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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사이야기 episode3 악연의 시[惡緣의 詩]7

전선인간 |2004.08.02 06:36
조회 1,876 |추천 0

// 날씨가 많이 무덥죠? 벌써 8월이네요 다들 힘내시구요.

남형사 이야기 에피소드3 악연의 시 완결편을 드디어 올립니다. 흑흑 지금 새벽 6시30분..^^

잠이 와서 끝부분이 희미해진 것도 같은데 일단 올리고 수정을 보겠습니다.

참 그리고 남형사 이야기의 에피소드 부분전편 중에 김 도형이 범인에 대해 한말중

95년 고등학교 3학년을 94년 고등학교 2학년 으로 정정합니다. 시간상으로 그게 맞아서요^^

 

아울러 제가 아무래도 남형사이야기등 약간은 무거운 스토리를 진행하다보니

하나만 진행할려다 보니 영 머리가 안돌아가는 것같아서 8월 한달간은  틈틈히

아주 킬링타임용으로  쉬어가면서 적을 만한 뱀파이어에 관련된 환타지 비스무리한 것을 올려볼까도 생각중입니다.^^ 그런데 그런걸 올려도 될지는 모르겠네요..ㅋㅋㅋㅋ

암튼 좋은 한 주 되세요

 

 

남형사이야기 episode3 악연의 시[惡緣의 詩]7

 

 

 

2004년 6월 25일 오전 10시 공소시효 시간을 7시간 남겨놓은

영등포 경찰서의 유리대문 위로 여전히 초여름의 장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김 경장 어떻게 되었어? 알아봤어?”


“네! 당근이죠. 제가 누구예요? 영등포 경찰서의 빌 게이츠 김 경우 아닙니까.

이거보이시죠? 서울지방법원 가정지원 95년 개명신청 인명 데이터베이스 부인데요.

여기 154234번 라인보세요.

이게 바로 성 귀대라는 19세 남자가 개명신청을 한 기록 이다 이겁니다.“


김 경장은 LCD 모니터를 자신의 뒤 쪽에서 바라보고 있던 남 형사의 쪽으로

살짝 돌려주었다.

모니터를 통해 출력된 화면의 154234번 라인에 마우스 커서가

성 귀대라는 이름 앞에서 계속 해서 깜빡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범인이니 잡을 테면 잡아보라는 듯이........


“그래 이 썩을 놈의 자식 여기 이렇게 숨어 있었구나!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자신을 버리고 숨어있는 다고 네 죄 마저 숨겨질 것 같애.“


남 형사는 생각했다. 비록 단란주점의 미란의 말로 인해 귀대라는 인물이

왜 그렇게 삐뚤어져야만 했는지 십분 이해를 하고 그 역시 가슴에 상처를

받은 안타까운 사람이라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아픔 때문에 타인에게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기고

이름마저 개명한 채 마치 아무 일도 없이 철저히 숨어서 살아가는

이 뻔뻔한 인간을 그는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남 형사는 꼭 그를

법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채연의 앞에 무릎 꿇여 용서를 빌게 하고 싶었다.


“어디보자 그러니까 여기에 있는 이 연락처와 주소, 이름이 성 귀대

이 자식의 현재 정확한 정보라는 거지?“


“어디 잠시만요. 이 데이터가 오래된 것이라 정보가 변경된 걸 수도 있거든요

여기 개명신청 주민번호와 이름으로 서울시 인명부 데이터를 조회해 볼께요”


김 경우 경장은 키보드와 마우스를 통해 몇 번의 검색 조건을 입력한 후

그가 현재 다행스럽게도 영등포 경찰서의 관내인 당산1동에 살고 있는 것을

확인 하였다.


“선배님 여기요. 지금 현재 주소지와 연락처입니다.”


“어디보자 그러니까 당산 1동에 휴대폰 번호가 010-4442-1090 이라 이거지”


남 형사는 김 경장이 보여주는 모니터의 화면을 보며 형사수첩을 꺼내

귀대의 현재 주소지와 연락처를 꼼꼼히 기입하기 시작하였다.


“어 선배님? 오른 손 등 벌써 다 나았어요?

노친네가 회복력이 상당하신데요. 이야 정말 흉터하나 없이 깨끗하네”


“어? 이거? 글쎄 나도 빨리 안 나을 줄 알았는데 머 금방 낫더라구.

김 경장이 붕대를 감아줘서 그런가?“


“하하 하긴 제가 또 마음의 상처까지 감싸 주는 영등포 경찰서의 대일 밴드

김 경우 아닙니까?

근데 이거 선배님 손등에 상처를 입힌 그 벽을 폭행치사 혐의로 집어 넣을려고 했는데

안되겠네요?“


“하하 자식도 농담하고는 왜 그래 집어넣지? 왜 안 집어넣어?”


“상처가 사라졌잖아요. 흉터도 없고 그럼 뭐 아무 증거도 없는 데 무슨 수로

그 녀석을 집어넣겠어요?“


“뭐라고? 왜 증거가 없어? 증인도 있잖아. 너?”


남 형사는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라도 든 듯 짐짓 얼굴을 찡그리며 김 경장에게

되물었다.


“어 제가 선배님이 벽면 칠 때 옆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또 저는

객관성을 가질 수 없는 증인이잖아요.

그렇다고 벽한테 자백을 받을 수 도 없고요.“

“흉터도 객관성을 가질 증인도 없다면? 내가 아무리 상처를 입어도

그리고 그 후에 상황적 증거가 있다고 해도 법적효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거야?

그래서 지금 그 벽을 집어넣을 수 없다는 거야?“


남 형사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김 경장은 잠시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는 선배 형사가 칭얼대는 것 뿐이라 생각하고 웃으며 말을 꺼내어 놓았다.


