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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연인★(9)

땅콩버터 |2004.04.27 13:30
조회 931 |추천 0

누군가를 사귄다는 게 이런것이였는지... 새삼 느끼는 인진이였다.

 

항상 무뚝뚝 했던 시준과는 달리 령후는 다정다감 했고, 인진이 꿈꾸던 연애 생활을 령후는 인진에게 제공했다. 하지만 그런 령후이지만 인진은 뭔가 마음 한구석이 항상 공허했다.

애써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시준때문인거 같았다. 령후와 모든것을 함께 공유하면서도 마치 다른 세상속에서 시준과 함께 있는것 처럼....

 

시준은 한동안 무슨 정신으로 살았는지 몰랐다. 인진과 령후가 함께 한 모습을 본 이후 자신의 감정에 대해 시준은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왜 자신이 그토록 끝난 인진에게 미련을 못버리는지...어쩌면 자신이 원할때 마다 인진이 자신의 곁에 다가와 주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럴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했는지 몰랐다.

 

막상 인진과 헤어졌지만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있을 인진을 생각하면 벌컥 화부터 나고 주먹먼저 쥐어지는 시준이였다.

시준은 자신 여자에게 이런 감정을 못느낄줄 알았다. 근데 인진에게 그런감정을 느낄줄이야....

낯선감정에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시준은 어린아이 마냥 모든게 낯설어 지기 시작했다.

 

생각의 정리가 필요했다.

 

'인진씨! 오늘은 뮤지컬 보러 가요!'

 

령후의 메시지 였다. 점점 다가오는 령후가 인진은 슬슬 부담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글쎄... 어쩜 시준에게 너무많이 길들여져 있어서 그런건지도 몰랐다.

5년이란 세월이 그리 짧은건 아니지만..솔직히말하자면 인진은 시준에게 약간의 죄책감도 느끼고 있는 참이였다.

 

'오랜 만이지?! 나 시준... 그동안 여행 다녀왔어. 할말 있는데...만나지 않을래?'

 

그때 들어온 문자메시지를 보고 인진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헤어진 남자친구의 문자를 받고 두근거리는 여자라...인진은 령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기다려 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마음을 애써 숨기지 않기로 한 인진이였다.

 

근데 문자메시지를 다시 한번 본 인진은 시준이 변했다는건 느꼈다. 5년동안 시준을 사귀면서 이렇게 긴 문자메시지를 받기도 처음이였거니와 '만나지 않을래? '는 분명 자신의 의견을 물어보는 물음표였다.

 

시준이 누군가의 의사를 물어볼만큼 예의가 있었던가?

 

인진은 시준이 뭔가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느꼈다. 어쩌면 예전과의 관계를 되돌릴수 있을지도 몰랐다.

인진은 슬쩍 박대리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박대리가 인진에게 열과 성의를 다하고 있지만..아직은 시준이 우위였다.

 

박대리에게 오늘은 선약이 있다고 말해놓고 인진은 시준과의 약속장소로 향했다.

 

시준은 약속장소로 다시 인진과 헤어졌던 그 생과일집으로 정했고, 인진은 약속시간 10분전에 딸랑거리는 문을 밀치며 안으로 들어갔다.

 

창가쪽으로 고개를 돌려 빈자리를 찾던 인진은 이미 와 있는 시준을 바라보았다.

분명 약속시간은 10분이나 남아있었고 항상 1시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시간씩 늦던 시준이 오늘은 10분 일찍 온 자신보다 더 일찍 창가쪽에 앉아있었던 것이다.

 

인진은 시준에게 발걸음을 옮길수록 가슴이 두근두근 댐을 느꼈다. 그 소리가 너무 커 시준에게 들릴까 내심 걱정도 되는 인진이였다. 하지만 인진은 애써 마음을 진정시켜며 시준 앞에 앉았다.

 

"일찍왔네..."

 

인진이 앉는것을 본 시준은 자신앞에 놓여져 있는 키위쥬스를 살짝 들어놓으며 말했다.

 

"먼저 시켰어..."

 

"응... 저도 키위쥬스요."

 

주문을 마친 인진은 시준을 바라보았다. 수척해져 있었다. 그는.... 항상 당당하던 그리고 꾸미기 좋아하던 시준은 그대로였다. 그대로 멋있었으며 그대로 당당해 보였다. 하지만 그의 당당한 눈빛속에서 불안해 하는 떨림을 느낀건 인진만의 착각이였을까?

 

"여행....다녀왔다구?...."

 

"응..."

 

"어디 아파???"

