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우주가 아름다운 건 네가 있기 때문이야
“오빠, 서둘러! 유진이 가겠다!”
“그렇게 급하면 너 먼저... 헉!”
“형, 왜... 으악!”
한과 온은 현관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윤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 했다.
“빨리 가자니까!”
“유, 윤아... 너 지금...”
“그 꼴이 뭐냐?”
눈치없이 마지막 말을 해 버린 온에게 윤의 가차없는 응징이 퍼부어졌다.
한은 마음속으로 온을 애도하고 억지웃음을 지어보였다.
“오늘 의상이 참 화려하구나.”
“그래?”
‘아무리 오빠고 너를 사랑한다마는 그 얼굴은 참 봐주기 어렵단다.’
한은 기쁜 듯 웃는 윤의 얼굴을 슬쩍 외면했다.
밤에 나돌아 다니다가는 귀신으로 오인받기 딱 좋은 하얀 얼굴에 빨간 입술.
조명 아래서 봐도 심장이 떨리는데 밤거리에서 마주치면
백이면 백 혼비백산 도망치고 말 것이다.
“유진이 가니까 좀 신경썼어. 오빠, 내 다리 어때? 괜찮아 보여?”
“저기, 윤아...”
“왜? 안 어울려?”
“아, 아니. 우리 윤이야 원래 바탕이 되니까 예쁘지. 예쁜데...”
“근데?”
“그 스타킹이 좀 튄다. 치마랑 안 어울리는 거 같아.”
“그래?”
윤은 한의 말에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 보았다.
무릎 위 30센티의 초미니 스커트에 촘촘한 그물망 검은색 망사 스타킹.
“책보고 그대로 입었는데... 유행스타일이래.”
"치마 색이 빨강으로 강렬하니까 스타킹은 그냥 무난한 게 좋을 거 같아.”
“그런가? 나 갈아입고 올게.”
“그리고 윤아...”
“왜 또?”
“의상이나 화장 중 하나만 포인트가 있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입술은 그냥 분홍 립글로스만 발라보는 게 어때?"
"너무 평범하잖아. 두 달이나 못 볼 건데 오늘은 최대한 예쁘게 보이고 싶단 말야.”
“남자들은 반짝거리는 분홍색 입술을 제일 좋아하거든.”
“그래? 알았어. 나 옷 갈아입고 올게.”
“천천히 하고 와. 입술 깨끗하게 지우고.”
쿵쿵거리며 이층 계단을 뛰어올라가는 윤의 뒷모습을 확인한 후에야
한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꿈에 볼까 두렵다.”
“형...”
무참히 밟혀 쓰러진 온이 애절한 눈동자로 한을 올려다보았다.
“존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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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울지 말자 다짐했는데 유진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윤은 급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울면 안 돼. 유진이가 아주 가는 것도 아닌데... 울면 유진이가 곤란할 거야.
오빠들은 평생 놀릴 거고. 절대 울지 말자.’
“오늘 예쁘다.”
유진의 말에 윤은 애써 웃어 보였다.
“가서 화성 여자랑 바람피면 안 돼.”
“화성여자?”
유진은 자신이 아는 화성의 여자들을 떠올리고는 이내 몸서리를 쳤다.
“윤아...”
“응?”
“이거 하나만은 믿어도 돼. 나, 절대! 절대로 바람같은 거 안 피워.”
“응. 믿을께.”
마냥 기쁜 윤이었다.
둘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두 손을 꼭 잡고 있는 동안
세진과 한, 그리고 온은 심각한 얼굴로 소곤거렸다.
“그게 정말이야?”
“그래. 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
“큰일이네. 유진이가 그런 줄은 몰랐다.”
“감동이야... 하지만 유진이가 너무 안 됐네.”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어쩔 수 없지만 정말로 말리고 싶어.”
“그러게...”
“하아. 정말 도리가 없군.”
“지금이라도 못 가게 묶어 놓을까?”
“그런 걸로 해결될 거라면 내가 벌써 시도했을 거야.”
“하긴... 참, 뭐라고 할 수 없는 문제네.”
수군거리는 세 명을 완전히 무시한 유진과 윤은 둘만의 세계에서 희희낙락이었다.
“이거 뭔지 알겠느냐?”
“어? 이거...”
윤은 목에 걸린 목걸이를 유진의 손에 들린 것과 비교해 보았다.
“깨졌네...”
유진이 가지고 있는 목걸이는 한 귀퉁이가 깨져 있었다.
“설마, 그럼 이게?”
