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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몽골친구를 사귀다!

말고기매니아 |2009.05.07 17:10
조회 1,424 |추천 4

안녕하세요

톡을 즐겨보지만 써보지는 못한

17살 남자 입니다.

미국에서 사귀었던 몽골 친구가 기억이 나네요.

길거리를 가다 얼굴 동그란 사람이 있으면 그 친구 생각이 납니다.

 

 

때는 2004년 말

저는 미국에 갔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가게됬는데요

비행 10시간 정도 후

암내를 풍기는 렉스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미국에 계시던 가족분이 절 마중나오셨습니다.

아아 저는 배가 고팠던 터라 어서 집에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 렉스공항 에서 집까지 40분 정도 걸리더군요 ,.

배가 고파 아주 죽는줄알았슴다

집에 도착해보니

라틴사람들만 모여사는 약간 빈민촌2층짜리아파트?(거지는 아닌데 아주 못사는 서민..)였습니다.(2층인데 뭐라고 해야하나.. 가운데에 로비같은 마당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둘러싸인 아파트 )

뭐  이것도 경험이겠구나 스페인어나 배워야지 하는 마음으로 짐을집에다 풀고 이웃분들과 간단한 인사와 자기소개를하며 친해졌습니다.

라틴사람들은 열정적이라던데 정말 괜찮더라고요

근데 진짜 남자지만 저 마저 여자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깔끔한데

바퀴벌레에 지네에 달팽이에 쥐 등등 깨끗함과는 거리가 먼 생물들의 천국이였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사나 했더니

주인집 .. (매니저라고 부름)만 매우 잘살고 벌레도 없고 하더군요

흠 ..

집에서 적응을 하고 몇일뒤부터 저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동양인이 별로 없었던 그 학교는 라틴사람들로 넘쳤습니다.백인은 학교 그만 나갈때까지 2명정도 밖에 못봤음(선생들빼고)

학교도 대학교 만큼 크고 공장같았으며 사람이 엄청엄청엄청엄청엄청엄청x99999999999

많았습니다.

선생님들도 많았으며

학생부선생들도 많았고

학교앞의 잡상인도 많았습니다.(우리나라의 소풍때오는 그런분들)

과자나 루까스(소금,레몬향이나는가루,고춧가루를 섞어 핥아먹는 캐이상한 것)을 주로 팔았습니다.

코크나 세븐업 같은 탄산음료도 팔았고요.

학교에 매점이 있기는 하나 건강을 해치지 않는 식품만 판매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등교전 학교앞의 잡상인에게 구입을 하죠

학교에 다니는데

한국과는 많이 다르더군요

첫째로 7시 까지 등교,

둘째로 수업 하나가 1시간,

셋째로  대학생들처럼 강의실을 찾아다니는것,

넷째로 쉬는시간이 거의 쉬는시간이 아니라는것(학교가 무진장 커서 쉬는시간에 다른 강의실을 찾아가는데 시간을 다씀),

다섯째로 쉬는시간이 4분 이라는것,

여섯째로 점심시간, 뉴트션(아침식사)시간 이외에는 화장실 개방이 안된다는것

일곱째로 학기가 다 다르다는것(A,B,C 트랙으로 나뉘며 각자 개학시기가 다르고 방학시기도 다름)

여덜번째로 때리지 않고 방과후 수업으로 체벌 한다는점,

아홉번째로 학생부가 3개 있다는 것

열번째로 체육시간이 하루에 한시간은 들어있다는점

열한번째로 매일 시간표가 같다는것

등등등...............................

엄청 다르더라고요

무튼 저는 학교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혼자쓸쓸하게요 ㅜㅜ

동양인이 별로 없었던 터라 저를 신기해 하더군요 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어느날 멕시칸 놈들이 저를 보고 미친놈 미친놈 이러더군요

알고보니 '친노'더라고요

친노의 뜻은 중국놈 이런뜻인데

끝에다가는  꼬치노 까지 하는데

그뜻은 뭐냐면 '더러운놈' 이라는뜻이였습니다.

