아예 내가 있는 곳엔 오지도 않았다.
1994년 7월 10일...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날... 그 날 김일성이 죽어 전군이 비상이 걸렸고, 더 중요한건 나 제대한 날이다. -_-
대대에서 제대신고를 마치고 나가는데 한쪽에 다른 중대 중대장들과 잔디에 앉아있는 그 넘이 보였다.
저 싸가지.. 그래.. 그리 살다가 죽어라 이놈아... 카악....투에엣~ 하려는데
" 야~ 삐리리...밖에 나가면 사고치지 마라...
흐흐흐... 중대장, 저 싸가지 넘이 나한테 시비를 건다. 오늘만 지나면 아예 안본다 이거지...
그래...그래....
중대장이 앉아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무것도 모르며 생글거리는 다른 중대장들과 반대로
그 넘의 얼굴이 조금씩 허얘진다.
쓰고 있던 모자를 뒤로 돌리며, 오리지날 예비군다운 자세를 잡으며 앞에 선 나..
" 이보슈?
" 아하하... 뭐냐, 아쉬워서 인사나 할라고....?
" 돌았나, 내가 니겉은 놈한테 인사하게....
" 야~ 삐리리.. 이 시키가 제대한다고 말을 함부로해.. 너.. 간뎅이가 부었어?
다른 중대 중대장이 인상을 쓰며, 한마디했다. 시큰둥한 나... 그 시키를 째려보았다.
" 야.. 중대장...
" 뭐.. 뭐냐?
한 대라도 칠까봐 잔뜩 쫄아있는 중대장, 덩치로봐도 내 두배니 싸운데도 질리는 없지만, 쪽팔림이란...우~ ㅡ0ㅡ
" 너... 요새도 꼬추 안서냐? 젊은 놈이 안됐다. 쯔쯔쯔...
얼굴이 시뻘개진 중대장...
" 이.... 새이가 ㅡㅡ*
더 이상 뭐라고 말을 하고픈 기분이 아니었다. 어차피 지도 인간이니까...
" 사내 새끼가 간판갖고 개폼잡기는.. 값도 못하는 그 딴 간판 달고 다니기 안부끄럽더나. 꼬추띠뿌라...
뒤에서 무어라고 소리쳤지만, 돌아선 내 발길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끝난거니깐.. 전의 일로 분해봐야 나만 뒷골땡기지... 아흐, 생각하니깐 또 땡기네 ㅡㅡ*
근데, 그 중대장.. 지금 뭐하고 사는지 모르겠네... 잘묵고 잘살아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