윤은 유진과 목걸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날 왜 던진 거냐? 이거 맞고 얼마나 아팠는데.”
“네가 주웠었어?”
“응, 목걸이가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들으니 네가 밤새 찾았다고 하더구나.
깨진 걸 주기는 그렇고 해서 그 가게를 찾아갔더니 다행히 하나 더 있어서 사 왔었다.”
“유진아... 그렇게... 미안해...”
“괜찮다. 덕분에 너랑 나, 이렇게 하나씩 갖게 되었지 않느냐.”
“응. 그럼 우리 이걸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
“울지 마라.”
“누, 누가 운다고 그래?”
“헉, 너 눈물이 검은색이다.”
“보지 마!”
윤은 뒤돌아서서 급하게 눈가를 닦아냈다.
그 바람에 마스카라가 번져서 눈 주위에 커다란 원이 생겼다.
차마 말을 못 한 유진은 얼굴을 만지는 척 손가락으로 닦아냈지만
지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범위가 확대되고 말았다.
유진은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그럼... 나 간다.”
“이럴 때는 다녀올게, 라고 하는 거야.”
“응.”
하지만 차마 그 말만은 할 수 없는 유진이었다.
‘안녕. 안녕... 윤아... 행복해야 한다.’
우주선에 올라가던 유진은 뒤를 돌아보았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세진, 착잡한 얼굴로 유진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한과 온이 보였다.
‘고마왔습니다. 그 동안 너무... 즐거웠습니다.
이 기억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삶을 누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는 마시길. 윤이를 잘 부탁합니다.’
그 가운데 팔이 부서져라 계속 손을 흔드는 윤이 있었다.
팬더 눈을 한 윤을 마지막으로 한참 바라본 유진이 조그맣게 속삭였다.
“아프지 말고 슬프지 말고 늘 건강하게...
나같은 건 금방 잊고 지금처럼 밝게 살아줘. 그러기 위해서 내가 가는 거니까...”
문이 닫히는 순간 유진은 윤을 향해 소리쳤다.
“사랑한다! 윤아!”
“저, 저게!”
입이 찢어져라 웃으면서도 윤은 눈을 부라려 유진에게 타박을 주었다.
“얼른 가버려! 바보!”
“사랑한다...”
다시 한번 되뇐 유진은 아레스의 문이 내려와
그들의 사이를 갈라놓을 때까지 윤을 바라보았다.
윤 역시 눈을 떼지 않고 유진의 모습을 조그만 창 너머로 계속 찾았다.
둘은 그렇게 눈을 맞추고 끊임없이 이별을 아쉬워했다.
이것이 영원한 이별이 되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손을 흔드는 윤의 모습에
유진의 마음이 찡하게 아려왔다.
서서히 우주선이 이륙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까지 윤을 바라보던 유진은 윤이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한번 나온 눈물은 그칠 줄을 모르고 계속 흘러나왔다.
유진은 아무도 없는 혼자라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끼며 목놓아 울었다.
텅 빈 우주선 안에 유진의 울음소리만이 쓸쓸하게 메아리쳤다.
*
“그만 울어, 윤아.”
“응. 근데 눈물이 안 그쳐. 오빠, 유진이 돌아오겠지? 두 달이면 우리 만나게 되겠지?”
“그럼. 자, 좀 닦아라.”
한이 건네준 손수건을 붙잡고 윤은 다시 흐느껴 울었다.
“오빠, 근데 나 왜 이렇게 슬프지? 마음 한 가운데가 뻥 뚫린 거 같아.
유진인 돌아올 건데... 자꾸 슬퍼져. 불안하고 무서워...”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그러니까... ”
입술을 깨물며 한은 품안의 약병을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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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별인가? 아님 저건가?”
유진이 간 뒤로 하루도 빠짐없이 밤하늘의 별을 관찰하는 윤이었다.
윤의 뒤에서 한과 온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달 옆의 빨간 게 화성이다.”
“그래? 그럼 유진인 지금 저기 있는 거야?”
윤은 한 쪽 눈을 감고 손가락을 말아 화성을 잡았다.
“지금 너 내 손 안에 있는 거 알아? 바람피우고 있으면 요렇게 눌러버릴 테다. 후후후...”
날이 새 별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혼자서 유진에게 하루 일을 보고하면서 윤은 웃고 울었다.
“결국은 미진이랑 크게 싸웠어. 그래도 미진이랑은 나중에 화해할 거니까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빨리 돌아와.”
속삭이던 윤은 슬픈 눈으로 미소지었다.
“이제 한달 남았으니까... 개강하기 전에는 돌아와야 돼. 알았지?”
