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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양말

안혜진 |2005.01.31 04:40
조회 15,377 |추천 0

벌써 꽤 오랜 세월이 흘렀네요.
영원히 그 나이일지 알았는데 어느세 2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가장 행복했고 가장 찬란했던 학창시절...
저는 그 시간속에 늘 할머니가 함께 존재했습니다.

1998년......
당시 고등학교 2학년 이였던 저는 평범한 여고생 이였지만
가정사는 결코 평범하지 못했습니다.
사업 부도로 36평 아파트에서 단칸방 하나로 이사를 한것에
이어 부모님의 이혼, 그리고 당신의 사업 실패로 그 책임을
지시기 위해 잠시 옥살이를 하셨던 아버지!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죠.
할머니는 당신의 집과 모든 재산을 처분해 최대한 아들을 위해
애를 쓰셨지만 결국 아버지의 사업 실패는 저희 가족은 물론
할머니까지 고생길로 이끌고 말았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나오셔서도 한동안 돈을 벌기 위해 저와 떨어져
사셔야 했고 저는 할머니와 함께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한참 꿈 많고 이것저것 갖고 싶은것도 하고싶은 것도 많은 나이....
무엇보다 사춘기였던 저에게 당시 집안 상황은 정말 참기 힘든
불운이였습니다.
할머니는 그런 저에게 가장 고마운 존재면서 또한 역시 가장
쉽기에 만만한 대상이기도 했었습니다.
온갖 짜증과 불만을 할머니에게 털었고 그래도 할머닌 손녀가
그저 안쓰럽고 불쌍해서 야단 한번 치시지 못하셨더랬죠.
어느 날이였습니다.
교복을 입기 때문에 사복이 필요 없었고 머리도 획일화, 그러니
당연하게도 당시에 그만그만한 또래 애들이 신경 쓰는 것은
가방, 신발, 양말, 자잘한 머리삔......많아봐야 그정도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보다 더 메이커를 많이 따졌던 것도
바로 고등학교때가 아닌가 싶네요.
보여지는 부분이 별로 없기 때문에 가방 하나라도 신발 하나라도
다 메이커가 다수였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늘 하얀양말........
반듯하지만 가끔씩 친구들이 지나가는 말로 슬쩍 "어디꺼야?"라며
유심히 쳐다볼때면 그렇게 당황되고 민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늘 동네 조그만 가게에서 파는 두 켤레 1000원짜리
싸구려 양망을 사주던 할머니는 메이커 따위를 알 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보여지는 모습이 뭐 그리 중요했나 싶지만 역시나
철없는 당시의 저는 그것이 무척 중요한 것임에 틀림 없었더랬죠.
결국 그날 집에 오자마자 책가방을 던지듯이 놓고는 할머니에게
또 온갖 짜증을 부려댔습니다.
창피해서 학교 가기가 싫다는 투정부터 나한테 해주는게 뭐가
있냐는 가슴 아픈 말까지......
한참을 해대고 나면 제 성질에 제가 못이겨 지쳐 버리고 말았죠.
혼자 훌쩍 훌쩍 울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저는 문제집을 사야한다는 거짓말로 돈을 타내서 결국
양말을 세 켤레 사고 말았습니다.
나물을 뜯어서 혹은 여기저기 밭일을 해서 저의 뒷바라지부터 모든
생활비까지 도맡고 계시는 할머니의 허리가 휘던지 말던지 저에겐
양말이 더 우선이였죠.
하지만 문제는 얼마뒤였습니다.
세탁기가 망가진지 꽤 되었음에도 새로 살 형편도 그렇다고 워낙
오래되서 수리만 해도 이미 여러차례 받은 고물 세탁기를 다시
고치지도 못한채 할머니는 손빨래를 하시곤 하셨죠.
그러자면 미리 세제에 푹 담궈뒀다가 빨래를 해야하곤 했는데
그 과정에서 제가 얼마전 샀던 메이커 양말이 얼룩덜룩 색깔이
들고 말았던거죠.
붉은색, 파란색 색깔이 들어버린 양말을 쳐다보며 울상이 되버린
저는 양말을 할머니에게 집어던지며 울기 시작했고 할머니는
난감한 표정으로 죄인마냥 앉아 계셨습니다.
저는 그날 양말 하나로 시작해 당시 제 상황이나 집안일들까지
다 연결 연결 되어 최악의 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얼룩 덜룩 색깔이 들어버린 양말 한 짝은 너무나 서글프고 가슴
아픈 가난, 혹은 가정사 였던거죠.
할머니는 역시 엄마만큼의 섬세함을 가지지 못했고 할머니가
벌어오는 수입은 아빠의 그것만큼 넉넉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춘기라 하는 시절, 한참 부모님께
투정 부리고 애교 부리기 좋아할 나이에 다 떨어져서 할머니와
지내는 것이 무척 맘이 쓰렸습니다.
창피해서 친구 한번 데려오지 못하는 집이며 어떤 버릇 없는
행동을 해도 야단 한번 제대로 치시지 못하는 할머니....
양말 한짝은 그렇게나 서글픈 밤을 저에게 주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결국 저는 그냥 다시 두켤레에 1000원하는 하얀 양말을
신고 학교에 갔습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하는 내내 어제 할머니에게 못되게 군것이
마음을 무겁게 했죠.
그리고 꼭 집에 가면 잘못했다고 빌어야지 마음 먹고 집에갔던
저는 다시 엉엉 울어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밭일을 나갔던 할머니가 장에가서 팔아 벌은 돈으로 메이커
양말 두켤레와 며칠을 먹고 싶다 노래불렀던 방울 토마토를
사오셨었기 때문이죠.
깨끗하게 닦아서 쟁반에 담아 밀어주는 방울 토마토가 어찌나
먹음직스럽던지........
그런데도 저는 전혀 맛있지가 않았습니다.
어제는 그렇게도 양말 한짝이 소중하더니 유난히 지쳐보이는
할머니 모습을 보면서 저는 양말이나 방울 토마토쯤 이미
대수롭지 않았던거죠.
그럼에도 표현 한번 못하고 꿍하게 앉아서 방울 토마토만
먹어댔던 그날.......
이렇게나 오랫동안 마음속에 응어리진 죄스러움으로 남을지
당시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시장표 하얀 양말만 신습니다,
물론 지금은 예전만큼 형편이 어렵지도 않고 할머니 대신
아빠와 함께 살고 있지만 예전의 습관 때문인지 아니면 이젠
추억처럼 되버린 기억 때문인지 새하얀 양말만큼 정감가는
것이 없네요.
시큼한 기름냄새 풍기는 시장표 양말.......
그것은 힘들었지만 결코 삐뚫게 나갈 수 없었던 저를 기억하게
하곤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책상 위에 교복과 함께 놓여져 있던 깨끗한
하얀색 양말 한 켤레.......
할머니는 저를 그렇게 키우셨고 그렇게 가르치셨죠.
삐딱하게 성장할수도 있었던 제게 할머니는 어쩌면 할머니의
방식대로 저를 잡아주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전 강원도에서 할머니가 올라오셔선 가방에서 양말을 한웅큼
꺼내주셨습니다.
일년에 몇 번씩 이렇게 양말을 물갈이 해주시곤 하죠.
하지만 역시 변함없는 한 켤레에 500원씩 하는 시장표 양말들....
그런데 왜일까요?
이제는 그 양말들이 마치 추억의 음악처럼 또 빛바랜 사진처럼
그저 구수하고 정겹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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