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에 길들여진 우리가 그들의 이중성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들이 우리에게 행했던 과거만행을
기억해둠이 옳을 것이다.
거기에 이 글이 도움되길 바란다.
침엽수가 빽빽하게 우거진 수림 골짜기를 빠져 나오자
은은한 유황냄새가 코끝을 시리게 했다.
8월 늦여름이었지만 백두산 중턱 골짜기의
새벽은 초겨울처럼 스산했다.
아직 어둠이 덮여 있었고, 으스스―한기어린
새벽공기가 두려움과 설렘으로 밤을 지새웠던 우리들의
들뜬 가슴을 야멸차게 파 후볐다.
인솔자가 내어준 군용잠바 깃을 세우며 나는
일행들과 함께 서둘러 트럭에서 내렸다.
아! 백두산이다―. 누군가의 입에서 감격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검은 재를 뿌려놓은 듯 까아만 새벽구름
사이로 듬성듬성 깜박이는 별들이 우리 앞에 장엄하게
솟아오른, 그래서 검은 하늘을 뚫어버릴 것만 같은
백두산의 엄청난 위용에 숨이 막힌다.
나는 이 장엄한 백두산을 감싸 흐르는 밤공기를
힘차게 들여 마셨다.
이것이, 이 냄새가 우리의 민족혼을 민족의 정기를
품어내는 백두산의 냄새인가! 나는 감격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며 주위를 둘러봤다.
천지호수에서 흘러 내려온 물줄기가 별빛을 받아
어둠 속에서 반짝인다.
자갈돌 틈사이로 스물스물 기어 나온 온천수의
뜨거운 열기가 새벽공기와 어울리며 희뿌연 아지랑이를
만들어 내며 흘러오는 물줄기를 밀어내듯 꿈틀꿈틀
뒤엉키고 있었다.
“장백온천이다!”
함께 온 덕보와 바우가 소리치며 별빛 사이로 아른거리는
골짜기를 향해 달리듯 내려간다.
“잠깐 휴식한다. 내가 집합신호를 보내면 신속하게
모이도록!”
우리를 인솔했던 책임자 마스자카가 내 등을
툭― 치며 말한다.
“함께 내려가시죠. 온천물로 세수라도 합시다.”
나는 배려하듯 마스자카를 돌아봤다.
“됐네. 난 차에서 쉬겠어.”
마스자카는 담배를 입에 물며 다시 트럭 조수석으로 올라간다.
나는 일행의 뒤를 따라 골짜기로 내려갔다.
끈적한 수증기가 후끈하게 덮쳐 왔다.
천지에서 흘러 내려온 차가운 물과 바닥에서 솟아나오는
온천수가 씨름하듯 뒤엉키며 보글댄다.
나는 살그머니 물 속으로 두 손을 밀어 넣었다.
밤새 쭈그리고 앉은 채 덜컹거리던 군용트럭의 흔들림과
싸웠던 피로가 한꺼번에 풀리며 몸속에서 빠져나가는 듯 했다. 손끝에서부터 쏴―하게 전해오는 뜨거움이 좋았다.
비릿한 유황냄새가 콧속으로 빨려든다.
“이…이봐 강검산! 저길 좀 보라구. 저 사람들은 뭐지?”
덕보가 어둠 속을 가리키며 불안한 목소리를 냈다.
나는 덕보가 가리키는 쪽을 돌아보았다.
장백폭포 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길이 흐릿한 별빛을
받아 히끗거리며 흐르고 있었고, 암흑처럼 시커먼
엄청난 크기의 병풍 속에서 떨어져 내리는 폭포수의
장엄한 소리만 어둠을 가르고 들려올 뿐, 내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뭐가 있다는 거야?”
“저 위 쪽 말야, 천지 쪽으로 가는 게 사람 맞지?”
“그…그래 사람이 틀림없어. 저 사람들은 또 뭐지?”
나는 그때서야 골짜기를 따라 장백폭포 쪽 샛길에 움직이는
시커먼 물체를 발견하고 흠칫했다.
“우리 말고 또 다른 사람들이 있나봐, 뭔가 이상하지
않아? 우리가 타고 온 트럭에 실린 쇠말뚝을 백두산
천지까지 가지고 올라간다는 것도 그렇지만 또 다른
사람들이 천지쪽으로 가고 있잖아?”