“아 참 선배도 알았어요. 집어 넣을께요. 제가 확실히 구속시켜 드릴께요

내 오늘 이 놈의 벽을 강압수사를 해서라도 자백을 꼭 받을 테니

걱정 마세요. 선배도 참 어린애처럼 말야.“


“자백밖에는 없다는 말이지 자백밖에는

이봐! 김 경장 나랑 좀 같이 가지“


남 형사는 자신의 책상위에 놓여있는 소형 녹음기를 주머니에 넣은 후

김 경장의 어깨를 툭 하고 쳤다.


그는 영문도 모르는 채 선배 형사의 권유에 따라 함께 순찰 차량으로

걸어갔고 여느 때처럼 운전석의 문을 열었다.


“오늘은 내가 운전하지!”


남 형사는 그랬다. 지금 그의 심장은 불안감으로 가득차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딱히 어딘가로 달려갈 때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소시효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이제 겨우 찾게 된

소녀의 꿈과 인생을 짓밟은 파렴치한에게 어쩌면 그 어떤 벌도 주지도

그 어떤 용서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도무지 자리에 앉아 있을 수 가 없었다.


그날따라 잘 맞지 않는 자동차 시동키를 몇 번이나 핸들아래의 시동부위에

넣기를 시도하다 운전석의 시트에 시동키를 던지고 크게 욕설을 퍼부었다.


“시발 개 머 같은 자동차 꼭 꽉 맞아야만 들어 가냐고! 에이 시발!”


“빠아앙!”


무엇 때문인지 화가 난 남 형사는 자동차의 클락숀을 마치 자신의 막힌

심장의 답답함이라도 뚫어야하는 듯 크게 울려대었고

김 경장은 그런 남 형사를 쳐다보다 살며시 자동차 키를 주어

운전석의 시동부위에 한번에 쑥 넣었다.


“에이 선배도 그렇게 강제적으로 하면 되나요?

그냥 순리대로 부드럽게 넣으면 이렇게 잘 되는 걸요.“


“새끼 그래 니 똥 칼라다.

그렇지만 오늘만큼은 강제로라도 꼭 넣어야한다고 꼭 강제로라도.......“


“네?”


알 수 없는 혼자 말을 해대며 남 형사는 자동차의 시동을 건 후

영등포 백화점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지금 어디로 가냐는 김 경장의 몇 번의 질문에 평소와 다른

짜증만을 내며 그저 관내 구역을 몇 번 빙빙 돌 뿐이었다.


한 네 번 정도 관내 구역을 돌았을 무렵

어딘가에 화재가 발생했는지 순찰차의 옆으로 소방차 두 대가 싸이렌을

울리며 지나갔다.


“어디 불났나 보네요?”


“.........”


“그러고 보면 소방 공무원들도 참 열심이라니까요. 불길이 크든 작든

불길이 잡히던 진화를 못하던 간에 늘 저렇게 출동 하잖아요“


오늘따라 너무나 무겁고 조용한 남 형사의 분위기 때문인지 김 경장은

계속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꺼내었다.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멀리 들릴 무렵 남 형사가 조용히 말을 건네었다.


“그래. 맞아. 잡던 못 잡던 간에 출동은 해야겠지. 그게 최선이겠지.

김 경장 거기 전화기 좀 줘봐“


“네? 아 네”


남 형사는 폴더 형 휴대폰의 폴더를 연 후 전화번호를 찍는 숫자판의 번호를

하나하나 기도라도 하듯 간절하게 꾸욱 꾸욱 누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긴 통화음이 지난 후에 저쪽 편에서 저음의 아주 예의바른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저 영등포 경찰서 강력2반 형사 남 형우 라고 합니다.”


“.........”


“듣고 계시나요?”


“네. 말씀 하시죠?


한마디 한마디가 오갈 때마다 남형사의 입술은 무언가를 잔뜩 참으면서

말하는 모양 꾹 꾹 다물어 졌다 겨우 벌어졌고 휴대폰을 쥔 남형사의

오른쪽 손아귀에서는 끈적한 땀방울들이 맺혀 있었다.


“10년 전의 일 기억하십니까?”


“.........”


“흠! 흠! 아시죠? 지은 죄로부터 도망갈 수 는 있어도 사람의 마음으로부터는

도망 갈 수 없다는 것을?“


“........”


“듣고 계시죠? 귀가 말들을 거부한다면 가슴으로라도 들으셔야합니다.”


“저........ 저기 성함이 어떻게 되신다고요?”


“네 영등포 경찰서 강력2반 형사 남 형 우 입니다.”


남 형사는 일부러 강력2반 형사라는 칭호를 더욱 크게 소리 내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무언의 압력이라도 주려는 듯........


“네에. 남 형사님. 마침 제가 비번이네요.

여기 이 쪽으로 오시겠습니까? 지금 당산 성당입니다.“


전화 반대편의 남자는 남 형사와의 통화에 약간은 놀라고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지만 전체적으로는 너무나 차분하고 매너 있는 목소리로 응대 하였다.



“성당이라......... 뒤 늦은 참회라도 하는 건가?

하늘에 대한 용서도 좋지만

인간에게 지은 죄는 인간에게

용서를 먼저  구해야 하는 게 아닌가 쯥“


당산 성당의 주차장에 차를 대며 남 형사는 혼자 말을 되뇌었다.

초여름의 더운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차량의 본네트 위로 떨어지는

장미비의 리듬소리 때문인지 김 경장은 조수석에서 선잠을 자고 있었다.


“이봐 김 경장 나 피의자 조사하러 먼저 들어 갈 테니 여기서 좀

기다리고 있어“


“아아함 네? 같이 안가구요?”


