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아침햇살이 피로를 몰고 왔다.
나는 햇살을 몸으로 받아내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상철이와 덕보는 몸을 웅크린 채 머릴 무릎 위에 올려놓고 이내 코를 골았다.
나는 두 손을 모아 조용히 묵상하며 기도했다.
전쟁미치광이들, 우리 민족을 핍박하고 지배하려는 이들에게도 당신의
말씀이 전해질 수 있게 해 달라고…….
태양은 장군봉우리를 훌쩍 넘어 중천을 향하고 있었다. 장군봉 좌우로 병풍처럼
펼쳐진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나를 감싸 안았다.
나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평화를 누렸다.
우리 강산이는 커서 목사가 됐음 좋겠다.어머니의 속삭이듯 다정한 음성이 들려왔다.
넓은 호수의 물빛이 화사했다.
스르르― 두 눈꺼풀이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얼마쯤 잔 것일까? 마스자카의 된소리에 눈을 떴다.
마스자카는 우리에게 서둘러 쇠말뚝을 들고 오라고 했다.
우리는 다섯 자가 넘는 쇠말뚝을 밧줄로 감아 질질 끌고 마스자카를 따라 갔다.
그 곳은 방금 그들이 자국의 천황과 신에게 기원하던 장소였다.
그 곳에는 얕은 구덩이가 파여 있었고 그 구덩이 속에서는 호수에서 밀려온
물이 꾸역꾸역 기어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잠바를 입은 군관의 지시에 따라 구덩이 속에 쇠말뚝을 꽂아 넣었다.
구덩이는 아마 쇠말뚝 박을 자리터로 잡아놓은 듯 했다.
또 다른 사내가 쇠망치 두 개를 가지고 왔다.
그 사내는 우리에게 교대로 쇠말뚝을 박으라고 지시했다.
우리는 그들이 왜 이곳에 쇠말뚝을 박으라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이 지시한
대로 쇠말뚝을 박아야만 집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먼저 상철이와 내가 쇠말뚝을 박기 시작했다. 쇠망치는 몹시 무거웠다.
족히 5kg은 되는 듯 했다. 나는 쇠말뚝을 향해 망치를 내리쳤다.
―쾅!
이번에는 상철이가 내리쳤다.
―쾅!
쇠망치와 쇠말뚝이 부딪치는 소리가 장군봉을 때렸다.
그리고 좌우의 봉우리로 퍼져 나갔다.
―어흥 ―――― 어흐응 ――― 어흐으응……
그 소리는 마치 호랑이가 피를 토하며 괴로워 신음하는 소리 같았다.
―쾅! ―쾅!
쇠망치를 내리칠 때마다 들려오는 메아리는 슬프디 슬픈 장송곡 같았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왠지 이 쇠말뚝을 더 이상 박아서는 안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허리를 삔 듯 엄살을 부려서 망치 내리치는 행위를 중단했다.
이번에는 덕보가 망치를 잡았다.
―어흥 ―――― 어흐응 ――― 어흐으응……
메아리는 처절한 절규로 내 귓속을 후벼 팠다.
날카로운 창을 가슴에 맞고 바둥대며 괴로워하는 호랑이가 떠올랐다.
나는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무릎을 꿇었다.
왜일까? 왜 이렇게 괴로운 것일까?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막혔다.
마스자카는 내가 정말 허리를 삐어 괴로워하는 줄 알고 나를 위로했다.
나는 조용히 마음을 비우는 기도를 했다.
내가 고향을 떠난 것은 일본의 압제 때문이었다.
1905년 5월 27일 러일전쟁의 종식을 고하는 대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러시아 발트함대가 대한해협에서
일본함대와 맞붙어 싸운 대 해전이었다.
그들은 자국의 운명이 걸린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임진왜란
당시 일본해군을 맞아 23전 전승을 거두며 바다의 신으로 그들이 추앙했던
이순신장군의 영정에 일제의 승리를 기원하는 제(祭)를 올렸다고 한다.
그 기원 덕인지는 알 바 없으나 세계 각국이 일제의 패배로 끝날 것이라 예견했던
이 해전은 단 이틀만에 발트함대의 완패로 끝이 났다. 49척에 달했던 대함대가
모두 침몰하고 겨우 3척만 남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간 것이다.
러일전쟁을 대승으로 이끈 일본은 그 해 9월 포츠머스조약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조선과 남만주에 대한 권한을 대폭 이양받았고, 조선반도는 물론 만주에까지 자국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일본은 그 해 11월 18일, 고종황제를 협박하고 조선의 매국리들을
매수하여 치욕의 을사늑약을 체결했다.