두려운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덕보의 얼굴은 금새
그늘이 졌다.
며칠 전이었다.
용정지서의 마스자카 순사가 우리 조선인 마을에 들어와
부역갈 힘센 청년 여섯 명을 모집한다며 나에게 찾아왔다.
“이틀이면 돼, 부역 수고비는 쌀로 한 가마일세.
힘 좀 쓰는 젊은 사람이면 좋겠어. 21일 오후
출발해야 하니 속히 알아봐 주게.”
쌀 한 가마라면 품팔이로 열흘치가 넘는 품삯이었다.
나는 웬 횡재냐 싶어 평소 거리를 두고 있는 마스자카
순사에게 바짝 다가가 얼굴을 디밀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인데 이틀 부역에 그렇게
많은 품삯을?”
“그건 나도 모르겠네. 힘센 조선인 장정으로 여섯
사람만 모집해 놓으라는 지시가 위에서 내려온
거니까 무조건 모집해 놓고 보는 거지 뭐. 결혼
안한 청년들로 말야.”
“총각으로 말입니까?”
“그래, 상부 지시니까 그렇게 좀 해 주게. 부역 갈
사람이 정해지면 출발하는 시간에 품삯을 선지급 하겠네.”
품삯을 선지급한다는 말에 솔깃한 나는 그들이 왜
결혼하지 않은 총각청년으로 모집해 달라는지 되묻는
걸 잊었다.
아니, 며칠 후 찾아 올 엄청난 불행을 예감해 내지 못했다.
그렇게 모집된 우리는 군용트럭을 타고 이곳 백두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우리가 쇠로 만든 말뚝 하나를 천지까지 옮겨놓는 것이
임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곳에 도착하기 직전이었다.
아무튼 우리말고도 천지로 올라가는 무리가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겐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덕보는 연신 중얼거렸다.
“누구지? 저 사람들은 뭐하러 이 새벽에 천지로
올라가는 거지? 야― 강검산, 너는 어떻게 생각해?
천지 속에 살고 있다는 괴물이라도 잡자는 건가?”
그는 여전히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휴식 그만! 모두 위치로 돌아오라!”
마스자카의 목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왔다.
우리가 장백폭포 옆길을 타고 천지에 올라온 것은 동이
터오를 즈음이었다.
무려 150kg이 넘는 쇠말뚝을 밧줄로 엮어 여섯 명의
청년들이 가파른 절벽길을 어렵게 끌어올린 것이다.
간도 사람들은 백두산을 장백산이라 부른다.
백두산 천지를 오르려면 조선 쪽에서 보다 간도 쪽에
위치한 장백폭포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수월했다.
장백폭포는 백두산 천지호수에서 생성된 물이 북쪽으로
200m쯤 흐르다가 용암벽에 막혀 길이 60m의 폭포를
만들어내며 떨어져 내린 후 협곡을 만들어 송화강(松花江)
으로 유입된다.
우리는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천지에 올랐다.
내가 이번 부역에 참가한 동기는 쌀 한 가마의 품삯에
구미가 당긴 때문이기도 했지만, 우리 민족의 성지
백두산에 오를 수 있다는 부푼 희망에 있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천지에 오른 순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용왕담(龍王潭)이라고도 부르는 천지호수는 면적이
9.17km2이며, 둘레가 14.4km이고, 평균수심 213.3m,
최대수심 384m이며, 수면높이가 해발 2257m이다.
호수의 둘레는 장군봉을 비롯하여 화구벽오봉(火口壁五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고 3면은 모두 깎아지른 절벽이다.
북쪽으로 자갈 섞인 약간의 평탄한 땅이 있는데 그 땅을
한 쪽으로 가르며 호수물이 흘러 장백폭포를 만들어 낸다.
우리 일행은 바로 이곳 평탄한 땅 위에 쇠말뚝을 가지고
올라왔다.
쇠말뚝이 어떤 용도로 쓰이게 될지 감히 상상도 못한 채,
우리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가며 가파른 계곡을 타고
쇠말뚝을 끌어올린 것이다.
