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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적절한 남자(25)

리드미온 |2004.08.03 01:04
조회 3,717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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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적절한 남자(25)

새벽이 되도록 얕은 잠을 잤다. 여러 가지 꿈을 꾸었고 꿈 속엔 여러 사람들이 등장했다. 정훈도 나오고 민석도 나오고 엄마도 나오고 그리고 정체 모를 사람들도 나왔다. 잠시 깨어 보면 현수가 깨어 있는 듯 책상 위의 스탠드 불빛이 계속 켜 있는 듯 했다. 그러다 결국 깊은 잠이 들은 것 같은데 아침부터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눈을 뜨고 말았다.

부지불식간에 들리는 초인종 소리는 날 두렵게 만들었다. 이 집에 와서 갑작스런 초인종소리에 얼마나 놀랐던가...아니면 초인종 소리 없이 문을 열고 드나드는 불청객들...

아직도 내가 겪어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단 말인가.

도저히 잠에서 깰 것 같지 않은 상태인데도 초인종 소리에 놀라 눈을 뜨고 말았다. 한번 두번 계속 울려댔다. 혹시 또 진우의 여자 친구일까? 그렇다면 내가 나가서는 안될텐데...

현수를 보니 막 깊은 잠에 빠진 듯 했다. 어차피 진우의 여자 친구라면 현수와 함께 그런 남잔 여기 없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인터폰을 들었다. 인터폰 모니터로 보이는 사람은 웬 중년 남자였다.

"누구세요?"

혹시 이 시간에 택배라도 온 게 아닌가 싶었다.

"이현수씨 집 아닌가요?"

"네. 맞는데요."

"아가씨는 누구요?"

앗, 이현수의 집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인정해버린 것을 깨달았다. 엄연히 이 집은 현재 내 집인데..

"아. 제 집인데요."

"문 열어봐요. 내 아들놈이 현순데..."

현수의 아버지라고?

이런 게 최악의 순간이라는 걸까?

차라리 현수와 몰래 동거라도 하는 거라면 오히려 설명하기 쉬울 것 같았다. 현수가 사기를 당하고 어쩔 수 없이 동거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어른은 얼마나 될까? 어른 뿐만 아니다. 이 세상에 몇 사람 안될 것이다.

이건 분명히 당장 들어닥칠 폭풍이다. 그 물살에 반항할 수도 없이 된통 당할 것이다.

"잠시만요."

난 일단 현수를 깨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아버지가 아니라 현수의 아버지 아닌가?

"현수씨...아버지가 오셨어요!"

현수는 반응이 없었다. 하긴 자기 집에 아버지가 오셨다는데 그리 놀랄 일은 아닐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만 아니라면...

"현수씨!!! 아버지가 오셨다고요!!!"

"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이 전해졌는지 현수는 눈을 떴다.

"민아씨가 대답했어요?"

"네."

"으악...."

현수는 놀라서 인터폰으로 뛰어가 수화기를 들고 모니터를 보았다. 모니터로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현수의 아버지가 보였다.

"아버지..."

"문 열어라. 미국에 있단 녀석이 어케 된 거냐?"

현수는 일단 문을 열었다.

"이 녀석 나이는 서른이 넘어서 이게 도대체 뭐냐? 응?"

"제가 다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저..민아씨는 출근하세요."

"아니다. 저 아가씨도 있으라고 해라."

"저...전요. 좀 일이 꼬인 거라..."

나는 이 상황을 피하고 싶기도 했고 출근이 늦을까봐 피해가려고 했다.

"아가씨 부모님도 알아요? 다 큰 남녀가 이러고 사는 걸 본 이상 해결해야죠."

"아버지..사회 생활 하는 아가씹니다. 일단 출근하게 하고 제가 설명해드릴게요."

현수의 아버지는 현수를 한참 노려보더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알았다. 아가씨는 출근하세요."

"네. 저 기회가 있으면 저라도 설명을..."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원룸을 빠져 나왔다. 다행이었다.

아무래도 그 원룸은 나와 맞지 않는 것일까? 계속 되는 사건의 연속이었다.

처음부터 내 안식처가 되리라 기대했던 것은 결국 환상에 지나지 않는 걸까?

어쩌면 이제 원룸에서도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수의 아버지가 안 이상 그리고 현수가 제대로 설명하면 나와 아무 관계가 아니란 걸 알면 어떻게든 나더러 나가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나의 독립은 고작 한 달을 넘기고 마감하는 것인가...

차라리 하루만 일찍 현수의 아버지가 왔다면 들키지 않을 수도 있었다. 모처럼 하루 외박한 날이 어제였는데...이런 게 타이밍 나쁘다는 것일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시기적절하게 일어나는 것은 정작 영화에서만 일어난 일이란 말인가...

아침에 회사에 도착해서 내가 전화할 사람이 정훈과 현아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현아와 민석에겐 몇 번 전화를 했지만 진료중인지 응답이 없었고, 정훈은 전화가 꺼져 있을 때 전화를 한 것이라도 남아 있거나 그리고 연락이 되지 않아 궁금하다면 정훈이 전화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먼저 전화하지 않기로 했다. 괜히 전화했다가 시기적절하지 못한 전화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오후가 되서 또 다시 회의가 끝나자, 중국 담당 팀장이 나에게 물었다.

"강팀장..너무 유럽만 신경 쓰는 거 아냐?"

분명 시비조다. 유럽팀장이니 유럽을 신경 쓰는 것일 뿐인데...

"제가 뭐 중국어를 알아야지..중국에도 신경쓰죠."

"그게 아니라 중국어 잘하는 사람 없어?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영..."

이왕 부탁할 거면 기분 좋게 하지 처음에 시비거는 말투는 영 거슬렸다. 나는 건성으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정훈에게서는 저녁 시간이 되도록 전화가 오지 않았다. 몇 번을 참지 못하고 전화를 할까 하다가 기다려 보기로 했다. 저녁이 되어 현아가 무사하다는 전화를 한통 받았고 집에 돌아가도 되는지 현수에게 전화를 하려던 순간에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저...강민아씨 되세요?"

뭐지? 직장관련이라면 누구씨라고 부를 일은 없는데...

"저 김정훈이라고 아시죠?"

어? 누구지? 왜 나에게 전화를 해서 정훈의 이름을 들먹거리는 걸까?

또 운 나쁘게도 삼각 관계에 낀 존재가 된 것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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