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礎律(초율) 3화

피바다 |2004.09.12 14:32
조회 595 |추천 0

 연회는 밤이 늦도록 끝이 나지 않았지만, 성인식을 치르러 떠날 넷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동이 터 올 무렵 아미산으로 떠날 준비를 마치고 다시 제황성의 홀에 모였다.

 그들이 나타났을 때 비류천은 황좌에 당당하고 근엄한 표정과 자세로 앉아 있었고 귀족들도 옷을 정제하고 정렬하여 서서 넷의 출발을 지켜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관지를 선두로 넷은 비류천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 소자 관지, 성인식을 치르고자 성스러운 아미산으로 떠나고자 합니다. 허락해 주소서."

 비류천은 사랑하는 아들 관지와 용감하고 반듯한 세 명의 젊은 왕족들에게 인자한 웃음을 띄우면서 그들의 여행에 축복의 말을 전했다.

 " 천계 최고의 두 장군인 제공과 소예, 그리고 지혜로운 비영, 사랑하는 나의 아들. 너희 공주와 왕자들은 반드시 성스러운 의식을 통과할 것이다. 더욱 빛나는 모습으로 돌아 올 너희를 기다리고 있겠다.

 관지, 내 아들아. 이리로 오라."

 관지는 황좌가 놓인 높은 단으로 올랐가고 비류천은 일어서 관지를 힘차게 안았다.

 "무사히 다녀오거라. 내게 실망을 줘서는 안돼"

 "전하의 기대에 반드시 부응하겠습니다. 그 간 건강하십시오"

 관지가 예를 올리고 다시 자리로 내려온 후 네 명의 젊은이들과 귀족들은 서로 예의를 갖추며 절을 했고이제 떠나는 일만 남은 터였다.

  땅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제황성이 불길하게 진동하였고 밖을 지키던 장수가 놀란 얼굴로 뛰어 들어와 소리 친 건 그 순간이었다.

  " 전하! 천마(天馬)이옵니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만큼의 천마가 이리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모여든 사람들이 동요하는 가운데 제공과 관지가 사태를 알아보기 위해 달려나갔다.

  장수의 말대로 수십마리는 족히 되어 보이는 천마가 줄을 맞춰 제황성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천마 가운데서 제공은 사람의 형상을 찾아냈다.

 "천마라니...이게 무슨 일이지?"

 관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천마는 야생의 기질이 너무나 강한 성스러운 동물이었다. 천마 각각이 저마다 신비로운 능력을 가졌고 스스로 주인을 선택하는 성물이었다. 다루기 또한 힘겨워 천제조차 몇 마리 소유하지 못한 천마가 제 발로 수십마리나 달려오고 있는 상황에 다들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제공은 천마보단 그 속의 사람의 형체에 관심이 더 많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먼지 바람 속에서 사람을 찾아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역시 사람이었다. 검은 복장에 복면을 한 사람이 천마의 무리 중 가장 위세 좋아 보이는 한 마리의 말에 올라 타 무리를 끌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일시에 달려들던 천마가 동시에 멈추어 섰고 흙먼지가 시간을 두고 서서히 가라 앉았다. 가라 앉는 먼지 속에서 천마의 모습이 확실하게 드러나자 사람들은 저마다 감탄의 소리를 내 질렀다. 단단한 근육과 튼튼한 다리, 윤기나는 갈기와 신비스러운 눈동자. 쉽사리 얻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저마다의 욕심이 더해져 천마를 지켜 보는 사람들의 눈에 천마는 세상 최고의 보물처럼 빛나 보였다.

 검은 천마 위에서 무리를 이끌어 온 사람이 훌쩍 뛰어 내렸다. 그는 복면을 벗고 말 등에 매인 큰 자루하나를 풀어 어깨에 둘러맸다. 그가 돌아서자 제공과 눈이 마주쳤다.

 햇빛에 그을린 검은 피부와 훤칠하고 튼튼한 몸매, 차갑지만 남성적인 얼굴, 붉은 빛이 감도는 검고 긴 머리카락은 그를 강한 남자로 보이게 했다. 거침없이 제황성 입구로 다가온 그를 문지기들이 막아섰다.

 문지기들은 책임감 때문에 막아섰지만 그들의 몸은 표 나도록 떨리고 있었다. 다가온 남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지만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너무 강해 문지기들은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 살기는 마계나 수라계의 악마들에게나 존재하는 원초적인 것이었다.