이 사건으로 울분을 참지 못한 이 땅의 젊은이들은 전국 각지에서 의병운동을 일으켰고,
치안에 이어 군부까지 장악한 일본은 군대를 풀어 의병운동을 강력하게 진압했다.
그 후 일본군에 쫓기던 열혈 젊은이들은 만주로 중국으로 도피했으며 나 역시 그때 고향을
떠나 이곳 간도로 들어왔다.
갑자기 쇠말뚝 박는 소리가 끊겼다.
장백폭포에서 떨어져 내린 물이 부딪치며 토해내는 소리가 먼 곳에서 아득히 밀려왔다.
나는 쇠말뚝이 박힌 곳으로 천천히 눈을 돌렸다.
쇠말뚝은 한자두 치 정도가 땅 위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쇠망치는 우리 일행이 아닌 60대 사내의 손에 들려 있었다.
하얀 기모노와 머리에 쓴 하얀 두건이 태양을 받아 흩어진다.
조용히 심호흡을 하던 그는 들고 있던 쇠망치를 서서히 들어 올렸다.
그의 모습은 결연했고 두 눈은 번뜩이며 먹이를 쫓는 독수리의 눈빛이었다.
갑자기 그의 눈에 핏발이 섰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빛살처럼 스치며 등골이 오싹해 왔다.
그는 절규하듯 소리치며 쇠망치를 내리친다.
“시내! 조센야!”
콰앙――!
함께 있던 일본인들이 합창으로 말을 받았다.
“시내! 조센야!”
콰앙――!
그들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날선 칼처럼 번뜩이며 우리 귀에 꽂혔다.
백두산 봉우리를 때리고 돌아오는 메아리는 더욱 처절한 신음이 되어 우리의 가슴을 파 후볐다.
아! 그들이 핏발을 세우며 소리치는 그 말은 ‘죽어라! 조선아’ 였다.
간도에서 일본말을 쓰는 것은―나는 매국노요, 라는 말과 같았다.
그래서 간도로 간 조선 사람들은 일본말을 잘하지 못했지만 단순한 몇 마디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놈은 쇠망치를 던지듯 내려놓으며 한마디를 덧붙인다.
“모오, 조센와 나이!”
함께 있던 자들이 박수를 치며 말을 받는다.
“모오, 조센와 나이!”
그 말 역시, 이제 조선은 없다 라는 말이었다.
―이제…이제 조선은 없다니. 이건 또 무슨 뜻인가?
전신이 떨려오며 등골에서 식은땀이 스물 스물 기어 나왔다.
나는 두 다리가 와들거려 도저히 서있을 수가 없었다.
순간 내 뇌리에 강렬하게 꽂힌 것은 그들이 쇠말뚝을 박은 이유였다.
백두산은 우리 조선인의 자존심이었고 백두대간의 발원이며 한반도의 머리가 아닌가!
― 그렇다! 이들이 박은 쇠말뚝은 한반도의 정기를 잠재우기 위해 그 머리에 꽂은 비수였다.
그랬기에 “죽어라 조선아!”였고, 쇠말뚝을 박고 나서 “이제 조선은 없다”고 말한 것이리라!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더욱 소름이 끼쳤다.
키득거리며 힐끗힐끗 돌아보는 놈들의 얼굴이 악마처럼 비춰졌다.
이번에는 40대 중년사내가 일장기를 꺼내 들었다. 놈들은 황급히 기립했다.
그리고 일장기를 바라본다.
“나, 이토 히토시는 우리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위하여 이제 그 소임을 마쳤음을 고하나이다!”
이 사내의 이름은 이토 히토시(伊藤中均)였다. 훗날 듣게 된 얘기지만 ‘이토 히로부미’의 먼
조카벌되는 자이다.
이 자는 덴노(天皇)의 조상신 아마데라스 오미가미(天照大神)에게 조선 땅 머리 위에 저주의
쇠말뚝을 박았음을 보고하고 있는 것이다.
말을 마치자 사내는 일장기를 두 손으로 잡고 하늘을 향해 힘차게 쳐올린다.
그리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덴노헤이까 반자이―!”
기립했던 자들도 두 손 쳐들며 반자이를 합창했다.
“덴노헤이까 반자이―! 반자이―! 반자이―!”
놈들, 우리 조선땅 한반도의 정기가 솟아나는 백두산 천지에 쇠말뚝을 박고
자국의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천왕봉이 슬피 울었다.