 

"날씨 참 좋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면 항상 시준은 날씨 타령을 했다. 그날 날씨가 맑으니 흐리니라는 말들로 대답을 회피하곤 했다. 그건 그들이 헤어진 그날도 마찮가지였다. 그날도 시준은 날씨가 맑다는 말로 인진의 대답을 피했었음을 기억해내었다.

 

"나 여행가서 생각이란거 참 많이 했어..."

 

"............."

 

무슨 생각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듣는 편이 훨씬 더 나을거 같아 인진은 물어보지않은채 앞에 놓인 키위쥬스잔을 잡았다.

 

"보통은 군대가면 생각이 많아진다던데...난 그게 좀 늦었을 뿐이지..항상 늦는거 같아. 깨달음엔....보낸후에야 느끼는걸 보면..."

 

'보낸후에야 느끼는걸 보면...'인진은 순간 숨이 멎는듯 했다. 자신의 얘기인가.... 아무말 없이 키위쥬스만 바라보고 있는 인진을 한번 힐끔 보던 시준은 말을 이었다.

 

"난 별로 변하지 않을꺼야..... 26년동안 그게 나이고  나의 버릇이고 내 삶이였으니깐.... 그래도 괜찮겠니?!"

 

"괜....괜찮다니?!...무얼 말하고 싶은거야?!"

 

"다시 사귀자고 말하고 있는거야!"

 

인진은 숨을 한번 고르게 내쉬었다. 시준의 다시 사귀자고 말하고 있다는 저 말이 나올때 까지 숨을 멎추고 있던 인진이였다.

사실 이렇게 시준이 나와주길 바랬는지도 몰랐다. 시준이 변하길 바란건 아니였으니깐 말이다.

 

"나도 생각이 필요해....."

 

사실 그 자리에서 그러자고 덜컥 얘기해 버릴까도 했지만 인진은 령후를 떠올렸다. 어찌됐든 지금 자신은 령후와 사귀는 사이였고.... 다시 시준과 시작하기에는 령후와 자신의 관계...그리고 시준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것 같았다.

 

"그래..너도 생각이 필요하겠지...."

 

"..............."

 

"그만 나가자... 너도 피곤할테고..나도 여행에서 바로 돌아와 널 만난거여서 ..좀 피곤하네..."

 

시준은 까칠해 보이는 자신의얼굴을 감싸쥐며 말했다. 여행에 바로 돌아와서 처음 인진을 만날만큼 간절했던걸까? 인진은 점점 시준에게 기대하는 자신을 느꼈다.

 

데려다 주겠다고 하는 시준에게 지금은 혼자있겠다고 말하고 인진은 지하철을 탔다. 사실 시준이 데려다 주겠다고 말했을때 인진은 앞에 있는 사람이 시준이 맞는건지 자신이 꿈이라도 꾸고 있는건지 볼이라도 꼬집어 보고 싶었다.

 

퇴근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이였는데도 지하철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인진은 지하철에 서서 사람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칭얼거리는 아이를 앉고 있는 아줌마 하며 뭐가 그리 즐거운지 속삭이는 여고생들과 피곤에 지친듯 기대어 잠들어 있는 샐러리맨 아저씨들....

 

다른시간과 공간에 놓인 사람들 같았다.

 

한참을 멍하니 잡념에 빠져있던 인진은 울리는 핸드폰을 받았다.

 

"네........"

 

"왜그렇게 기운이 없어요?! 어디 아파요?!"

 

령후였다.

 

"저 미안해요..지금 전화 받을상황이 아니라서...조금있다 연락해요..."

 

령후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인진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령후에게 미안한 감정일까? 사실 인진도 령후가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자신만을 오래 바라봐 준 령후가 고맙기도 했고, 사랑에 이끌려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인진을 이해해준 그였다.

 

하지만..지금 인진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두통이 밀려오는 인진이였다.

 

지친 모습으로 집에 들어온 인진의 모습을 본 진선은 인진에게 대화를 청했고, 인진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진선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주인진.... 너 아직도 시준에게 미련을 못버리는거야?!"

 

"..............그런거 같아...."

 

"그런거 같다니....나참.... 너같이 사랑에 매달려 질질 끌려다니는 여자 처음이야..알고있어?!"

 

"나도 내가 답답하다는것 정도는 알아....."

 

"객관적으로 시준이보다는 령후선배가 훨씬 더 나은건 알고 있어?!"

 

"..............."

 

대답 없는 인진을 보며 진선은 포옥 한숨이 나왔다. 남들이 봐도 아니고 친구인 자신이 봐도 시준은 더더욱 아니였다.

 

"우리 나이 26살이야...이제 슬슬 애인이 아닌 남편감으로 남자를 만날때도 되었다구...알고 있어?"