천지호수에는 이미 여러 명의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다.
아마, 새벽녘에 우리 눈에 들어왔던 그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천지호수 가까이까지 들어가서 뭔가 분주히 움직이는
듯 보였다.
태양은 이미 장군봉 위로 성큼 올라서 환한 빛을 쏟아내며
호수 위에 은백의 그림을 수놓고 있었다.
수면 위에서 반사되는 강한 물빛은 무리를 삼킬 듯
튀어나와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부서졌다.
나는 눈부시게 터져 나오는 물빛 때문에 그 무리들이 무슨
행위를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주위를 살폈다.
“일본 군인들이야!”
함께 온 상철이가 겁에 질린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일본 군인들이 있었다.
총구에 날카로운 단검이 꼽힌 긴 장총을 어깨에 멘 군인
10여명이 좌우에 꼼짝 않고 서있었다.
이건 또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덕보가 불안한 듯 내 옆으로 다가왔다.
“저 놈들은 또 뭐지? 왜 이 천지에 무장을 하고
도열해 있느냔 말야.
아무래도 이상해, 이곳에서 무슨 일을 벌이려는
것 같지 않아?”
쿵 ―
쿵 ―
덕보의 가슴 뛰는 소리가 내 귓속까지 들어왔다.
“겁먹을 것 없어. 설마 우리를 죽이기야 하겠냐?
부역비는 선금으로 받았겠다, 쇠말뚝을 목적지까지
가져 왔으니 이제 우린 돌아가면 그 뿐 아니겠어?
너무 걱정말라구.”
덕보를 안심시키듯 말하는 나 역시 불안한건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 불길한 느낌을 떨쳐버리려고 인솔자에게 소리쳤다.
“쇠말뚝을 올려놨으니 우린 그만 돌아가겠습니다!”
먼저 올라와 뭔가를 하고 있던 무리가 일제히 돌아봤다.
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 입을 한 손으로 막았다.
제기랄, 목소리가 너무 컸나?
“기다려, 아직 임무가 끝나지 않았다.”
마스자카가 목소리를 깔며 째려본다.
먼저 온 무리들이 무슨 행위를 하고 있는지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몇 가지 음식과 술잔을
놓고 있었다.
제단 앞에 향을 피웠는지 강한 향냄새가 족히 백보는
떨어졌음직한 내 코끝에 와 닿았다.
중앙에는 일본 전통 기모노차림의 60대쯤 돼 보이는
노인이 머리에 두건을 쓴 채 어떤 의식을 준비하고
있었고, 우측으로 잠바차림의 40대 중년이 뭐라고
떠들어대는 듯 보였다.
상황으로 볼 때 40대 중년이 이 의식을 지휘하는 것
같았고 그의 행동으로 볼 때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는
무관이 분명했다.
그는 마스자카에게 우리를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명령했다. 우리는 천지 초입에 쭈그리고 앉아 이들의
행동을 바라볼 수밖에,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행위가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다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축문을 읽고 순서에 따라
장군봉을 향해 아니, 일본 본토 천황이 살고 있을
황궁을 향해 큰 절을 올리고 있는 걸로 봐서 자신들의
신과 천황께 예를 올리고 있는 듯 했다. 마치 출정을
앞에 둔 장수가 무훈을 빌며 신께 제사지내는
것처럼 엄숙했다.
쪽바리새끼들,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해 놓고 우리
조선을 제집 똥간 드나들 듯 하며 반대하는 조선청년들
쥐 잡듯 쓸어내더니, 이제 만주까지 다 처먹게 해달라고
비는 거 아냐?
상철이가 돌멩이를 장백폭포 쪽으로 내던지며 투덜댄다.
“조용히 못해! 방귀뀌는 소리도 내지 말란 말야!”
마스자카가 허릴 굽히고 상철이 뒤통수를 때렸다.
“저쪽 분들 뭐하는 겁니까?”
덕보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마스자카에게 물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천황폐하께 고하는 예를 올리고
있긴 한데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무슨 내용을 고하고
있는지 모르겠단 말야. 아무튼 조금만 기다려, 곧
돌아가게 될 테니까.”
말하는 걸로 짐작컨대 마스자카도 상황파악이 안되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