하늘은 온통 핏빛이 되었다.
이글거리던 태양이 핏빛 하늘을 쪼개자 장미꽃보다 붉은 피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한 맺힌 조선 백성들의 눈물이었다.
먹구름이 핏빛하늘을 쓸며 소나기를 쏟아낸다.
아! 하늘이여― 저자들을 심판하소서.
증조부는 당대 풍수지리(風水地理)의 대가라 불렸다. 양주군은 물론 한양의 내로라하는
사대부 집안에서까지 묘자리를 잡아달라며 줄을 섰다.
조부는 실학사상(實學思想)에 심취하여 다산 정약용 선생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분들과 친분을 가지고 있었으며 진실한 천주교도였다.
그래서인지 풍수지리를 미신이라 치부하여 증조부의 미움을 샀다.
그러나 아버지는 증조부로부터 풍수지리학을 전수받고 고향에서 꽤 알려진
묘잡이로 활동하셨다.
아버지는 장남인 내게 역술(易術)을 공부하도록 강요했지만 선교사가 꿈이었던
나는 역학이나 풍수지리 따위를 학문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나는 귀동냥으로 들어온 풍수지리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이들이 “죽어라! 조선아”라고 외치며 천지의 머리에 쇠말뚝을 박을 때
이들의 음모를 알게 되었고 이렇게 치를 떨고 있는 것이다.
“이 자들도 이제부턴 황국신민(皇國臣民)이 되는 건가?”
이토 히토시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우리 일행을 바라보며 히죽였다.
다분히 조선 사람을 멸시하는 비웃음이었다.
“말이 황국신민이지 조센징은 조센징이지요, 우리 천황폐하의 백성이 될 수 있겠습니까?”
60대의 흰 두건을 쓴 사내가 맞장구를 쳤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조선이 일본에 합방이라도 됐단 말인가! 몇 년 전, 을사늑약으로
우리 조선의 국권은 이미 껍질만 남아있던 터여서 내 귀를 의심했다.
설마, 잘못 들었겠지. 아니야, 저 무당 같은 늙은이가 한 말은 우리가 황국신민에
포함은 되겠지만 조선 사람은 조선 사람이 아니겠느냐는 뜻이었어.
그렇다면 정말 우리 조선이 일본에 복속이라도 됐다는 건가?
순간, 나는 작년에 있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암살당했던
사건을 떠올렸다. 그 사건 이후 친일파 매국리들로 구성된 일진회(一進會)가 국권피탈안을
순종황제께 강력히 상주하며 일본에 주권을 넘길 것을 주장하지 않았던가! 만약… 만약 일진회
주장대로 한일합병이 이루어졌다면 이곳 백두산 천지에 쇠말뚝을 박고 ‘이제 조선은 없다’고
한 이자들의 말이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아! 그렇게 된 것인가,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육신은 내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부들부들 떨렸고,
심장은 숨쉬는 걸 잊은 채 멈춰버렸다.
“이 자식 표정이 왜 이래? 우리 천황폐하의 신민이 되는 게 영광스럽지 않다는 건가?”
내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히토시는 째진 눈으로 흘기듯 물어왔다.
“저…희들은 나리께서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 지도 알지 못합니다요.”
“그런데 왜 그렇게 떨고 있나?”
“그…그건…! 군인나리들이 총을 메고 있으니까 무…서워서 그렇습죠.”
나는 적당히 얼버무리며 두 손을 모으고 굽신거렸다.
이들에게 내 속내를 들어내서는 안 될 것이었다.
“하긴, 무식한 조센징이 황국신민이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하겠어?”
놈은 나를 벌레 보듯 깔아보더니 이내 담배를 피워 물며 우리를 인솔해 왔던 마스자카를
불러 뭐라고 지시한다.
마스자카가 헛기침을 하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먼저들 내려가 있지, 난 저 분이 잠깐 해야 할 일이 있다니까 금방 따라 가겠네.”
“아…알겠습니다, 나으리!”
우리는 이 말을 기다렸다는 듯, 황급히 자리를 떴다.
나는 서둘러 걸으면서 또 다른 의문에 휩싸였다.
이들이 조선을 저주하고 조선의 정기를 끊기 위한 목적으로 쇠말뚝을 박았다면,
뭔가, 우리에게 지침을 내렸어야 하는 게 아닌가? 적어도 이곳에 박은 쇠말뚝
사실을 발설하지 못하도록 당부를 한다든가, 어떤 말이든 한마디쯤은 하고 우릴
돌려보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너무 싱겁게 우릴 돌려보낸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했다.
