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과 피터 팬은 어디로 갔을까?
어린 시절, 친구들은 악의 무리와 맞서 싸우는 슈퍼맨, 뽀빠이, 로봇 태권V, 마징가 Z, 우주소년 아톰, 로빈 훗, 쾌걸 조로, 마린보이, 원탁의 기사 아더 왕, 다윗, 600만 불의 사나이, 미래소년 코난, 스파이더맨, 배트 맨 등 만화와 영화 등을 즐겨 보았다. 초등학교 시절, 빨간 보자기를 목에 걸치고, 높은 담장 위에 올라가 슈퍼맨 흉내를 내어 뛰어내리다가 다리를 다친 친구들도 있었다.
언제나 TV속에 슈퍼맨은 악으로부터 정의를 지켜내면서도, 자신의 사랑을 지켰다. 당시 어린 이들은 그런 멋진 슈퍼맨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어린이들이 자라나서, 이제는 어른이 되어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이미 그들은 결혼을 해서, 아이도 낳고, 그 아이들이 중.고등학교 혹은 대학생이 된 자녀를 둔 학부모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직장에서 상사의 눈치를 보면서도, 열심히 일을 하여, 성공과 승진을 거듭하여 간부직에 올랐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친구들은 파도와 같이 계속 밀려오는 바쁜 일상과 현실을 살아오면서, 혹시 슈퍼맨은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아니, 현실에 비굴하게 굴복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보다는 불법과 편법에 길들여져서, 그들은 정직한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현실을 모르는 바보들이라고 비웃고 있지는 않을까? 술좌석에서 후배들에게 각박한 현실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지혜는 눈치와 요령 그리고 부정한 현실에 눈감고 외면하면서,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라고 부끄러운지 모르고 자랑삼아 떠들고 있지는 않을까?
그러면서도 정작 집에 돌아가면, 자녀들이 자신을 속이며 거짓말을 하지 못하도록, 남을 속이는 짓은 정직하지 못한 나쁜 행동이라며 훈계하지는 않았을까? 자신은 학창시절에 공부를 잘했다며, 자녀들 앞에서 자랑하면서도 미국의 링컨 대통령의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of the people"란 민주적 정신도 모르고, 시인 김수영의 <폭포>에서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는 정의의 신념도 모르며, 일껏 산수문제 하나에 목숨 걸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슈퍼맨과 피터 팬은 어디로 갔을까? 과거의 TV나 영화 혹은 추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 어찌하여,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것조차 귀찮게 여기게 되었을까? 어찌하여, 진실을 말하는 사람조차 외면하고, 욕을 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되었을까? 친구들에게 전화하여,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놀러가서 실컷 마시고 오자며, 부지런히 연락을 하면서도 잠깐 진실을 살피는 시간은 없다는 말인가?
모두들 누군가 부르면 달려와 줄 타잔이나 슈퍼맨을 기다리면서도, 정작 자신은 백설 공주나 신데렐라 혹은 키다리 아저씨의 소녀와 같이 되어버린 무늬만 남자인 친구들이, 여자들 앞에서는 술을 마시며 호기를 부리거나, 로맨틱한 슈퍼맨이나 피터 팬이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리운 것은 그들의 가슴에 숨어 있는 슈퍼맨과 피터 팬 때문일 것이다.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나타날 슈퍼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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