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땡아!뚱땡아! - 3
처음으로 하루라는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짧은 듯 하면서도 길고, 의미없는 듯하면서도 의미있고,
허무한 듯 하면서도 돌이킬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게 하루라는 것을..
페이스가 주먹만해서 그런지 베이비가 오랫동안 내 어깨를 비고 자는데 저리지도 않았다.
십분, 이십분, 삼십분..
조금씩 시간이 흘러갔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마음으로 느끼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베이비의 머리는 참으로 푹신푹신했다.
가끔씩 베이비의 머리카락이 내 콧구멍을 슬금슬금 간질이는 것만 빼고 말이다.
“에..에취, 에취~!”
콧구멍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던 베이비의 머리카락이 드디어 내 콧구멍 속으로 깊숙이 스멀스멀 들었고,
가려움을 못참고 재채기를 쏟아내며 설잠에서 깼다.
나도 모르게 베이비의 머리를 비고 자고 있었다.
괜시리 민망했다.
그 순간 내 머리 밑에서 무언가가 꼼틀꼼틀 움직였다.
그 꼼틀거리는 것은....베이비의 머리통이었다.
...깼나?
갑자기 긴장감이 내 온몸을 감쌌다.
이 상황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넘길 것인지 말이다.
가만..아니지, 이화봉! 이 놈이 먼저 기대고 잔거잖아!
넌 오히려 이 베이비한테 고맙다는 말을 들어야한다구!
두 눈을 부릅떴다.
꼼틀거리는 것 같은 베이비였지만,
일어나지 않고 여전히 내 어깨를 베고 허리에 두 손을 꼬옥 두른 채 잠들어 있었다.
팔뚝도 무슨 젓가락처럼 가느다랬지만, 용케도 항아리같은 내 허리를 완벽하게 두르고 있었다.
뭐 결론은 팔다리가 길다 그말이지.
..근데 아직도 자나?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았다.
그런데..이 놈이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짙고 길다란 속눈썹 덕에 보이지가 않았던 것이다!
뭐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니 잠에서 덜깬 것 같기는 했지만 말이다.
머뭇머뭇거리다 베이비의 머리카락으로 손을 가져갔다.
퍼머 머리치고 꽤나 부드러운 머릿결이 느껴졌다.
가만히 있으니 희미한 샴푸향기까지 나는 것 같다.
무슨 남자 새끼 머리에서 재수 없게 샴푸 냄새가 나냐..
라면서도 킁킁하고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그 냄새를 무시무시하게 마셔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베이비가 머리를 들고 똑바로 앉더니 날 빤히 바라본다.
혹시..안자고 있었던 거야!
순식간에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방금 전까지 자고 있던 놈답지 않게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쳐다봐서 뭐 어쩌자고!
이 새끼, 내가 뭐 지 몸에 손댔다고 변태 취급하기만 해봐!
이 자리에서 갈아먹어버릴테니까!
근데 망할 베이비놈,
나를 말라 죽일 심산인지 어떤 행동도, 말도 하지 않고 예쁜 두 눈을 깜빡거리면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내가 먼저 선수를 쳐야지.
“일..일어났냐?”
하지만 베이비는 침묵했다.
무안함에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 오해라도 하면 안되는데..
나 이화봉, 양심에 손을 얹고 말하건데 내 손으로 먼저 남자에게 손대 본적 결코 없었다!
정말이다!
“베이비 너 절대 오해하지마라!
내가 막~! 막~ 싫다는데도 니가 억지로 나 껴안고 어깨 비고 잔 거야, 알았어?”
또다시 침묵하는 베이비.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거야! 못 믿겠다 이거냐!
“정말이라니까! 난 자체적으로 스킨쉽이라는 것을 싫어한다 이 말이야!
너 때문에 어깨에 쥐나서 죽는 줄 알았다구!”
쥐는 무슨.. 느낌도 안 났다.
너 때문에 남자한테서 향기라는 것도 맡아봤다~~!
그래도 끝까지 입 다물고 나를 바라보는 베이비.
“야, 너 설마..설마 내가 뭐 너한테 뭐 이상한 그런거 한거라도 오해하는 거..
그런 거 아니지?”
이러면 안되는데..
사실 지금 베이비와 나의 객관적인 상황을 따지자면 내가 이 놈을 덮쳤으면 덮쳤지,
절대 이 놈이 나를 덮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을 것이라는 걸 안다.
그게 바로.. 불공평한 외모 지상주의 세상이었다!
..그래! 그래!
조금 비양심적인 생각도 했다! 어쩔래!
내가 무슨 성녀도 아니고 이런 놈 보고 그런 생각조차도 못하냐!
