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아가 밖으로 문을 열고 나오자 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었다. “그래, 벌써 다 읽어보았는가?”
“예, 대강 읽고 기억은 해 두었습니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 뛰어난 오성이야.”
“과찬의 말씀 입니다. 귀가 간지러운데요.”
“허어, 이젠 농으로 받아 넘길 줄도 아네..”
“다 취개노형님 덕분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자네가 이것들을 다 운반해야 할 텐데 어찌 하려나?”
“이걸 전부 각대문파에 운반해 주라고요?”
“그래야지...”
“그냥 개방에서 일괄 처리해 주심 안 됩니까?”
“이 사람아, 이게 보통 문제인가? 이건 각대문파를 들었다 놨다 할 중요한 일이야. 어찌 한두 마디 말로 풀어질 사안인줄 아는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요?”
“우선 진천장으로 돌아가 각 대문파의 장문을 소집하시게.”
“진천장주가 소집을 하면 어쩌면 와줄지 모르네. 초청할 때에 약간의 단서도 흘려놓고.”
“그러면 그때에 나와 취개가 동행하여 도와주겠네.”
“이걸 수습안하고 그냥 왔으면 편할 뻔 했네요. 그럼 골치도 안 아팠을 터인데...”
“이것은 무림 전체의 안녕과 각대문파의 존속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므로 신중하게 처리해야 하네. 그것이 무림의 진정한 안녕을 위한 길이야.”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운반해야 합니까?”
“내가 우선 만홍루주에게 기별을 하였네. 그 여자가 비록 기루의 주인이지만 무시 못 할 세력과 정보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네 아마도 강남의 모든 기루는 그 여자의 말 한마디면 전부 두 손 들어버릴 껄...”
“흠.... 그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
“어쨌든 자네의 든든한 후원자임을 자청했으니 자네는 부자 원군이 있어서 좋겠네.”
“노형님, 농담 좀 그만하시고 옮겨놓고 초청을 하고난 후에는 요?”
“그때 그때 봐서 임기응변으로 처리하고 우선은 비밀을 유지하는 게 급선무 일쎄. 그 암중의 세력 귀에 들어가게 되면 아무래도 문제가 심각하게 돌아갈 수도 있을 테니까.”
“음.... ”
“우선 하루 종일 굶었으니 요기나 좀하고 쉬면서 무공을 계속하여 익히게나. 기다리다 만홍루의 준비가 끝나면 나와 항취개 둘이서 운반을 책임질 터이니 자네는 만홍루에 들렀다가 진천장으로 바로 오게나. 만홍루주가 자네를 부르고 있어.”
“알겠습니다. 그럼 요기나 하고 바로 출발하는 게 좋겠는데요.”
“그래도 상관없지.” 소동이 연아의 먹거리로 벽곡단과 야채를 좀 내어왔다. 이를 게눈감추듯 먹어치운 연아는 바로 인사를 하고 동정호를 향해 출발하였다.
혼자서 홀가분하게 떠나려하니 왠지 허전하기도 했지만 이런 생각을 떨치고 한 마리 비익조처럼 동정을 향해 날아갔다. 한편 연아와 헤어져 소림쪽으로 향하던 사노에게는 시련의 연속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유혼교의 내습이었다. 어찌 알았는지 사노를 추적하는 무리들이 생겼고 이들이 바로 추살령대였기 때문이다. 같은 소속으로 있었기에 아무리 역용을 잘해도 얼른 알아보고 덤벼드는 통에 벌써 세명의 추살령대를 처치하고 쫒기는 중이었다. 어서 숭산 부근까지 가면 이들의 추적을 피할 수 있겠거니 하며 도망가는데 놈들은 이미 통문으로 사노의 앞 길목을 막으며 덤벼드는 것이었다.
이리저리 도망 다니느라 장보도에 대한 수소문은커녕 제 한 몸조차 걱정해야 될 형편이었던 것이다. 부득이 개방의 제자들을 찾아 도움을 청해야겠다는 생각을 할밖에... 겨우 도망쳐 마을에서 개방의 거지에게 통보하여 항취개와 연아에게 현 상황을 알려주라고 이야기 하였다. 개방의 제자는 항취개의 이야기가 나오자 즉시 통문을 돌리고 사노의 도피로를 확보하여 열어주어서 좀 쉴 수 있게 되었다.
