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을 나서든 김과장이 정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힘주어 잡은 그 속에 말로 내보이지 않는 신뢰와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자네 목소리를 들었던 모양이야. 의사인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네.”
김과장이 잠시 말을 쉬다 그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담아 남은 말을 전했다.
“어쩌면 그 사람....자네가 끝까지 놓지 않아 다시 왔을지도 모르겠군. 의술이 근접하지 못하는 그 어떤 경계를 자네가 넘어서 그 사람을 불러내 온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네.”
“떠나지 못할 충분한 이유가 이곳에 남아있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그 힘이 떠나는 형의 옷자락을 잡아 이곳으로 다시 되돌려 놓았을 겁니다.”
“누군가?”
“아는 형입니다.”
“누구보다 냉철한 자내가 이성을 잃을 만큼 이리 한걸 보면 특별한 인연인 듯 하군.”
- 오래전부터......너무 오래전부터 알아 온 사람입니다.
그 영혼이 내 것이기를 너무도 간절히 바랬든 사람입니다.
미워할 수 없어 뼈 속까지 사무치는 원망을 제 가슴에 묻게 했던 사람입니다.
동준이 긴 꿈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자신을 돌려세우던 효원의 시린 한기가 여전히 심장을 떨리게 하고 있었다. 그 심장의 서러움이 뜨겁게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취가 깰 시간이 이미 한참 지나고 있어 불안해하던 정재가 비로소 한시름을 놓으며 작게 동준의 이름을 불렀다.
“형.......!”
눈물이 멈추지 않는 그 눈을 열어 마지막 꿈길의 한 가닥 끈을 놓았다. 어렴풋하게 다가오는 정재의 흐린 얼굴에 애써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정재야!......오늘 며칠이니....”
“아직 일주일 지나지 않았어.”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면....안되는데....”
동준이 한필중을 만났던 날부터 전날새벽의 사고까지 한번에 떠올리려 머릿속을 헤집자 금방 두통이 밀려왔다. 이마를 찌푸리는 동준을 보자 정재가 정색하며 입을 열었다.
“마취 깨면서 통증이 더해질 거야. 복잡한 일들 한번에 떠올리려고 하지 마.”
동준이 불현듯 지윤의 처절했던 얼굴이 떠올라 심장이 조였다. 온통 피로 물든 그 얼굴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갈고리를 던져 자신을 잡았었다. 살점을 뜯어낼 듯한 그 시선으로 끝내 돌아보지 않으려는 자신을 끌어당겨 돌려세웠다.
“지윤이는...?”
“차라리......그냥 두지 그랬어. 그 사람 살리려다 형이 죽을 뻔 했어. 아니.....수술 중에 형....이미 떠났었어.”
“무슨......말이니?”
“수술 중에 형.....심장이 멈췄었어.”
“그런데.....어떻게.....지금 내가 널 보고 있니?”
“나도 몰라. 형이 스스로 자신을 살렸는지.....아니면....”
동준이 멍한 시선으로 정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섬광처럼 꿈속의 그가 떠올랐다. 한번도 보인 적 없는 차갑고 시린 노기를 들어내며 자신을 돌려세우던 그 목소리가 너무도 생생하게 심장 속에 울려 퍼졌다.
- 이제 기다리게 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한순간도 너를 그리움 속에 놓아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돌아서서 나를 보지 마라.
그 발걸음 지금 멈추지 못하면 더 길고 어두운 그리움 속에 갇히게 된다.
이번만이다.
이 한번만 내게서 눈을 돌려라.
동준이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소리를 되 뇌였다. 비로소 그가 그토록 냉정하게 자신을 돌려세웠던 까닭을 알아가고 있었다.
“그 사람이.....나를 다시 보냈다. 그 사람이다. 끝까지 함께 가려했던 나를 그 사람이 칼로 도려내듯 끊어냈다. 그래서....내가 돌아올 수 있었다.”
통증이 심해진 동준에게 진정제를 놓고 병실을 나온 정재의 가슴이 바윗돌에 눌린 듯 호흡이 불편했다. 김과장의 호출로 그와 마주한 가슴이 더 답답하게 청색증을 일으키고 있었다.
“모래 다시 수술일정을 잡을까 하네. 특별한 사람일수록 한발 물러설 필요가 있네. 자네가 말하기 힘들면 내가 하겠네. 차라리 그편이 그 사람에게도 더 낳을지 모를 일이고...”
“아닙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진정제를 놨으니 몇 시간 있다 깰 겁니다.”
