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apuca)
2005/03/18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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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문제의 특징은 정책당국이나 국민 여론이 일치해서 공감할 수 있는 확실한 정론(正論)이 없다고 하는 점이다. 삼일절 기념사에서 노 무현 대통령이 전에 없이 일본에 대한 강경 발언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한국 정부가 독도 영유권 문제에 관해서 지금까지의 무대응 정책을 근본적으로 변경한 조짐은 보이지 아니 한다.
한국 안에서는 꽤 유명한 인사가 역시 잘 알려진 시중 일간신문(동아일보. 2004년 1월 12일자)의 기고문에서 말하고 있다.
독도문제가 표면화할 때마다 대일 감정까지 곁들여 우리의 영유권을 연거푸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법상의 영유권은 결코 다른 나라가 이의(異議)를 제기하면 약해지고 그렇지 않으면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독도가 우리 것이면 도쿄 한복판에 있어도 우리 것이고, 만에 하나 아니라면 세종로에 있어도 아니다.
그런데 이 글의 표현은 국제법 전문가 답지 않게 법적인 표현과는 거리가 먼 감정적(感情的)인 표현이다. 국제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호소력이 있을지 모르나, 국제법의 기초적 내용을 아는 사람에게는 전혀 납득될 수 없는 이상하고 불합리한 주장이다. 국제법상 영유권은 다른 나라가 이의(異議)를 제기할 때, 그에 대해서 적절하게 그리고 명백하게 반박(反駁)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이것을 받아들이면 그 영유권은 단순히 약해 지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부인(否認)될 수 있는 것이 국제법상의 원칙이다.
침묵이나 부작위(不作爲;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를 견지함으로써 그 경쟁국가의 행위가 비례적으로 법적 효력을 갖게 되는 경우에, 이러한 침묵이나 부작위를 국제법상의 용어로 묵인(默認; acquiescence)이라고 한다. 이 국제법상의 개념은 국제사회에 있어서 법적 안정성을 위한 기본적인 배려(配慮)에서 나타난 제도이다. 지금까지 국제재판 기관들이 영유권의 귀속(歸屬)에 관한 판단을 함에 있어서 특별히 이 묵인(默認)이라는 개념은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즉 다시 말해서 거의 예외 없이 국제재판 기관들이 판단한 모든 영유권 분쟁 사건에서 패소(敗訴)한 국가는 어떤 형태로든지 상대방의 영유권 주장을 묵인한 쪽이다.
1951년에 국제사법재판소가 판결한 대단히 중요하고 또 유명한 판례의 하나 인『영국과 노르웨이간의 어업 분쟁 사건』의 판결문에서는, 국가간의 일상적인 관계에 있어서 일정한 법적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 묵인(默認)의 행위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세 가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이른바 무대응 정책에 의한 한국측의 묵인 행위를 몇 가지만 열거 해 본다.
(1) 1996년 2월 9일 200 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설정함에 있어 독도로부터 일본 관할수역의 폭을 기점(起點)을 하겠다는 하시모토 일본 총리의 발언이래, 독도에 대한 일본의 강화된 영유권 주장에 대해서,
김영삼 대통령은 당초에는 강경한 반박을 하는 듯 했으나, 결국 1996년 6월 23일, 제주에서 하시모토 일본 총리와 다시 만나, “영유권 문제와 어업 협정을 별개의 문제로 해결하자.” 라고 답변하여, 한일간에 독도에 관한 영유권 문제가 현안으로 존재한다고 하는 일본의 주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고
김대중 대통령은 1999년 1월 22일, 「신한일어업협정」을 서둘러 체결함으로써, 동해(東海) 가운데에 독도를 포함한 수역에, 「잠정적조치수역」 ― 한국정부는 이 것을 애를 써서“중간수역”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 을 설정하는 것으로 합의한 이 어업협정이 그 “중간수역” 안에 위치한 독도에 대한 한국의 영토주권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를 당연히 제기하게 되었다.
