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여인에게
싱싱한 파와, 마늘 냄새가 당신의 손에서 날 적에, 또 오이 냄새는 얼마나 상큼했는지 모릅니다. 여름날 느티나무 아래로 부는 바람처럼, 닿을 듯 말 듯 맴도는 나비처럼, 주방을 오가며 수선을 떨었던가요, 내가 좋아하는 오이소박이김치를 해서 꾹꾹 눌러 담으며 맨 위의 것을 집어서 맛을 좀 보라고, 자랑스럽게 내밀던 손에 묻었던 신선한 고춧가루, 하얗게 웃던 얼굴이 바로 당신이었지요.
"이제 다 했다. 우리 결혼기념일에 맞추어 잘 익을 거예요."
10월 23일. 우리가 결혼한 날,
앞으로는 잠도 같이 자며 지내야 한다는 낮선 변화에 어리둥절하며, 골목의 뒤로 돌아 붙은 셋방으로 퇴근하여 당신의 저녁상을 어색한 표정으로 받았지요. 회사에서 곧장 달려왔냐는 당신의 질문이었지만 지금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어요. 그날 나는 결혼했다는 사실조차도 잊은 채 하숙집으로 향했었어요. 무심하게 버스에 올라 한참 가다보니 내가 가야 할 집이 반대방향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허겁지겁 되돌아 왔던 기억이에요. 당신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얼마나 섭섭했을까,
첫 아이는 머리가 아래로 안착되지 않아서 수술해서 낳았고, 둘째 아이도 난산이어서 산모와 아이가 다 죽을 뻔했다는 의사의 말이었어요. 아기를 안고 전기장판 위에 누워서 병원비를 꼬깃꼬깃 넣은 지갑을 내주며 하루빨리 퇴원하고 싶다던 목소리 뒤에는 어려운 살림걱정이 서려 있었지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당신, 자나 깨나 아이들만 끼고 지내는 모습에 질투마저 느꼈었지요. 가끔 이유 없이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당신을 힐끔 옆눈질하던 나를 기억하는지 모르겠어요.
"아이들에게 아내를 뺏긴 기분이야. 애들뿐이 모른다니깐,"
언젠가 친구에게 하소연 하던 내 말이었어요.
결혼생활은 꿈이라기보다는 현실이겠지요. 식구가 네 명으로 늘어나니깐 조그만 아파트라도 마련해서 큰 녀석에게 방 하나, 작은 딸에게도 방 하나를 따로 주어야하니, 연애시절에 즐겨 다니던 레스토랑에도 못 가고, 계절마다 여행 다니던 일도 먼 나라의 일이 되어버렸지요. 돈이 아까워서 일요일에는 집에 쳐 박혀 뒹굴뒹굴 텔레비전만 들여다보다가 당신에게 야단맞기 일쑤였으니, 큰 아이가 자꾸 밖으로 나가니 지키라는 명령, 작은 아이가 울면 기저귀 갈아 주라는 명령에 시큰둥한 얼굴로 입맛만 다시다가, 자기는 집에서 매일 아이들하고 매대기 치는데, 모처럼 일요일에 그 정도도 못하냐는 투정이었어요. 그러다가 좀 미안해지면 저녁에 같이 외출하자고 했는데, 역시 돈이 안 드는 외출이었어요.
"물통을 들고 약수나 뜨러 갑시다."
여자는 남자가 무심결에 던진 말을 평생 기억하는 재주를 가졌나 봐요. 작은 딸을 난산할 적에 나는 간병하다가 아파하는 당신을 보고 무심결에 그까짓 것이 뭐가 그리 아프냐고 했었죠. 돌아서서 금방 내가 한 말을 잊었는데, 그 말이 평생 나를 괴롭힐 줄은 몰랐어요. 결혼한 지 이십년이 넘지만 지금도 가끔 죽을 때까지 그 말을 잊을 수 없다고 투덜대니, 참으로 당신은 기억력도 좋아요. 이제는 아이들이 다 컸어요. 내 흉을 그만 볼 때도 되지 않았을까요? 그토록 당신의 가슴에 못이 되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설마하니 그렇게 쉽게 말을 했겠어요?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말이니, 잊어버리도록 하세요.
오십을 바라보는 당신,
이제부터는 당신을 풀어줄 거예요. 한발자국 당신 곁에서 떨어져 선선한 가을처럼, 훨훨 날리는 낙엽처럼, 약간은 먼 듯, 조금은 쇠락한 듯, 그렇게 지키고 있을게요. 나를 흔들었던 젊은 날의 화사함과 뽀얀 얼굴을 거친 세월에 뺏겨 다시 볼 수 없지만, 나도 역시 기름기 빠진 모습이잖아요. 그러나 내 눈에 당신은 항상 가을을 흔드는 코스모스로 보입니다. 이십 여 년 전의 10월 23일에 당신은 코스모스 활짝 핀 길을 따라 나에게 시집왔잖아요. 지금도 들판에는 코스모스가 여전히 피어 있잖아요.
글 / 은하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