정재의 얼굴이 한층 더 굳어져가고 있었다. 동준의 오피스텔에 와 있는 진서를 떠올려 또 다시 그 머릿속이 수 만 가지로 가지를 치고 있었다.
“형 깨어나기 전에 잠시 다녀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게. 오늘 당직의가 누군가.”
“제가 있을 겁니다. 과장님 퇴근 전에 다녀오겠습니다.”
당직실로 가 가운을 벗어던진 발걸음이 조급해지고 있었다. 주차장까지 걷지 못하고 뛰다시피 걸음을 재촉한 정재가 거칠게 차를 몰아 동준의 오피스텔 앞에 멈춰 섰다. 한달음에 올라가 그 문을 열어젖히고 진서의 얼굴을 봐야할 것처럼 요동치던 심장이 또 다시 머뭇거리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지하주차장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오피스텔 문 앞에서 깊고 긴 숨을 내쉬며 안으로 들어섰다.
“이 시간에 어떻게.....혹시..,....그 사람 소식....”
그 크고 푸른 눈이 끝말을 다 잊지 못하고 눈으로 묻고 있었다. 정재의 입에서 동준의 소식이 새어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 눈빛이 정재의 가슴을 할퀴고 지나갔다.
“아뇨.....그냥.....일이 있어 지나던 길에 잠깐 들렀어요.”
실망한 빛을 숨기지 못하고 그대로 고개를 떨궈 버리는 진서를 더 보지 않고 정재가 베란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준을 기다리는 시간동안 하루온종일을 그 작은 공간에서 실내 정원을 만들고 있었다. 작게 돌아가는 물레방아가 쪼로록- 물소리를 내며 손바닥만한 연못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소리에 뭔가가 움직여 정재가 앞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엷은 오렌지색의 금붕어 두 마리가 작은 연못 속을 여유롭게 오가고 있었다.
“재료만 잔뜩 갖다 놨을 땐 뭐가 될려나 했는데.....이제 제법 모양이 나오네요. 금붕어까지 입성하고”
차를 내오던 진서가 빙긋이 웃으며 어제 나간 사람을 말하듯 아무렇지 않게 동준을 말했다.
“그 사람....시골에서도 연목에 있는 금붕어 보는 거 좋아했어요. 그 곁에 의자 갖다놓고 한참동안 보곤 했는데.....너무 작아서 답답해할지도 모르겠다.”
너무도 평화로운 진서의 얼굴에 도리어 정재의 가슴이 더 서늘해지고 있었다. 찻잔을 내려놓는 진서를 바라보던 정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서씨......괜찮아요.”
정재의 말을 듣지 못한 듯 커피 잔을 들고 베란다 쪽으로 걸어간 진서가 물레방아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그저 하나의 작고 가냘픈 사람이었다. 그 속에 사람이 감당하지 못할 지옥이 자라고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생으로 그것들을 삼켜내며 웃고 있었다. 무엇이 진서를 그토록 강하게 만들고 있는지 짐작해 정재의 가슴이 더욱 저려왔다.
- 나는 두렵습니다.
당신의 이 신념 같은 사랑이 당신을 평생 동안 지옥 속에 있게 할까 너무도 두렵습니다.
살을 태우는 뜨거운 불구덩이조차도 피해가려 하지 않을 당신을 알아....
내 두려움이 당신을 견디게 하는 그 신념만큼 자라나고 있습니다.
“처음에 사올 땐 두 마리다 잘 움직이고 먹이도 잘 먹었는데.....이상해요. 한 마리가 계속 먹이를 잘 안 먹어요. 그러니까 다른 한 마리도 같이 먹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 거 같아요.”
“계속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하지 않아요.”
“괜찮아요. 언제 전화 올지도 모르고.....언젠가 그랬어요. 오피스텔 문 열고 들어서면 아무도 없는 어두운 거실이 자신을 삼킬 것 같다고...이번엔 저 문 열고 들어서면 그런 외로움 가지지 않게 내가 서 있을 거예요.”
아무런 맛을 느끼지도 못한 채 찻잔을 비워 내리던 정재가 미소어린 진서의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입가에 머금은 미소가 차라리 더 애잔했다. 어쩌면 자신을 무너트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주문처럼 자꾸 미소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두면 정신을 쪼아대 한순간도 버텨내지 못할 그 두려움 속으로 끌려들어 갈 것을 알아 그렇게라도 견뎌내고 있는 것이리라.
“형은.....행복한 사람이에요. 진서씨도 그런 형만큼 행복한 사람이고....”