김 경장은 피곤한 얼굴을 살며시 찌그리며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무거운 눈빛이 그의 눈에서 떨어졌다.


“험상궂은 형사 두 명씩이나  들어가면 혹시 이 놈이 자백을 하지 않을 지도

모르잖아. 일단 대화로 유도를 해봐야지.

김 경장은 여기서 무전 좀 받아주면서 그리고 놈이 도주할지 모르니

여기서 도주로를 잘 지켜보고 있어줘“


남 형사는 김 경장의 어깨를 슬며시 집은 후 운전선의 문을 열고

성당으로 나섰다.


늘 하던 대로 파트너인 김 경장을 데리고 나왔지만 근래 자신의 일 때문에

늦게 까지 보고서와 업무일지, 순찰일지 등을 작성 하느라 피곤에 빠진

고마운 후배에게 그가 해줄 수 있는 건 이런 것 밖에 없었다.


노란색 색상에 호돌이 마크가 그려진 경찰서 체육대회 기념품으로

받은 삼단우산을 펼친 후 막 차에서 내릴 때 김 경장이 운전석의 유리창을

내린 후 말했다.


“선배님! 여기 녹음기 가져가셔야죠! 이거 정말 혼자 들어가도 되겠어요?

원 물가에 내어놓은 어린애 마냥 믿을 수가 있어야지“


남 형사는 유리창문으로 나온 김 경장의 손에서 소형 녹음기를 받아든 후

다시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

내리는 쌀쌀한 장마 비 속에서 김 경장의 손이 마치 초겨울 이제 막 나오는

호빵마냥 따뜻하게 느껴졌다.


남 형사는 장난 끼가 도진 듯 그의 손을 잡은 후 가볍게 그의 손 등에 키스를 했다.


“네 엄마! 고마워요. 그럼 저 다녀올테니까요.

고추달린 엄마는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그다지 크지 않은 노란색 삼단우산을 들고 성당의 문 앞으로 뛰어가는 남 형사를 보며

김 경장의 입가엔 아직 순수성을 잃지 않은 40대 중년 경찰이 만들어준

삶의 작은 미소가 슬그머니 지어졌다.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순찰차의 보관함 상단에 놓아둔 남 형사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이씨. 그럼 그렇지 결국 휴대폰을 놓고 가버렸구만........

참나 하나를 챙기면 하나를 잊어버린다니까!

저 여보세요?“


“아 네 지금 선배님 수사 때문에 밖에 나오셨거든요”


“네....... 여기 영등포구 당산동 당산 성당인데

그럼 여기로 오시겠습니까?“


김 경장은 전화를 건 상대방에게 당산성당으로 오라는 말을 남긴 후

휴대폰의 폴더를 닫았다.




“6월25일 오후 3시 44분, 6월 25일 오후 3시 45분, 6월 25일 오후 3시 46분”


남 형사는 성당의 문 앞에서 몇 분 동안을 흐르는 시간을 되뇌이며 서있었다.

이제 이 문안에는 채연이가 그토록 찾아 헤메던 자신이 그토록 만나서

얼굴 한대라도 갈기고 싶었던 거미문신의 그가 있을 것이다.

남 형사는 두렵고 초초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과연 나는 그에게 자백을 받아 낼 수 있을까?’


‘혹시 그가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한다면 나는 이성을 잃지 않고 그를 대할 수 있을까?‘


‘그에게 채연에 대한 용서와 사과를 받아낼 수 있을까’


남 형사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과 채연과 한 약속을 지키고 싶은 중압감을

이기려는 듯 계속해서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며 호흡을 크게 고르고 있었다.

시계의 분침이 50분을 가리키고 더 이상은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남 형사는 미사를 집전하는 미사실의 대문을 활짝 열어 제쳤다. 가장 큰

쉼 호흡과 함께......,


장마가 내리는 우울한 날씨에도 미사실은 스테인그라스의 빛 때문인지

아니면 조용히 켜져 있는 촛불 두개의 온화함 때문인지

꿉꿉하고 눅눅한 장마철의 날씨와는 너무도 다른 화사하고 따스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깔려있는 중앙 복도의 카페트 위에

한 남자가 무릎을 구부린 채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다. 성 귀대


남 형사는 그를 향해 서둘러 걸어가다가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난 듯 다시 미사실 앞의 문으로 달려 나왔다.

그리고는 난생 처음 해보는 서툰 행동으로

미사실문의 옆에 위치한 성수대에서 손가락으로 성수를 찍은 후

오래전 본 영화대부의 장면처럼 성호를 긋기 시작했다.


“성부와 성자와 머였지? 암튼 성부와 성자와 또 다른 제 3의 성으로 시작하는 분

제발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저 자리에 앉아있는 저 자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범행을 자백하게 해주소서. 아멘“


어설픈 성호라도 긋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은 편한해 졌는지

남 형사는 중앙 복도를 통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그를 향해 걸어갔다.


“쿨럭! 성 귀대 씨”


그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더운 날씨 때문인지 이제 20대 중 후반의 건장한 체격을 가진 그는

하얀 색 나시 티셔츠를 입고 간절히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남 형사는 나시 사이로 보이는 등판에서 그의 거미문신을 발견 하려고

뚫어지게 응시하였으나

그의 등에는 검은 거미 문신 대신

굵고 크게 일그러진 화상흉터자국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성 귀대씨! 성 귀대씨!”


“........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아 죄송합니다. 기도 중이라 서요. 아주 오래 전의 제 이름을

알고 계시는 군요. 지우고 싶은 이름이었는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은 그저 이름을 지우면 그 뿐이지만 남아있는 상처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습니다. 바로 지금 당신이 가진 그 흉터처럼요“


남 형사는 자신이 조금 심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냥 이 남자가 너무나 미웠다.