나는 걸음을 더욱 빨리 하여 일행을 앞서 나갔다.
장백폭포 옆으로 급경사를 이루며 내려가게 될 샛길까지는 눈짐작으로 50보정도 남은 듯 했다.
가슴이 쿵쿵― 뛰어오르며 숨이 가빠왔다. 설마, 설마 아무 일이 없기를 기도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이제 샛길까지는 20보,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덕보와 상철이는 내 옆으로 바짝 따라 붙는다.
그들도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갑자기 뒤통수가 근질거렸다.
뭔가가 등 뒤를 덮치며 목을 조를 것만 같았다. 탕―! 순간, 한 방의 총성이 울렸다.
총소리에 당황한 나는 반사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우릴, 우릴 죽이려는 것이다!
생각하는 순간, 10여 발의 총성이 거의 동시에 내 귀를 찢었다.
그리고 함께 뛰던 동료들이 ―어억! 짧은 신음을 토해내며 고목 쓰러지듯 고꾸라졌다.
“개죽음을 당하는구나!”
허벅지 쪽에서 퍽― 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몸이 막 언덕 밑으로 내려서려는
정지점에서였다. 나는 언덕 아래로 고꾸라졌다.
―죽어서는 안돼! 나는 나 스스로에게 명령했다.
그리고 두 손으로 머릴 감싸며 무릎을 가슴에 오그려 붙였다.
공처럼 말린 몸뚱이는 몇 번인가 바윗돌과 부딪치더니 이내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정신을 잃으면 끝이라는 생각과 하나님이 꼭 나를 살려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교차되며 내 몸은 폭포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쩡―! 터져버릴 것 같은 압력이 이 몸뚱이를 부쉈다.
그리고 웅덩이 깊숙이 빨려 들어갔으나 폭포수의 압력은 내 몸을 다시 밀어 올렸다.
물이 코와 입으로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조센징 한 놈이 폭포 아래로 떨어졌다아―!”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폭포 안쪽으로 밀리듯 기어 들어갔다.
이 모든 것은 순간의 일이었다.
내가 만약 기도하지 않고 정신을 잃었다면, 나는 폭포 웅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을 때
죽었을 것이었다.
폭포 안쪽으로는 상당한 공간이 있었다.
거칠게 튀어나온 바위들이 나를 숨겨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며 공간 속으로 기어들었다.
그리고는 이내 몸을 눕혔다. 폭포수의 물보라가 쏟아질 듯 들어왔지만 숨쉴만 했다.
잠깐 숨을 고른 후 몸 상태를 살펴봤다.
허벅지가 쓰리고 아픈 걸 봐서는 놈들이 쏜 총알이 허벅지를 관통하고 지나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상태에선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이 협소한 공간 안에서
놈들의 눈을 피해 숨을 공간을 찾는 일이 급선무라 생각하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개 같은 죽음을 먼저 거부했다.
그리고 당신께서 주시는 이 고난이 미래의 영광이 될 것을 확신한다는 보고를 올렸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왔지만, 왜놈들의 총을 맞고 죽을 수는 없다고
울면서 기도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토 히토시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폭포소리에 흩어지며
어렴풋이 들려왔다.
“여기 빠져 죽은 조센징도 물 위로 떠오르거든 구덩이에 쳐넣고 함께 묻어버렷!”
“하잇! 염려 말고 돌아가십시오.”
이 자들이 지껄이는 말로 봐서는 다섯 명 모두가 사살된 것 같았다.
다행인 것은 언덕 밑으로 떨어져 폭포 속으로 곤두박질친 나를 당연히 죽은 자로 생각하고
시체가 떠오르게 되면 구덩이에 매장하겠다는 저자들의 생각이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행하시는 이 기적 같은 일에 나는 다시 한번 감사하며 밤이 될
때까지 지켜주실 것을 기도했다.
긴장이 풀리면서 서서히 추위가 엄습해 왔다.
총알이 관통한 허벅지가 쑥쑥 아렸다. 속옷 일부를 찢어 허벅지를 힘주어 동여맸다.
10여 일이 지난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우리가 천지에 쇠말뚝을 박던 날이 1910년(경술년)
8월 22일 오전이었고 한일합병늑약(韓日合倂勒約)이 체결된 날도 같은 날 오전이었다.
