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山村日記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삶을 즐기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
<논어(論語)> 옹야 편에 나오는 워낙 잘 알려진 말이고 공자의 자연(自然)관이 잘 나타난 말이기도 하다. 공자는 높은 곳에 올라가서 광활한 생각을 품는 것은 모두 산의 덕택이고, 명산대천(名山大川)은 잊을 수 없는 자연의 광대한 경치로 보았다.
노자는 자연을 보는데 있어서 공자와는 달리 보았다. 공자가 높은 산을 보았다면 노자는 낮은 계곡(溪谷)을 높이 보며 그 계곡으로 흘러들어오는 물을 그 이상으로 공경하며 아꼈다. 계곡의 신(神)을 도(道)에 비유하여 “계곡의 신은 죽지 않으니 이를 알 수 없는 생산자 현빈(玄牝)이라 한다.”고 도덕경에서 말했다.
현빈이란 만물을 생산하는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여인이라는 뜻이다. 계곡은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곳으로 만물을 키워낸다고 보았으며 으뜸가는 “선(善)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되 싸우지 않는다.”고 했으며 또 “천하에 물보다 더 유약(幼弱)한 것은 없지만, 굳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는 이보다 앞설 것이 없다”라고도 말했다.
금과옥조(金科玉條)같은 현인(賢人)들의 말이지만 나는 그만큼 높은 차원에서 보지도 못하거니와 그렇게 까지 심오한 마음으로 산과 물과 계곡을 바라보는 품격(品格)이나 인성(人性)도 갖추지 못했다. 그저 성철 큰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법어(法語)가 오히려 속 편히 받아들여진다.
도시에서 살다보니 자연과 멀어져 참을성도 없어지고, 마음은 항상 쫒기 듯 바쁘기만 하여, 나이 들면 산수 좋은 곳에 마당 넓은 시골집이나 한 칸 마련하였으면 했다. 텃밭이나 일구며 좋아하는 나무나 심고 들꽃이나 가꾸며 살수 있기를 소망했었는데, 그 기회가 조금은 이르지만 우연하게 와서, 지긋한 도시를 탈출하여 나름대로 유유자적(悠悠自適) 살아가고 있다고 자위(自慰)한다. 그래도 마음속에는 무언지 모를 빈 것이 있어서, 아직은 도시의 화려한 잔영(殘影)의 묵은 때가 덜 벗겨진 것 같아 날카로운 사금파리 조각처럼 내 가슴을 후벼 낼 때가 많다. 내 수양이 부족한 탓이리라.
그 빈 것을 채우기 위해 집 주변의 산을 자주 찾아 오르기도 하고 산비탈에 있는 저수지에서 붉고 푸른 세속의 먼지를 씻어내기도 하며,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허전한 마음을 채우기도 한다. 다행히 집이 산자락에 붙어 있는지라 멀리 갈 것도 없이 산을 오르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집 앞과 옆과 뒤편이 아담한 야산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철 따라 그 푸름을 즐기기도 하고 산새와 풀벌레들 벗 삼아 마음의 때를 벗겨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마당 한쪽에 작은 텃밭을 만들어 나름대로 갖가지 채소를 심었다. 땅심을 키워주기 위해 동네에서 잘 삭은 퇴비도 얻어다 뿌리고 잡초도 부지런히 뽑으며 열심히 가꾸었다. 지난해까지는 처고모가 당신의 주말농장으로 삼아 텃밭을 가꾸었지만 금년부터는 내가 가꾸어보기로 작정하였다.
고추모종을 사다가 심고 오이도 네댓 그루, 가지 몇 포기, 치마상추와 쑥갓과 배추도 몇 고랑 일구었다. 오이와 꽃호박, 표주박 넝쿨을 올리기 위해 실한 대나무를 쪄다가 넝쿨이 쉬이 탈수 있도록 올림울타리도 근사하게 세웠다. 매운 고추를 과다할 만큼 즐기기에 청양초 이십 여주를 심어서 버팀목도 튼튼히 세우고 그루마다 줄로 잘 묶어놓았다.
시골로 이사 와서 오가며 어깨너머로 배운 건달농사를 처음으로 시도해보니 여간 손질이 많이 가지 않았지만 그 일이 노동이라고 여긴 적은 없는 경쾌한 즐거움이었다. 나름대로 정성을 다하여 키운다고 했어도 훗날 아랫집 고추밭을 보고 우리 집 고추를 보면 어른과 아이 같아서 멋쩍은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고추는 아는 듯 모르는 듯 알알이 열렸다.