아니 좀더 솔직히 말하면 최소한 이 남자의 얼굴은 아주 극도의 흉악범이나

파렴치한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일그러지고 추한 모습을 하고 있었어야 하나

지금 고개를 돌린 그는 너무도 점잖고 여유로워 보이는

착한 젊은이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물론 어딘지 모른 아픔이 느껴지는 눈빛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어떻게 그 후안무치한 녀석의 얼굴이 저처럼 선량할 수 있는 건지

남 형사는 상반되는 얼굴을 가진 그가 더욱 미워져서 일부로

그의 흉터를 비유로 삼았다.  그 역시 아픔을 느껴보라고........


“네 그렇죠? 여기는 미사를 드리는 곳이니

내려가서 이야기를 하시죠?“


성 귀대를 따라 내려온 이 곳은 자그마한 공부실 같은 곳이었다.

나무 결로 만들어진 탁자와 손잡이가 있는 낡은 나무 의자들이 있는

그는 열려진 문을 등지고 앉았고 남 형사는 그런 귀대의

맞은 편에 앉아있었다.


귀대가 녹차 한잔을 남 형사 앞으로 밀어주었다.

둘은 서로를 쳐다보기만 할뿐 한동안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남 형사는 조용히 주머니 속의 녹음기의 녹음 버튼을 누른 후

귀대에게 말을 건네었다.


“십 년 전의 사건 그러니까 1994년 6월 25일 사건 기억하시죠?”


“........네”


“그때 그날 그 시간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날........전 차마 인간이 인간으로 할 수 없는

짓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셨는지 기억하시죠?”


“........ 부끄럽습니다.”


“그런 말을 듣고자 여기에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성전에서 정말로 하느님을 믿는다면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는 거

아닙니까? 왜 자꾸 숨기시려는 건가요?“


“숨기는 것 아닙니다. 그때의 그 일은 제게도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어

여전히 제 등 무겁게 누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무겁게 등을 누르고 있다면 그 짐을 벗어던지면 되지 않습니까?”


“어떻게 말이죠? 아무리 해도 이 짐은 벗어지지 않습니다.”


귀대의 말에 남 형사는 슬그머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 놈 지금

자신을 놀리는 것이 아닌가? 마치 참회와 용서를 구하는 듯 한

시늉을 하던 놈이 이제와 모든 대답을 부끄럽고 지우고 싶다고만 하다니

점 점 더 녀석의 입으로 자신의 범죄사실에 대한 정황과

자백을 받기가 힘들어 진다는 생각이 들어 그는 뜨거운 녹차를 한 입에

툭 하고 쓸어 넣었다.


녹차의 뜨거움이 남형사의 혀 바닥을 강하게 자극하고

그 자극을 소리 내지 않고 참기 위해 입을 굳게 다문 탓에 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또 그만큼

마음도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죄를 지었으면 법의 심판을 받으면 되는 거 아니오?

더구나 한 여자의 인생을 짓밟는 강간이라는 죄를 지었으며 당연히

법의 칼날을 받아야하는 게 남자 아니야?“


남 형사의 말투가 점점 거칠어져갔다.


“법의 심판이라....... 그렇군요.

그러나 제가 알기로는 강간의 공소시효는 7년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 법의 심판을 못 받을 텐데요

하하“

그는 공소시효가 초과되어 법의 심판을 받지 못한다는 말을 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 그의 웃음이 남 형사에겐 더없이 야비하게만 느껴졌다.


‘머야 지금 이 자식! 그럼 이 자식은 이미 공소시효를 넘긴 사실을 알고

나를 불러 지금 오히려 자신의 범죄행위가 무죄가 되었음을

선포하고자 하는 건가? 이런 개새끼‘


“야 성 귀대! 아 참 니가 숨어 살려고 이름까지 바꾸었지?

그래. 너의 그 더럽고 야비한 이름을 불러주마!

성 민호 이 새끼야. 머 강간의 공소시효는 7년이라고

이 새끼! 그래 그래서 그동안 숨어 살았어?

그런데 너 그거 알아? 넌 단지 몇 년을 숨어 살면 그뿐이지만

상대 여자는 평생을 그 상처로부터 숨어살지 못한다는 것을

하 참 강간의 공소시효는 7년이라고

성민호 이 새끼야 그치만 너처럼 한 여자의 순결에 상처를 입히는

강간치사를 한 새끼의 공소시효는 10년이야.

아니 그건 법이 정한 거고 인간이 정한 공소시효는

평생이야 이 자식아!“


남 형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멱살을 잡았다.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탓인지 의자는 뒤로 넘어져버렸고 남 형사의 여름 점퍼속의

녹음기가 탁자위로 떨어져 나왔다.


“녹음 하고 계셨군요?”


“그래 이 새끼야. 머 법이 이제 심판을 못해? 그럼 나라도 한다.

너 오늘 나한테 죽어봐라. 너 공소시효 좋아하지

잘 알겠네. 그럼 폭행치사도 기껏 7년 밖에 안 된다는 걸

오늘 나 너 죽도록 패고 7년 동안만 도망다니면 되네.

그래 7년 동안 어디 나 죽자고 쫒아와봐“


거의 살갗이 닿을 만큼의 얼굴 거리에서 남 형사는 분노로 가득차

침을 튀어가며 그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그의 목을 움켜잡은 손아귀에는 그간의 분노가 모두 녹아있었고

민호는 몇 번을 쿨럭 거린 후 남 형사의 손목을 자신의 목에서

떨쳐내었다.