  관지는 참을성있게 남자의 얼굴을 살피며 기억을 더듬고 있었고 그 와중에 먼저 나선 것은 제공이었다. 제공은 불쌍하리만치 떨고 있는 문지기들을 물러나도록 명령하면서 ,

 " 너희가 막아설 분이 아니시다. 물러나라"

 하지만 제공은 그 분위기에서도 여전히 웃고 있었다.

 "관지, 자네가 천제께 직접 데리고 가야할 듯하네. 귀하신 분이 오셨어."

 관지는 제공의 제안에 영문을 몰랐지만 곧 그 사내가 황족이나 왕족의 순수한 혈통만이 가진다는 보랏빛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의 기억 속에 그 남자는 여전히 없었다.

  관지가 머뭇거리자 눈치 빠른 제공은 한 걸음 물러나 그 사내에게 길을 터 주었다. 싸늘한 눈으로 제공을 쳐다보고 문을 들어서는 사내를 향해 제공은 반가운 목소리고 환영인사를 전했다.

  " 어서오시게, 설무랑. 하지만 지각이야"

 

 거칠게 생긴 사내가 천황성으로 성큼 들어오자 모인 귀족들의 웅성거림은 더 커졌고. 들어서는 사내의 얼굴을 본 지국천왕은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인가, 지국천?"

  지국천의 태도가 어색하고 이상하여 비류천이 묻자, 지국천은 억지로 뛰는 심장을 달래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아닙니다. 전하. 아닙니다"

 비류천은 들어서는 사내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사내의 온 몸에서 전쟁의 느낌이 났다. 거칠고 강렬한 피의 냄새가 그의 몸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천제는 남자의 그러한 느낌이 아주 마음에 들어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을 흘렸다.

 남자는 한치의 망설임도 어려움도 없이 곧장 천제의 앞으로 걸어들어와서 무릎을 꿇어 예의를 올렸다.

 비류천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약간의 당황스러움과 호기심을 강하게 느꼈지만 천제다운 여유를 잃지 않고 겉으로 냉담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대가 천마를 끌고 왔는가? 자네는 누구인가?"

 그러자 사내가 입을 열었다.

 " 천황성 앞에서 감히 무례를 범한 자, 죽어 마땅한 소인은...동방성 지국천왕의 장자(長子) 설무랑이라 하옵니다"

 천제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지국천을 바라보았다.

 분명 지국천은 200년 전 비통한 얼굴로 아들 설무랑이 병으로 죽어 묻고 왔노라 전하지 않았던가? 어제만해도 죽은 아들에 대한 슬픔이 가득하던 얼굴로 앉아있던 지국천이었다.

 하지만 지국천은 말이 없었다. 의심스러운 점이 하나둘이 아니었지만 비류천은 우선 설무랑이 마음에 들었다.

  "어서 오라, 설무랑.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무랑은 자리에서 일어나 둘러메고 온 자루를 집어 들면서

 "소인이 고귀하신 천제께 작은 선물을 바치고자 하옵니다. 받아주시겠습니까?"

 천제가 기꺼이 허락하자 설무랑은 자루를 뒤집어 안에 있는 것들을 바닥에 쏟아냈다.

 그 순간, 홀에 모인 귀족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코를 틀어막거나 여인네들은 구토를 해 대는 등 난리를 떨었다. 설무랑이 흩어 놓은 것은 역겨운 비린래를 풍기며 아직도 살아 날뛰고 있는 마족들의 머리였다.

 피와 체액이 반쯤 굳은 채 마족의 머리와 엉겨 붙어 보기에도 끔찍했고 냄새 또한 고약했다.

 "하하핫! 이 이상의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껏 받은 선물 중 최고의 선물이다. 지국천의 아들, 설무랑이여!"

 천제는 만족하여 크게 웃으며 박수를 쳐 댔다.

 그리고 그는 설무랑이 자기와 같은 부류라는 것을 확신했다. 비류천 역시 보위에 오르면서 자신의 손에 엄청난 피를 묻히지 않았던가. 자신의 즉위를 방해하던 귀족들을 제거했고 심지어 혈육마저 가차없이 끊어버렸으며 천제가 된 후에도 황권을 위협하는 중신세력과 반란을 일으키던 천민층을 몰살시키며 자신의 검을 피로 물들인 비류천이었다.

 비류천은 이 만한 것에 난리법석을 떠는 귀족들의 나약함을 속으로 비웃었다. 강한 자는 강한 자에게 끌리는 법이었다. 그래서 비류천은 자신과 같은 피 냄새를 가진 설무랑이 아주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300년만에 살아돌아 온 비밀스러운 인물-설무랑.

 그렇게 하여 성인식을 위해 아미산으로 떠난 사람들은 모두 다섯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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