내가 살아서 그 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 곳을 경계하던 일본군인들 모두가 조선을
자신들의 식민지로 선포하게 된 사실을 알았는지, 아니면 쇠말뚝을 박아 조선을 죽였다고
생각한 건지 알 수는 없었으나, 어떻든 신나게 먹고 마시고 놀다가 일찍 잠에 골아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용정으로 갈 수 없었던 나는 회령에서 살고 있는 고모집에 몸을 숨기고 총 맞은 허벅지를
치료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령읍에서 장사를 하던 고모부가 어렵게 구해 온 신문을 보고
순종황제가 조칙으로 내린 경술국치(庚戌國恥)에 관한 내용을 알게 되었다.
1910년 8월 22일, 총리대신 이완용과 3대통감 데라우찌는 이 늑약을 비밀리에 체결하고도
민중들의 반항이 두려워 정치단체집회를 전면 중단시키고 원로대신들을 연금하는 등 철저한
통제후인 8월 29일에야 순종으로 하여금 양국의 조칙을 내리도록 한 것이다.
이로써 조선은 왕조건립 27대 519년 만에 망하고 말았다.
고모부는 용정에 사람을 놓아 그 곳 소식을 전해 주셨다.
마스자카 순사와 함께 백두산으로 부역을 떠난 여섯 사람은 가는 도중 마적의
습격을 받아 모두 죽고 마스자카만 겨우 살아났으나 심한 부상을 당해 본국으로 돌아갔다는 소문이었다.
놈들의 철저한 시나리오가 사전에 조작되어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유언비어인 것이다.
쇠말뚝사건을 지휘했던 이토 히토시는 그 이후에도 한반도의 명산마다 찾아다니며 쇠말뚝을
박았고 그 공적을 인정받아 장군으로 승진했다는 소식을 훗날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우리 민족의 정기를 잠재우기 위해 그들이 저지른 쇠말뚝사건의 주역이었다는
엄연한 사실 앞에 무릎 꿇고 참회했다.
그러나 고통은 두고두고 나를 괴롭혔다. 고모부는 그것은 주술적 행위에 불과한 미신이라며
위로했지만 당사자였던 나는 그 사건을 지워낼 수 없었다. 거기다 총에 맞은 허벅지 상처를
곧바로 치료하지 못하고 4일만에야 이곳 회령에 도착하여 민간요법으로 치료한 터여서 쉽게
아물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되고 있었다.
고모부는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일본인 양의사에게 나를 치료받게 해주셨다.
그러나 양의사는 내 상처가 너무 깊어 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상처가 골수까지 파고들어
목숨을 잃게 된다고 진단했다.
나는 하늘이 내려앉는 좌절이 있었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렸다.
이것이 내가 저지른 조선에 대한 죄의 대가라면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다리를 자르는 대수술의 고통을 여기에 기록하지 않는 것은 내 잘못에 대한
속죄의 의미이다. 또한 풍수지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내가 놈들이 백두산 천지 뿐
아니라 한반도 곳곳의 혈맥마다 박아놓았을 쇠말뚝을 세상에
고발하고 뽑아내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다짐도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꺼져갔다.
수술 후의 후유증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고 죽기보다 참기 힘든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술독에 빠져 살았다.
나는 술독에서 허우적일 때마다 세치입을 통해 일제가 박은 쇠말뚝사건을
떠들어댔고 사람들은 나를 미친 자로 치부하며 놀렸다.
그랬다, 나는 미치기 시작했고 드디어 미친 자가 되었다.
하잘 것 없는 신앙심은 나의 번뇌를 이겨내지 못하고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기도 역시 나를 이겨내지 못했고, 내면에 존재하는 천사와 악마는 수시로 싸워대며 으르렁거렸다.
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가 되고 말았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이 글을 읽게 될 후손들이 백두산 천지에 놈들이
박아놓은 쇠말뚝을 뽑아주기 바란다.
아니, 한반도 강산 혈과 맥마다 찾아다니며 놈들이 박아놓았을 저주의 쇠말뚝을 찾아내어
뽑아주기를 바란다.
잠이 온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꺼풀을 들고 있을 힘이 내게서 빠져나가고 있다.
주님이시여! 저를 구원하소서. 제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기서 죽었다.
가슴시리게 써 내린 그 사람의 글이 여기서 죽었다.
그 분의 글이 발견된 것은 2003년 4월이었다.
강용은 2003년 5월, 중국을 통해 장백산에 올랐다.
그리고 그 분이 오르던 장백폭포 옆 샛길을 따라 천지에 들어갔다.
누가 뽑아냈는지 그 분이 박았던 자리에 쇠말뚝은 없었다.
강용은 장엄한 백두산의 위용을 가슴으로 품으며 그 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