“제 경우의 공소시효가 10년이라고요?

하하 근데 정말 형사 맞아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제가 3년 동안 더 도망 다니면 어쩌실 여구요? 금방

분노해서 범인에게 유리한 말씀이나 하시고........“


“머 머야?”


“참 순수한 분이시네요. 이게 녹음기 인가요?”


민호는 탁자 위에서 보이스 레코더라고 적혀있는 녹음기를 집어 들어

자신의 입 앞으로 가져다대었다.


“지금 뭐하는 거야?”


남 형사는 그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놀라 흠칫거리고 있었고

그때 남형사가 본 것은 시계의 시간이 4시 45분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과

열려 있는 반대편의 문 앞에 누군가가 서있다는 것이었다.

문 앞에 서있는 그는 민호와 남 형사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려 했으나

그는 서둘러 수신호를 보내어 그를 잠시 그 자리에 멈춰있게 하였다.

그의 예기치 못한 등장으로 인해 혹시라도 민호가 하고자 하는 말을

멈추게 될까봐


“이름 성 민호 나이 28세 주민등록번호

770616-1101124

10년 1994년 여름 6월25일 5시경 유난히 장마 비가 쏟아지던

그때 당시 서울 기계 종합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저는 부탄가스에 취해 남산 중턱의 돌담아래서 영등포 여중 2학년 3반의 한 여학생을

강간하였습니다.

그때 분명 그 여학생의 허벅지에서 빨간 선혈이 흐르는 것을 보았지만

짐승이었던 저는 그 여학생의 아픔과는 상관없이 계속해서 그 여학생을 범했습니다.


아 그리고 그해 있었던 서울 기계 종합 고등학교의 화재사건 역시

제가 한 것입니다. 

이 이상의 내용은 모두 사실이며

그에 관한 어떤 법적 책임을 질 것을 자발적인 의사로 인하여 밝힙니다.“


민호는 녹음기의 내부 마이크를 입에 가까이 댄 채 너무나 또박 또박

마치 아나운서가 타인의 사건 뉴스를 방송이라도 하듯이 말하였다.


“이렇게 하면 되나요? 씨익”


그가 웃었다. 그가 웃으며 자신의 범죄사실을 너무나 쉽게

녹음기에 자백하였다. 더구나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될 사실까지도

남 형사는 그제서야 이 청년이 지었던 웃음이 자신을 비웃거나

자신의 죄로부터 도망가고자 한 것이 아닌 스스로가 지었던 죄에서

구원되기를 바라는 자조적인 웃음인 것을 알게 되었다.


“왜? 도대체 왜? 알아? 방화 역시 십년의 공소시효라는 걸?

그런데 도대체 왜?“


남 형사의 정면 그러니까 민호의 등 뒤 문에 서있는 사람도 

무언가를 알게 된 듯 조금씩 어깨를 들썩거리기 시작하였다.


“도대체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냐구요? 아니면 왜 지금 이렇게

털어 놓느냐구요?

사실은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그저 전 매일 취해있고 매일 어머니와 함께 있고 싶었을 뿐이거든요.

그런데 늘 내가 취해 있다가 깨어나면 나도 모르게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더라구요.

그게  정당화 될 수가 없는데 말이죠.

그런데요 남 형사님 그건 몰라도요. 이건 알아요.

지금 제가 이렇게 털어놓는 거 제가 그나마 다시 사람답게 살수 있었던 거

그건 다 저희 어머니 때문이예요.“


“어머니 때문이라니?”


남 형사는 어느새 자신이 민호에게 말을 놓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중범죄인을 취조할 때를 빼고 강압적으로 상대를 제압할 때를 빼곤 

남 형사는 늘 가깝게 느껴지는 사람, 보호해주고픈 사람에게만 말을 놓는 버릇이 있었다.


“형사님도 어렸을 적에 잘못하였을 때 어머니께 혼나곤 하셨죠?”


“우리 어머님은 늘 내 엉덩이를 까시곤 꼭 한쪽만 멍이들때까지 때리곤 하셨지

어찌나 손이 매우신 지 말야. 또 난 늘 사고를 쳐서

내 오른쪽 엉덩이엔 늘 어머님의 손바닥 만큼의 멍이 들어있었지“


“하하 네 그러시군요. 지금도 가끔 그때가 그리우시죠?”


“그렇지 머 그런데 그건 왜?”


“저희 어머니도 그러셨거든요. 어머니가 살아계시던 동안

어머니는 늘 제가 잘못 할때마다 그분의 손으로 꼭 제 오른쪽 등짝을 때리시고

하셨어요. 어머님의 손길이 매워 운 적도 많았지만

시큰한 어머니의 그 손길 그 시큰한 따뜻함 때문에

늘 전 크게 어긋나지 않고 자랐었죠.

그런데 그분이 돌아가시고 아무도 내가 잘못해도 등짝을 때려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늘 내 오른쪽 등짝은 너무 허전하고 그래서 문신까지 그려 넣었지만

어머니의 손길이 주던 그 뜨거운 그리움은 채워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 빗나갔는지도 몰라요. 누구도 제 등짝을 때려주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결코 제 곁을 떠나시지 않으셨어요?

늘 저를 지켜보고 계셨던 거예요“


“뭐라고?”


남 형사는 난데없는 민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납량특집도 아니고

돌아가시되 떠나지 않으셨다니........


“어머니는 그러셨어요. 이 못난 자식 때문에 늘 제 곁에 계셨던 거예요.

그때 그 애를 범하고 학교에 불을 지르던 날

가스에 취해 돌아다니던 전

어머니 곁에 가기 위해 불속으로 뛰어들려고 했었죠.