해마다 치르는 태풍이지만 작년 태풍은 너무 매서웠었다. 축대가 무너지고 튼실한 감나무가 일곱 그루나 뿌리가 뽑혀나가고 자두나무 가지가 째지고 배나무가 부러지고 마당의 흙들이 넘친 물로 쓸려나가는 혼이 난지라 태풍과 장맛비에 견딜 수 있도록 물고랑도 착실히 내고 시누대로 만든 고추 지주목도 굵은 왕대로 다시 갈았다.
작년 태풍에 쓰러진 나무들을 모두 뽑아내고 한 백여 평 되는 잔디밭과 꽃밭을 아울러 꾸몄다. 기왕에 서 있던 큰 벚나무 두 그루와 목련 두 그루 사이에 수돗가에 터 잡고 있던 단풍나무를 마당 한쪽으로 옮겨 근사한 그늘 공간을 만들고, 오고가는 길에 조약돌을 주어다가 나무숲과 잔디사이로 곱게 깔아 약 삼사십 미터 정도의 오솔길을 내고, 일고여덟 평 정도의 조약돌 깔린 자그마한 광장도 꾸몄다.
친구들이 오면 한담(閑談)하며 가볍게 고기나 굽고 음주할 수 있거나 바둑이나 놓으며 한가롭게 책을 읽을 수도 있는 보기도 좋은 공간이다. 일꾼에게 맡기지 않고 손수 하다보니 손은 남에게 내 밀수 없을 정도로 상처투성이고 물집은 아물 날이 없었다.
그늘진 곳이라 키 큰 잡초가 무성히도 자랐고 해충도 따라서 많았지만 조약돌을 깔고 나니 첫째 잡초가 자라지 않아서 좋았고 그늘속이지만 밝은 빛을 내는 조약돌에 반사되는 빛으로 인하여 물것들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누군가 버려놓은 폐 침목을 아내와 힘을 다하여 싣고 와서는 통나무를 잘라 받침으로 하여 올려놓으니 근사하고 운치 있는 벤치가 되었다.
처음 텃밭을 꾸밀 때 이 벤치에 앉아서 가볍게 완상(玩賞)할 수 있도록 오이와 조롱박, 그리고 당호박이나 꽃호박과 박 넝쿨을 올리려고 마음먹었다. 넝쿨을 타고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들을 싫증나도록 구경하며 오이가 매달리면 이 그늘 좋은 벤치에 앉아서 막걸리 한 사발하며 안주하리라는 소박한 꿈이었다.
그 꿈이 현실이 되었다. 어느 날 노란 오이꽃이 별처럼 곱게 터지더니 꽃 뒤에 성냥개비만한 오이가 동화처럼 맺혔다. 그 신기함과 놀라움은 깊게 떨리는 현(絃)의 파동처럼 내 영혼에 진동 되고 파문(波紋)을 그리며 가벼운 흥분으로 찰랑찰랑 밀려왔다. 탄생의 신비스러움은 초월(超越)한 엄숙의 존재(存在)이려니. 그렇게 앙증맞은 오이가 자고나면 담배개비만한 크기로 자랐고 어느 틈에 시장에 내다 팔 수 있을만한 물 좋은 오이로 굵어졌다.
하루하루 오이 굵어가는 재미로 날 새는 줄 몰랐으며 아내를 불러놓고서는 “오이 봐라, 오이!” 하며 즐거워하니 아내도 신기한 듯 웃음꽃을 피웠다. 고추도 가지가 모자란 듯 푸지게 열렸고 꽃호박 대 여섯 개가 너무 예쁘게 매달렸다. 조롱박은 무엇이 부족한지 아이 주먹만한 것 하나가 달랑 외롭게 매달렸다.
“호박꽃도 꽃이냐?”라는 말이 있다. 울타리를 타고 무리지어 피어있는 호박꽃을 보면 “호박꽃도 꽃이다.” 하는 둥글둥글한 단호박 같은 마음이 생긴다. 연잎 같은 넓은 이파리 사이로 노란 호박꽃이 숱하게 핀 모습을 보면 투박하지만 인정 많은 할머니를 보듯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연한 호박잎을 따서 밥솥에 쪄내어 쌈을 사거나 잎줄기를 된장찌개에 넣어 끓이면 훌륭하고 맛있는 별미 여름반찬이 된다.
큰 벌들이 그 노란 호박꽃 속으로 들락거리며 잉잉대는 모습을 보면 자연은 이렇게 살아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호박꽃보다 보기 좋은 꽃이 오이꽃이다. 호박꽃처럼 크지도 않거니와 호박꽃이 노랗다면 오이꽃은 샛노랗다. 그리고 오이꽃 한 송이에 꼭 오이 하나가 맺힌다는 사실을 텃밭을 가꾸며 알았다.
