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사는 칠십 노인을 집에서 쫓아내 달라고 요구하는 원고(주택공사) 소장에서는 찬바람이 일고, 엄동설한에 길가에 나앉을 노인을 상상하는 이들 눈가에는 물기가 맺힌다. 우리 모두 차가운 머리만을 가진 사회보다 따뜻한 가슴을 함께 가진 사회에서 살기 원하기 때문에 법 해석과 집행도 차가운 머리만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함께 갖고 해야 한다고 믿는다 ."
한편의 수필을 읽는 듯한 한 판결문이 법조계에 잔잔한 감동을 던져주고 있다. 딱딱하고 해석하기 어려운 판결문만을 생각한 사람들은 이게 과연 판결문인가 어리둥절해 할 수도 있을 정도다. 이는 70대 노인이 법 절차를 몰라 딸 명의로 임대주택을 받아 살아왔다면 실제 거주한 노인에게 우선 분양권이 있다고 판결한 대전고법 민사3부 박철 부장판사 판결문이다.
대한주택공사가 충남 연기군 모 임대주택에 살고 있는 이 모씨(75)와 명의상 임차인인 딸 이 모씨(45) 등을 상대로 낸 퇴거ㆍ명도소송에서 원고 승소한 원심을 깨고 10일 원고 패소 판결했다.
99년 노인 이씨는 중병에 걸린 부인과 함께 충남 연기군 임대 아파트에 5년 계약으로 들어갔다. 당시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하는 부인을 간호하느라 자리를 뜰 수 없었고, 딸 역시 먼 거리에서 서류를 떼러 다니기가 불편해 자기 이름으로 임대 계약하고 아버지가 살도록 했다. 항소심은 판결문에서 "75세 노인이 계약체결 과정에서 있었던 작은 실수 때문에 이제 그 주거공간에서 계속 살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균형을 잃은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