마늘냄새를 싫어해서 그런지 몰라도 다들 그러더군요 ..

그러면 지내들은 얼마나 깨끗하다고 ㅡㅡ

제가 여기서 라틴놈들을 밝혀볼까 합니다.

다그런것은 아니고 대부분

머리에 젤을 쳐 바르고 다니는데

젤을 쳐바르고 머리를 1주일 동안은 안깜는게 기본이고

머리에 이, 비듬이 깔렸으며

여자애들도 머리가 떡이져서

냄새가 납니다

그래도 이쁜애들도 좀 있지만 ... ㅋㅋㅋㅋㅋ

그리고 공부는 열라게 못하고

동양사람들 무시열라게 하면서

자기 부모들은 다 동양사람들이 하는 수퍼마켓이나 그런 곳에서

월급받으면서 일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튼 다닌지 얼마안되 학교전체에 알려지게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저를 보면 인사를 하였고(비웃듯이)

한국말을 알려달라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아그런데 애들이 발육이 얼마나 좋은지

가슴크기, 엉덩이크기,키

등이 장난 아니였습니다.

덕분에 눈은좀 즐거웠지만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학교를 다닌지 1개월

저는 키가큰 8학년짜리 (저는 6학년이였음)

동양인남자를 우연히 만나서 점심을같이먹게되었습니다.

다음은 그 대화입니다.

 

나      하이

 

동   하이

 

나   익스큐즈미 벗 얼유 코리안?

 

동   ^^: 노 아임 몽골리언...

 

나     아 아 아 징기스칸?

 

동       ^^: 예아 ㅎㅎ  얼유 코리안?

 

나  예스 아임 코리안 

 

동    왔츠 유어네임 ?

 

나       아임 제프리 왔츠 유얼스?

 

동        (기억이 안남)

 

나      나이스투 미트유

 

동         나이스투 미트유 투

 

이렇게 짧은 대화를 하고

계속 밥을 먹었습니다.

저는 영어를 못하고

그사람은 영어를 잘했기 때문에

대화가 잘 통하지 못했습니다.,

 

그뒤로 자주는 못봤는데

어느날 그 몽골사람이 다른 동양사람과 같이 있었습니다.

그 다른 동양사람은 한눈에 봐도 몽골남자아이이라는 것을 알수있을정도의 동그란 얼굴과

커다란 광대뼈, 작은 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쿠

애칭으로 바기라고 부르더라고요

저는 그때당시 저보다 작고 약한사람 괴롭히는게 일상이였습니다.

그래서바쿠란 아이를 엄청 괴롭혔습니다. (초반엔)

그래도 그아이는 전혀 화를 내지 않았고 오히려 저에게 친구가 되주었습니다.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고

밥도 같이먹고

축구도 같이하고

모든수업을 같이 들었습니다.

비록 말은 잘안통해도 ... ㅋㅋ

어느날 방과후 바쿠가 서투른 영어실력으로 자기 집에플스 3가 있다고 같이가자고했습니다.

이렇게 ...     hey jeffrey!

this me you go my me home?  I ps3.

다른 사람이였으면 못알아 들었을텐데 저는 영어를 못하기에 알아들었죠. 그리고 플스3는 그때 당시에 안나왔기에  웃으며 예스 했습니다./

가는길 ..

우리집과는 반대편이엿습니다.

그런데

가고있는데

왠 등치큰흑인2명과 멕시칸3명이 다가와서는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였습니다.

저는 돈을 요구 하는걸 알았죠

그때 당시 저는 가방에 비싼 게임 시디가 여러장 있었기에

더 겁에 질려있었죠

주머니를 뒤지더니

뒤적거리더군요

저는 순간적으로 주머니에서 버거킹 햄버거 무료쿠폰을 뺏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죠..

