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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율(礎律) 13화

피바다 |2004.10.04 13:09
조회 452 |추천 0

관지는 형 후강의 궁에서 나온 뒤, 초조한 마음을 달랠 수 없어 곧장 제공을 만나러 남방성으로 왔다. 제공은 새로 들어온 아름다운 시녀가 다과를 준비하고 나가려는 걸 막아서더니 허리를 껴안은채 진한 장난을 치면서 관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참을 자기 즐거움에 빠져있었다.

 아쉬운 듯 겨우 시녀를 놓아 보내고난 제공은 잘 익은 사과 하나를 집어들어 베어 먹으며 중얼거렸다.

 " 홍백면장이라...."

 제공은 우물우물 사과 조각을 입에 넣고 잠시 뭔가를 떠 올리는 보였다.

 " 홍백면장이 자네 아랫동생이라 이거지? 이거 놀라운데..."

 관지는 말없이 허벅지에에 두 팔을 얹어 상체를 지지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바닥만 내려다 보고 있었고 선 채로 서성이던 제공은 그제서야 다가와 맞은 편 의자에 몸을 던지듯 앉았다. 제공은 흐뜨러진 자세로 드러눕듯 의자에 앉아서는 기지개를 폈다.

 " 본 적이 있어"

 제공이 밝히는 뜻밖의 사실에 관지는 놀라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제공은 맛있게 남은 사과를 먹으면서,

 " 제 2차 마계 대전 당시였지. 그 지독했던 전쟁을 자네도 기억하고 있겠지?"

 잊을리가 없었다. 천계가 멸망 직전까지 갔던 역대 최악의 전쟁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 전쟁을 통해 관지는 지금의 태자 자리를 쥘 수 있었다. 제공은 관지가 모르던 그 당시의 비밀에 대해 차분히 풀어나갔다.

 

 공식적으로 친선대사까지 교환해오던 천계와 마계의 아슬아슬하던 평화는 마계에 새로운 마황이 등극하면서 기어이 깨지고 말았다. 불안한 기운만 감돌 뿐 잠잠하던 마계는 결국 역대 누구도 하지 못했던 수라계의 회유에 성공하여 두 이계(異界) 는 엄청난 파괴력으로 천계를 침략하여 들어왔다.

 살육만이 나라의 법도이고 정의이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수라계와 우수한 장수를 키워 낸 마계의 침공에 천계는 속수무책이었고, 6개의 하늘 중 4개의 하늘을 빼앗긴 채 멸망의 문턱에 있었다.

 마계와 수라계의 연합군은 천황성이 있는 도리천의 바로 아래 하늘인 사왕천에서 한바탕 전쟁을 일으키며 곧 도리천으로 쳐 들어올 기세였다. 다행히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소년장군 제공이 아버지 증장천왕에게 비상한 전략을 제안하였고 넷째 하늘인 도솔천에서 승리를 하면서 희망이 보였다.

 제공은 도솔천에서의 완전한 승리를 위해 마지막 전쟁을 앞둔채, 아버지 증장천왕을 따라 군사회의를 하기 위해 잠시 제황성을 방문하고 있었고 천제 비류천은 천계의 위기 앞에 몸소 출병하기 위해 준비 중인 상황이었다.

 즉위 식 이후 처음으로 갑옷을 정비해 입은 비류천과 여러 무장(武將)들, 그리고 제공이 결의를 다지며 회의를 진행하고 있을 찰나였다. 밖이 소란하더니 회의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이상한 갑옷을 입은 소년이 들어왔다.

 " 아주 특이한.....장면이었지"

 이야기 도중 제공은 초율의 모습을 회상하며 그렇게 중얼거리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소년은 천제에게 다가가더니 무릎을 꿇고 앉아, 아주 진심으로 자신에게 군사를 내어달라고 요청했다. 회의실에 모인 그 누구도 그가 천제의 넷째 아들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으니 아주 황당한 상황이었다. 다들 어리둥절하여 천제를 바라보았고 그의 결단을 기다렸다. 천제는 어쩐 일인지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그에게 군사 천 명을 내 주는 것이었다.

 " 제 4황자 초율을 칠기부대의 장수로 임명한다"

 천제의 선언에 무장들은 우선 그 괴상한 차림의 음산한 소년이 천제의 핏줄이라는 것에 놀랐고 이어 제대로 크지도 않은 풋내기에게 군사를 내어주는 천제에게 불만을 가졌다. 군사 한명이 아까운 이런 사태에서 아까운 군력만 축내게 생겼다는 우려에서였다. 이름 높은 장수도 겨우 군사 천 명을 가지고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데 기괴한 차림의 어린 아이에게 군사를 내주는 천제의 저의를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초율은 어떤 불평도 없이,

 " 야마천-제 3번째 하늘-부터 회수해 오겠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전하의 믿음의 대가로 제 목을 내어 드리지요"

 자신의 목을 걸겠다고 담담히 말한 초율은 곧장 군사를 이끌고 야마천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는 그 약속을 지켰다. 아니, 야마천에 이어 화락천에서까지 마족의 씨를 말렸고 마족과 수라족이 꼬리를 내리며 퇴각하면서 천계는 멸망의 문턱에서 발을 뺄 수 있었다. 

 

 "그..그럴수가!"

관지는 제공의 이야기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 2개의 하늘을 되찾아 온 전설적인 장군, 홍백면장에 대한 소문은 나도 들은 적이 있어. 하지만...혼자의 몸으로 단지 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 그것도 노련한 노장이 아니라 너의 동생이란 거지. 나와 넌 아버님들을 도와 겨우 하나의 하늘을 구했어. 하지만, 네 동생은 우리와 격이 달라. 이런 게 전설적이란 거지"

 관지는 양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다시 허벅지에 팔을 기대 몸을 숙였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관지는 홍백면장이라 불리던 전쟁 영웅에 대한 당시의 소문을 떠 올렸다.

 천계에서 그다지 인정 받지도 못하던 칠기부대가 어느 순간부터 신들린 듯 적들을 쓰러버리고 있다는 소문을 시작으로 그들을 이끌고 있는 장수에 대한 믿을 수 없는 소문들이 천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다. 적 뿐만이 아니라, 부상당하여 전쟁에 더 이상 참여할 수 없는 아군의 부상병들까지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생매장해 버린다거나 마계 황족들의 머리를 꿰어 마황에게 선물로 보내는 등 잔혹하고 기이한 행동을 일삼아 천계에서조차 그를 두려워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마황이 가장 아끼는 제 3황비를 납치하는데 성공하여 마황군단이 화락천에 총 집결하게 만들었다. 그곳에서 그는 치욕적인 방법으로 황비의 목숨을 앗았다. 마황의 아이를 배고 있던 황비를 그 황량한 벌판에서 한치의 망설임없이...그렇게....그리하여 결전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물론 홍백면장은 그 전쟁에서 승리했고 천계는 결국 그의 힘으로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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