- 누구도.....
감히 누구도 형이 당신을 품은 심장을 가질 수 없고....
당신이 가진 그 사랑을 흉내조차 내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나는 미움도 서러움도 마음껏 가지지도 못합니다.
“가 볼게요. 오늘은 당직이라 퇴근길에 들르지 못할 것 같아요.”
현관 쪽으로 나서는 정재에게 진서가 작게 말을 건넸다.
“정재씨 말대로 나 행복한 사람이에요. 그 사람 어디에 있던.....그 가슴 내 심장에 있으니 아프지 않아요. 그러니까.....이제 오지 말아요.”
돌아보지 않은 채 걸음을 멈추고 섰던 정재가 말없이 문을 열고나서다 남은 한마디를 흘려냈다.
“당신 강한 사람인거 알아요. 형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도 알아요.......다시...올게요.”
병원으로 돌아와 새벽까지 동준의 곁을 지키던 정재가 결국 그 말을 꺼내지 못하고 아침을 맞았다. 새벽에 잠시 눈을 떠 어두운 병실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정재를 보아 동준이 그가 자신에게 뭔가를 말하려 하고 있음을 눈치 채고 있었다.
김과장과 함께 아침 회진을 온 정재가 동준에게 시선을 맞추지 않고 있었다. 동준이 그것으로 그가 내놓지 못하고 있는 말의 무게를 가늠하고 있었다. 점심때 다시 들른 정재가 앉지 않고 새벽처럼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말해라. 정재야!”
“........다시 수술해야 해.”
“지금 내 상태가 어떤지 누구보다 잘아야 할 사람은 나야. 그러니 하나도 빠짐없이 말해라.”
“아직 뇌 속에 고인 피를 다 걷어내지 못했어.”
“계속 눈이 너무 피로하고 초점을 맞출 수가 없어. 지금 이것도 그것 때문이지.”
“응...”
동준이 잠시 말을 쉬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묻지 않을 수 없고 그 답을 듣지 않을 수 없는 일이였지만 자신의 입을 열어 그것을 묻기가 너무도 두렵고 암담했다.
“못 보게 되니.”
“.....그럴 수도 있어.”
이미 예상하던 그 말을 정재의 입에서 확인하는 심장이 두려움을 지나 화기를 모으고 있었다.
“더 이상 뭘 숨기려고 하지마라.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은.....다른 게 또 있다 는 건데.....”
“너무 위험한곳이라 쉽게 수술을 결정할 수 없어 일단 닫았다. 피가 응고 되서 시신경을 누르고 있어. 이미 많이 손상을 입어서 빨리 조치하지 않으면 시력을 잃을 거야.”
“또 뭐가 남았는데?”
“......기억을......잃을 수 있어. 물론 시신경도 살릴 수 없을지도 몰라. 시신경을 살리고 성공한다 해도 단편적인 어떤 기억들은 잃을 수 있어.”
“성공하지 못하면......”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던 정재가 몸을 돌려 동준의 시선을 맞받았다. 팽팽하고 날카로운 선 위에 두 사람의 감정이 아서라 하게 놓여있었다.
“전부를 잃을지도 몰라. 아무것도.....기억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어.”
동준이 넋을 놓은 듯 픽하고 웃어보였다.
“아무것도......기억을 못한다....재미있구나....”
한순간 모든 것이 심장으로 몰려 살을 뚫고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누구에게 그 분노를 쏟아내야 할지 동준이 끝도 없이 내려앉는 가슴을 가까스로 움켜쥐고 있었다.
“혼자....있고 싶다.”
“시간이 없어. 내일...”
동준이 금방이라도 핏빛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충혈 된 눈으로 정재를 바라보았다.
“니가 말해보라. 살아있는 내가 진서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떠난 나.....어느 것이 들 잔인한 방법인지....”
“........”
아무 말도 못한 채 멍하니 동준을 바라보고 있던 정재의 눈가가 축축이 젖어들고 있었다.
“미안하다. 혼자 있고 싶다.”
정재가 병실을 나서고 동준이 생각을 잊은 듯 허공에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서서히 참고 있던 울분이 온몸으로 번졌다. 어지러운 몸을 일으켜 다리를 끌며 창가로 가 밖의 풍경에 시선을 주었다. 여전히 흐린 빛에 가려져 어떤 것도 선명하게 눈 속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용암처럼 꿇어 오르던 서러운 분노가 심장에서 온몸으로 뻗어 나가 창틀을 지탱하고 선 손끝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제 더는 그 어떤 것도 자신의 몫이 아님을 비켜갈 수 없는 잔인한 진실이 동준을 사정없이 발기발기 찢어내고 있었다. 더 서있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어버린 동준이 소리조차 재대로 내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여 피 같은 울음을 토해냈다.
