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직장일로 중국에 살게 된지 육 년째이다. 중국에 살면서 가장 가깝게 부딪친 일이 중국에 사는 교포인 조선족과의 관계였다.
처음 도착하면 대부분 중국말이 서툴거나 전혀 모르는 한국 사람들은 정착이 될 때까지 그들의 통역으로 도움을 받게 된다. 그리고 교포 부인들을 파출부로 고용한다. 값싼 중국의 인건비 때문에 서울에서는 파출부를 두기는커녕 아이들 학원비라도 보태기 위해 내가 파출부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는 나조차도 일을 도와주는 아주머니를 고용하고 있다. 때문에 한국 사람들과 중국교포들이 상하관계인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한국 부인들이 모이면 조선족 파출부들에 대한 불만으로 토론장이 되기도 하고 조선족 파출부들이 모이면 주인 여자들에 대한 성토장이 되기도 한다. 우리도 못살 때 그들만큼 몰랐고 불결하지 않았던가.
지금 중국 경제는 날아가는 화살처럼 발전하고 있고 한국은 경제가 어렵다는 말만 들리고 있다. 지금은 중국 국민 개인이 한국 사람들 보다 못살고 있지만 훗날 입장이 바뀔 수도 있다. 그때를 생각해서라도 중국 교포들의 자존심이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은 삼가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우리 집에서 집안일을 도와주며 파출부로 있던 조선족 아줌마에게 이 십 대 초반의 예쁜 딸이 있었다. 누가 보아도 예쁘다고 할 만한 아가씨였다. 그런데 제대로 직장 생활을 못하는 것 같았다. 취직도 잘 안 될뿐더러 취직을 해도 며칠 다니다가 그만 두고는 했다. 나는 그 아가씨가 얼굴만 예뻤지 성실하지는 못한 모양이라고 혼자 짐작을 했었다. 아줌마는 자기가 벌어서 딸까지 먹여 살려야 하는 처지라 늘 힘들어하고 불만스러워 했다.
어느 날 아줌마는 이야기 끝에 조심스럽게 딸아이가 직장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를 털어놓았다. 학력이 겨우 중학교 졸업인 탓에 아줌마 딸은 큰 회사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작은 개인 회사에 취직을 하곤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곳 사장이라는 사람들이 항상 이 아가씨를 흑심을 품고 유혹 했던 것이다. 그런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 아가씨는 결국 회사를 그만 두게 되고 그런 일이 항상 반복 되고 있었다. 그래서 취직을 하기 위해 면접을 볼 때 사장이나 상사가 될 사람들이 예쁘다는 말만 해도합격을 했어도 그 회사에 입사를 스스로 포기 해버리는 것이다. 예쁘다는 말 속에 느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었을 거라고 믿는다.
내가 그 형편없는 사람들에 대해 분개하며 길길이 뛰자 아줌마는 같은 한국 사람이면서 그 사람들 편을 들지 않느냐며 놀라워했다. 그러면서 그때까지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해주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아줌마 딸에게 친구가 하나 있는데 열아홉 살이었다. 아줌마와 함께 방을 얻어 같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다니고 있는 회사 사장이 끊임없이 유혹을 한다는 것이다. 대학에 보내주겠다, 일생을 책임지겠다, 하는 말들로. 그 어린 아가씨는 사장한테 댓가로 중국 돈 이 십 만원 (한국 돈 이천 육백 만 원 정도) 를 받아내서 지독한 가난으로 고생하고 있는 가족들을 구해 볼까 하고 마음이 흔들리는 중이었다. 나는 아줌마한테 한국 사람에게도 그 돈은 결코 푼돈이 아니며 절대로 받아 낼 수 없을 테니 정신 차리고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하라고 충고해 주었다. 그리고 얼마 뒤 그 뒷이야기를 들었다. 사장의 유혹에 넘어가긴 했는데 사장이 그 아가씨에게 준 돈은 오천 원 (칠 십 만원이 채 안 되는) 이었다. 덕분에 돈 문제로 사장과 크게 싸움을 벌이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회사를 나설 때 사장은 세상 그렇게 살지 말라는 충고를 해주었다고 한다. 정말 그렇게 어리숙하게 살지 말았어야 했다. 어린 탓이었겠지.