그치만 어머니는 자신의 마지막 필체로 절 이끄셨고

제가 계단을 내려갈 무렵 불에 탄 기둥이 제 등판으로 떨어졌어요.

그때 전 분명히 봤어요. 어머니의 크고 화난 불같은 손바닥을요.

그건 가스에 취해 사람의 모습을 잃어가는 제게

아들이 정신차리라고 어머니가 주신 크고도 뜨거운 손바닥 이었어요.

덕분에 제 등판엔 어머니가 남기신 흉터가 새겨졌고 그로 인해

전 제가 얼마나 잘 못했는지 제가 얼마나 나쁜 짓을 저질렀는 지를

깨달을 수 있었죠“


민호의 눈가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아니면 잘못을 저지른 자신의

지난 과오 때문인지 촉촉한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고

그의 등 뒤에 서있는 사람의 어깨 역시 더욱 크게 들썩여지기 시작했다.


“그럼 그때라도 죄를 뉘우치고 벌을 받지 그랬어?”


“그러고 싶었어요. 그러고 싶어서 몇 번이고 경찰서의 문 앞에 까지 갔었지만

고등학생이던 전 너무 두려웠어요.

죄를 저지른 내가 두려웠고 벌이 두려웠고

또 그것보단 내가 상처를 입힌 채연이 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제가 너무 두려웠어요.“


“잠깐 지금 뭐라고 했어? 채연이라고? 분명 채연이라 했지?

어떻게 그 이름을 알지? 어떻게

자네가 상처를 입힌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남 형사는 민호의 입에서 채연이라는 말이 나오자 말자

너무나 놀라 그를 다그쳐 물었다.


“........ 그녀는 지금 제 와이프니까요”


민호는 힘 없는 목소리로 고개를 떨구며 채연이 자신의 아내라는 말을 겨우 하였다.


“뭐라고....... 대체 이게 무슨........ 어떻게 이런 일이”


남 형사는 너무나 황당한 자신 앞의 일에 놀라 오른손 손가락을 입으로 아작아작

씹기 시작하며 문 앞의 그 사람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문 앞의 사람 역시 오른손으로 입을 가린 채 울음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겨우 막고 있었다.


“변명 같겠지만요. 정말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제가 너무 미안하고

두려웠어요. 그래서 전 달라지기로 했어요.

이름도 바꾸고 학교를 자퇴한 후 열심히 공부해서

제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추어지면

내가 상처를 준 사람에게 용서를 빌고 법의 심판을 받기로 결심을 했었죠.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제가 이제야 무언가를 갖추었을 때

채연이를 찾아갔지만 그때 그녀는 너무 많이 약하고 너무 많이 아파했어요.

못난 제가 준 상처 때문에 사회에 대한 문을 닫은 채

예전의 저처럼 어둡고 우울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죠.

그래서 전 채연의 마음을 치료해주고 채연이의 아픔을 곁에서 달래주고

법의 심판을 받기로 결심했죠.

그런데 말이죠? 저 아무래도 아직 가스가 뇌에 차있나 봐요.

그러니까 그녀를 이 못된 놈이 어느새 사랑하게 되어 버린거죠.

그리고는 그때부턴 채연이가 없으면 못사는 절 발견하고

그래서 제 이기심 때문에 밤마다 채연이가 아파하는 걸 알면서도


채연이가 비가 올 때마다 과거의 아픔 때문에 분노와 슬픔에 잠기는 걸 알면서도

저 고백 못했어요. 저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성당도 나와서 매일 용서와 참회를 구했지만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을 한 지금 7년이라는 세월까지도

채연이는 나아지지 않더군요.


그래서요. 저 경찰서도 한번 갔었어요.

그런데 강간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더군요.“


민호는 울먹이며 말을 이어가다 다시 그 씁쓸한 웃음을 입가에 짓기 시작했다.


“그런데 제 공소시효가 남았다구요?

정말로 그렇다 구요? 그럼 저 벌 받을 수 있는 거죠?

저 잡혀갈 수 있는 거죠?

남 형사님 부탁드립니다. 저 좀 잡아가주세요.

법정 최고형에 처해 주세요. 그래서 채연이가 더 이상 아파하지 않게

더 이상 과거의 상처에 악몽을 꾸지 않게 해주세요 네?

어서 어서요. 어서 이 나쁜 제 손목에 수갑을 채워주세요.“


민호는 두 손을 남 형사 쪽으로 주욱 뻗었다.

남 형사는 자신의 의도와 너무나 다르게 진행 되어가는 상황이 난처해 어찌할 줄을

모른 채 그저 시선을 민호 뒤쪽의 사람을 쳐다보았다.


뒤 쪽에 서있던 그 사람은 한 손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던지 두 손을 꼬옥

힘을 쥐어 포개어 입을 막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어깨는 무척이나 심하게 떨렸고

결국 그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손을 입에서 땐 채

울기 시작했다.


“야이 엉 엉 이 나쁜 새끼야 엉 엉 개새끼야! 이 나쁜 개자식아.!”


민호의 뒤 쪽에 서있던 그는 달려와 손바닥으로 그의 오른쪽 등판을 사정없이 내리치기 시작했다.


“아앗 누구?”


고개를 돌린 민호의 슬픈 눈에 보인 것은 다름이 아닌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는 채연이었다.

채연은 비를 맞고 문 앞에 서있었는지 온통 젖어있었다. 한기와 슬픔에 떨리는

몸으로 비를 맞아 추욱 쳐진 머리칼로

마치 미친 년처럼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울어대며 외쳐대며

계속해서 민호의 등판을 내리쳤고


그는 아프다는 말 한마다 하지 못한 채 그저 입술만 꾸욱 깨문채로 계속해서

그녀의 손바닥을 등 판으로 받고 있었다.