- 차라리 숨이 멎었던 그때 나를 데려가지 그랬습니까.
도대체 어디까지 할 겁니까.
얼만 만큼 더 제 심장을 비틀어 피를 짜내야 하겠습니까.
나를 살려내 그 사람의 아픈 통증을 보게 하는 것이 당신 뜻입니까.
당신이 이겼습니다.
그 사람에게 나를 주지 않으려는 게 당신 뜻이라면....
당신이 이겼습니다.
퇴원 후 몇 달째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던 지윤이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있는 한필중의 방으로 들어왔다. 엷은 슬랙스 안으로 내 비치는 속살의 관능미가 술기운이 돌아있는 한필중의 피를 뜨겁게 데워 또 다시 상처를 살려내고 있었다.
“안자고....무슨 일이니?”
말없이 물끄러미 한필중을 바라보던 지윤이 그 곁으로 다가가 반쯤 남아있던 술잔을 한번에 비웠다. 한필중의 몸을 데우던 뜨거운 피가 심장으로 고이고 있었다. 품을 수 없는 자신의 여자를 꿈틀거리는 남자의 본능만으로 보아내야 하는 처절한 모멸감이 밀려왔다.
수없이 갈구하고 그리워하며 끝없는 질투로 지윤이 동준을 바라보며 사는 것을 허락했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을 보고 있었다. 동준을 잃은 고통이 그 영혼을 잠식해 말조차 잃어버린 그녀를 한필중이 자괴감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수없는 욕망들이 몸을 살려내 한필중을 흔들고 있었다. 한필중의 그 살을 태울 듯한 욕정의 꿈틀거림을 모르지 않은 지윤이 의자 아래로 내려앉으며 엷은 천안에서 부드럽게 출렁대는 가슴살을 한필중의 무릎위에 올려놓았다. 순간 한필중의 호흡이 잠시 멈춘 듯 눈을 감다 흑- 하고 뜨거운 숨길을 뱉어냈다.
지윤이 한손으로 한필중의 사타구니를 어루만지며 남은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한필중이 더 참지 못하고 지윤을 안아 올려 침대에 눕히고 거칠게 입술을 포갰다. 그 손이 거칠게 지윤의 슬랙스를 벗겨내고 쏟아져 나온 희고 풍만한 젖가슴을 움켜쥐며 입술을 옮겨왔다. 지윤의 가늘고 은밀한 신음소리가 방안으로 울려 퍼졌고 한필중이 한순간 자신의 상처를 잊은 채 그 황홀경에 빠져 들었다.
지윤의 젖가슴을 한참동안 거칠게 탐하던 한필중이 한순간 몸이 경직되 지윤에게서 몸을 때냈다. 지윤의 손이 사타구니 아래로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단 한번도 그토록 뜨겁게 자신을 원한 적 없던 여자였다. 동준을 품은 이후로는 그 싸늘함이 더해져 살내음조차도 허락하지 않았었다. 그런 지윤이 거침없이 안겨오는 것이 어쩌면 동준을 잃은 충격의 또 다른 허전함일 것이라 생각돼 한필중이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만해라.”
“.........”
아무말 없이 금방이라도 아픔을 쏟아낼 것 같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 얼굴이 알 수 없는 야릇함으로 한필중을 자극하고 있었다.
“너한테 그놈이 어떤 존재였는지 비로소 알 것 같다. 하지만....지금 이러는 거 나한테도 너무 잔인한 짓이다. 올라가라.”
벗겨진 슬랙스 끈을 올리며 몸을 일으키는 지윤에게 한필중이 연민을 담은 눈으로 말을 건넸다.
“이곳이 힘들면.....어디든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 니가 원하는 데로 해줄게.”
방을 나서는 지윤의 얼굴에 묘한 웃음이 번졌다. 이층으로 올라온 지윤이 휴대폰을 열어 일상처럼 말문을 열었다. 여리고 아픈 통증을 담은 시선으로 한필중 바라보던 그것이 어느 새 싸늘하게 변해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거칠고 탁한 남자의 음성이 건너왔다.
“김병태 찾았습니다.”
“알았어. 살쾡이 같은 자들이니 조금만 움직여도 눈치 채기 십상이야. 조심스럽게 그자 주위 탐색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