그 아가씨는 결국 매춘으로 직업을 바꾸었다. 한국인과 조선족을 연결시켜주는 직업소개소들은 매춘 소개를 겸하고 있는 곳이 많다. 그런 곳을 통해 매춘을 하고 있다고 했다.
굳이 여자가 필요하다면 스스로 선택해서 유흥가로 나선 아가씨들을 상대했으면 한다. 정상적이고 성실하게 살아가려는 어린 아가씨들을 그런 식으로 괴롭힌다는 것은 어른의 도리가 아니다.
처음 중국에 도착했을 무렵 한 교포 부인한테 들은 얘기가 있었다. 한국남자들은 누구나 바람을 피우기 때문에 한국여자들은 남편의 상대 여자가 돈을 빼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 남편에게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 준다는 얘기였다. 내가 친구는 돈을 빼돌리지 않겠느냐고 묻자 친구는 그러지 않는다고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황당해 하는 나를 보고 그게 사실이 아니냐고 묻고 있었다. 교포들이면 누구나 다 아는 얘기라면서.
그때의 얘기가 생각나서 우리 집 일하는 아줌마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아줌마조차 그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었다. 교포들 사이에서는 알려진 이야기며 다들 그게 사실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교포들의 상상력도 황당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생겨날 만큼 우리나라 남자들의 처신에도 문제는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전쟁 후의 가난에서 벗어 날 수 있었던 것은 인재 양성을 할 수 있었던 교육열 덕분이라고 본다. 경제력 없는 부모들의 교육열을 뒷받침해 준 것은 딸들이었다. 가난한 집안 딸들은 식모살이나 공장살이로 오빠와 남동생들의 학비를 벌었다. 그리고 미군부대 주변의 양공주들 중 많은 여자들이 그랬을 것이며 외화획득을 이유로 국가의 묵인 아래 있었던 일본인 상대 기생관광도 마찬가지이다. 딸들이 돈을 벌어 아들들의 학비를 대었던 나라가 한국 말고 또 있을까?
그렇게 해서 이제 먹고 사는 일은 해결이 되었다. 그랬더니 남자들은 중국에 외서 가난한 동포의 딸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인들만 일방적으로 중국교포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교포들에게 피해를 입는 한국인들도 많다. 몇 년 전 친지 중 한 분이 중국에 외서 공장을 차렸었다. 그때는 외국인이 사업자 등록을 하기 어려운 때여서 직원으로 고용하고 있던 교포의 이름을 빌려 허가를 냈다고 한다. 공장을 차리는데 많은 돈이 들어갔고 제대로 가동되기 시작하자 교포직원은 본색을 드러내 공장을 가로 채 버렸다. 모든 것이 직원 명의로 되어있었으니 막을 방법이 없었다. 직원은 본래 사장인 친지분의 집에 까지 들이닥쳐서 세간까지 싣고 가버린 모양이었다. 친지 분은 어이없이 잃어버린 돈도 기가 막혔지만 목숨이라도 바칠 듯 충성을 다하다가 돌변해버린 교포 직원의 배신에 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중국에 왔다가 이런 식으로 사기를 당하고 빈손으로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한국인들에게 사기를 당하는 중국 교포들도 꽤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모이면 조선족은 다 사기꾼이라고 얘기하고 조선족들이 모이면 한국 사람들이 다 사기꾼이 되어버린다. 중국교포와 한국인이 그렇게 적대감을 쌓아가는 것이 걱정스럽다. 위기의 순간이 온다면 서로 돕고 살아가야 할 같은 민족인데 지금이라도 서로 상한 감정을 치유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