남 형사는 지금은 자신이 여기에 있어선 안될 사람인 것을 깨닫고는

말없이 문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 바깥! 다행스럽게도 피할 수 있는 건물처마 아래서 남형사는 쪼그려

앉아 오래동안 남아있는 찌꺼기들을 다 씻어 내리려는 듯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쳐다보며 담배한대를 꺼내어 물기 시작했다.


“참 세상하고는 시발 그래 쏟아져라. 더러운 거 아픈거 다 씻겨 내려가게.”



민호의 등이 온통 핏멍이 들어 빨갛게 되었다. 몇십 분이 넘도록 계속

민호의 등을 세차게 치던 채연은 힘없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둘은 그렇게 또 몇 십분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미안해. 여보. 정말로........

숨기려던 건 아니었는데 정말 아니었는데 나 이제라도 죄 값을 치를께

그럴께. 당신이 원하면 나 당신 곁에서 영원히 떠날게 그럴께 ”


먼저 입을 연 것은 민호였다.

갑자기 채연이 다시 세차게 민호의 등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러면........ 내가 행복해 진데. 그러면, 그러면

내가 좋아진데? 엉 엉

야이 개자식아!

한번으로 모자라서 두 번을 상처 주려고 흑 흑

나보고 남편 감옥에 넣어놓고 또 몇 십 년을 혼자서 아파하라는 말이야.

야이 개자식아. 말 좀 해봐 엉 엉“


채연은 다시금 서럽게 울기 시작했고 민호는 그런 채연의

손을 두손으로 잡았다.


“그만해. 손바닥 아프잖아. 손바닥 봐. 빨갛잖아. 바보야”


채연의 손바닥보다 자신의 등판이 핏 멍이 들다 못해 핏줄이 터져있었지만

민호는 자신 때문에 아파한 채연의 손바닥이 등판 보다 더욱 아팠다.


“미안해 여보 정말 미안해. 흑 흑 ”


그는 채연의 두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그렇게 소리내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채연도 그런 민호를 보며 그의 머리위에 자신의 머리를 포개어

부비어 대며 울고 있었다.


“아니야....... 아니야....... 바보야.......

얼마나 힘들었니? 얼마나 고통스러웠니.

난 이렇게 누구라도 원망하고 누구라도 증오하고 살수 있었지만

당신은, 당신은 그런 나를 7년동안이나 쳐다보면서

얼마나 상처받고 얼마나 아파했니.

이 바보야.

우리는 둘 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인데

왜 같이 살면서 왜 바보 같이 서로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지 못한 거야. 왜 바보같이

난 왜 민호 씨의 아픈 소리를 못 들었냐고.

내가 내가 더 미안해 민호씨 흑 흑“


“아니야 채연아.”


“민호씨 우리 시작은 악연이었지만 우리 행복했잖아.

당신은 언제나 날 아껴주고 지켜줬고 난 늘 그런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했고 그랬잖아 응?“


채연과 민호는 그렇게 몇 십분을 다시 부둥켜 안고 울기 시작했다.



담배 한 갑을 다 피웠을 무렵 하늘이 서서히 개이고 있음을 남 형사는

깨달았다.


“참나 지랄 같은 하늘하고는 금방 흐렸다. 금방 개이네

에이 이제 담배도 없네”


그가 담배 갑을 구기며 자리에 일어 날 때 쯤

문 앞으로 민호와 채연이 서로를 부축하며 걸어 나왔다.


“흠”


“흠”


채연과 민호 그리고 남 형사 이들은 서로의 눈만 번갈아 쳐다가며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남 형사는 오른 외투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녹음기를 만지작 만지작 대고 있을 뿐이었다.


“저기 아저씨”


채연이 말을 꺼내었다.


“응?”


“저 이 사람 고소해도 되죠? 저 이 사람 고소할래요!”


“응? 머라고? 정말? 정말 고소할 .......꺼야?”


“네!”


남 형사는 다시금 흠칫 놀라였다.

물론 민호는 채연의 삶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채연이 그토록 사랑하던 사람이 아니었던 가?

남 형사는 그렇지만 채연과의 한 약속을 지킬 수 밖에 없기에 외투의 다른 쪽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수갑을 꺼내려 하고 있었다.


“저 정말 고소할래요. 제 마음의 법정에요.

그러니까 아저씨가 이 사람의 형벌을 정해주세요. 이사람 구속 몇 년이죠?“


채연이 남 형사를 향해 찡긋 윙크를 하며 말하였다.


“어? 응? 아 응.........”


남 형사는 그제서야 채연이 말하는 의도가 무언인지를 알고는

잔뜩 무게를 잡은 후 목소리를 깊게 깐 채 말하기 시작했다.


“흠 흠 피고인 성 민호는 형법 제 흠 몇조인지는 모르겠고 아무튼

형법에 의거하여 법정 구속 10년에 처한다.

단 그 형벌의 집행을 이 채인의 곁에서 100년간 유보한다. 땅 땅 “


남 형사는 왼 손의 바닥을 편 채 오른손 주먹을 쥐어 마치 법정에서

확정망치를 치는 듯한 시늉을 하며 민호의 형량을 결정하였다.


“민호씨 들었지? 이제 민호씨는 집행유예 100년이야 내 곁에서

그러니까 더욱 잘해야해. 안 그러면 내가 콱 집어 넣어버린다.“


“응....... 응....... 알았어. 그런데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민호는 슬그머니 남 형사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자신의 입으로 범죄 사실을 다 자백하여 녹음까지 하였으니

남 형사가 그 증거만 제출해도 꼼짝없이 민호는 법의 심판을 받아야하는

것이었다.


