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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엔드 II (2)

Zelkova |2004.09.23 01:19
조회 319 |추천 0

<2004년 3월 13일>

 

English bay 의 빛깔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름다웠던, 해가 뜨는기 전의 검은 빛깔에서  점차 에메랄드 빛으로 변하다, 해가 질 녘, 노을에 어울려드는 빛깔은 어느 바닷가의 빛깔 보다 아름다웠다.  특히 햇살이 강한 여름 오후의 빛깔이 가장 아름답다. 연한 에메랄드 빛에 살며시 출렁이는 잔잔한 파도에 부져서지는 햇살과의 조화는 인간의 언어 표현을 거부했다.

 

성한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English bay는 여름 만큼 아름다운 빛깔은 아니지만, 여전히 아름답다라는 말로 표현하기에 아무런 손색이 없는 빛깔을 English bay는 머금고 있었다. 

 

- 이제 마지막이구나

 

성한은 아쉬운듯 속으로 중얼 거렸다. 내일이면 이곳에서의 3년 간의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한참 동안을 English bay 로부터 Staney 공원까지 장면 하나 하나를 눈으로 담으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 오빠~! 많이 기다렸어?

성윤이였다.

 

성한은 성윤의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여전히 English bay 로부터 Staney 공원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 기억 하나 하나를 더듬고 있었다.

 

성윤은 가만히 성한의 옆에 앉았다.

그러다, 성윤의 셀폰이 울리고  그때서야,  성윤이 온 것을 알아차렸다.

 

- 언제 부터 옆에 있었던거야.?

 

- 한 5분전에. 불러도 못들은 척하고, Staney만 뚜러져라 보고 있던데.

 

- 내가 그랬어? 미안해. 밥은 먹었어.....

 

- 오빠~! 그 밥먹었냐는 소리좀 그만 하면 안돼? 오늘까지 밥먹었냐는 소리냐? 그렇게 날 보면 할

말이 없어.

 

성윤은 아침부터 정성스럽게 꾸미고 나온 자신의 모습에 한마디도 없는 것이 내심 서운했다.

 

성윤은 평소에 화장을 잘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어쩌다 한다 할지다도,  립글루가 유일한 그녀의 화장이라면 화장이었다. 

 

오늘은 많이 달랐다.  깔끔하게 다듬어진 눈썹, 퍼플과 인디언 핑크 그리고 반짝이는 은색의 아이쉐도우로 잘 어울려진 눈 화장, 그리고 마스카라로 잘 말아 올린 속 눈썹, 연 핑크빛의 립글루,  곱게 잘 먹은 트윈케익, 가늘고 길게 늘어진 White gold ear rings,  permed 했던 머리를 풀어서 인지, 제법 길어 보였다. 

 

성한도 English bay의 에메랄드빛에 어우려진 그녀의 모습이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뭐라고 한마디라도 평하고 싶었지만, 속으로 만 중얼거렸다.

 

(언제나 언제나 하지만 오늘은 더 이뻐보인다.)

 

둘은 English bay 에 있는 Boat House로 향했다.

 

" Hi~ Luke "

 

평소에 친분이 있던, 웨이츄레스 진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성한의 영어이름이 Luke였다. 진은 가장 뷰가 좋은 곳으로 우리 둘을 안내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손님이 자리를 정할 수 없는 외국에서 한 식당에서 웨이터나, 웨이츄레스와 친해진다는 것은 많은 장점이 있다. 항상 좋은 자리로, 거의 음료수만 시킬때가 대부분이지만, 스테이크, 파스타와 같은 식사류를 시킬때, 음료수와 샐러드 정도는 공짜로 먹을 수 가 있었다.

 

여전히 성한은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고, 언제나 그랬듯이 성윤 역시 창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성윤이 바라본 것은 창에 비친 성한이었다는 것이 다른 점이었다.


