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1살입니다..
나는...세살때 할머니댁으로 버려졌습니다..
망한 사업으로 엄마는 집을 나갔고..아빠는 내 위로 다섯살 많은 오빠를 할머니댁에 보내고..
어린 나를 데리고 이집저집 하숙을 다니면서..하숙비도 못낼만큼 힘들어졌을때..
아빠는 할머니댁 대문앞에 나를 데려다 주곤 사라지셨습니다.
할머니는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눈시울이 붉어지십니다.
하나밖에 없는 손녀..(저희집이 딸이 귀해서)
그 작은 아이가..밥도 제대로 먹지못해 손 끝이 닳고 또 닳아
금방이라도 피가 터질것 같다 했습니다.
너무나 약한 나를 끌어안고..몇시간을 그렇게 우셨다 했습니다..
새하얀 죽을 끓여..한술 떠먹이니 제가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했습니다.
어린나이에 너무나 먹을게 없어서 하도 안먹다 먹으니 설사를 했나봅니다.
그런시절이 몇달이 가고...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밑에서 잘 자랐습니다.
몇번씩 아빠가 다녀갔다고 하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초등학교 1학년이전의 아빠기억은 없습니다.
내어린기억은 늘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다니시던 할아버지와
항상 나땜에 눈물을 달고 다니시던 할머니 밖에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될때..새엄마와 아빠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때 재혼을 하셨거든요..
전 낯가림도 없이 곧 엄마라 했고 잘지냈습니다.
그렇게 한 5년은 평범한 가족이었습니다.
다시 사업이 망하기전까지 말입니다.
한마디로 쫄딱 망했습니다. 온통 빨간딱지가 부쳐지고 날마다 빛독촉 전화가 오고 편지는 물론..
심지어 제 학교로 까지 빚쟁이들이 찾아오기까지..
전 중고등학교 시절을 참 싫어했었습니다. 졸업한 뒤로도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않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친구도 많았고 성격도 밝았고 추억도 많았는데 괴로웠던건..
늘 시달려야 했던 수업료 독촉때문이었을겁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술에 찌들어가는 엄마,아빠를 볼때마다 참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고1때 수학여행을 갔다 "엄마~"하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엄마는 이제 없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또한번 버려졌습니다.
버려지는데 나는 너무나 익숙해져서 이젠 아픔도 없습니다.
저는 어릴때부터 미술을 참 좋아했습니다.
학원 한번 다니지 않고도 디자인고를 나왔습니다.
미대를 원했지만..집에 돈이 없어서..대학엘 갈수 없었습니다..
합격했지만 등록일까지 등록금을 낼수 없었거든요..
친구들에게는 가기싫어서 안갔다 했습니다. 돈없어서 못갔다는 말이 입밖에 안나오더군요..
그렇게 이불속에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저보다 다섯살 많은 우리 오빠가 그날 미안하다면서 눈물을 보이더군요..
저는 지금 원래 집에서 3시간정도 떨어진 타지에서 편집디자인일 하고 있습니다.
멀리 벗어나고자 이렇게 멀리까지 도망와 버렸습니다.
집 떠나면 효자가 된다죠..
그렇게 밉고 원망스럽기만 하던 아빠가 이제는 너무나 작고...불쌍하게 느껴집니다..
아빠의 그 못된 성질은 이제 나이에 묻혀 너무나 약해져만 지셨습니다.
아빠의 그 못된 술버릇은 이젠 소주 반병에도 휘청거리십니다.
여자의 손길이라고 없는 없는 집은 한달에 한번 갈때마다 먼지투성이고
식사나 제대로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이제는 원망도 미움도 없이 한없이 약해지신 아빠가 불쌍해보일뿐입니다..
몇일전 돌아가신지 10년이되신 할아버지 제사라 집에가게 되었습니다.
아빠가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온다 하시더군요...
그리고 까만색 고급차의 문을 여시더군요..
처음보는 사람이 운전석에 앉아있습니다..
외삼촌이라 합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일관계로 만나게 되었다 했습니다.
서울서 나를 보고자 한걸음에 달려왔다 했습니다.
나보고 엄마를 많이 닮았다 합니다..
한번도 보지도 못했던..기억조차 나지 않지 않는 그 엄마를 용서해주라 합니다.
엄마가 나를 많이 보고싶다 합니다.
오빠와는 전화통화도 했었는데 나는 아직 어려서 상처가 될까봐 조심스럽다 합니다.
외갓집은 참 잘 사나봅니다. 외삼촌이란 사람은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조금은 이름있는 회사의
사장이고. 다른 삼촌, 이모들도 다들 서울에서 잘사나 봅니다.
외할아버지 생신이라 다들 강남에 모이기로 했답니다.
엄마란 사람은 지금 대구에 혼자살고 있다 합니다.
아빠는 엄마를 만나고 왔다 합니다. 엄마를 만나자 마자 두시간동안 눈물만 흘렸다 합니다.
아빠는 엄마를 다 용서했나 봅니다. 아빠는 엄마를 정말 사랑했었나 봅니다.
외삼촌이 명함을 줍니다. 아...이게 엄마 성씨인가봅니다.
이제껏 단한번도 그립단 생각안한 엄만데..엄마는 내가 너무 그립다 합니다.
나는 기억조차 없어서 너무나 낯선데..
아빠가 엄마전화번호를 가르쳐줍니다. 엄마는 미안해서 전화 못하고 있으니까
나보고 해보라고...싫다했습니다. 할말두 없는데 무슨 전화를 하느냐 싫다 했습니다.
정말 할말이 없었습니다. 이제와서 왜 버렸냐 따질수도없잖습니까.
이제는 미움도 원망도 버리고 서로 잘지내자 합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어렵게 살아온 동안 저는 너무나 현실적인 아이로 변해버렸습니다.
불쌍한 아빠를 위해서 누구든 그 자리를 채워줬으면 하는 바램..
몇년 뒤 저나..오빠 시집,장가 갈때 자리나 채웠으면 하는 마음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