괜시리 혼자 별 상상을 다하며 씩씩거리고 있는데, 베이비가 보조개를 쑤욱 넣으며 쌩긋 웃는다?
...이 놈 , 왜 쪼개지?
그 커다랗던 눈동자가 그새 어디론가 도망갔다.
그래, 베이비는 눈웃음을 실실 흘리며 또다시 나를 덥썩 껴안더니,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이건..이건 또 무슨 뜻이야.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내 두 손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허공에서 바둥바둥 방황하고 있었다.
이 두터운 몸뚱아리를 무슨 소중한 물건마냥 꼬옥 껴안는 베이비.
“푹신하다..헤헤.”
이 놈이..
하지만 나도 한 여자인지라 베이비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아니, 이런 어린 양을 절대 내쳐서는 안된다는 하느님 말씀이 계셨다!
또다시 베이비가 자버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자는 것까지는 좋지만 나를 이렇게 부둥켜안고 있는 이상 나도 같이 있어야하는데..
내일, 아니 오늘 일찍 효행원 가야되는데..
하지만 이내 결정은 끝났다.
어느새 나는 베이비의 어깨를 아까처럼 토닥이고 있었으니까.
흡사 칭얼대는 아기를 달래려는 엄마처럼 말이다.
길 잃은 어린 양을 절대 내칠 수는 없었다!
그것도 이렇게나 어여쁜 어린 양을 말이다!
..주님, 저는 오늘 어린 양을 한마리 구제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번쩍 고개를 들고 일어나는 베이비.
이 망할 놈..도대체 니가 원하는 게 뭬야~?
이번엔 내 손을 덥썩 잡더니 진지한 눈빛으로 내 눈을 빤히 바라봤다.
“......?”
“뚱땡이.”
드디어 베이비가 입을 열었는데..
그런데 이 놈 첫마디, 여엉~ 거슬린다.
맘에 안든다 이말이었다!
뚱땡이라니! 누가! 누가!
“나 화장실 가고 싶어.”
“..그..그런데?”
..그걸 왜 나한테 말하냐고.
“같이 가자.”
“뭐??”
“같이 가자.”
“어딜?”
“화장실.”
“미..미쳤냐! 내가 남자 화장실을 어떻게 가!
화장실 저쪽에 있으니까 혼자 갔다와!”
말도 안되는 엉뚱한 소리를 내뱉는 베이비.
이 놈 확실히 술 덜깼다!
그렇게 퍼마셔댔는데 화장실을 안가면 니가 인간이냐!
베이비도 인간은 인간이었나보다.
“싫어, 뚱땡이랑 같이 갈거야.”
“자꾸 뚱땡이 뚱땡이 하지 마!”
“같이 가자.”
전혀 굽힐 것같지 않은 베이비의 똥고집.
무작정 안된다고 해서는 말이 안통할 것 같았다.
이화봉..침착하자.
“베이비, 그러니까 잘 들어. 나 이화봉은 말야.
대한민국에서 인정해주고 민증까지 발급해준 성인 여자라구.
이런 어마어마한 신분으로 남자화장실을 들어간다는 것은 나 정신병자에요..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가자.”
말도 다 안했는데 단호하게 가자고 내 손을 꼬옥 붙잡는 베이비.
미치겠네! 하필이면 민망하게 남자 화장실을 같이 가자고 그러냐고!
그럼 그렇지..
아직 술도 덜깨 놈한테 설명을 하려는 내가 바보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된다니까!”
살짝이 언성 한번 높여봤다.
베이비는 순신간에 상처입은 듯한 맑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정말 그렁그렁 눈물이 고인 것 같은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괜시리 마음이 약해지고 있었다! 무너지면 안되는데..
아무리 그래도 남자 화장실은 절대 안되는데!
“왜 하필 남자화장실이야..
다른 데..다른 데 같이 가줄께..화장실만은 제발 참어라, 베이비. 응??”
말도 안돼..내가 이렇게 사정을 해야하다니!
하지만 베이비의 두 눈에는 정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물기 가득 머금은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눈물 방울을 뿜어낼 것 같았다.
으으으으으으~~!
알았다, 알았다고!
따라가주면 될 거 아냐!
설마 이 새벽에 공원 화장실에 사람이 있을 리가 있겠어?
사실 혼자 벤치에서 기다리는 것도 무서웠고,
분명 술이 덜 깬 베이비를 혼자 보낸다는 것은 위험하다는 나만의 냉철한 판단력에 의해서 결정한 일이었다.
“그래, 가자! 까짓 거 화장실 가자고!”
언제 울먹거렸냐는 듯이 정말 말도 안되는 해맑은 미소를 짓는 베이비.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베이비는 내 손을 잡고 번쩍 일어나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베이비의 손을 잡고 남자 화장실로 끌려가면서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다.