윤의 곁에는 유진이 간 후 하루하루 지워나간 달력이 있었다.
하루를 보내고 달력의 날짜에 가위표를 그리는 것이 요즘 윤의 유일한 낙이었다.
“보고 싶다... 유진아... ”
기다림은 지루한 일이다.
그러나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라고 윤은 생각했다.
돌아올 사람이 있고 돌아올 날도 정해져 있다.
그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충실해진다.
"참 신기한 일이야.“
“뭐가?”
“저렇게 넓은 우주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다는 거... 신기하지 않아?
우주가 뭔지, 얼마나 넓은지도 모르는데 왠지 친근하게 느껴져.”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샘이 감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하잖아.
네게 우주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건 너를 길들인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일 거야.”
“오빠가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눈을 크게 뜬 윤에게 한은 한숨을 쉬어보였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나도 한때는 문학소년이었다고.”
“오빠... 진짜 안 어울려. 포기하길 잘 한 것 같아.”
“그 말은 맞아. 형이 그러는 건 진짜 엽기라고.”
푸하하 웃으며 끼어든 온에게 윤은 쯧쯔 혀를 찼다.
아니나다를까 한의 눈꼬리가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켜 올라갔다.
“뭐라고?”
“...나 아무 말도 안 했어, 형.”
“이리 와. 요즘 네가 매가 그리운 모양인데...”
“형! 살려줘! 형! 폭력 반대! 윤아! 도와줘!”
“미안하지만 오빠, 그냥 맞아라. 내 능력밖의 일이라서... ”
고개를 돌린 윤은 뒤에서 벌어지는 서열세우기를 빙자한 일방적인 구타에서
고개를 돌리고 다시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반짝이는 별들이 하나하나 유진의 얼굴로 보였다.
일상을 비일상으로 만든다는 점이 사랑의 위대한 점인지도 모른다고 윤은 수줍게 생각했다.
목적도 의미도 없이 보냈던 날들이 유진과 함께 있을 때는 마냥 즐겁기만 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불을 켜듯 하루하루 반짝반짝 빛났던 날들.
“유진아... 네가 없는 날들도 언젠가는 추억이 되는 때가 오겠지?
내 추억은 전부 다 너로 채워지면 좋겠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게. ......빨리 와. 보고 싶어... ”
윤은 목걸이를 꼭 쥐었다.
체온이 전해진 목걸이는 마치 사람처럼 따스했다.
유진에게 마음을 전하려는 듯이 윤은 목걸이에 한없는 애정을 담아 살며시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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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화성이 끝났네요. ^^
헉, 돌날아온다... 잠깐만요!!!
이걸로 끝이냐고 물으신다면... 네, 끝입니다. 끝인데요,
사실은 2부가 있어요.
아무래도 얘네들을 헤어지게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하지 않더군요. ㅠ.ㅠ
감기로 누워있을 때 뒷이야기를 붙이는 게 어떨까 생각했었어요.
그러고나니 그 뒤의 이야기가 줄줄 흘러나오더군요. ^^;;
어지간히 만나고 싶었던가 봐요.
그동안 봐주신 여러분께 너무 감사드려요.
긴 이야기 끌어오면서 게으른 제가 이렇게 결말까지 볼 수 있었던 건
격려해 주시는 여러분들이 계셨기 때문이랍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께요.
희동이마을님, 제일 처음 리플주시고 격려해 주셨던 거 잊지 않고 있답니다.
유진이 돌아오길 바라신다니 보내드려얍죠. ^^
비야님, 사람 하나하나 다 다른 모양과 색의 사랑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유진이의 사랑은 자신을 희생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는 것이었지요.
처음 사랑을 하게 된 외계인이라 순수하게 상대만을 생각해 줄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자갸님, 자갸님도 정말 오랜만입니다. ^^
우려대로 돼버렸습니다. 절 죽여주셔요. 철푸덕~
하지만 2부가 있으니까요. ^^ 계속 봐 주실거죠?
윤호사랑해님, 결말을 향해 가고 있을 때 힘을 주신 볓분이 계십니다.
늘어지려는 마음을 다잡게 해주신 건 님들의 리플이었답니다. ^^
안가면님, 신인등장! 짜잔~! 그런데 끝나버렸네요. ^^
2부에서는 더 자주 뵙길 바랄께요. 거기선 둘도 행복해지겠죠? ^^
아오이님, ㅋㅋㅋㅋ 2부는 찬욱이와의 사랑이 될지도요.-_-
사실은 찬욱이도 토성에서 왔다던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