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자 정부와 프리메이슨을 아시나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숨은 권력자들..그림자 정부의 핵심조직. 프리메이슨.
역사상 한 획을 그었던 사건들 뒤에는 세상을 움직인 그들이 존재했습니다.
책 속에 담긴 놀라운 사실 중에 '한국전쟁의 기막힌 내막'의 내용을 살짝 공개합니다.
[관련 링크] 페이퍼로 보는 그림자 정부 미리보기
중공군의 보급로를 폭격하지 말라
맥아더 장군은 중공군의 참전을 예견했고, 이를 막기 위해 '압록강 다리 폭파'를 제안하는 보고서를 올렸다. 미 공군의 스트레이트메이어 사령관에게 연락하여 당장 B-29를 보내 압록강 다리를 폭격하여 끊고 만주를 폭격하여 중공군과 북한군 사이의 통신망을 파괴함으로써, 중공군의 도강을 막자는 것이었다.
그러자 당시 마샬 국무장관으로부터 이런 답이 하달되었다.
● 북한과 만주 국경으로부터 5마일 이내의 모든 목표에 대한 폭격을 보류할 것
● 만주 방향으로 도주하는 북한군에 대하여 모든 폭격이나 기총소사를 금지할 것
● 나진에 있는 군보급 기지에 대한 폭격을 금지할 것
그 당시 나진에는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군수 물자를 보급받아 저장하던 보급창이 있었기 때문에, 맥아더 장군은 이 명령이 가장 이해할 수 없던 조치였다고 술회했다.
그후 1950년 11월 25일 중공군의 린 뱌오 총 사령관은 전군에 압록강을 도강하여 북한으로진군하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맥아더 장군은 이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하달된 국무장관의 명령이 중공군에게 알려진 모양이었다. 압록강 다리와 적의 군사 시설을 안전하게 보장해 준다는 전갈이 있었기에 저렇게...!"
이것은 나중에 린 뱌오 사령관도 인정한 사실이었다.
"만일 그때 워싱턴에서 맥아더 장군에게 나의 보급로와 통신망에 대한 폭격 금지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아군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무모한 짓은 할 수 없었지..."
또한 미 공군의 스트레이트메이어 사령관은 이렇게 술회했다.
"우리에게는 폭격기, 전투기, 정찰기 등이 충분해서 압록강 북쪽에 있는 적의 보급 시설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었으며, 압록강과 (중국)무단강 사이에 주둔해 있는 적군을 완전히 괴멸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그런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 그 결과 많은 미국 청년들의 피가 한국에 뿌려졌다."
(중략)
맥아더 장군은 1951년 3월 20일 답장에서 이렇게 답했다.
"대만 군대가 한국전에 참전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이상하게도 아시아에서는 공산화가 아무 어려움 없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며...(중략) 만일 아시아에서 우리가 전쟁에 진다면 유럽의 공산화는 자명한 일이기 때문에, 이 전쟁에서 꼭 승리해야 합니다. 또 그렇게 해야만 유럽에서의 전쟁을 막고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트루먼 대통령은 이 편지를 읽은 후 군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하면서 맥아더 장군을 해임시킬 결심을 한다. 트루먼은 1951년 4월 10일 미 국민들에게 성명을 발표했다.
"나는 맥아더 원수가 공식 직무 수행에 있어서 미국 정부와 UN의 정책에 완전히 동조하지 않는 데 심심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을 해임하고 매튜 릿지웨이 장군을 그 자리에 앉혔지만, 그는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맺을 때까지 전쟁을 질질 끌기만 했다.
한국 전쟁이 끝난 후 미국 내에서 한국전에 대한 평가는 일반적으로 다음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1. 기아로 인해 공산 중국은 민중 봉기의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오히려 국민을 단결시켜 통솔 할 수 있도록 중공을 도와준 꼴이 되었다.
2. 미국은 조그만 북조선이란 나라 하나도 격퇴시키지 못한 '종이 호랑이'라는 명성을 얻는데 이바지했다.
3. 미국은 수만 명의 미국인의 생명을 허비했으며, 열심히 싸우기를 원치 않는 UN때문에 수십억 달러의 돈만 낭비한 꼴이 되었다.
4. 미 국민들에게 미군은 앞으로 UN의 지휘 아래 놓일 것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5. 역사상 최초로 미국 군대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 그림자 정부 <정치편> 한국전쟁의 기막힌 내막 중 (p.78-80) -
리플로 참여하시는 분에게 푸짐한 경품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