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운동은 일제의 농촌진흥운동과 똑같은 발상이였습니다.
불쌍하신 우리 부모님이 더 숭상되어야 하는데도
웬 박정희 아바이 수령이 되어서 너희는 부모도 없냐고 말하는지...
1919년 3.1 만세운동 뒤 사이토 마코토가 조선의 새총독으로 취임됨과 더불어서
계획적으로 이루어진 일제의 조선민족간 분열과 친일파 양성책으로
농촌지역에서는 지주와 소작인들간의 계급의식이 확고해졌고
빈민과 부농간의 생활격차도 더 심화되어 갔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주 등에게 고율의 소작료(당시 8할)와 소작권의 임의박탈을 하지말라는 주장이
처음(1920년초)에는 단순 소작인 조합에서 차츰 농민조합으로 그 힘이 커지면서
1930년대에는 산업부분에서 확대되어가고 있던 "혁명적 적색노조"가
농촌지역에서도 나타나기에 이르렸습니다.
일제는 이렇게 사회주의의 농촌지역으로의 확대를 막고자(가장 큰 목적)
짜낸 묘안이 이이의 "해주향약"을 모범으로 하여
일명, "농촌진흥운동"이란 농업정책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그 운동의 요지는 조선농민이 못 사는 것은
일제의 침략과 식민통치의 잘못에서 비져진 것이 아니라
바로 너희 조선농민 자신 스스로가 게으르고 나태하고..
(농한기때는 도박에 미치고 아편 등을 하는 등) 이런 조선농민의 근성때문이라고
모든 조선농민의 빈곤의 원인을 조선농민에게 그 모든 책임을 돌리였던
일제의 기만적인 식민지농민 착취의 책임회피 정책이였던 것 입니다.
실제 일제의 통치기간 빈농이 늘었고 중농의 수도 줄었으며
부농도 조금 줄어든 자료을 교과서 상에서 접해보았을 것입니다.
(물론, 그 자료 아래에는 여타 설명이 빠져있기도 함.)
그 이면에는 일제의 조선 분열책과 친일화 전략이 깔렸음을
사이토 총독의 친일화 정책에서도 잘 나타나있습니다.
바로 이런 일제의 기만적인 식민지 농촌정책을 그대로 현대사에 써 먹은
자가 있었으니 그가 곧
일제에게서 교육을 제대로 철저하게 잘 배웠다는 "박정희"
바로 그 였던 것 입니다.
현대사에서 공업화정책으로 특히, 수출을 위해
외국에서는 아주 싼가격에 상품을 내다팔고
국내에서는 터무늬없이 비싼가격으로 그 손익차이를 메꾸어 가면서
산업에서의 싼임금과 장시간 중노동으로 착취되는
노동자들의 이탈을 방지하고 그런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생계을 유지시키고자
농촌을 이용했던 것 입니다.
당시 우리 산업은 역시 농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었지만
그는 일제에게서의 배상금도 받지도 못하고 미국의 지원도 제대로 이용도 못하고
오직 농민과 도시빈민의 저임금과 장시간노동의 착취로
일부 재력가을 키웠고 그 가운데에서 그들로부터
정치자금 얻고 여타 권력형비리를 아주 자연스럽게 저질렸던 것이죠.
산업의 성장으로 도시는 점점 크게 성장해 갔습니다.
그러나 그런 도시의 성장에 자양분을 싸게 강제로 공급하도록 강요당하였던
농촌은 더 핏박되고 살기힘든 곳이 될 수 밖에 없었고
농민들은 점점 불만이 쌓여갔고 그 때 그가 선택한 것은 바로
과거 일제가 행했던 "농촌진흥운동"이 였던 것입니다.
(물론, 그 중하나가 전라도 죽이기도 포함될 수도 있겠죠.
모두에게 나워어 줄 수 없는 재원을 자기지역에라도 뿌리자.)
새마을 운동...
농촌이 못 사는 것은 너희 농민이 게으르고 나태하기 때문
그게 바로 새마을 운동의 동기인 것입니다.
여타 국가가 당연히 행하는 사업이외 실제 국가에서 새마을 사업을 위해
엄청난 재원을 책정하고 지원했습니까?
오직, 새마을 운동협의회라는 관변단체조직을 위한 인건비가 다른 요소이겠지요.
바로 농민들의 시간들을 쪼게서 그 농민들을 모아
마을 길 쓸기, 도로변 꽃가꾸기,
초가지붕 헐고 가와지붕 올릴때 마을 사람들의 공동작업..
일종의 삼국시대이래 계속 이어온 "부역노동"이지요.
정작, 국가에서 특별히 지원된 재원이 얼마나 있었습니까?
있었던 것은 일반적으로 국가라면
당연히 하는 사업(보건,위생사업, 농촌지도, 등)비가 있었던 것 뿐...!
실상은 공짜(유휴)노동력을
새마을 운동이라는 명분을 실어서 "부역"으로 이용한 것 뿐이죠.
그러나, 새마을 운동도 잘 할 수 있는 정책이였으나..
아마, 처음부터 그 의도와 방향이 달랐기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새마을 운동도 실은 우리의 향약(향촌질서와 공동체 의식)을 일제가 이용한 것이니
실상은 우리의 정신일 수도 있었으나..
처음부터 그들의 정책의도는
농촌문제의 근본적 해결의 기반조성보다는
바로 자신들의 책임회피와 "농민의 불만 부식"에 있었기에 제대로 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새마을 사업 뒤에 일제당시의 농촌진흥운동과 같은 부작용으로
농촌이 실질적으로 달아진 것은 없고...
부채는 더욱 증가하고..
이농현상는 더 가속화 되었고..
살기좋아졌다는 농촌 마을이 되었다는데 이게 웬...
결국
선거때마다 농촌 부채탕감이 하나의 쟁점으로 떠올랐고..
故정주영씨는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자신의 재산을 털어서 농민부채을 대신 갚아주겠다고까지 했습니다.
새마을 운동은 일제와 그 잔재들이 우리의 소중한 유산을 더욱 기만적으로 이용했던 것 입니다..
꼬리말 쓰기
더우기 지는 박정희 시대를 기억합니다....부역이 사라진지가 90년 중반 지방자치법 개정을 하면서 "부역현품"이 삭제되면서 사라졌습니다...
살기 좋아졌다는 농촌에서 급기야
너희는 농사짓지말라... 너희는 농촌으로는 시집도 가지말라고 하시던 우리네 부모님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