아이 해브 노 머니 벗아이해브 버거킹 쿠폰

그리고 흑인이 보더니

뻑!!!!!!!!1하면서

화내는겁니다

그리고는 하는말이

영어로는 기억이 안나지만

날짜가 지났잖아 빙시야

라고 한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는 때리려고 하더군요

저는 울먹거렸죠 ㅜㅜ

저는 그때 당시에 3학년도 안되는 체구를 가지고 있었기에

180 190의 체구를 가진 그들은  불쌍한지 그냥 갔죠

가면서 제친구 바쿠는 뻐커 뻐커 머더 뻐커 그러면서

엄지 손가락을 검지와 중지에 껴서 가는 그들을 향에 먹이더군요

그뒤 십여분간을 걸어간뒤

몽골인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에 도착했습니다.

그의 집을 들어가보니 우리집보다 좋더군요

그의 인상이 좋으신 친구의 아버지가 저를 환영해주었습니다.

문제의 플스 3를 보여달라고 한순간

저는 웃지도 울지도 ,,, 아무표현도 못했습니다.

얇은 플스 2있죠?

70005 ............

그래도 몽골놈이니깐 그럴수도 있겟다 하고는 게임을 같이 했습니다.

게임중에 친구의 아버지가 갑자기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

하고 묻는겁니다 .. 서툰한국말로요

저는 놀라면서

네 제이름은 제프린데요 한국말은 어떻게...?

하니 그분은 몽골 사실때 한국인 거주지역에 사셨다고 하셨습니다.

게임을 그만두고 그분과 한국어로 대화를했습니다.

그리고 몽골사실때 사진좀 보여주세요 했습니다.

알겠습니다 라고 하시더니 사진을 보여주시더군요

사진을 보니 대략 몽골인민군?몇천명?더되나  몇만명인가? ..

를 향해 연설하는 그분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분은 몽골군 장교 ...        사병도 아닌  부사관도 아닌 위관도 아닌 영관도 아닌 장군 급 이였습니다.

와와와오아아아오아아아와오아

저는 그때 당시 꿈이 장교였기때문에

궁금했던 질문을 갈겼습니다.

총은 뭐 쓰셨어요?, 에이케이 쏴보셨어요?

명령도 내려요?

탱크 타보셨어요?

등등등등 ....

나중에 한국와서 생각해보니

몽골의 경제력은 우리나라 70년대인데 장군급이나 되야 아들 미국 유학 시킬수 있겟구나....

몽골인들의 대화도 들으면서 ...(몽골말은 항상 이런식임 하추추따빠추추따추추따오띠따)      

 한시간쯤 되서야

저는 다시 집으로 갔습니다.

친절한 제 친구는 가는 길을 모르고 , 그 깡패들을 다시 만날 위험이 있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음)

 버스 노선을 가르켜 주고 버스비를 주며 타고 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몽골인을 다시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친구와 학교를 한달동안 더 다니면서 심심한 일상에 지쳐있을때

그친구의 생일이 되었습니다.

몽골인 아파트의 모든 사람들과 큰공원으로 갔습니다

저 혼자 한국인 이였기에

제 친구의 아버지의 통역을 통해 의사소통을 했습니다.

집으로 오는길 그들은 단체로 지갑과 가방을 도난당했습니다.

저는 나쁜놈 이였기에 짜증을 내며 나 피곤하다고 빨리 집에가자고 했죠..

그들은 전혀 화를 내지않으며 곧 갈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집에 왔죠.

얼마뒤 방학을 했습니다.

저는 한국에 잠시 들렸고

다시 미국으로 왔습니다.

방학동안에는 그친구와 연락 한번 못했고

2개월동안의 긴방학이 끝나고

그친구와 학교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못가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셔

저는 미국 생활을 접고 완전히 한국으로 와버렸습니다.

 

지금도 지나가다 얼굴 동그란 사람을 보거나

삥뜯는 현장을 보면 그친구 생각이 나곤 합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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