둘은 한참 동안 아무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별이라 하기에도, 그렇다고 그런 것이 아니라 하기에도 애매모호한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 애매모호함이 성한을 그렇게 침묵하도록 만든 것은 아니였다. 가끔은 흔들렸지만, 자꾸 만 흔들리려고 하는 성윤을 위해서 항상 침묵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먼전 말을 꺼낸건 성윤이였다.

 

-  오빠, 가는 구나~! 정말 이제 가네.

성윤은 아쉬운듯 그러면서 못내 그 아쉬움을 표현하지 못했다.

 

- 응, 간다 간다 그러다, 이젠 진짜 간다. 넌 아직도 3년은 더 있어야 되네.

 

- 그냥 나도 오빠따라가 갈까?

 

- ................

 

농담 반 진담으로 던진 그말에 성한이 아무말이 없자, 잠시 분위가가 어색해졌다.

 

- 정말, 재미없어. 농담이라도 그러라고 그러면 안돼?


성윤은 더 이상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이미 좋아하는 감정을 넘어선지는 오래지만, 사랑은 같은건 없다고 수없이 자신을 세뇌시켜온 그녀에게 성한은 남자로서 어떤 의미도 부여할 수 없는 그져 좋은 사람이어야만 했다. 가끔은 사랑이란 걸 믿고 싶었다. 그래서 가끔은 연인인듯 성한을 대하곤 하지만, 잘 받아주다가도 그 도가 지나치다 생각할때면, 무서우리만큼  성한은 묵묵했다.  성윤은 그것이 성한의 윤미에대한 마음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성한도 마찬가지였다.가끔은 흔들렸다. 아니, 하루에도 몇번씩 성윤을 만날때마다 흔들렸다. 하지만

, 사랑같은 건 없다고 말하는 그녀지만, 그녀가 얼마나 그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기때문에,  성윤에게 다가 갈 수 없었다.

 

다시는 누군가의 사랑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성윤이끝나버린 사랑이라 말할지라도, 다시는 사랑

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의 사랑을 갈라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어쩔 수 없었다고,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변명할 수 있을지라도 말이다.

 

무엇보다도  윤미가 결혼할 그때까지는 성한은 아무도 자신의 마음속에 담아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

것이 성한이 감내해 내야할 죄아닌 죄의 대가라 생각했다.

 

윤미가 결혼을 할때까지는, 성윤이가 그 누군가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인정할때까지, 성한은 성윤이의 느티나무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사랑을 구걸하기 위해 다가서지 않으며, 말없이 한자리에서 묵묵히 바라보며, 지친 그녀의 등받이 되어 주는 것, 윤미에게 지키지 못한 그 약속을 성윤이에게 만큼은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 아니? 넌 내 유일한 위로였어. 넌 내가 너의 위로였다 말하겠지. 니가 없었다면, 이만큼이나 윤미

에 대한 마음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성윤아. 넌 나한테 너무 고마운 사람이야.


성윤은 그 고마운 사람이라는 소리가 왠지 듣기 좋게만 들리지 않았다.
지금 이라도 한마디만 해준다면, 얼마든지 성한의 옆자리를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성한은 자꾸

만 거리를 두려는 것 같이 느껴졌다.

 

(오빠가 생각하는 것 만큼 윤미는 좋은 사람이 아니야.)

 

성윤은 모든 걸 사실대로 말해버리고 싶었다. 같은 여자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윤미의 행동,

지금 자신 앞에 서있는 남자를 철저히 기만하고 떠나버린 윤미의 실체를 다 말해버리고 싶었지만,

그건 성한에게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자기 자신도 윤미가 돌아 오지 않을 것을 잘 알면서도, 혹시나 자기를 빌미로 해서 윤미가 그 사람으로 부터 버림을 받는다면, 윤미를 감당하고 받아드릴 사람은 자기 뿐이라며

 

망부석처럼, 윤미가 결혼했다는 소식이 누군가를 통해 들릴때까지 그렇게 한자리만을 고집하고 있을 성한이 참 바보스러웠지만, 어쩌면 그런 바보스러움이 성윤에겐 성한이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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