첫 오이를 따던 날 나는 감격했고 생경(生硬)하기만 하였던 추수감사절을 이해할 수 있었으며 나는 어느 틈에 작은 농부가 되어 있었다. 미리 사다 놓은 막걸리를 냉장고에서 가져다 호박잎 한 잎 따서 된장 한 술과 매운 고추 몇 알 담아서 여기저기 핀 야생화들을 바라보며 내가 신선인 듯 대숲 넘어 불어온 시원한 바람결에 숨김없는 속살을 자연에 풀어놓고 잘생긴 벤치에 앉아서 감격하며 오이를 안주삼아 꿀맛 같은 막걸리를 마셨다.
엊그제 내린 비로 시냇물이 제법 불었다. 옥수(玉水)처럼 깨끗한 물이 졸졸 곱게도 흐른다. 내가 사는 동네 이름도 옥수 골이다. 아내는 맑은 물만 보면 빨래를 하고 싶다며 걸레와 양말 몇 켤레, 수건 몇 장을 들고 시냇가로 내려간다. 소녀들의 소꿉장난처럼 맑은 물이 좋아 일부러 만든 억지 빨랫감이다. 흙 묻은 삽과 호미를 들고 아내를 따라 시냇가로 내려간다. 돌 틈을 더듬어보니 가재 몇 마리가 보였다. 아직도 가재가 살 만큼 청량한 물이라 생각하니 이 골짜기가 고맙기만 하다.
“농사는 발자국 따라 한다.”는 말을 손바닥만한 작은 텃밭이지만 일구어보니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잡초와의 전쟁, 잡초와의 경쟁이었다. 뽑아내면 어느새 그 자리에 다시 자리 잡고 푸지게 나 있었다. 뽑아도 끝이 없고 발자국 따라 잡초는 따라오며 다시 돋는다.
우리 동네 아낙들은 챙 넓은 모자에 목수건 하나 두른 뒤 이 오뉴월 뙤약볕 아래 웅크리고 앉아 하루 종일 잡초를 뽑아낸다. 호미질을 하자면 얼마나 힘이 들까? 워낙 힘들고 지겹고 맥빠지는 일이라서 보는 사람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맨손으로도 뽑지만 그네들은 호미를 들고 종일 잡초를 뽑아낸다. 그것을 김매기라 한다.
김매기는 초벌, 두벌, 세벌, 네벌, 끝없이 이어지며 그 고통은 바라만보는 나에게도 바로 느껴진다. 김매기 농요에 이런 구절이 있다. “바다 같은 이 논배미 / 반달같이 남겼구나 / 동에 동쪽 돋은 해야 / 너는 어이 수이 가노” 잡초를 다 뽑으려면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해가 벌써 지니 마음이 바쁘다는 뜻이다. 그렇게 힘들여 농사를 지어도 수지 없는 농사라고 푸념들이다. 우리 어른들이 왜 낱알 하나라도 소홀히 다루면 하늘의 벌을 받는다고 누누이 말했는가를 손바닥만한 작은 텃밭을 가꾸며 배웠다.
지자요수(知者樂水)하고, 인자요산(仁者樂山)하니,
지자동(智者動)하고, 인자정(仁者靜)하며,
지자락(智者樂)하고, 인자수(仁者壽)니라.
나는 이런 어려운 말은 모른다. 그저 산이 있기에 오를 수가 있고, 흙이 있기에 설 수가 있으며, 물이 있기에 마실 수가 있고, 바람이 있기에 숨을 쉴 수가 있다. 작은 세 칸 집이지만 비바람을 피할 수 있고, 마당 숲 그늘에서 편히 시름을 잊을 수 있기에 만족할 뿐이다.
맑은 하늘의 뭉게구름이 급할 것 없다는 듯 유유히 흘러가고 들녘으로 보드라운 어둠이 밀려온다. 푸른 바람이 청솔가지에 걸린 달을 밀어낼 때 쯤, 세 칸 기와 지붕위로 별빛 총총히 내린다. 별밤의 수정처럼 맑은 공기가 산촌 우리 집 마당으로 넉넉히 쏟아져 넘친다.
별들은 도시에서 보는 것 보다 질도 좋거니와 양도 많고, 눈이 시릴 만큼 초롱초롱 빛나며 손에 잡힐 듯 크기도 하다. 그 별들의 정기(精氣)를 마음껏 마신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구슬픈 소쩍새의 울음소리는 멀어서 좋고 이웃에서 가져온 하지감자 소쿠리에는 인정이 담겨서 좋다.
푸 른 바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