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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13. 수뻬르메르까도 까헤라

무늬만여우... |2004.09.10 00:57
조회 2,800 |추천 0

아버님이 양봉이민 2차로 오셨지만, 어디에서 그 양봉을 시작할지 결정을 못하고 계셨다. 그 넓은 땅덩어리 어디에 마땅할지 아직 발견을 못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다 놀 수없으니 아주버님이 슈퍼마켓을 차렸는데, 작은 마켓에 갖출껀 다 갖춘 마켓이었다. 정육점이며, 햄종류를 파는 휘암브레리아, 야채가게, 등등

그런데 아주버님이 법대를 나오셨는데, 대학원 졸업을 못하고 왔기에, 또 그 휴학 기간이 길어지면 졸업을 못하니 졸업을 하러 한국으로 온 식구가 나가게 되었다.

그 가게를 랑한테 맡기고 갈 요량이었나본데, 웬걸~ 랑은 슈퍼마켓하는걸 끔찍이도 싫어했다. 그렇다고 스페인어 말못하는 아버님이나 어머님은 불가능했고, 아가씨는 고등학생이니 공부해야했고, 에겅......그래서 젖먹이 아가를 둔 내가 그 마켓을 맡게 되었다.

나야 그 가게가서 맛있는 요구르트나 바나나를 집어먹는 재미로 나갔었지 내가 책임을 지고 맡게 될줄을 꿈에도 몰랐다. 나도 스페인어가 익숙치 않은 때였고, 더군다나 젖먹이 아가가 있지않은가말이다. 야속한 랑은 자긴 죽어도 그거 안한다고 친구랑 부동산 사무실을 열었다.

가게에서 가격표 보는 법과 계산하는 법, 물건 시키는 법, 오면 저장하는 창고, 도매상에서 물건사기 등등 몇가지 간단한거만 이틀 가르쳐주더니 아주버님과 형님은 조카를 데리고 장부 하나와 가격표만 넘겨주고 한국에 나가버렸다. 물론 아가씨가 도와준다곤하지만 아가씬 학교 공부에 매달려야하는 고딩아닌가. 물론 그들은 내가 일을 시작하면 랑이 당근 도와줄꺼라고 믿고 갔을꺼다.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인걸 그들은 몰랐던거다. 가게 문닫으러도 안온 사람이다. 다 아버님이 하셨다.

가게에 나가니, 정육점은 내가 아는 랑 후배 성규씨가 맡아서 해서 의지가 되었다. 더군다나 나보단 이민 6개월이 빠르니 나보단 말도 잘했다. 야채가게는 이민온지 얼마 안되는 가난한 한국인에게 세를 줬는데, 내가 보기에 제대로 운영이 안되는거 같았다. 도대체가 야채며 과일이 맛있고 신선하게 안보였다. 어케 관리를 하니 글치?

일단 가게를 내가 맡는다고 생각하고 둘러보니 골치가 아팠다. 가격표는 물건 하나마다 매직으로 써서 붙여놓았고 (거의 모든 가게가 그렇게 붙어있다.) 무슨 종류는 그케 많은지. 더군다나 아르헨티나 음식 종류도 제대로 모르고 포도주만해도 뭔 종류가 그케 많은지 가격을 찍다가 가격을 모르면 뛰어가서 보곤해야했다. 누구하나 도와주지 않으니 가격을 외우는 수 밖에 없었다.

손님들이 조금만 사면 괜찮은데 열댓가지를 사면 가격표 적혀 있는 공책 뒤지다 볼일다보니 걍 달달 외워버렸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자판이 빠르다. ㅎㅎㅎ 타고난거같다. 우유 제품 종류도 수십가지고 회사마다 가격이 다르니 그 가격 외우는게 젤루 힘들었다. 가격을 외우니 종류는 당연히 따라서 외워졌다. 그렇게 일주일 고생하니 팔 물건이 없는게 아닌가. 떨어진거 투성이었다.

아버님과 씨에스타 시간인 12시 반에 가게 문을 닫고 도매상을 갔다.

한국인 도매상이 있었는데, 안에서 차로 다닐 정도로 넓었다. 그 도매상 주인은 돈을 무쟈게 많이 벌어서 말비나스 전쟁때도 만불씩 나라에 희사하고 그랬다든데........암튼 나중에 얼토당토않게 세금을 엄청 때려맞아서 그거 세금 내느니 걍 장사 때려치운다고 정리해서 미국으로 갔다. 암튼 내가 슈퍼마켓을 할 그 당시엔 잘되는 도매상이었다.

떨어진 종류를 조목조목 적어서 가서 샀다. 중국인은 식용유가 떨어지면 큰일나는지 안다든데...아르헨티나인들은 설탕이 떨어지면 큰일나는지 안다. 그래서 설탕을 싸게 많이 사다놓으면 장사 잘한다고 할 정도로 설탕으로 돈버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도매상도 설탕장사로 돈벌었다는 소리도 있었다.

꿀값이나 설탕값이나 같은 나라인 아르헨티나. 그들은 설탕을 그케 좋아한다. 나같음 꿀먹는뎅.

가게를 하니 아가 젖먹이는게 이만저만 수고로운게 아니었다. 떼려고 갖은 짓을 다했지만 하루죙일 쫄쫄 굶고 내가 들어오면 허겁지겁 젖만 빠니 아들이 넘 불쌍했다. 나도 가뜩이나 젖 양이 많아서 죽겠구만 제때에 못먹이니 젖몸살 앓을 때도 많았다. 그래도 이 아들넘이 젖만 밝히니 어쩌겄나 쉬는 시간인 쎄에스타 시간에 와서 점심 먹기전에 한번 먹이고 가게 열러 가면서 네시반에 함 먹이고 밤 9시나 열시나 되어 가게문 닫고 와서 먹이니 아가도 힘들고 나도 힘든 생활이 시작되었다. 가끔 아버님이 아가를 데리고 나와서.....가게에서 젖을 먹인적도 많았는데, 바람이 많은 아르헨티나는 가게가 추웠다. 그래서 오면 꼭 감기가 걸려서 들어가곤해서 그 짓도 자주 못했다. 게다가 손님이라도 밀리면 아가는 엄마 찾아 징징거리고 그래서 집에서 살림이나 하면서 아가데리고 산책이나 다니던 때가 그리워졌다. 그래도 책임 주어진 일이니 최선을 다했다. 원래 최선을 다해서 사는게 내 생활 신조니깐.

가게보는 일에 점점 익숙해져 갔고, 아가도 내 쉬는 시간까지 꾹꾹 참았다가 젖을 먹는게 당연해졌다. 대신 그렇게 되니 밤새 젖을 먹어서 잠보인 내가 잠이 항상 부족했다.

그래도 수천가지의 물건 가격을 달달 외우게 된 내가 너무 대견했다. 나 외우는거 넘 잘하니 고시공부나 시도해봐? 하는 생각도 해봤다. 푸히히~
그거도 지금은 애 셋 낳으니 건망증에 잘 외워지지도 않아 과거지사가 되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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