(2) 2000년 9월 21일,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나 분명한 일본 영토이며, 한국이 강제로 이를 점거하고 있음은 극히 유감이다.』 라고 언명한 일본 모리 수상의 발언이 KBS TV 대담프로에서 나온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의사표시 임에도 불구하고, 이 TV 대담이 있은 직후에 정상회담에서 그 모리 수상을 만난 김대중 한국 대통령은 일본 수상의 공식적인 이 영유권 주장 발언에 대해서 아무런 항의를 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국제법상 한국 대통령이 일본 수상의 영유권 주장을 묵인(默認)한 것이라는 논리가 가능하게 되었다.
1951년 영국 노르웨이간 어업 분쟁 사건에서 국제사법재판소가 제시하고 있는 묵인(默認) 행위의 세가지 법률적 요건을 기준으로, 한국의 지금과 같은 무대응 정책이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인정하는 국제법상의 묵인행위로 해석될 수 있는가를 검토해 보면,
첫째로 독도에 관한 일본의 도전적인 행동이나 주장들은 명백하게 국제법상의 영유권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이러한 도전적인 행동과 주장들의 의미에 대해서 한국은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는 상황(공연성; notoriety of claims)이다.
둘째로 1996년부터 2005년인 지금까지 한국은 일본의 부당한 영유권 주장에 대하여 당연히 기대되는 항변(抗辯)이나 대립된 주장을 하지 않고 침묵이나 부작위로 대응해온 것이 이미 상당한 기간 지속(prolonged abstention) 되고 있다.
셋째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에 관련된 행동이나 주장들은 제삼국이나 국제사회 일반으로부터 명시적으로 거부되거나 다투어 지지 않고 있으며 (a general toleration of the claims by the international community) 국제사회에서 점진적으로 독도는 일본의 영토인 “다케시마”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
결론적으로 일본의 부당한 영유권 주장에 대하여 한국측이 고수하고 있는 무대응 방침은, 국제법상 한국의 묵인 행위로 인정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법률적인 조건이 성숙되어 가고 있다. 즉 독도 영유권 문제에 관한 한국측의 대응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서야 정부도 이것을 깨닫고 독도의 민간이 허용을 허락하느니 신독트린 발표니 대일강화로 나서는 것이다
사실상 한국은 얼마나 실효적으로 독도를 점유하고 있는가?
독도 환경 보전법 등을 빌미로 해서 정부가 일반 국민의 독도 입도(入島)를 사실상 금지시키고 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독도를 마음대로 들어가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한국 국민들에 의한 정상적인 관광이나 자원 개발 활동이 전혀 독도에서는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바로 얼마 전에 언론에서 보도된 것처럼 신임 경찰청장이 정상적인 초도 순시를 시도하다가 그것마저 좌절된 것이 바로 독도 이다.
지금 한국은 40명 정도의 해양경찰병력을 독도수비대라는 이름으로 이 섬에 파견하여 놓고 있다. 물론 일본은 이러한 한국 경찰의 독도 주둔에 대해서 여러 모로 완강한 항의(抗議)와 비판(批判)을 가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찰병력의 주둔 사실은, 적어도 국제법적으로는 한국의 독도에 대한 실효적 점유의 증거로서 영유권을 합법화 해 줄 수 있는 유효하고 충분한 근거가 되기 어렵다.
이것이 한국이 독도를 점유하고 있는 현실적인 상태이다.
한국이 독도에 대해서 지속적이며 평화적으로 국제법상 실효적인 지배를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행정적, 입법적 및 사법적인 국가 권능의 평화적인 행사(行使) 또는 현시(顯示)라는 사실을 축적(蓄積)하여, 끊임없이 확인하고 보완 하여야 할 성질의 문제인 것이다.
즉 국제법상 영유권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독도에 대한 영유권은 현재 "국제법적으로 확정적(確定的)인 상태"라고 하는 생각은 국제법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잘못된 생각이다.
한국은 독도 문제에 관하여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되는 경우를 상정하고, 완벽한 국제법적 이론의 준비와 역사적 증거의 확보를 철저히 보완해 둘 필요가 있다.
독도문제 해결의 첩경(捷徑)은 독도에 관한 영유권 주장을 계속하고 있는 일본의 입장이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부당하고 근거 없는 것이라는 것을 한국 사람과 일본 국민들은 물론, 제삼자적 입장에 있는 국제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정확히 알도록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