이틀 동안 최대의 경공으로 군산부근에 도착한 연아는 우선 만홍루로 들어가 루주에게 통보하라고 일렀다.
“어서 오시게. 이렇게 빨리 오다니 날개라도 해 달은 모양이로군.”
“무슨 일로 저를 보자 하셨는지요?”
“자네, 선아를 그대로 내버려둘 셈인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진천장으로 데려다 주려고 생각했습니다.”
“선아가 자네 보고 싶어서 눈이 짓물렀네.”
“네? 제가 왜 보고 싶은가요?”
“허어, 자넨 여자의 마음을 헤아려줄 아량이 부족한가보군?”
“......................”
“들어가서 선아를 좀 달래주고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은가?”
“궁금하지요.”
“그럼 들어가 보게..”
“네” 대답을 하고 선아가 기거하는 방으로 안내를 받아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나야.”
“잠..잠시 기다려요. 문 열지 말고.”
“알았어.” 안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문이 살짝 열리며 선아가 얼굴을 보인다.
“왜 이렇게 소식이 없었어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음...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미안하게 되었군. 그동안 잘 지내었나?”
“몰라요! 사람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거예요?”
“허어, 난 선아를 무시한 적이 없어. 무슨 말을 그리 ... 섭섭하군.”
“내가 할 소리를 오빠가 다해버리면 난 무슨 말을 하지요?”
“자, 자 그만하고 며칠 있다가 진천장으로 돌아가자구. 내가 진천장에가서 장주님과 좀 상의할 일이 있으니까.”
“무슨 일인데요?”
“선아가 알 일은 아니고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 가서 이야기 할 께. 그리고 내가 설명해주는걸 잘 들어 이건 투룡십팔번으로 비전절예이니 함부로 사용하지 말고 위급할 때만 사용하라고. 알았지?” 대답을 듣고 나서 투룡십팔번의 오의와 해설을 신형을 움직여가며 설명해 주었다. 선아도 이미 생사관현을 타통 하여서 남다르게 빨리 이해하고 심결을 암기하였다. “열심히 수련해야 나중에 나를 돕지.”
“흥, 말만 뻔지르르하게 하고 실제 중요한거는 안 가르쳐 주면서...”
“아니야, 내가 그럴 리가 있어?” 토라진 듯한 선아가 왠지 이제는 어린아이가 아니고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이만 나가서 루주님과 상의할게 있으니까 얌전히 수련이나 하면서 기다려.”
“선아는 삐친 듯한 표정으로 대답도 안하고 뾰루퉁하게 서있었다.” 다시 한번 손을 흔들어주고는 루주에게 돌아왔다.
“그래, 이제 좀 풀어졌나?”
“왠걸요? 토라져서 말도 안하고 억지만 부리고 있네요.”
“그러길래 좀 부드럽게 대해주지 그랬어.”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걸요. 시간이 가면 풀어지겠지요.”
“독안마제에 대해서 알아 본 게 있나?”
“그것보다 무림을 통째로 말살하려는 아주 커다란 음모를 발견 했어요.”
“뭐라!”
“신의와 천화동에 들어 사실을 확인한 결과 소림의 혜정이 남긴 말에 의하면 암중에 활동하고 있는 어떤 세력에 의하여 무림 전체가 이용을 당하였고 연합하여 사조님부터 선친까지 희생자를 만들어 무림을 말살하려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음..... 어째서 그런 일이 ... 강호에 알려지지 않은 세력이 있기는 하지만 설마...”
“지금 제가 천화동에서 수습한 각대문파의 신물과 유품을 진천장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자네 설마 그것들을 이용하려는 심사는 아니겠지?”
“이용하다니요. 그걸 각대문파의 방장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돌려주고 사실을 밝힐 것입니다.”
“그럼 그걸 그냥 돌려주겠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 잘난 각대문파의 장문들이 인정하려할까?”
