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와 남자의 일생
근래에 들어서 여성의 힘이 강해졌고 앞으로도 계속 강해질 것이다. 한 마디로 여성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영국의 BBC방송은 추후 20년 후에는 여성이 지구를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 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남성 입장에서는 좀 기분 나쁘게 들릴 지도 모르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그만큼 여성의 책임이 강해지며 남성의 책임이 줄어드는 현상도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남성이 약간 편해질 수도 있는 시대인 것이다.
인류학적으로 보면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시대는 참으로 특이한 현상에 속한다.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는 20만년의 역사를 갖는다. 20만 년의 역사 속에서 남성이 전면에 나타난 시대는 만 년도 채 안 된다. 즉, 농경사회가 시작되면서 남성시대가 도래했던 것이다. 그 이전의 19만 년은 여성시대인 모계사회였다. 알고 보면 남성이 큰소리치며 사는 이상한 역사 속에서 우리가 사는 것이며,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는 다시 원래의 여성시대로 돌아갈 전망이다.
긴 여성시대에 대한 반역의 역사서가 바로 신화일 지도 모른다. 모든 신화는 남성위주로 쓰여 있다. 구약성서가 그렇고 그리스신화도 마찬가지다. 인도나 중국, 또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여성이 신화의 주체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항상 힘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 힘은 남성을 상징한다. 힘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남성이 창조한 관념이 신화로 엮어져 배경역할을 하고 있다.
철저하게 여성을 약화시키고 비하하며 남성의 지배 아래에 두려는 독선적 관념을 담은 대표적 신화가 바로 창세기다. 아담은 남성이고 이브는 여성이다. 남자가 먼저 세상에 태어났다. 여자는 나중에 태어났으며 그 출생의 근거가 남자의 갈비뼈다. 여자가 태어난 이유도 남자인 이브가 외로웠기 때문이다. 일종을 기쁨조로 여성이 전락된 느낌이다.
출생부터 시작한 여성비하는 계속 이어진다. 죄악의 원조도 역시 금단의 과실을 따 먹은 여자로부터 시작된다. 남자는 그저 여자의 꼬임에 넘어갔을 뿐이고, 그마저도 남자가 여자보다 더욱 선했기 때문에 먹던 사과조각이 목에 탁 걸렸다. 여자는 꼴깍 다 삼켰다. 남자는 여자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난다. 확실하게 남자는 여성에 의하여 만들어진 피해자다. 구약성서는 이 대목으로 여자의 입을 콱 틀어막아 버린다. 이 모든 신화가 남자가 여성을 꼼짝 못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허구라면 실로 경악할 노릇이다.
앞으로 여성시대가 도래하여 남성을 확실히 틀어잡으려는 시도를 여성들이 한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신화에서 남자와 여성의 위치만 뒤바꾸면 된다. 우선 하나님을 여성화 시킨다. 하나님 아버지가 아니라, 하나님 어머니다. 아담이 여자고 이브는 남자다. 아브라함이나 모세도 역시 여자다. 모든 선지자가 여자이며 메시아도 역시 여자다. 그런 비슷한 경우를 인도에 가면 볼 수 있다. 힌두교 사원에 가면 수많은 신 중에서 가장 추앙받는 신이 바로 여성인 시바여신이다.
남성의 근육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면 남성우월주의는 끝이다. 남성의 굵은 팔뚝을 대신하여 거대한 기계가 살짝살짝 누르는 컴퓨터 자판에 의하여 움직인다면 더 이상 남성의 힘은 필요치 않다. 지식도 역시 컴퓨터에 저장되어 활용된다. 전쟁도 책상에 앉아서 편하게 수행할 수 있다. 실생활에 있어서 남자가 필요한 이유가 뭐란 말인가? 오직 정서적 이유나 원초적 남녀관계에서만 남자가 필요할 수도 있다. 앞으로는 여성들이 출퇴근하며 돈을 벌어온다. 주방과 안방을 오가며 집안살림하거나 자녀교육에 매달리는 남성이 많아진다.
잔소리는 남자들이 한다. 아침이면 회사에 잘 다녀오라고 남자가 아기를 안고 문 앞에서 손을 흔든다. 저녁이면 일찍 집에 들어와서 저녁 먹으라고 남자가 전화를 한다. 사업상 마신 술에 취하여 들어온 아내를 위하여 아침이면 속풀이 국물이라도 끓여 바친다.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매일 지내다보니 아이들에게는 어머니 보다는 아버지가 더욱 강하게 각인된다. 지금까지는 죽을 때까지 어머니의 사랑을 잊지 못해서 불렀던 자식의 노래가 뒤바뀌어 아버지의 사랑으로 불려진다.
드디어 “남자의 일생”이다.
자식교육을 위하여 아내마저도 외국에 보낸 “기러기아빠”들의 눈물이 남성시대를 예언한다. 평생 돈을 벌어오던 아내가 별안간 죽었다. 집안에 들어앉아 살림만 하던 남편은 졸지에 밖으로 나가서 돈도 벌어 와야 한다. 자식들은 배고프다고 주렁주렁 매달린다. 아내의 그늘에 가려졌던 남편은 방황하게 된다. 허겁지겁 막일판을 돌아다니며 쥐꼬리만한 돈을 벌어오는 아버지의 손에는 자식에게 먹일 내일 반찬이 들려져 있다. 자식들의 눈에 아버지의 가엾은 모습이 비쳐진다.
그러면 유행가 가사부터 뒤바뀐다.
비 내리는 고모령이라는 노래의 첫 마디가 “어머님의 손을 놓고 떠나올 적에”라고 시작하지 않고 “아버지의 손을 놓고 떠나올 적에”라고 불려진다. 나훈아의 “어매”라는 노래가 “아비”라는 제목으로 바뀐다. 군에 입대한 아들은 밤마다 불쌍했던 아버지만 잠자리에서 떠오른다. 자식은 죽을 때에 어머니를 그리워하기 보다는 아버지를 외친다.
아, 이제부터는 남자의 일생시대다.
“남자이기 때문에......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아 참아야 한다는...... 눈물로 보냅니다. 남자의 일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