 

".................."

 

"가끔 나 너한테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너 착한척을 하는거야 ! 아님 정말 멍청한거야?!!"

 

가만히 앉아 발끝만 쳐다보고 있는 인진이 답답한지 진선은 벌컥 소리를 질러버렸다.

 

"아마 ...둘 다일껄?....."

 

인진은 남의 일 말하는 마냥... 그렇게 대답했다.

 

"이 답답아.... 도대체 시준이 뭐가 미련이 남는거야?! 나같으면 뒤도 안돌아보고 돌아설텐데 말야..내가 아무리 시준이 친구지만 그놈...정말 사람될려면 멀었다구!!"

 

"..........."

 

"이아가씨야... 인물 반반한거?! 그래...시준이 인물 반반한거야 나도 인정해! 하지만.... 우리 나이쯤 되면 성격이라든지 집안이라든지 그사람 경쟁력이 우선이잖아. 물론 시준이네 집이 잘살아서 그놈 그런 걱정 안해도 되겠지만 말야... 그래도 성격! 같이 살 성격이 그따위인데.... 그래도 미련이 남디??!"

 

"나도 알아.... 시준이 성격.... 너보다 내가 더 잘알아. .... 근데..... 머리로는 그런 생각 나도 안해보는거 아닌데.... 근데말야... 머리로는 아는데....행동으론 그게 안되....."

 

".................에이씨!"

 

진선은 속이 탔다. 냉장고 문을 열어 사다놓은 맥주캔을 하나 집어 벌컥 벌컥 마셨다. 진선이도 여자였다. 인진의 마음 모르는건 아니였다. 하지만... 곁에서 두고 지켜보자니 속이 타서 미칠지경인 진선이였다.

 

령후는 선약이 있다는 인진을 보내고 집으로 향했다. 퇴근시간이여서 그런지 차가 많이 밀려 벌컥 짜증이 나는 령후였다. 물론 퇴근시간에 차막히는 일이 한두번이겠냐 만은 왠지 기분이 우울해지는 령후였다.

 

령후가 다가갈수록 인진은 멀어져만 가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대놓고는 아니지만 령후가 원하는대로 인진은 곧잘 따라와 주었고 그런 인진이 약간은 못믿어웠지만 인진이 정리 될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던 령후였다. 하지만 자꾸 짜증이 나는건 어쩔수 없었다.

 

띠리리릭

 

령후는 핸드폰 소리에 플립을 열고 이어폰을 찾아 끼웠다.

 

"령후씨?!"

 

하이톤의 목소리.... 서경이였다. 한동안 연락없었던 서경이였다. 회사에서도 업무적인 일 이외에 령후를 모른척 애써 외면하던 서경이였다.

 

"무슨 일이죠?!"

 

가뜩이나 짜증이 난 령후는 서경의 목소리를 듣자 짜증이 배가 됨을 느꼈다. 서경이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것도 아니고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지금까지 령후가 이렇게 짜증을 내보긴 처음이였다. 령후에게 서경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쁜 여자였다.

 

"저한테 안좋은 감정이라도 있는건가요?! 찔리겠어요!"

 

라며 톡 쏘아 부치는 서경의 말이 아니였다 해도 령후는 자신이 과민하게 서경을 대한다는걸 알고 있었다.

 

"흠흠..아니예요...무슨일이예요?!"

 

목소리를 한층 누그러트린 령후의 목소리를 들고나서야 서경은 새초롬하게 말했다.

 

"예전에 봤던 그 바 알죠?! 술한잔 해요. 기다릴께요."

 

"..................."

 

아무 대답 없는 령후를 서경은 기다려 주었다. 평소같으면 령후의 대답을 기다릴 새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을 서경이였지만 문득 인진같으면 안그럴꺼란 생각에 아무말 없는 령후를 5분이 지나도록 전화도 끊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령후의 '알겠습니다.'라는 대답을 들어내고서야 서경은 전화를 끊었다.

 

서경은 령후가 부정의 대답을 할줄 알았다. 요 몇일 령후와 인진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는걸 서경은 이미 알고 있었다.

 

령후의 눈빛하나 행동하나에 인진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흐른다는걸...여자의 직감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였다.

 

당장에 인진을 찾아가 따질까 했던 서경이였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서경은 느긋히 어떻게 령후를 차지할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령후는 서경의 제안에 싫다고 말할수도 있었지만 오늘같은 날은 알콜이 필요한거 같아 서경의 제안에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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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점심은 맛있게 드셨나요?! ~밥먹고 온 땅콩 버터입니다.

오늘두 즐거운 하루 보내시구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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