“사실을 인정 안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 사람들에겐 사실보다는 자파의 체면이 먼저라네. 그런 사람들을 어찌 설득하려고......”
“그리 답답한 사람들이라면 상대를 안 하면 되지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자네를 공박하여 범인의 일당으로 몰아갈 걸쎄.”
“그래도 하늘을 우러러 한점의 부끄러움이 없으니 그들도 알아주겠지요.”
“그야말로 주관적인 생각이지. 누가 자네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려 하겠는가? 작금의 강호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야.”
“신의님과 항취개 노형님이 나서도 그럴까요?”
“그렇다고 해도 약간의 도움이 될 뿐 각대문파의 의심과 오해를 풀어줄 방법이 별로 없는 것 같네.”
“그럼 어찌해야 하는지요?”
“우선 신의와 항취개를 이리로 오도록 연락해야겠네. 그리고 나서 하나 하나 불러들여 각개 격파하여 그들이 서로 모른 채 해결하는 게 오히려 쉬울 것이네. 그들의 자존심을 안 건드리는 게 최상책 이지.”
“그게 좋은 방법인 것 같군요. 어서 통보하시지요.” 만홍루주가 즉시 서신을 써서 전서구로 날려 보내었다.
“자네, 전에 소홍과 하루를 보냈지? 이제 여자가 어떤 존재라는 걸 좀 알겠는가?” 연아는 대답도 못하고 얼굴과 목까지 빨개져 고개를 숙이고 소매만 털어내고 있었다.
“내 이런 소리까지 하는 게 어떨지 모르겠네만 선아가 자네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는 눈치던데 가벼이 생각하지 말게. 그리고 항상 아끼고 보호해주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여자는 남자가 이끌기 나름일쎄. 여자란 아주 작은 일에도 감격하여 마음을 열고 아주 사소한 일에도 마음을 닫아 버린다는 걸 명심해야 하네.
내가 하는 이야기가 그냥 하는 잔소리로 듣지 말아주었으면 하네.”
“알겠습니다.”
“이런 소리를 할 수 있다는 건 자네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지.”
전서구를 통하여 만홍루주의 의견을 들은 신의와 항취개가 진로를 바꾸어 동정으로 향하고 그 사이에 연아는 좀더 선아와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도록 선아의 무공수련을 도우며 보내었다. 선아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연아의 지도를 따르고 쉴 때에는 연아에게 기대어 쉬고 여자 특유의 어리광으로 연아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연아도 이런 선아의 행동이 싫지 않아서 잘 받아주니 지나기는 시간이 마치 꿈결 같다.
벌써 창밖에 흐르는 바람이 서늘하고 야밤에는 선득선득 한기가 돌아드는 계절로 바뀌어 가는데 정원에서는 연아와 선아가 무공을 수련하는 소리가 조용한 사위를 흩트리고 있다.
연아는 조금이라도 더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세심하게 자세를 교정해주며 반룡대구식까지 전수하여 주고 있었다. 워낙 허공중의 몸놀림이 심한 초식이기에 숨소리가 가빠오고 땀이 많이 흘렀다. 잠시 쉴 때에 연아가 선아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며 “좀 쉬었다가 하지?”
“아뇨, 이제 막 불붙기 시작했는데. 빨리 운용할 수 있어야 되지요. 정말 기분이 좋은 신법이예요. 내가 마치 용이 되어 하늘에 오르는 것 같아요. 그 기분 알아요?”
“그럼, 알지...” 대답을 하는데 선아가 살며시 연아의 가슴에 안겨든다.
“흠.. 음.....” 당황한 듯 헛바람소리를 내던 연아가 용기를 내어 살며시 선아를 안아주었다.
“아! 정말 편하군요.” 선아가 눈을 살며시 감으며 완전하게 안겨들었다. 연아의 팔에 점점더 압력이 가해지고 둘의 사이에는 이제 종잇장도 들어가지 못하게 밀착되어 서로 가슴의 고동을 느낄 수 있다.
“이제 좀 놔줘요. 숨 막혀 죽겠네.”
애독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고 달아주신 리플이 제게 많은 힘을 주네요.
앞으로도 많은 성원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