남 형사는 슬그머니 민호의 곁에 가서 녹음기를 꺼내어 들기 시작했다.


“근데 아까 내가 무슨 소리를 하나 녹음했는데 말야

성 민호씨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러는데 여기 플레이 버튼이 어디있는 지

좀 알려줄래?“


“여기 저기 초록색 삼각형 마크 있는 버튼입니다.”


민호는 떨리는 손끝으로 남 형사에게 플레이 버튼을 가리켜 주었고

남 형사는 사정없이 바로 그 버튼의 옆에 적색 동그란 마크가 그려있는

녹음 버튼을 눌렀다.


“어크크크 이거 어떻게 하지? 이거 내가 눈이 나빠서 실수로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는 게 녹음 버튼을 눌러버렸네

아이고 이거 애써 녹음한 거 다 지워져 버렸네. 젠장.

나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아 맞다. 참 저 밖에 우리 후배 녀석도 기다리는데

아이고 채연아 이거 아저씨 먼저 가야겠는데?

알다시피 경찰이 워낙 바쁘잖아. 민중의 지팡이다 보니까 말야.“


“아 네. 아저씨 고마워요”


“아니 고맙기는 머 그나저나 이거 녹음된 게 다지워져서 어쩌나

그럼 나 간다.”


남 형사는 다시 한번 민호를 쳐다보며 과장된 표정과 말투로 녹음기의

녹음이 지워졌다는 것을 알려준 뒤

성당의 계단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계단의 끝부분을 내려갔을 무렵

남형사는 뒤를 돌아 다시한번 민호와 채연 부부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마리아상의 앞에서 함께 무릎을 꿇고 합장을 한 후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남 형사는  배에 힘을 잔뜩 준 채 크게 채연을 불렀다.


“채연아”


“네?”


채연이 서둘러 기도를 끝낸 후 계단의 위에서 민호와 손을 맞잡고

남형사를 쳐다보았다.


“괜찮아?”


“네 아저씨 저 이제 정말 괜찮아요. 고마워요”


채연의 말들이 스테인 그라스에 부딪혀 따뜻한 빛으로 남형사의 입가에

미소로 바뀌어 전달 되었고 그는 성당 주차장안에 주차 되어있는

순찰차 앞으로 걸어갔다.


순찰차 안의 김 경장은 아직도 피곤한 지 머리를 조수석 앞 쪽에 위치한

자동차의 작은 선 반위에 기댄 채 잠들어 있었다.

남 형사는 운전석의 문을 열고 들어간 후 손바닥을 벌린 후

김경장의 등판을 세차게 내리 쳤다.


“으악~! 뭐하는 짓이어요?”


“잘 일어났어?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야”


“에이 참 아파죽겠네. 그나저나 가신 일은? 자백은 받았어요?

아까 이 채연씨도 찾아오는 것 같던데”


김 경장이 한 손으로 등을 문지르며 말했다.


“흠....... 그게 말야. 아니더라고 범인이........”


“에이씨 그럼 머예요. 어디보자 지금 몇시지? 헉 7시네

그럼 공소시효도 넘어버린 거잖아요“


김 경장이 자동차 안의 전자 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응 머 결국 이 사건도 내가 풀지 못한 미제 사건의 하나로 남는 거지 머”


“에이 이게 머야. 그 거미새끼 지가 무슨 스파이더 맨인가

졸라 잘 숨네 그려. 그러기에 이런 사건은 영등포 경찰서의 셜록 홈즈

내가 맡았어야 한다니까 애시당초“


“그러게 말야. 이봐 근데 김 경장?”


“네?”


“김 경장은 사람의 마음이 왜 병드는 줄 알아?”


“네? 마음이 병들어요? 뜬금없이 또 무슨 소리예요”


“마음이 아픈데, 마음이 상처받았는데, 그래서 자기는 이렇게 아프다고

외치는데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을 때 마음이 병드는 거야“


“그게 무슨 소리냐니까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내 말을 잘 들으라는 거지 오케이?”


남 형사는 순찰차의 시동을 걸며 말했다.


“참 김 도형이 그 놈 지금 어디에 있지?”


“며칠 전에 검찰로 송치 되었잖아요. 담당 검사가 최 검사라고 하던데

그놈 이제 머 완전 법정 최고형이죠. 머 칼날 최 검사한테 걸렸는데........ 하하“


“응 담당 검찰이 최 검사라고?

김 경장 나랑 같이 서에 가서 정상참작보고서 좀 쓰자고

여러모로 김 도형이 그 친구가 수사에 도움을 많이 주고 또 이왕이면

자수한 거로 수사 기록도 좀 변경해주고........“


“네? 애써 잡은 놈을 왜 자수로 변경을? 실적 떨어지는데요?

갑자기 오늘 왜 그러신데요?“


김 경장은 오늘 자꾸 딴 소리를 하는 남 형사가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김 도형이 그 놈 귀엽잖아. 하하”


남 형사는 무언가 기분이 좋은 듯 싱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순찰차를 운전하기 시작했다.

순찰차안의 라디오 안에서 지지직 거리며 경찰 방송의 날씨안내가

흘러 나왔다.



“지이익.......

2004년 6월 25일 오후 7시 현재 날씨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지난 15일부터 강한 바람과 높은

강우량을 가지고 지속된 장마전선이 오늘 6시부터 우리나라 북측으로 완전히

밀려올라와 현재 우리나라는 장마전선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났으며

오늘 저녁부터는 간헐적인 비와 함께 본격적인 여름의 무더위가

시작될 것입니다. 지이익........“

 

 

 

 

- 에피소드 악연의 시 끝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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