절대..절대!
베이비가 술 먹었을 때는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쫓아오지 않겠다고 말이다!
베이비 주제에 다리는 어찌나 긴지 베이비는 저벅저벅 걸어가는데 나는 허겁지겁 뛰고 있었다!
정말 불공평한 세상이었다!
드디어 남자 화장실 앞 도착. 여자 화장실은 반대 맞은 편에 있었다.
“따라와줬으니까 얼른 들어갔다 와.”
베이비의 등을 밀었다.
“아.. 빨리 나와. ......무서우니까.”
슬그머니 끝말을 흐렸다.
사실.....이 야심한 새벽, 공원에 혼자 있는다는 것은 정말 무서웠다.
참고로 나는 겁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눈 크고 예쁘장한 여자애들만 겁이 있는게 아니었다!
그런데?
베이비가 꿈쩍도 안한다.
“왜? 마음 변했어? 화장실 가기 싫어?”
“뚱땡아.”
빠지직..
이마에 불끈 힘줄이 섰다.
..이 놈이 끝까지 뚱땡이라네~~
“같이 가자.”
“너 설마....베이비 너 설마..
화장실 같이 가자는 게 저 안까지 같이 들어가자는 거 아니지?”
정말 심술궂게도 베이비가 해맑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 미쳤어! 무슨 여자 변태라도 만들 심산이야!”
“혼자 들어가면 무섭고 심심해.”
말하자마자 내 손을 잡고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는 베이비.
꼴에 남자라고 힘 무지 셌다!
결론은... 남자 화장실로 질질 끌려들어갔다.
사실 이 새벽에 사람이 있을 리도 없었고,
나 또한 혼자 서있기에 무서웠기에 나중엔 자포자기하고 내 발로 걸어가다시피 들어갔다.
그런데.. 정말 말도 안되게 이른 이 새벽에 변기에 철썩 달라붙어 볼일을 보고 있는 두 놈이 있었다!
두 놈들, 볼 일 보다 내가 들어오자 흠칫해하며 더더욱 변기에 달라붙었다.
아..~! 진짜 이게 뭐야!
어색스레 두 놈들을 향해 미소지었다.
“아..하하~~ 저 신경쓰지 마시고 볼일 보셔요, 전 곧 나갈거랍니다~”
바로 등을 돌리고 나가려는데 베이비가 내 손을 꼬옥 잡더니,
“뚱땡이, 어디 가. 내 옆에 있어.”
라더니 변기로 다가간다.
잽싸게 등을 돌리고 후다닥 나가려는데..
“뚱땡이 너 나가면 죽는다.”
라고 베이비가 말했다.
정말 싸늘한 목소리.
더더욱 기가 막힌 것은 베이비의 말이 정말 무섭게 느껴졌다.
정말 민망스러운 소리가 들려왔고,
민망스러운 장면을 안보려고 변기가 있는 반대벽에 몸을 돌리고 두 눈을 꼬옥 감고 있었다.
베이비는 미쳤다!
변태였다!
취향 독특한 싸이코였다!
그러지 않고서는 나를 이렇게 남자 화장실에 데리고 들어올 수는 없었다!
볼일을 보고 나가는 두 놈이 나를 변녀같이 쳐다본다.
“아..하하..죄송합니다. 저 이상한 여자 아니에요~”
애써 미소지으며 말을 했지만 놈들의 얼굴을 봐선 백퍼센트 변녀로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제길! 베이비 너 죽었어!
이를 바드득 바드득 갈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손을 덥썩 잡았다.
흠칫하며 돌아보니 볼일을 다 봐서 그런지 시원스러운 표정으로 베이비가 서 있었다.
“끝났어?”
“응. ”
그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남자 화장실을 뛰쳐 나가려는데 내 손을 안놔주는 베이비.
“왜에~!!!!!”
버럭 소리 질렀다.
너무 화났다.
이 놈 때문에 나는 소중한 내 하루를 망쳐버렸다.
“뚱땡이 너 더러워.”
“......?”
“화장실 왔으면 손 씻고 나가야지. 그냥 나가려고 그러잖아.”
“뭐?”
기가 막혔다.
볼일은 지가 봤지 내가 봤냐고!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너무 기가 차서 대답도 못하고 서 있는 내 손을 끌고 세면대로 갔다.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정말 남자답지 않게 꼼꼼히,
오랫동안 손을 씻더니 내 손까지 부드러운 손길로 정성스레 씻어주는 것이었다!
정말..정말 이 놈은 정상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화장실 갔다 나올 때 손은 깨끗이 씻어야 돼.”
오 마이 갓!